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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아고타 크리스토프 지음, 용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8월
평점 :
-20260816 저자:아고타 크리스토프.
천 쪽이 넘는 ‘음식과 요리’를 667쪽 까지 읽은 참이다. 사전을 읽는 거나 다름 없는 미련한 독서를 하고 있다. 길을 잃은 것처럼, 책상 위 회전 책장을 빙글뱅글 돌렸다. 거기에 ‘어제’가 있었다. 약간 횡재한 기분이었다. 아직 읽지 않은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책을 가지고 있었다니. 진분홍색 표지로 혼자 튀면서 여기 좀 봐봐, 하는 걸 모르고 사 놓은 것도 잊은 채 회전 책장 뒷편에 내버려뒀다. 벽돌책에 지쳤는데 두께 얇은 소설이라 잘됐다.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과 비슷하게, 국경을 넘은 사람이 다른 나라의 언어로 글을 쓰는 이야기가 여기에도 나온다. 토비아스/상도르의 꿈과 일상이 뒤섞여 있다. 포개진 두 남녀 위로 칼을 꽂은 것도, 린의 남편 콜로만을 칼로 찌른 것도 꿈처럼 그냥 없던 일이 되었다. 어려서 같은 반이고 어머니가 다른 남매였던 린을 다른 나라, 같은 직장에서 다시 만나 사랑하게 되는 것도 꿈 같다. 그녀를 다시 고국으로 보내고, 아들 딸에게 각각 토비아스, 린, 하고 이름 지어주는 것도 꿈일지도 모른다. 소설은 눈뜨고 꾸는 남의 꿈이다.
행복한 사람은 일기를 쓰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했었다. 쓰지 않으면 못 견딜 사람이 쓴다. 밤에 잘 때 꿈을 꾸지 않은 지 오래되었다. 어쩌면 일어나면서 다 잊었을 수도. 써야 할 것을 쓰지 않는다. 그냥 아무말이나 쓰려고 책을 읽는다. 소설 속 ‘내‘가 공장 가기 싫어, 출근하기 싫어, 하는데, 이틀 뒤의 내 마음의 소리가 미리 등장했다.
대부분의 여생을 이 국경 안에서 살다 갈 가능성이 아주 높다. 우리말처럼 유창하게 다른 언어를 익힐 가망은 없다. 한 나라 한 언어로 살아가는 나는 소설 속 디아스포라나 프랑스어로 글을 쓰게 된 아고타 크리스토프, 밀란 쿤데라의 삶이, 마음이, 글쓰기가 어땠을지 그들의 글을 읽어도 짐작도 잘 못하겠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아직은 같은 울타리 안에 있는 걸, 다른 언어를 익히려 애쓰지 않아도 살아지는 삶을 감사해야 할까.
+밑줄 긋기
-곤란한 것은 내가 써야 하는 것을 쓰지 못하고, 되는대로 아무거나 쓴다는 점이다. 아무도 이해 못 할, 심지어는 나 자신도 이해 못 할 글을 쓰는 게 문제다. 나는 하루 종일 내 머릿속에 썼던 글들을 저녁마다 종이에 옮겨적으면서 내가 왜 이런 글들을 쓰는지 스스로에게 묻는다. 누구를 위해서, 왜 쓰는가?(16, 나도 궁금해1)
-나는 가끔 내가 일을 하기 위해 사는 것인지 살기 위해 일을 하는 것인지 자문한다. (47, 나도 궁금해2)
-나는 여전히 시계공장에서 일한다.
첫번째 마을에서는 버스를 타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나는 이제 더이상 글을 쓰지 않는다.(140, 나도 여전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