음식과 요리 - 세상 모든 음식에 대한 과학적 지식과 요리의 비결
해럴드 맥기 지음, 이희건 옮김 / 이데아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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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828 저자: 해럴드 맥기.


8월 3일 저녁. 1100페이지가 넘는 이 책을 호기롭게 펼쳤다. 이걸 완독하는 건 무식한 걸 수도 있고, 꽤 장기 과제가 되겠다. 추천사와 저자 서문을 본 뒤 15장으로 먼저 갔다. 거기에는 음식의 가장 기본이 되는 분자인 물, 지방, 탄수화물, 단백질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 그 다음 주석 직전 책의 말미 부록에는 기초 화학에서 배울 법한, 그러면서 음식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하는 원자, 에너지, 물질의 상(액체, 고체, 기체)에 대해 짧게 정리해 놨다. 이렇게 책에서 제일 지겨울 것 같은 부분을 먼저 해치우고 1장으로 간다.

8월 4일. 1장. 대다수 인간의 첫 식량인 젖(우유 등)과 버터, 크림, 요구르트, 치즈, 그외 다양한 유제품에 대해 온갖 이야기를 한다. 주로 음식의 상태가 왜 그렇게 되는지 분자의 상태와 변화를 그림까지 그려가며 이야기한다. 그렇다고 다 과학 이야기만 하는 건 아니고, 유제품 종류와 특성과 제조법, 역사 속 음식 이야기 같은 깨알 같은 내용도 있다. 1장의 말미를 치즈로 마무리하는 게 좋았다. 다른 음식은 별 감흥 없었는데, 치즈에 대해 읽으니 그동안 먹어본 이런저런 치즈맛과 모양이 생각났다. 큰 마음 먹고 비싼 퐁뒤를 먹으러 갔는데 맛도 없고 먹기도 곤란했던 20여년 전 일도 떠올랐다. 저녁으로 엄마가 참치김치볶음밥에 계란까지 부쳐 주셨는데, 그 위에 고단백 슬라이스 치즈를 곱게 얹어 먹었다. 젖과 유제품 만으로도 110쪽이 넘어서, 책 한 권을 본 기분이었다. 그래도 벌써 1/10이나 읽었어…

8월6일. 2장. 초반 달걀 노른자와 흰자에 대한 부분을 읽고는 점심 거리로 달걀 프라이를 부쳐서 아이들과 함께 먹었다. 정말, 노른자 근처의 흰자는 덜 익고, 노른자 위 하얗고 작게 뭔가(생식세포가 있는 흰색 원시 노른자가 노란색 노른자보다 밀도가 낮아 떠오름)가 있는게 보였다. 아는 만큼 보이는 구나. 그렇지만 아직 덜 읽어서 프라이를 예쁘게 부치지는 못했다. 달걀 장은 의외로 달걀 거품에 페이지 할애를 많이 해서 베이킹을 잘 안 하는 나에게는 생소했지만, 온갖 거품의 종류와 특성과 제조법을 나열해 놓은 건 신기했다. ‘머랭이란 뭘까….그건 뭔가의 번데기가 아닐까’하는 만화 속 이상한 노래 가사 생각이 난다.
이 방대한 책의 아쉬운 점은 모든 요리를 텍스트로 소개해서 (분자 구조식은 예외) 잘 모르는 음식은 시각화하기 힘들다는 거였다. 그렇지만 원래 책은 미각 후각도 못 전하는 것, 글자와 종이는 먹지도 못한다. 그래서 조리법이 길게 나오는 경우는 적당히 넘어가기로 했다.

3장. 고기를 다룰 때는 단순히 식품과 식재료의 의미부터 등장하지 않고, 인류학, 사회학, 건강 이슈 관련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러고나서 생명과학이나 해부학 관련에서 보던 근섬유 조직에 대해 나와서 와, 봤던 거다 했다. 고기를 굽는 다양한 방식은 나름 실용적일 것 같은데, 아직 에어프라이어가 보편화되기 이전 책이라 그런가 최후의 도구는 전자레인지만 제시되었다. 선생님, 겉바속촉에 온도 조절까지 자유로운 그런 도구가 추가되었답니다...

8월 7일. 고기를 익힐 때 굽든 찌든 끓이든 시간과 온도를 조절해 가며 육즙을 남기는 게 전문적인 영역으로 보였다. 내가 저렇게 고기에 진심이었던 적이 있던가… 고기를 사면 늘 양념불고기나 찜이나 국류는 엄마가 하고, 생고기를 오븐이나 에어후라이어나 팬에 굽는 건 내가 한다. 다 그냥 어림짐작과 중간에 가위로 잘라서 색 보고 속까지 익었나 눈대중으로 저렴한 고기들을 요리하는데 어떻게 해 주든 맛있게 먹어줘서 다들 고마워...오늘은 소시지까지만 읽자…(그런데 뒤에서 더 읽어보니 원래 고기익히기는 그렇게 짐작과 대중이래…)

8월8일. 푸아그라나 콩피, 발효 소시지 같은 건 상상도 못하게 생소해서 그냥 그렇구나...했다. 어제 읽다 만 고기 파트 마무리. 닭(오리, 칠면조 거위 정도 추가), 소, 돼지처럼 주로 먹는 고기 위주였고 양이나 말 같은 건 안 나와서 그야말로 실용서였다.
어류를 물고기 대신 물살이로 표현한 다른 책이 기억나는데, 이 책에서는 육고기 외 해산물을 다루므로 얄짤없이 물고기이다. 생선, 조개, 갑각류를 식재료로 다루기 전에 남획, 양식의 문제점과 해산물 섭취로 인한 위험-병원균, 기생충, 축적된 오염물질, 생명체로서의 물고기 특성 등을 먼저 이야기하는 게 인상 깊다.
좋아한 적도 없지만 어느 순간 생선 냄새를 많이 싫어하게 되었다. 그런 인간이 물고기의 신체 구조와 특성에 대해 읽고 있다. 작은어린이는 반대로 생선을 무척 좋아해서 손으로 마구 주무르면서 껍질도 벗겨 먹고, 눈알도 먹고 싶어 한다. 내 대신 생선 구워주시는 엄마에게 감사하기로… 게살을 흉내낸 명태살로 만든 크래미를 먹고는 생선살과 게살에 대한 부분을 읽는다. 진짜 게를 먹은 지 너무 오래되었다. 내가 다루기 싫다고 어린이들에게 여러가지 먹을 기회를 빼앗는 건 아닌가 싶다. 찬바람 불면 가을 꽃게라도…

8월9일. 점심에 훈제(햄)오리를 오븐에 채소랑 마늘이랑 구워서 먹었다. 기름이 적당히 빠졌는데 이전에 본 고기 익히는 온도를 생각했지만 직접 조정할 엄두는 못내고 그냥 닭다리구이 모드로 익히다 조금 먼저 꺼냈다. 패각류, 연체동물, 생선알 같은 부분을 마저 읽었다. 생선 장은 캐비어로 마무리되는데, 그걸 내가 언젠가 먹어볼 일이 있을까 모르겠다. 다음은 드디어 식물 식재료로 간다.

8월10일. 식품이 되는 식물 일반에 대해 읽었다. 식물의 광합성, 구조와 기능, 질감, 색, 맛 이런 것들. 오늘 먹은 식물이 뭐가 있나 역순으로 떠올려본다. 복숭아, 자두, 콩(두유), 귤, 배추(김치볶음밥), 쌀, 바나나, 피칸. 온갖 것들이 나를 이루고 있다.

8월11일. 채소를 끓이고 튀기고 찌고 다양하게 익히고 갈고 하는 부분이 무척 재미없었다. 채소가 들어간 음식을 너무 안 만들어 먹는다는 생각이 든다. 집 앞에 무척 싸게 파는 채소가게가 생겨서 어르신들의 메카가 되었고, 우리집 어르신도 가끔 저렴한 채소와 과일을 득템해 오신다.

8월12일. 과일 저장을 위한 건조, 발효, 잼, 통조림 만들기 부분으로 이 장이 마무리 되었다. 그렇지만 앞으로도 채소, 과일, 향료, 씨앗, 곡류 이렇게 식물 식재료가 각각 한 장씩 차지하고 있다. 개별 종에 대해 나오니 조금 더 재미있으면 좋겠다.

8월13일. 채소의 날. 아는 채소가 나오면 익숙하고, 처음 듣는 채소가 나오면 흥미로웠다. 정작 오늘 먹은 채소는 소량의 배추 김치와 콩나물국 말고 없다.

8월14일. 과일의 날. 정작 집에는 먹을만한 과일이 없다. 귤 몇 개와 냉동 망고. 책에는 흔히 먹는 온대, 열대 과일 종류와 특징이 담겼다. 브레드프루트와 두리안도 나온다.

8월16일. 하루 쉬고 허브/향신료 부분이다. 맛의 원리나 향의 언어 같은 책을 읽었지만 오래 전이어서 기억이 날리가 없으니 여러 풍미 성분 분자 이름들을 한 번 더 훑었다. 재료가 되는 식물 나열만으로도 눈이 아팠다. 한국에서는 만나지 못했을 식물이 정말 많았다. 차, 커피에 대해서도 비교적 상세히 다루고 훈연을 이 파트에 포함시켰다. 커피를 끊다시피해서 아, 난 왜 삶의 즐거움을 하나씩 덜어내고 있나, 싶다.
다음 주제는 씨앗-곡물, 콩, 견과 등이다. 이건 먹고 사는 거랑 큰 관련이 있는 주제라 관심있게 읽게 된다.

8월17일. 곡물 중 옥수수를 읽는 참이었는데, 마침 라운드 나초를 하바네로 살사에 찍어먹었다. 재료명 중 마사라는 게 있는데 옥수수가루를 알칼리 처리한 후 반죽 같은 거라고 했다. 책 읽은 보람이 있네. 전날에는 타코를 시켜 먹었는데 그것도 옥수수 재질로 감싸져 있었다.
견과류 부분은 다양성하지만 거의 다 아는 애들이었다. 오늘 아침에도 피칸을 열 알 정도 먹었는 걸. 그렇게 1년 정도 먹으면 HDL이 정상범위 뚫고 올라가기도 한다.

8월18일. 오랜만에 출근해서 피곤한데다 빵 하나 안 먹은 날 빵과 반죽과 밀에 대해 읽으려니 잘 들어오지 않았다.

8월19일. 빵과 케이크를 먹는 건 즐거운 일이지만 그걸 만드는 원리-섞기, 반죽 치대기, 굽기, 식히기-에 대해 읽는 건 전혀 달콤하지 않다.

8월22일. 잇몸 치료 하고 서너시간은 있어야 마취가 풀리는 와중에 페이스트리와 쿠키에 대해 읽는다. 와퍼 주니어를 사왔지만 저걸 언제 먹게 될 지 모르겠다. 쿠키라는 말이 한입에 넣을 수 있는 작은 케이크를 의미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제과 제빵 부분은 대부분 유럽, 미국 음식 위주라 빵순이 아니라 잘 모르겠다 싶었는데, 면에 대해 나올 때는 아시아도 할 말이 많아서 좀 더 흥미롭게 읽었다.
소스 부분에는, 내 식사에서 소스는 사치품, 영양성분에 크게 기여 못하고 염분만 높이는 무언가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소스에 진심인 사람이 많았다. (특히 프랑스) 우리가 육수라고 부르는 맛 베이스를 여기서는 스톡 농축, 추출로 표현해 놓았다. 소스-육수-젤리를 한 부류로 다루는게 내가 보기에는 독특했다.

8월23일. 설탕과 초콜릿, 당과에 대해 다루는 장을 본다. 18세기에 영국인들이 갑자기 설탕을 많이 소비하게 되었다는데 그 당시에 당뇨병은 안 유행했는지 궁금해졌다. 인공지능에게 물어보니 늘긴 했지만 현대인 먹는 양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거고 활동량은 훨씬 더 많았던데다 평균수명도 낮아서 당뇨 진단 자체가 거의 없었다고 한다. 설탕, 꿀, 단풍나무 시럽 등 온갖 단 식재료에 대해 읽었다.

8월25일. 사탕을 안 먹는 내가 다양한 종류의 사탕에 대해 읽었다. 문득 종류별로 사탕이 먹고 싶어지긴 했다. 그렇지만 그냥 물 마셨다.

8월26,27일. 집에 초콜릿이 하나도 없는데 초콜릿에 대해 읽었다. 이십대에 제과 사이트에 재료 주문해서 이것저것 초콜릿 만들었던 생각이 났다. 지금은 아휴 귀찮아. 있으면 먹는데 아니 있어도 몇 주를 냉장고에 묵히다가 가족 다같이 있을 때 한 조각씩 나눠 먹는 정도이다. 그래도 지금은 한 조각 먹고 싶은데 없다.
다음 파트는 술인데 역시나 집에 술이 없고 지금의 나는 술을 마시지 않는다. 그런데 술에 대한 부분이 생각보다 두툼하다. 이제 천페이지가 넘었고 그래도 끝이 보인다…

8월28일. 예전에 ‘술 취한 식물학자’란 책을 술알못이 어렵게 읽던 기억이 났다. 이 책도 그 정도는 아니지만 거의 80쪽 넘게 알코올 음료에 대한 설명이 이어진다. 나는 술을 먹지 않는 편이 덜 나쁜 사람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술과 커피를 마시지 않아도 삶이 살아진다. 두께 탓인가 이 책은 먼지다듬이(책벌레)의 서식처가 되었다. 오늘까지 벌써 세 마리가 기어다니는 걸 눌러 죽였다. 책등 두꺼운 부분에 공간이 벌어져 있어서 거기에다 에프킬라를 두 번이나 뿌렸는데도 소용이 없다. ‘음식과 요리’는 먼지다듬이의 맛있는 음식이 되어 버렸다.
포도와 곡물에 진심이던 사람들이 온갖 재주를 부려서 다양한 와인과 맥주를 내놓았다. 그런 식문화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인류의 독특함은 한두가지가 아니겠지만 술을 담가 먹는 것도 그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다수가 알코올 때문에 몸이 둔해지고 살짝 맛이 가는 걸 즐겁게 여긴다.
알코올 발효 다음은 초산 발효라서 식초도 이 장에서 함께 다뤘다.
마지막 장인 음식물의 기본 분자를 미리 봤기 때문에, 그 바로 앞장 조리 방법과 조리기구의 재질이 읽기의 마무리가 되었다. 사실 이제 버거워서 좀 대충 넘겼다.
갈변반응인 캐러멜화와 메일라드 반응 같은 게 분자 구조도와 함께 나왔다. 이건 화학인가...
그러고나서 열의 전도, 대류, 복사 같은 물리학 같은 게 튀어나왔다. 그런데 대부분의 요리가 열을 쓴다는 점에서 열의 전달 방식을 아는 게 도움이 되긴 할 것 같다.
그릴링(열원이 음식 아래), 브로일링(위에), 베이킹(대류, 복사), 보일링, 시머링(보일링보다 온도 낮음), 포칭, 찜, 프라잉, 소테잉, 튀김, 마이크로파 복사, 열은 정말 다양한 방법으로 쓰이고 있었다.
세라믹(질그릇, 사기그릇, 유리, 법랑), 알루미늄, 구리, 철, 강철, 스테인리스 스틸, 주석, 다양한 재질에 대해서까지 다룬다. 진짜 웅장한 책이었다...음식에 대해서 잘 알기 위해 기구 소재까지 다룬다.

천페이지 넘는 이걸 읽은 나란 놈은 이제 요리는 거의 손을 놓고 엄마가 해주시는 밥을 먹고 있다. 기껏 해야 냉동피자, 냉동치킨, 가끔 고기 굽기, 떡볶이 정도 만들고 도시락 닭가슴살은 전자렌지 1분으로 끝나는 제품을 사 먹는다. 그런 나라도 요리에 대해 읽는 건 흥미롭고 아는 부분도 생각보다 많았다. 음식과 맛 책을 읽은 역사가 길긴 하다. 먹는 낙을 놓은 지는 오래이지만 뭐 한 번 훑어봤으니 궁금하고 생각날 때마다 아, 그부분에 비슷한 설명이 있었지, 하(는 일은 흔치 않겠지만)고 찾아볼 수는 있겠다. 먼지다듬이만 더 퍼지지 않는다면 말이다.이 책을 비닐백에 넣어 냉동실에 얼려 벌레를 죽이기엔 시멘트 벽돌만하다. 그렇다고 버리기는 아깝다. 전집류 빼고 한 권 짜리 책 중에는 제일 비싼 8만8천원(중고로 더 싸게 삼)인데다 내용도 꽉꽉 차 있단 말이다. 아 제일 비싼 건 ‘한반도의 새’ 도감 12만원(이것도 중고)이었다...이제 이렇게 무식하게 보지는 말아야 겠다. 통독 안 해도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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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수십 년 동안 치즈를 먹으면 충치 발생을 지연시킬 수 있다는 사실이 인정되어 왔다. (…) 정확한 이유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스트렙토코쿠스에 의한 산 생성이 증가하는 식사 끝 무렵에 치즈를 먹으면 치즈 속에 함유된 칼슘과 인산이 박테리아 서식지로 스며들어 산의 증가를 둔화시킨다고 한다. (113, 치즈가 충치에 좋다니, 말맛이 맞는다. 나만의 비법이라면, 된장국에 모짜렐라 치즈를 넣으면 감칠맛이 터진다...다들 알려줘도 시도를 안 하더라…)

-하나의 달걀은 생명으로 굴절된 태양 빛이다. (116, 노른자는 해로 많이 비유가 된다. 이 부분은 아주 시인이구만…)

-도대체 우리는 영혼을 가진 이 야생 닭의 후예들을 햇볕 한 줌 볼 수 없고, 흙 한번 파보지 못하고, 움직거릴 틈이라고는 3~4센티미터에 불과한 좁은 공간에 갇힌 생물 기계로 전락시키지 않고, 좀 더 인간적인 방법으로 싸고 좋은 달걀을 먹을 수는 없는가.(123, 여기서 ‘인간적’은 좋은 쪽으로 쓰인 듯하다. 이미 산업화된 양계시스템은 충분히 인간답긴 하다.)

-물 위로 완전히 뜨는 달걀은 아주 오래된 달걀이며 버려야 한다. (136, 공기주머니가 커질수록 오래된 것이다.)

-지금까지는 고기가 인간의 진화를 도왔지만, 이제 고기는 인간의 퇴화를 도울 수도 있다. 우리는 고기를 절제하며 먹어야 한다. 그리고 고기가 가진 영양상의 힘과 한계를 보완하는 채소와 과일을 함께 먹어야 한다. (196, 자주 듣지만 또 자주 간과하는 일. 기후위기, 식량불균형, 동물권 등 고기는 생명체였던 것의 살점 이상으로 연결된 문제가 많다.)

-좋은 고기란 깨물면 이빨이 쑥 들어가고, 치밀하면서 실팍하고, 처음엔 잘 씹히지 않지만 이내 이빨에 백기를 들면서 풍미가 나는 그런 고기다. 질기다는 것은 불쾌감을 느낄 정도로 고집스레 씹기에 저항하는 것이다. 질김은 근섬유나 근섬유를 둘러싸고 있는 결합 조직 때문일 수도 있고, 마블링이 없어서일 수도 있다. (205, 참 감각적이네 좋은 고기 먹고 싶게 만듦)

-닭다리의 단백질은 5~8센트가 콜라겐인 반면에 가슴살은 2퍼센트에 불과하다. (206, 퍽퍽함의 이유)

-몇 년 후, 정부에서 비용을 댄 연구들에 의해 다량의 마블링이 결코 소고기의 연한 육질과 맛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러나 마블링이 풍부한 프라임 소고기의 지위는 끈질기게 유지되었으며, 미국은 지방 밀도를 고기 품질의 주된 기준으로 삼는 세 나라 가운데 한 나라가 되었다. 다른 두 나라는 일본과 한국이다. (212, 그러니 등급과 비싼 가격이 고기 맛의 다는 아니지만...다들 더 맛있다잖아.)

-계속해서 쉬익-쉬익-하는 소리가 강하게 나는 것은 뜨거운 팬에 의해 수분이 곧바로 수증기로 변한다는 표시이며, 이때는 효과적으로 표면이 갈변된다. 약하고 불규칙한 펑-펑-하는 소리는 수분이 물방울로 집적되고 있다는 신호이며, 팬이 덜 달궈져 그것을 날려 보낼 만큼 뜨겁지 않다는 것을 뜻한다. (247, 와 요리사들은 고기 팬 프라잉할 때 소리로 온도를 판단한대.)

-잘 만들어진 통조림은 정말 효과적이다. 100년 된 통조림 고기를 아무 탈 없이 먹은 적도 있다. 아, 물론 별 맛은 없었다. (276, 아 선생님...ㅋㅋㅋ)

-다행히 지독한 생선 비린내는 두 가지 간단한 조처로 크게 줄일 수 있다. 생선껍질에 축적된 TMA는 수돗물로 씻어 낼 수 있다. 또 레몬주스, 식초, 토마토 같은 산성 재료도 도움이 된다. (298, 비린내 싫어하는 나에게 팁...인데 이미 식초 든 세정제로 식탁을 벅벅 닦곤 한다.)

-오늘날 참치는 대부분 태평양과 인도양에서 잡힌다. 압도적으로 가장 많이 잡히는 것은 가다랑어와 황다랑어로, 이들은 작거나 중간 크기의 기름기 적은 물고기이며, 번식이 빠르고 해수면 근처에서 떼로 그물에 걸린다. 흰색 살을 가진 고독한 날개다랑어와 더불어 전 세계 참치 통조림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308-309, 참치의 원래 이름을 기억해줘야지. 참다랑어, 눈다랑어는 더 크고 희귀하다고 한다.)

-통생선을 구입하는 경우에는, 껍질이 탱탱하고 윤기가 있어야 한다.(…) 자연적인 단백질성 점액이 껍질을 덮고 있는 생선이라면 그 점액이 투명하고 윤기가 있어야 한다. (…) 눈알이 맑고, 검고, 불룩 튀어나와 있어야 한다. (…) 온전한 생선인 경우에는 복부 부위가 부풀어 오르거나 물컹거리거나 손상되어 있지 않아야 한다. (…) 토막 생선을 구입하는 경우에는, 스테이크와 필레가 겉보기에 포동포동하고 윤기 있어야 한다. (…) 토막 생선이든 통생선이든 상큼한 바닷가 공기 냄새나 으깬 초록 잎사귀 냄새와 비슷한 냄새가 나고, 비린내가 심하지 않아야 한다. (314-315, 생선 구입 시 참고하세요.)

-모든 식물 조직은 수분이 대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건조해져서 팽압을 잃고 내부 시스템이 손상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습도를 유지해야 한다. 현실적으로 이것은 식물성 음식은 비닐 주머니, 냉장고 안의 서랍 같은 제한된 공간에 보관하는 것이 가장 좋다는 것을 의미한다. (411, 어려운 말 하고 나면 친절하게 바로 풀이해주심)

-알칼리성 조건은 실제로 쓴맛이 나는 올레우로페인을 분해하며, 광택이 나는 겉껍질에 구멍을 내고 들어가 세포벽 물질을 용해한다. (437, 올리브는 수산화나트륨 용액으로 처리한다고...이후 알칼리성 중화 위해 세척, 산성 처리를 한다고 한다.)

-포테이토칩은 심하게 말하면 외피만 있고 속은 없는 프렌치프라이다. 감자를 1.5밀리미터 두께-감자 세포 10~12개에 해당한다-로 얇게 편 다음 수분이 없어지고 아삭아삭해질 때까지 튀긴다. (449, 집에 감자튀김과 감자칩을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 셋 있다. 난 사양하는데 몸에 안 좋다하니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타피오카는 말린 카사바 전분을 작은 공 모양으로 가공한 것으로, 디저트나 음료에 넣으면 물기를 빨아들여 젤리처럼 된다. (451, 필릭스 용복 때문에 자꾸 공차의 펄 알갱이가 어른거린다...광고의 효과)

-한국인과 일본인들이 특별히 즐기는 고사리는 DNA를 손상할 수 있는 잠정적 위험물질을 함유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으므로 피해야 한다. (469, 고사리를 피하자)

-비식용 꽃:은방울꽃, 수국, 수선화, 협죽도, 포인세티아, 로도덴드론, 스위트피, 등나무(481, 먹으면 안 돼)

-아보카도라는 이름은 나와틀 족의 단어 ahuacatl에서 왔다. ‘고환‘을 의미하는 이 단어는 배를 닮은 열매의 모양과 울퉁불퉁한 표면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496, 선생님, 이제 전 평생 아보카도 먹을 때마다 이 구절을 떠올릴 것 같습니다.)

-익지 않은 상태에서 더운 지역 과일을 냉장하면 세포 조직이 손상되어 영원히 익지 않는다. 하지만 일단 익으면 냉장고에 여러 날 동안 넣어 둬도 질이 유지된다. (496, 검게 변한 바나나는 빼고)

-무화과는 딸기를 뒤집어 놓은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무화과는 조그만 크기의 진짜 열매들, 즉 수과 밑에 있지 않고 그것들을 덮어싸고 있다.(545, 딸기를 뒤집으면 무화과. 재밌다.)

-동물들에게는 경험을 통한 학습, 말하자면 특정한 감각을 그에 수반되는 특정한 상황과 연결하는 일이 대단히 중요하다. 냄새가 기억 및 그와 연관된 감정을 떠올리게 하는 것은 아마 이 때문일 것이다. (568, 이쯤에서 마들렌을 안 꺼내 오셔서 감사하다.)

-감초는 소량씩 비정기적으로 섭취하는 것이 좋다. 일상적인 섭취는 심각한 혈압 상승을 비롯한 여러 가지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611, 어려서 먹어보고 구경도 못했지만 혹시 몰라 적어둔다.)

-이미 입안에 불이 났을 때(캅사이신 섭취) 그 불을 끄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하나는 얼음처럼 차가운 것을 입안에 넣는 것, 다른 하나는 밥이나 크래커나 설탱 등 뭔가 단단하고 까칠까칠한 것을 입안에 넣는 것이다. (…)(탄산음료는 오히려 자극성을 높인다). 이 모든 방법이 실패했다면, 캅사이신의 고통은 15분 안에 사라진다는 사실에서 위안을 얻기 바란다. (615, 이외에도 심하게 매운 걸 먹었을 때 대처법을 공유합시다. 아니면 15분 기다리자...)

-생강 교역량 가운데 놀랍도록 많은 양이 예멘으로 향하는데, 이 지역에서는 커피에 생각을 타서 마신다. 커피 무게의 15퍼센트가 생강이라고 보면 된다. (621, 예멘 커피 마실 기회가 있을까? 어느 카페 메뉴에 있어서 와, 하고 시켰더니 이제 없다고 했다.)

-(쓰촨후추=화자오에 든 화합물인)산쇼올은 그냥 맵기만 한 것이 아니라 마치 탄산음료를 마시거나 약한 전류에 감전되었으르 때(9볼트의 전지를 혀에 댔을 때)처럼 낯설고 따끔거리고 찌릿찌릿하고 얼얼한 감각을 만들어 낸다. (626, 때지난 마라탕 열풍의 주역, 난 이걸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잘 모르겠고(먹어볼까?->에이 왜 먹었지->망각->또 먹어볼까?->에이..반복), 식구들은 확실히 싫어한다.)

-파비우스 가문은 누에콩(파바빈)에서, 렌툴루스 가문은 렌즈콩(렌틸)에서, 피소 가문은 완두콩(피)에서, 그 가운데서도 가장 유명한 키케로 가문은 병아리콩(칙 피)에서 이름을 빌려 왔다. 그 어떤 음식물 집단이 이처럼 추앙받은 적이 있었던가?(699, 로마 명문가는 모두 콩)

-영국에서는 황산염이 풍부한 버튼온트렌트의 쓴 물맛 덕분에 맑은 에일에 홉을 조금만 첨가해도 되었고, 필젠의 순한 물은 체코의 맥주회사들로 하여금 쓴맛과 향을 위해 홉을 다량으로 첨가하게 만들었다. 뮌헨, 영국 남부, 더블린의 탄산염이 풍부한 알칼리성 수질은 보통이라면 보리 겉껍질에서 떫은 맛의 물질을 너무 많이 추출하게 되는 짙은 색 맥아의 산도를 조정해 주며, 독일의 흑맥주와 영국의 포터와 스타우트 같은 흑맥주의 발달을 이끌었다. (1061, 물맛이 술맛에 영향을 준다. 당연한 거 같은데 또 새롭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1센티미터 두께의 고기가 속가지 익는 데 걸리는 시간은 1/2센티미터 두께의 고기보다 2배가 걸릴 것 같지만, 실제로 해보면 음식의 전체적인 생김새에 따라 2배에서 4배 사이의 어디쯤까지 걸린다. 깍둑썰기를 한 고기는 조금 덜 걸리고 넓은 스테이크나 필레는 조금 더 걸린다. 열이 음식 표면에서 중심부까지 전달되는 데 걸리는 시간을 정확히 예측할 수 있는 절대적으로 신뢰할 만한 방법은 없다. 따라서 최선의 규칙은 수시로 그 익힘 상태를 확인하는 것이다. (1110, 그니까 고기는 계속 살펴가며 구워야...그나마 삶은 달걀은 칸트 같이 시간 딱딱 맞추는 성실한 음식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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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제트50 2026-08-29 07: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식재료와 요리에 관심 많아서 재밌게 리뷰, 잘 읽었습니다 ^^ 근데 커피는 왜 끊기로 하셨나요;;

반유행열반인 2026-08-29 09:31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로제트50님!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커피는 제가 밤에 잠을 못 자는 편이면서 미련하게 마시는구나 싶어서 평일에는 아예 안 먹는 편이에요. 몇 주 만에 주말찬스로 드립커피를 내려 마셨는데 끊었다고 하기 민망해져버렸네요 ㅋㅋㅋ

로제트50 2026-08-29 12: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커피는 오후 1시 이전까지만 마시면 수면에 영향이 없다고 하네요^^~

반유행열반인 2026-08-29 15:10   좋아요 0 | URL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개인차가 있는 것 같아요!!! ㅎㅎㅎ
 
먼저 온 미래 - AI 이후의 세계를 경험한 사람들
장강명 지음 / 동아시아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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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823 저자:장강명.


열 권이 넘게 소설, 산문집, 르포, 어느 시점까지는 다 읽어 오다 내가 ‘졸업’한 작가 중 하나가 장강명이다. 노동과 사회 문제에 관한 소설이었나, 그걸 읽는 순간 자아 성찰도 했지만 동시에 이제 더는 안 읽어도 되겠다 생각했다. 이 책의 제목과 저자를 알게 되고, 소재가 AI 관련이라는 것, 제목이 뭔가 나중을 끌어다가 보여줄 것 같은 기대가 들어서 펼쳐보았다.

책의 초중반 대부분은 저자가 인터뷰한 바둑 기사들의 말이 많이 인용되었다.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국 이후, 수많은 사람들의 삶과 가치관과 생계와 대응방식이 뒤집어진 것을 내가 잘 모르던 바둑이라는 분야에서 보여주었다. 저자는 바둑계의 변화를 소설 창작 생태계에 닥칠 상황으로 대입해보며 이런저런 예측을 한다. 애초에 지금하는 예측 대부분은 틀릴 거라 가정하면서, 그런 안전 가드를 올리고 내 생각에는, 하는 이야기와 본인이 그렇게 생각하게 만든 다양한 사람들의 말과 글을 옮겨 놓았다. 대부분 단정하지 않고, 그렇다고 반대의 경우가 아니라는 것 또한 증명되지 않았다, 그런 식의 서술이 자주 있었다.

인공 지능으로 이익을 보는 사람, 반대인 사람, 인공 지능이 우리의 의지와 상관 없이 내 분야로 들어오게 되었을 때 우리가 잃게 될 것, 체념할 것, 그런 것을 바둑이라는 예술 또는 스포츠, 아니면 그냥 바둑 그 자체라는 분야를 통해 미리 보여준다 생각해서 제목을 저렇게 붙인 것 같다.

내 직업에서도 계속해서 업무나 수업에 AI활용을 어떻게 할 것인지, 선도자인 강사들이 와서 시범을 보이고 팁을 주는 교육을 한다. 그런데 새로운 도구가 들어온 듯 보일 뿐이다. 이 책 주장과 비슷하게 인공지능이 뭔지 파고들게 아니라 지금 시점에서 교육이 뭔지, 학교는 왜 존재하는지, 그런 걸 더 고민해야 하는게 아닌가 싶었다. 그냥 뒤쳐지지 않아야 하고, 니들도 이걸 알고 써야 하고, 애들이 어떻게 될지는 우리도 예측 밖이지만 하여간에 대응해야 하고, 혼란의 도가니인 것 같다.

후반부는 기술 발전 일반과 윤리, 기술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 성찰의 부족 이런 일반적인 이야기들을 반복해 놓았다. 그래서 책을 읽어도 인공지능이 뭐 어쩔 거래? 하는 사람들의 기대는 딱히 충족시키지 못했을 것 같다. 이대로는 안 된다, 시스템이 필요하다, 나름대로의 제안을 하긴 하지만 막연하고 본인도 그걸 실행하는 게 자기 일 아니고 국가 차원만으로도 할 수 없는 큰 과제라고 한다. 자세하게는 뭔진 모르겠지만 비슷한 걸 누군가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 그리고 STS의 효용을 밝히면서 은근슬쩍 자기 작품 홍보(이전 작품, 차기작들)가 좀 많다.

작가는 창작자 입장에서 나보다 쟤(인공지능)가 더 잘 쓰고 감동을 주는 날이 오면 어쩌지? 난 붕괴될텐데, 그런 가정을 하며 글을 쓴 것 같다. 나는 오히려 쟤들을 미리 읽는 독자처럼 대한다. 아직은 뭐 써 봐, 하고 읽어보면 조금 우습고 애는 썼네, 하는 수준이어서 그냥 읽기나 해, 고칠 생각하지 마, 읽고 감상평이나 말해 줘, 그렇게 자아성찰 및 자기 비평용 머신으로 쓴다. 뭐 그런 희망도 본다. 혼자 메아리조차 없이 떠드는 그런 막연함을 벗어나, 사람은 아니라도 단 하나의 읽어 주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이 계속 쓸 마음이 들게 할 수 있다. 그래도 가장 좋은 독자는 미래의 나 자신이다.


+밑줄 긋기
-나는 바둑계에 미래가 먼저 왔다고 생각한다. 2016년부터 몇 년간 바둑계에서 벌어진 일들이 앞으로 여러 업계에서 벌어질 것이다. 사람들이 거기에 어떤 가치가 있다고 믿으며 수십 년의 시간을 들여 헌신한 일을 더 잘해내는 인공지능이 어느 순간 갑자기 등장하는 것. 그 인공지능이 싼 가격에 보급되는 것. 그 인공지능과의 ‘공존’을 강요당하는 것. 인공지능이 만드는 새로운 질서를 따라야 하는 것. 당신이 알던 개념을 인공지능이 재정의하고, 당신은 그것을 다시 배워야 하는 것. 인공지능은 타자기나 워드프로세서와는 다르다. (일단 겁부터 주고 시작)

-사람은 의미 있는 일을 자신이 잘해내고 있다고 믿을 때 긍지를 얻는다. 나는 다른 직업에서도 인공지능으로 인해 긍지를 잃을 사람이 많아지리라 생각한다. 인공지능은 우리 예상보다 훨씬 넓은 영역에서 어떤 일의 의미와 인간의 유능함을 납작하게 짓눌러 버릴 것이다. (인공지능 이전에도 일에 대한 긍지를 어떻게 가질지 고민하며 20년이 흘러버린 사람도 있다. 저요...)

-감성이 어떤 문제에 대해 옳고 그름을 결정하고 나면 이성은 그런 결정의 근거가 될 적절한 논리를 찾는다. (사후합리화, 갖다 붙이기, 그렇게 서사를 완성하길 좋아하는 게 인간)

-인간은 여러 분야에서 벌어지는 현상들을 이해하고 그 아래 있는 듯한 패턴을 파악하기 위해 개념어와 비유를 동원해 설명을 만들었다. 그 설명에 의존해 행동 규칙을 세웠고, 그에 따라 일한다. 예술 분야에서뿐만 아니다. 경영 이론, 경제 이론, 사회 이론, 정치 이론, 교육 이론 같은 것들이 다 거기에 해당한다. (언어의 한계, 암묵지의 존재 같은 걸 책에서 다룬다.)

-내게는 사람들이 자기 부족의 중요한 토템을 모욕당해 화를 내는 원주민처럼 보였다. 현대 사회에서 개인의 창의성과 고유성이라는 개념은 아주 중요하게 받아들여진다. (자아정체성 가르치면서 고유성이란 말을 교과서에서 쓰고 있는데, 자라날수록 정체성이 명확해지기는 커녕, 차이보다 고만고만함이 훨씬 눈에 띄지 않나 싶다.)

-인공지능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인공지능을 사용하는 다른 사람들 때문에 내가 추구하는 가치가 변하고 뒤바뀐다. 나를 둘러싼 기술-환경이 바뀌기 때문이다. 내가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는 한 그 영향을 받는다. (열심히 쓰는 사람들을 보며 아 내가 뒤쳐지고 있나, 뭘 어떻게 해야하나, 그런 생각이 들긴 한다.)

-그 암묵지는 많은 인간 전문가에게 단순히 그들이 보유한 지식 상품이 아니라, 자기효능감과 자부심, 자존감의 근원이기도 하다.
그런 이들에게서는 현장 업무에 대한 애착, 매일의 작업을 일종의 수련으로 여기는 자세, 더 나아가 자기 직업을 삶과 동일시하는 경향 등이 나타난다.(이번 생에 이런 경향을 가질 수 없다면 넌 전문가가 아닌 루팡이라고 읽힌...이상한데서 긁힘)

-불쉿 직업은 힘들고 보수와 처우가 형편없어서 인기 없는 일을 가리키지 않는다. 그레이버에 따르면 그것은 ‘쉿 직업(shit jobs)’인데, 그런 쉿 직업들은 불쉿 직업과 반대로 사회적 가치와 의미가 있으며, 종사자들이 사라지면 사회가 제대로 굴러가지 않는다. 환경미화원이나 건설 현장의 잡부가 대표적 사례다. 반대로 보수와 처우가 괜찮고 노동 강도가 높지 않은데도 의미가 없는 일이라면 불쉿 직업이다. 그레이버는 인사관리 컨설턴트, 커뮤니케이션 코디네이터, 홍보 조사원, 금융 전략가, “불필요한 위원회의 문제를 처리할 직원위원회에 참석하는 것을 일상 업무로 하는 사람들의 일자리”를 그 예로 들었다. (나도 그 쉿 직업은 인공지능이나 로봇이 대체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친구에게 했었다. 그리고 내가 마음이 힘든 이유도 스스로 불쉿이라는 생각을 너무 많이 하기 때문인 것 같다.)

-인공지능은 우리가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일에 의문을 제기하고, 그 가치를 없애버린다. (이건 좀 주어가 아닌 것 같다. 인공지능이 등장했으니 넌 죽어, 하는 것도 사람이 하는 일이다)

-그레이버는 불쉿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절대다수가 비참함을 느낀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모호함과 강요된 시늉” 때문에, “스스로가 원인이 되지 못하기” 때문에, “감내할 만한 가치가 없는 고통”을 받기 때문에, “자신이 해를 끼치고 있음을 알기” 때문에 비참하다.(그래서 소설가는 좋다고 주체성 자랑한다.)

-최근 20년간 우리는 인간이 다른 인간을 우상(idol)으로 섬기고, 그의 팬을 자처하는 명분에는 사실상 제한이 없음을 알게 됐다. 인플루언서는 온갖 이유로 인플루언서가 된다. 얼굴이 잘생겨서, 노래를 잘 불러서, 운동을 잘해서, 연기를 잘해서, 그림을 잘 그려서, 글을 잘 써서, 말을 잘해서, 옷을 잘 입어서, 놀라운 주장을 해서, 인플루언서의 가족이라서, 돈이 많아서, 너무 많이 먹어서, 범죄 피해자라서, 아는 게 많아서, 아는 게 없어서, 행실이 훌륭해서, 행실이 막돼먹어서….(진짜 엄청난 다신교 세상이 되어 버렸어…)

-빅테크 기업들은 우리가 알던 개념을 바꾸고 있으며, 그들 스스로가 하나의 개념이 된다. 그들은 우리가 아는 세계를 이루고 유지하는 근본 개념을 파괴하면서 새로운 수익 모델을 만들어 낸다. 이것은 국가가 하지 못하는 일이다. (국가가 할 일도 아니긴 하다.)

-외로움을 견디는 힘을 지닌 사람은 보다 좋은 삶을 살 수 있고, 외로움을 견디는 힘을 모르는 사람은 좋은 삶을 살지 못한다. 사실 좋은 삶을 살려면 어느 정도의 외로움이 꼭 필요하다. 하루 24시간 내내 수백 명과 화상통화를 하는 사람은 좋은 삶으로부터 한참 떨어진 곳에 있다. 외로움을 견디는 힘이 있는 사람만이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다른 사람이나 사물에 의존하는 태도를 버릴 수 있다. 우리는 그 힘을 배워야 하고,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그런 공부를 하지 않고 있다. (눈뜨고코베인이 부릅니다. 외로운 것이 외로운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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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마 2026-08-23 17: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내가 ‘졸업’한 작가 라는 말 때문에, ㅎㅎㅎ 사실 저도 졸업을 진지하게 고민중이라. ^^

반유행열반인 2026-08-23 19:48   좋아요 1 | URL
세상에 책도 작가도 참 많죠ㅎㅎ 열다섯 권이면 할 만큼 했습죠ㅎㅎㅎ

아시마 2026-08-23 19: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기자 출신 작가의 특성이 명확하게 드러나는 작가 중 하나죠. 기획력과 사고력이 좋은 편이고, 포인트를 잘 짚어 영리하게 글을 쓴다는 점은 인정, 거기에 전달력 좋은 문장을 써 낸다는 점에서 확실히 글쓰기 훈련이 된 기자 출신인게 느껴져요. 문장의 호불호를 떠나 요즘 이만한 전달력을 가진 작가도 드물죠. 다만…. 그 출신지 물이 너무 안빠져서 ㅎㅎㅎㅎㅎㅎㅎㅎ

반유행열반인 2026-08-23 19:56   좋아요 1 | URL
약간 워너비(?)였던 시절도 있었던 거 같은데 갈수록 왜인지 얄밉게 쓴다는 생각이 들어서 더 안 읽게 되었습니다...그게 언론인 물이 안 빠진 걸지...

아시마 2026-08-23 20: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워너비였다기 보단 처음 이 작가 글을 읽었을때 진심으로 감탄했던 기억이 있어요. 제가 영리한 글쓰기를 좋아하거든요. 이 작가 글이 참 영리하죠. 문장도 깔끔해서 바로 전작시작했는데 ㅎㅎㅎㅎㅎ 몇권 읽다보니 좀 물리더라고요. 확실히 깔끔하게 똑 떨어지는 문장만으로는 2%가 부족하다 싶은. 전달력과 호소력을 두고본다면 전 호소력쪽에 무게를 두는 편이어서요. 거기에 이 작가 글 전반에 묻어있는 엘리트주의(사실 박완서 선생도 한때 이런 비판을 받긴 했어요)가 저 역시 때때로 좀 얄밉기도 합니다 하하하하
 
만화로 보는 3분 철학 2 : 서양 중세·근대 철학편 ㅣ 만화로 보는 3분 교양 시리즈
김재훈.서정욱 지음 / 카시오페아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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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822 저자:김재훈.



1권 고대철학을 읽고 거의 9개월만에 중세, 근대 철학편을 꺼내들었다. 이번에도 이렇게 빨리 읽어도 되는 거냐 싶게 만화책이라 훌훌 훑었다. 친절하게도 텍스트가 아주 적은 책이라 금방 넘어간다. 아우구스티누스, 아퀴나스, 데카르트, 스피노자, 로크, 루소, 흄, 라이프니츠, 칸트, 헤겔 등등... 이름만 스치고 갔던, 원전은 두께도 문제지만 나의 사고력으로는 암호문처럼 눈만 스칠 그런 이름들이 나왔다. 고3 때 윤리를 배우고 대학 1, 3학년 때도 뭔 철학 과목이 있었던 것 같긴한데, 난 문돌이에도 급이 있는 것 같다. 철학 하는 분들은 수학, 과학 하라고 해도 잘할 듯한 두뇌의 소유자들…
친구가 요즘 젊은이들의 진로를 이야기하다가, 이전에는 컴퓨터공학 쪽이 인기를 끌던 것이 이제는 철학과 출신들이 오히려 인공지능 시대에 인간에 관한 이해를 갖춘 인재가 되어 취업을 잘한다는 소리를 했다. 오래 전엔 철학, 사회학, 인류학, 이런 인간에 대한 거 공부할수록 취업 난이도가 극상이 되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세상은 변하고 앞으로 또 어떻게 변할지 모르겠다. 다만 난 이제 하던 거나 하고 살아야겠구나, 칸트는 50살 넘어서 순수이성비판을 썼다지만 그 앞의 40년의 삶이 내 40년 같지는 않았겠다. 난 이제 뭘하지, 뭘 할 수 있지, 하는 질문을 너무 길게 오래 끌고 왔는데 요즘은 그 가능성의 폭이 매우 좁고 한정적인 걸 스스로 납득시키는 중이다. 물론 자아정체성 개념을 배우는 중학생들에게는 나의 앞날은 이렇게 좁지만 너희는 아직 선택하고 확장할 가능성이 많단다, 하면서. 자기 자신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라지만 그 자아정체성을 나도 아직 모르겠어. 하물며 어린이들이 자기가 누구인지 알기란, 그런 물음을 자주 스스로에게 던지며 살라고 하기엔 조금 가혹하고 가학적인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자기 성찰이 심할수록 자신에게 관대해지기는 어려운 법이다.
그래서, 별 성찰 안 하도록 뇌를 비우고, 누웠다 앉았다 하면서 만화책이니까, 하고 별 고민없이 책장을 넘겼다. 이 정도로 후려쳐서 찍먹하게 만든 것도 뭐 능력이다. 그림이 귀엽다. 철학은 안 귀엽다. 자꾸 봐야 귀여울테지만 자꾸보기도 귀여워하기도 탐탁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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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아고타 크리스토프 지음, 용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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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816 저자:아고타 크리스토프.


천 쪽이 넘는 ‘음식과 요리’를 667쪽 까지 읽은 참이다. 사전을 읽는 거나 다름 없는 미련한 독서를 하고 있다. 길을 잃은 것처럼, 책상 위 회전 책장을 빙글뱅글 돌렸다. 거기에 ‘어제’가 있었다. 약간 횡재한 기분이었다. 아직 읽지 않은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책을 가지고 있었다니. 진분홍색 표지로 혼자 튀면서 여기 좀 봐봐, 하는 걸 모르고 사 놓은 것도 잊은 채 회전 책장 뒷편에 내버려뒀다. 벽돌책에 지쳤는데 두께 얇은 소설이라 잘됐다.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과 비슷하게, 국경을 넘은 사람이 다른 나라의 언어로 글을 쓰는 이야기가 여기에도 나온다. 토비아스/상도르의 꿈과 일상이 뒤섞여 있다. 포개진 두 남녀 위로 칼을 꽂은 것도, 린의 남편 콜로만을 칼로 찌른 것도 꿈처럼 그냥 없던 일이 되었다. 어려서 같은 반이고 어머니가 다른 남매였던 린을 다른 나라, 같은 직장에서 다시 만나 사랑하게 되는 것도 꿈 같다. 그녀를 다시 고국으로 보내고, 아들 딸에게 각각 토비아스, 린, 하고 이름 지어주는 것도 꿈일지도 모른다. 소설은 눈뜨고 꾸는 남의 꿈이다.

행복한 사람은 일기를 쓰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했었다. 쓰지 않으면 못 견딜 사람이 쓴다. 밤에 잘 때 꿈을 꾸지 않은 지 오래되었다. 어쩌면 일어나면서 다 잊었을 수도. 써야 할 것을 쓰지 않는다. 그냥 아무말이나 쓰려고 책을 읽는다. 소설 속 ‘내‘가 공장 가기 싫어, 출근하기 싫어, 하는데, 이틀 뒤의 내 마음의 소리가 미리 등장했다.
대부분의 여생을 이 국경 안에서 살다 갈 가능성이 아주 높다. 우리말처럼 유창하게 다른 언어를 익힐 가망은 없다. 한 나라 한 언어로 살아가는 나는 소설 속 디아스포라나 프랑스어로 글을 쓰게 된 아고타 크리스토프, 밀란 쿤데라의 삶이, 마음이, 글쓰기가 어땠을지 그들의 글을 읽어도 짐작도 잘 못하겠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아직은 같은 울타리 안에 있는 걸, 다른 언어를 익히려 애쓰지 않아도 살아지는 삶을 감사해야 할까.

+밑줄 긋기
-곤란한 것은 내가 써야 하는 것을 쓰지 못하고, 되는대로 아무거나 쓴다는 점이다. 아무도 이해 못 할, 심지어는 나 자신도 이해 못 할 글을 쓰는 게 문제다. 나는 하루 종일 내 머릿속에 썼던 글들을 저녁마다 종이에 옮겨적으면서 내가 왜 이런 글들을 쓰는지 스스로에게 묻는다. 누구를 위해서, 왜 쓰는가?(16, 나도 궁금해1)

-나는 가끔 내가 일을 하기 위해 사는 것인지 살기 위해 일을 하는 것인지 자문한다. (47, 나도 궁금해2)

-나는 여전히 시계공장에서 일한다.
첫번째 마을에서는 버스를 타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나는 이제 더이상 글을 쓰지 않는다.(140, 나도 여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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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면서 보는 해부학 만화 ㅣ 한빛비즈 교양툰 8
압듈라 지음, 신동선 감수 / 한빛비즈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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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815 재독. 저자: 압듈라.

나 이 만화 봤어,
https://m.blog.naver.com/natf/222057226026

그리고 6년이 지났다… 그때도 딱 이맘쯤, 여름이었다.
해부학자의 세계 읽고 나서 다시 꽂다가, 그 옆에 만화책이 있어서, 오오, 이거 보면서 좀 쉬자, 하다가 펼친 채로 다 볼 때까지 못 일어났다.
그동안 진격의 거인도 봤고, 밈과 드립도 아직 쓰는 것도 있고 한때였던 것도 있지만 대체로 알아듣겠고, 하루 종일 보던 책에 나온 갈레노스, 베살리우스 또 등장해서 나 저 사람들 들어봤어! 하면서 흥미롭게 볼 수 있었다.
해부학의 굽시니스트(?) 수준으로 밈과 드립을 빼곡하게 깔아놔서 정신 없긴 한데 젊은이들은 좀 재미있게 읽지 않을지…(어르신들 죄송합니다...개그가 아마 안 통할 거라 다른 책을 권해요. 아니 나는 젊은이인가?!)

결국 이름과 위치, 기능 외우기 공부인 것 같다. 외우기 회로가 고장난 나는 듀오링고 아랍어 공부 1년을 해도 제대로 외운 단어가 거의 없지만(소리 듣고 대충 찍어서 함), 그래도 가끔 이런 만화도 보고, 사다 꽂아둔 ‘근골격 해부학’이나 ‘뉴 근육운동가이드’ 같은 걸 가끔 펼쳐 이름들을 살펴야겠다. 내 몸 어디가 잘 돌아가는지 운동 어떻게 할지 어느 정도 아프면 병원갈지 생각하며 내 몸을 잘 돌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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