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의 소실점을 향해 ㅣ 민음의 시 271
양안다 지음 / 민음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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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002 저자: 양안다.

이 시집 초판은 2020년에 나왔고, 내가 가진 건 5년 후 11쇄이다. 그 사이 56권의 시집이 민음의 시 시리즈에 덧붙었다. 그렇게나 시를 읽는 사람이 많은 게 신기하고, 오래도록 읽히는 시집도 신기하고, 그걸 이제야 보는 나도 신기하다. 이건 8월 읽기 시작할 때의 이야기였다.

10월이 되었다. 아름답지는 않더라도 느낌이 있는 말들을 쓰고 싶었다. 그러나 내가 가진 말은 다 천하고 가벼워서 무얼 써도 식상했다. 속상했다. 번뜩인 적이 있었던가 싶지만 이제는 햇빛을 오래 받은 책등처럼 빛깔이 바랬다. 책장은 누렇게 되었다. 손가락으로 쥐고 넘기면 파스라질지도 몰라. 책장이 그대로 먼지가 되거나 재가 된 걸 본 적은 없다. 책 위에 들끓는 먼지다듬이 벌레를 눌러 죽인 적은 많다. 그렇게 벌레만 눌러 죽였다.

두 달이 넘게 읽다 말다 했다. 시 한 편이 너무 길었다. 나는 당신의 말을 따라갈 수 없었다. 한 점으로 모이지 않고 사방으로 흩어졌다. 몇 글자 쥐어지지 않았다. 읽었다고 하면 거짓말이겠다. 글자를 눈에다 비볐다. 눈에 묻은 글자가 뇌까지 기어올라가지 못했다. 8권째 양안다의 책이었고 이제는 정말로 그만 읽어도 되지 않을까 싶다. 나는 끝내 시를 읽을 줄 모른 채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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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유년으로 돌아간다면
슬플 때마다 슬프다고 말해야지
싫으면 싫다고 말하고
죽이고 싶은 사람을 죽이는 사람이. 되어야지(93, ‘우리는 프리즘 속에서 갈라지며(하)’중. 지금 그런 사람이 되면 어떻게 될까.)

-“사람 많은 곳을 걸으면 견디기 힘들어요. 내가 견디려는 건 무엇이죠? 나는 소리치고 싶은 욕구를 겨우 참아 내요. 상상 속에서 내가 폭발합니다. 파편으로 찢어져요. 다정한 사람이 괜찮냐고 묻더군요. 나는 괜찮아요. 대답하는 동시에 머릿속에서 무작위로 갈라지고 있었습니다.” (166, ‘우울 삽화’ 중. 나는 괜찮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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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트 - 들고 뛰고 헤엄치며 흘리는 모든 땀에 관하여
빌 헤이스 지음, 김희정.정승연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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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001 저자: 빌 헤이스.



올리버 색스의 책을 6권 읽었는데, 그의 마지막을 함께한 연인 빌 헤이스의 책도 4권째 읽었다. 이번에는 땀나게 하는 운동의 역사였다.
’해부학자‘에서 빌 헤이스는 헨리 그레이와 해부학책을 함께 만든 헨리 카터의 생애를 추적했다. 비슷한 형식으로 이 책에서 저자는 ’체조술‘이란 책의 삽화에 매료되어 그 저자 메리쿠리아레의 책을 찾아, 그리고 고대 운동에 관해 말해줄 또다른 책들과 유적지를 찾아 온갖 곳을 떠돈다. 엄격하게 고서를 관리하는 도서관에 찾아가 수백 년 전의 책을 직접 넘겨보기도 하고, 운동과 관련된 인물에 관한 설명을 들으러 해외의 연구자를 만나러 떠나기도 한다. 종종 ’오디세이‘를 언급하는데, 빌 헤이스는 운동의 역사를 따라가는 자신을 오디세우스처럼 느꼈던 모양이다. 이탈리아, 프랑스, 스웨덴, 그리스까지 참 많은 곳을 떠돌긴 한다. 운동의 역사가 줄기이긴 하지만 여기에는 빌의 어릴 적 가족과 운동에 관한 기억, 연인과 함께하던 수영 강습, 본인이 경험한 운동 장소들과 운동하는 사람들, 에이즈가 한창이던 시절 게이 전용 체육관에서 스쳐갔던 사람들이 자꾸만 죽는 상황에 대해 느낀 감정 같은 게 뒤섞여 있었다. 그래서 조금 정신 없기도 했지만, 운동에 대해 뭘 좀 아는 친구가 썰 풀어주는 것 듣는 것처럼 흥미롭게 읽히기도 했다.

’해부학자‘가 나온 이후 빌 헤이스는 올리버의 죽음과 함께 이 책을 쓰던 일, 열심히 하던 운동 모두 놓아버렸다. 그러다 다시 운동을 시작하려고 마음 먹으니 펜데믹이 시작되어 얼마간은 홈트를 해야 했다. 그 사이 올리버와 뉴욕 생활을 회고한 ’인섬니악 시티’, 펜데믹 시절 찍은 사진과 단상을 담은 ’별빛이 떠난 거리‘를 먼저 냈다. 그리고 이 책이 완성되어 2022년에 나왔다. 빌은 책쓰기도 운동도 너무 긴 휴식기를 거치기도 한다고 그 과정을 돌아보며 말했다.

책의 말미에서 그리스의 경기장 유적지 네 곳을 빌린 차로 여행하는 부분이 특히 좋았다. 자세한 기록이 거의 없거나 부족하고, 그렇지만 누군가 열심히 땀내며 뛰고 구르고 싸우고 한 오래 전의 장소를 찾아 먼길을 나선 저자 덕분에 나도 그리스 어느 작은 마을의 풍경을 몇 장면이나마 간접 체험할 수 있었다.

그럭저럭 잘 읽었지만 아쉬운 점도 있었다. 번역 문장 중 호응이 맞지 않는 게 자주 눈에 띄었다. 그리고 표지, 파랑 바탕에 하얀 글씨 ‘스웨트’는 포카리스웨트를 연상시키고 싶었나 본데, 앞표지에 겨루기 하는 맞잡은 두 손까지는 좋은데 거기에 기합을 지르는 남자의 얼굴은 비호감이다. 독자가 선뜻 집어들만한 매력이 부족한 디자인이었다. 저자의 이전 책들 표지가 그럭저럭 예쁘게 뽑혀서 더 비교가 되는 부분도 있겠다.

다 읽고 책을 들어올렸는데 스타벅스 강남구청역점에서 2023년 9월 28일 오후 디카페인 아메리카노를 시킨 영수증이 책장 사이에서 떨어졌다. 딱 3년 전 이맘쯤 이 책(난 중고 샀다)을 읽다 커피를 마시다 한 누군가가 있었는가 보다. 저 동네는 내가 다니는 의원이 있고 마침 내일이 진료일이라 가 볼 참이었다. 시간은 엇갈렸지만 먼저 읽은 독자여, 책 한 권과 장소가 어쩌다보니 겹쳤네요. 빌 헤이스는 우연히 접하게 된 책과 인물에 대해 집요하게 몇 년 간 파헤치며 이 책을 완성했다. 나는 그런 우연한 조각들로 무슨 이야기를 완성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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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쿠리아레는 “적당하고 적절하게 운동한 사람은 약에 의존하지 않는 건강한 삶을 살 수 있지만, 적절한 조치 없이 운동한다면 끊임없이 병에 걸리고, 꾸준히 약을 먹는 삶을 살게 될 뿐”이라고 말했다. (70, 운동 뿐 아니라 식단, 행동 교정까지 강조)

-플라톤은 운동선수, 특히 매우 뛰어난 실력의 레슬링 선수였다. 원래 플라톤의 이름은 그의 할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아리스토클레스’였다. 하지만 훈련 코치가 그의 태평양 같은 어깨를 보고 ‘넓다’는 의미의 그리스어 platon을 따와 그를 ‘플라톤’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72, 오, 쓸데 없지만 알면 재밌는 남의 이름의 유래)

-기억 안에 머무르지 말고 순간 속에 존재할 것. 슬로 모션으로 싸울 수 없듯이 삶 역시 슬로 모션으로 살아낼 수 없다. 우리를 완전히 무너뜨릴 만큼 강한 주먹은, 예기치 못한 장소에서 날아들기 때문이다. (104, 매일 그 주먹이 언제 떨어질까 벌벌 떠느라 삶을 더 즐기지 못한다.)

-가장자리까지 손을 뻗는 것, 우리 삶처럼 말이다. 꼭 필요하다면 마음껏 엉망진창으로 만들면 된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로 내버려 두지만 않으면 된다.(126, 프레임 위까지 채색한 화가처럼(126), 뭐든 채워넣는 게 낫다고 작가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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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학 (보급판 문고본) - Hand in Hand Library
주희 지음, 윤호창 옮김 / 홍익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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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929 저자: 주희, 유청지.


이 책을 왜 가지고 있나, 왜 샀을까 찾아보니 2년 전 중고가 500원…500원으로 착한 사람이 되는 법을 배우자.
불효새끼에 가까운 나는 과거 유교의 맥락 속에 풍덩 빠졌다가 조금 기어나온 사회의 뿌리 깊은 예의에 대한 믿음의 근원을 훑어보겠다는 생각으로 소학을 읽기 시작했다.

읽으면서 대체로 원망하고 모질게 대했던 부모에 대한 측은지심 같은 게 약간 생겼다. 이 책은 그렇게 짐승에 가까운 인간을 교화하려고 만든 것이겠지...배워라 배워 하는 것도 결국 이 규범에 순종하고 따라라 그게 좋은 사람이야 하는 것이다.

다른 성별(주로 부부)끼리 서로 공경하라는 말이 있는 건 좋았지만, 그외 성역할을 고정하고 대부분 여성이 낮은 계급으로 희생하게 하는 가르침은 시대착오적이었다. 당연한 듯 배어있는 하대에는 다 밑바탕이 있었구만, 했다. 천 년 정도 오래된 책이니 몸가짐이나 예절 중에 너무 지나치다 싶은 것도 많아 적당히 걸러 읽는게 맞겠다.

후반부에는 바른 삶을 살았던 사람들의 사례를 열거하며 본보기 삼는다. 책에 나온 사례들이 칭송받는 것은 흔하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고, 대부분은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일이어서 더욱 권하는 게 아닐까 싶다.

사람이 마주치면 서로 돕기보다 해치는 존재에서 남을 존중하는 마음을 갖게 된 것은 책에 실린 규범들에 대한 끝없는 가르침 때문일 수도 있다. 공동체를 이루는 건 어려운 일이라서 이렇게 유교 규범으로 뚤뚤 묶어 놨던 것이다. 이제 새 규범으로 대체해 가고 있는데 잘 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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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으로서의 예법은(…) 평상시에 자신이 늙었다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45)

-자신의 부모를 사랑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도리에 어긋난 덕’(패덕)이라 하고, 자신의 부모를 공경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공경하는 것을 ‘도리에 어긋난 예’(패례)라고 한다.(‘효경’)

-벗을 사귈 때는 자신이 연장자임을 내세우지 말아야 하고 자신의 신분이 높다는 것을 내세우지 말아야 하고 형제들의 도움을 개입시키지 말고 사귀어야 한다. 벗이란 그 사람의 덕을 사귀는 것이기에 그 사이에 어떤 것도 개입시켜서는 안 된다.(87)

-부모와 형제들을 즐겁게 하지 못하면서 외부 사람들과 사귀려해서는 안 되며, 가까이 있는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지 못하면서 소원한 사람들과 멋대로 가까이하려 해서는 안 된다. 집안의 작은 일을 처리하지 못하면서 국가나 천하의 큰일에 대해서 함부로 언급하지 않는다. (93)

-또 반듯하게 썰지 않으면 먹지 않았으며 음식에 간이 맞지 않으면 먹지 않았다.(…) 시장에서 사온 술이나 육포를 먹지 않았으며, 늘 생강을 먹었으나 많이 먹지는 않았다.(117, 공자의 음식관. 대체로 양호한데 까다로운 부분. 이옥이 생생강 씹어먹던 건 공자님을 좇기 위함이었나)

-(…)범죄와 소송의 증가는 바로 술로 인한 폐단이 재앙을 만들어 낸 것이라 할 수 있다.(118, 옛 사람들도 이미 알았지만 여태 술 많이 마시는 사람도 있다. 난 끊었다.)

-옳지 않은 일이 있을 경우에는 마땅히 자세히 살펴서 처리하면 사리에 맞지 않는 경우가 없을 것이다. 만약 먼저 화부터 낸다면 자신만을 해칠 뿐이다. (185, 화 많은 나를 위해 옮겨 적음)

-평소에 비겁하고 나약한 사람은 옛 사람들이 삶과 죽음의 이치에 통달해 삶과 죽음을 천명에 맡기며, 굳세고 정직하며, 자신의 주장을 펼 때는 반드시 신념이 있으며, 복을 구하는 데도 간사하지 않은 것을 보고 굳세게 떨치고 일어나 두려워하지 않기 위해 독서를 하고 학문을 하는 것이다. (209, 왜 읽고 배우는지 가끔 생각해봐야겠다. )

-아무리 뛰어난 재주와 명석한 지혜를 가진 사람도 보고 듣는 데 집착해, 술에 취한 듯 몽롱하게 살다가, 꿈꾸듯 죽어가기에 스스로 이단에 빠져 있음을 깨닫지 못한다. (215, 이 책에는 어떻게 살다 죽어야 하는지 구구절절 써 있다. 다 지키기는 어렵다.)

-그런데 사람의 마음은 검소하게 살다가 사치스러워지기는 쉽지만, 사치하게 살다가 검소해지기는 어려운 일이다. 내가 어떻게 항상 지금 수준의 봉급을 유지할 수 있으며 이 몸이 어떻게 영원히 살아있을 수 있겠는가?(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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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6-09-29 20: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앗, 난데없이 다시 등장한 인물, 이옥. ㅋㅋ 반갑습니다.

반유행열반인 2026-09-30 06:54   좋아요 1 | URL
이옥 그 사이 읽으셨을까요 ㅋㅋ 생강보니 떠올랐어요. 사족이지만 저희 시조가 고려로 망명온 주희 증손이라고 하네요…
 
아겔다마
박상륭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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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926 저자: 박상륭.

박상륭 전집의 ‘박’이 책등에 새겨진 첫 권은 작가의 중단편소설집이 다섯 권 모여 있다. 그 중 또 첫째 권 <<아겔다마>>를 순서대로 먼저 읽었다. 전집 읽기 순서는 륭->상->박 거꾸로였지만 이번엔 차례를 지켰다. 삶이 권태였는가 또 생고생 하려고 단편 독파를 시도 중이지만, 말이 단편 모음이지 아직 다섯 권 중 한 권 읽었다. 이 글들이 장편의 씨앗이 됐음직 한데 그래서인가 엄청 어렵거나 사변적인 건 적다. 종교와 죽음에서 영감 얻은 이야기는 제법 된다. 그런데 읽는 재미는 장편 쪽이 읽는 고통만큼은 더 크다. 누군가 박상륭을 읽고 싶대면 시간 아주 넉넉하게 잡고 네이버 한자사전 앱(한자 사진 찍으면 글자 알려줌) 깔아두고 죽음의 한 연구->칠조어론->나머진 니 맘대로 라고 권하고 싶다. 단편은 덜 어렵지만 이거 다 읽고 읽을래다가 아예 작파하지 싶다. 단편 한 권 읽는 마음은, 이미 장편 다 읽었지롱, 나중에 칠조어론 또 읽어? 말아? 하는 아직 제 삶이 여유 넘치는 줄 아는 젊은이도 늙은이도 아닌 젊늙이의 마음으로는 심심파적으로 읽을만 했다.

소설은 단편집 위주로 읽던 때가 많은데, 언제부터인지 짧은 이야기 모은 책 독후감 남기는게 더 어렵게 느껴진다. 이야기마다 단상 같은 걸 덧붙이는 게 나중 읽기엔 아, 이런 느낌으로다가 이런 이야기를 읽었구나, 하기엔 유리하겠지만 글로는 좀 허접하다. 언제 허접하지 않던 적이 있던가. 아무래도 상관 없겠다. 그때그때 읽고 싸고 읽고 싸고 하기로 했다.

소설집 속 동명의 단편 ‘아겔다마’를 읽다 가롯 유다 이름을 보고 이게 그 사람들이 나쁘다 하는 유다인가 했다. 애기 때 교회를 아주 잠깐 다녔지만 성경 속 인물에 대한 지식은 무에 가깝다. 그래서 가롯 유다(유다 이스카라옷)에 관해 검색해보았다. 아겔다마가 피밭을 의미하는 것도 미리 알았다. 자청해서 스포일러를 찾았다.
늘 박상륭의 장편소설만 보다가 이렇게 금세 끝이 나니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았다. 검색해 읽은 자료들보다도 더 짧았다. 유다의 관점에서 그의 비참한 결말을 그려보고 싶었던 것 같다. 빌런의 마음을 살피는 것도 이야기를 만드는 오랜 방법이다.

‘장끼전’에는 가뭄으로 망해가는 마을 사람들과, ‘다비소’라는 극락 세계로 가는 병든, 늙은 나그네와, 무고한 목숨들이 희생 번제물이 되는, 그러고도 결국 다 죽어가는 절박하고 끔찍한 상황을 그려놓았다. 떠나고 싶어도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을 그렇게까지 미련맞고 고통 받게 그렸어야 했나...평범한 삶은 그냥 그렇게 죽는 걸까.

‘강남견문록’은 무지개나, 파랑새 좇는 것과 비슷하게 오솔길과 거기서 이어진 황금 세계 타령이 나왔다. 박상륭의 많은 등장인물 대부분 남성들은 길을 떠나고 길에서 죽고 길에서 누군가를 만난다. 그리고 자꾸만 뱃속의 아이들과 옌네들은 죽는다. 떠난 이는 한 번쯤 출발지로 되돌아온다. 이 이야기 자체는 별로였고 그냥 이후 이어질 이야기의 거름이려니, 파편이려니 했다.

‘담쟁이네 집‘은 작가 가려놓고 박완서 소설이다, 해도 뭐 그렇겠네 (비슷한 단편이 있다) 하도록 큰 특색도 사건도 없었다. 늙고 쓸쓸한 사람의 끝까지 늙고 쓸쓸하고 잠잠한 일상이었다.

‘각설이 일기1,2,3’ 쿠마장, 산동장, 산남장은 시리즈처럼 각설이 화자가 장마다 다니며 겪는 일들. 독관 파는 노인의 죽음과 낳자마자 떨어져 죽는 아이와 그 어미 지켜보기, 순대국집 약탈하는 장애인 무리 속에 섞여 가다 그중 비장애인이 대장 노릇하는 걸 해체시키도록 선동하기, 문둥이 노파에게 잡혀 돌로 머리를 쪼거나 불태워질 뻔하다가 살아남아 어머니 만들고 아버지 되기. 슬슬 유리가 가까워지는 느낌의 찜찜한 이야기들인데 각설이가 너무 쾌활함.

-‘천야일화’ 징병된 어린 아들과 늙은 아버지가 주마등 켜며 외치는 아버지, 각자 부르는 아버지는 다른 듯하고. 같은 흙구덩이에 쏟아부어지는 건 좀 작위적이지만 전쟁문학 같은 걸 박상륭 선생님도 쓰셨구나 싶었던 것. 소설은 진작에 읽고 이 글 쓰는 오늘 전쟁영화 보고 왔는데 너무 교훈적이고 참회록 같고 피씨하면서도 인간의 영웅, 빌런 이중적 모습을 노골적으로 그려놔서 아 그렇구나...또 배트맨이네, 오펜하이머네, 하고 돌아왔는데, 이건 영웅도 빌런도 못 되고 그냥 개죽음 된 제대로 묻히지 못한 자들의 이야기였다.

-세 변조‘ 세 이야기가 겹치는 지점이 있는 듯도 하고. 처음에는 한자를 못 읽어서 세 변주인 줄 알았다. 경작왕(농부)의 3층 집 속 고독, 고려장 이야기, 길 떠난 어부의 소금 뿌려진 최후. 키우는 짐승들이나 자기나 다름 없는 오히려 곁에 암소도 당나귀도 없는 삶, 변명과 합리화, 다시 돌아가고 싶어도 못 빠져나올 구덩이 속 항아리 그게 비슷한 점, 연결고리가 있는 듯 없는 듯 했다.

-‘최판관’ 저승 염라대왕 같은 걸 지난 소설 읽기에서도 최판관이라 부르는 걸 봤었는데, 여기서 그 최판관이 죄의 무게에 세 사내를 올리는 걸 보았다. 살라는 대로 착하게 살다 죽은 자는 고통, 얼음 지옥에 가라 하니 후회한다. 할 거 못하다 다 하다 다 그만둔 중은 윤회를 벗어난다. 이건 믿는 자들에게 싹 다 거짓말이면 어쩔래? 하고 도발하는 느낌이 든다. 방언으로 인물 특징 세우는 걸 여기서도 연습한다. 그런데 왜 권위 있는 존재 최판관은 표준말 써?

-‘각설이 일기4, 산북장’ 각설이 시리즈 끝인 줄 알았는데 하나 더 있었다. 이곳은 전쟁 때 무기 만들라고 모아둔 고자된 대장장이들의 마을, 전도사 하나는 광증이 났는지 눈 속에 각설이를 끌고 선지자 행세를 하다 팔이 잘려 죽고, 각설이 앉혀 놓고 대장장이 할배 할매가 손 타령하며 누군가를 기다리다 숯가마에 던져진 할머니에게서 튀어오른 숯으로 성한 눈마저 망가진 할배의 손을 각설이가 망치로 짓이기고 눈밭으로 나선다. 교회당 전도사네 남매의 풍금소리 정도를 희망이랍시고 남겨뒀는데 말세 같은 걸 쓰고 싶었나 보다. 그런데 신도 악도 없고 그냥 버려진 사람들의 섀도우 복싱만 잔뜩 있었다. 아무데나 아무 사건이나 벌어지면 그게 다 장터였다. 전장의 장도 장터의 장이나 같은 거였다.

-‘숙주-열명길 기이’ 왕과 광대는 칠조어론의 읍장겸직판관의 친구였다가 판관겸직읍장이 된 자의 관계를 떠올리게 했다. 그 이야기를 전설처럼 조금 더 풀어놓은 것 같았다. 통속적이면서도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왕이 죽고, 허수아비 왕이 잠시 세워지고, 누군가 지략을 발휘하고, 허수아비를 몰아내고, 그제서야 마지못해 왕좌에 오르는 이야기는 반지의 제왕이고 조지 워싱턴이고 하여간에 많이 듣던 이야기였다.

-‘심청이-남도 기삼’ 성별 불문 떠돌고 고생하다 죽게 만드는 건 이 소설가 특이지만, 여성 인물이 제 아비 찾아, 애 아빠 찾아 떠돌고 떠돌다 죽는 건 싫었다. 씨만 뿌리고 떠난 것들 왜 그리워 해… 작가의 말 이어지기 전까지 전부 다양한 화자들이 사투리 구어체로 이야기를 이어가는 건 익숙한 듯 낯선 듯 그런데 뭔말인지 알겠는게 신기했다.

읽자마자 남은 중단편 소설 차례인 걸 얼른 덮어서 전집 박스에 꽂아버렸다. 이제 고운 것 좋은 것 말랑한 것 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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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저주받아 마땅합니다. 쌍십자가라도 당신에겐 오히려 부족했을 정도였소. 그래요, 부족했고 말고요. 로마 율법이란 건 엉뚱한 판결을 좋아한단 말야. 당신 같은 이는 십자가 대신 지하 감옥이 더 적당했을 것인데. 당신의 그 푸른 눈이 멀고 고름이 나고, 그 희디흰 손에 문둥병이 돋고, 그리고 당신의 그 냉정이 광란으로 변하고, 그리하여 골고다 언덕에 던져 버려졌더라면, 당신이 참으로 메시아인지 아닌지가 판명되었을 것이오. 메시아라고 했더라도 지상적인 것에 굴복하였을 것인데…” (19, ‘아겔다마’ 중. 그래서 작가 선생님은 나중에 칠조를 땅 속에 가둔다.)

-그들에겐 한결같이 어떤 표정이 없다. 그래도 그들은 사는 날까지는 살아볼 모양이었다. 논밭을 둘러볼 생각 같은 건 가지지도 않고, 나무 그늘에 누워 멍청이 하늘이나 보면서-누에처럼 하늘이나 뜻어 먹으면서-
그런 맹폭한 팔월 어떤 날 오후였다. (25, ‘장끼(원문은 이 글자는 아니다)전’ 중. 가뭄과 체념)

-그리고 그들의 입술은 다시 다물어졌고, 다시 그들의 흐린 눈은 하늘 쪽에로 옮겨졌고, 하늘은 진이 빠진 담배 연기 색깔로 엷은 구름장 하나 없고, 태양은 시뻘겋게 달구어지고, 부풀어 올라 수레바퀴만큼이나 커 보였고, 새도 날아다니지 않았고, 하루살이 떼가 윙윙거리며 날았을 뿐인데, 그것들은 흡사 까마귀 떼들처럼 실의한 육신에서 살점을 뜯으려는 것 같았다. 새라도 날아다녔더면, 새의 날갯질에서 비롯된 실낱같은 흐름이라도 있었을 것인데. 그러면 그 기류를 통해 더위가 자락 접는 해조음이라도 들을 수 있었을 게다. 그러나 녹은 납물 같은 더위가 출렁임도 없이 천지를 가득 채우고 있을 뿐이므로, 그 바닥엔 산 자들이 이완되어 실의 속에 침전되어 있었다. 그런 오후의 더위 속을, 나그네는 열사 위의 지렁이처럼 꿈틀거리며 걸어오고 있었다. 그의 동작은 무기력했으며, 능률이 없었으나, 하여튼 쓰러지려는 몸뚱이를 지탱하며 걷기에 진땀을 뺴는 것 같았다. (25-26, 초반부터 이 정도는 먹여줘야 하는 것…)

-그이 역시, 삼 년 동안의 편력 중에서, 어떤 여인과의 야합으로 딸을 하나 얻었는데, 그 딸이 바로 나의 어머니다. 어머니는 열일곱 되었을 때, 어떤 곡마단의 무대 장치를 맡아보는 녀석하고 배가 맞아 돌아다녔는데, 그 배 부딪치는 곳에서 발하는 섬광적인 빛이 나로 뭉쳤다. 그러니까 나는 유서 깊고 전통있는 후레새기이다.(45, ‘강남견문록’ 중. 참신한 자기 소개.)

-해가 각혈을 하며 바다를 붉게 물들이더니 기진되어 바닷속에 익사되려고 하고 있었다. 산들바람이 그곳으로부터 불어왔는데, 자연의 위대함 앞에서는 부자나 거지나, 학대하는 것이나 받는 것이나의 옷을 벗겨 본래의 것으로 되돌아오게 하는 뭣이 있었다. (59, 해질녘은 이렇게 쓰는 거다 임마)

-능긍하다:몹시 무섭거나 두려워 몸이 벌벌 떨리다.(172)

-전쟁 좋아 떠나버린 남편 기다리면서, 애비 없는 자식 하나 보고, 그래도 절개를 지키느라 흙벽 집이 완성되면 재혼하겠다는 구실로 하루 이틀 쌓은 것이, 일하다 보니 자기는 늙었고, 그 많던 구혼객들은 사라지고 없었다. (202, ‘세 변조’ 중. 마침 영화 ‘오디세이’를 보고 와서 읽는 구절)

-“아니, 자네는, 자네가, 선택해서, 온, 길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 쳐도, 이젠, 때가, 늦었어!” 노인은 무정하게 말하며 배낭에서 아까와 같은 것을 움켜내어 주룩주룩 쏟는 것이었다. 어부는 그것을 맛보고 소금인 것을 알았다. 어부는 더욱 비통스러워졌다. (215, 비통스럽다.)

-“즈기 말씸입니더, 그카이, 죄락 카므넌 요눔이 살았었든 기, 그기 말캉 죄 앙이긋는교?”(218, ‘최참판’ 중. 괜히 원죄가 아니지.)

-삽삽하다(222, 여기서는 “정중하고 삽삽해.”했으니 1번 용례):
1.태도나 마음 씀씀이가 마음에 들게 부드럽고 사근사근하다.
2.바람이 몸으로 느끼기에 쌀쌀하다.
3.매끄럽지 아니하고 껄껄하다. 말이나 글이 분명하지 못하여 이해하기 어렵다. 맛이 매우 떫다.

백찌(또는 백지): 표준어 ‘괜히’, ‘공연히’, ‘아무 이유 없이’를 뜻하는 경상도 방언

-옷소매를 잘라내어 어깨로부터 맨살이 드러난 왼쪽 어깨엔, 고추와 숯을 꿴 외로 꼰 새끼줄을 둘렀고, 벗은 그 팔뚝은 피로 보이는 붉은색을 온통 철갑해 소름이 끼치게 하는 사내가, 누구나 다 달고 있는 그런 평범한 오른쪽 팔뚝의 오른손으론, 내놓은 자신의 음경을 잔뜩 움켜쥐고 바쁜 듯이, 골목을 통과해나갔다. 밀폐 같은 눈이 밀폐로 내리고 있어, 누구하나 내어다보는 사람도 없고, 개도 짖지 않았는데, 북쪽에선지 어디서인지, 모루를 치는 망치 소리가 한 번씩 들려오긴 했지만, 그 소리는, 밀폐의 열두 겹 항아리 속에서 우는 사산아의 노래였을 뿐이고, 마을은 떠난 듯 보이지 않았다. 마을은 정말 떠난 듯했다. 그것도 오래전에 떠나고 밀폐같은눈같은저녁수풀, 밑의 이엉 이은 지붕들에 눈만 내리고, 눈만 자꾸 내리고 그 닫긴 속에서, 해수 걸린 죽음만이 참아지고 있었다. 참고 있었다. 불은 아까부터 꺼지고 끄르륵 소리만 내는 장죽을, 이 없는 잇몸으로 한사코 빨아대며 누워서. 그러다 갑자기 생각이 난 듯, 피 흘러 빠진 생명의 때 묻은 흰 그림자를 벗어 횃대에 걸곤, 음험한 실체를 일으키더니 더덕 진 문구멍에 눈을 댁 빼꼼히 밖을 내다본다. (241, ‘산북장-각설이 일기 기사(4)’중. ‘죽음의 한 연구’ 시작 비슷하게 마침표 없는 문장인가 하고 옮겨 적다 보니 네 개나 있었다. 거장들은 어느 순간 마침표 찍기 싫어 병이 깊어지나 싶게 문장들은 길어지고, 괴이한 풍경 묘사를 좋아하나 싶고, 내가 그렇게 쓴다면 아무도 안 읽어주겠지, 아니 단문병에 걸려도 마찬가지 아닐까, 그렇다면 나도 마침표 낭비를 그만둬도 되지 않을까, 하면서도 끄트머리는 늘 마침표.)

-난 기습당한 트로이의 저 어둡던 밤을 이해할 수가 있었다. 내 속에서 한 두 마리의 목마가 하혈을 한 것이다. (245, 갑자기 각설이의 트로이 이해)

-어릿드군한(247, 사전에 안 나오는 말. ‘터무니없는 어릿드군한 집이 한 채,’로 쓰이고 있으니 뜬금없고 어색한 걸 말하는 걸로 짐작)

-시쁘둥하다:마음에 차지 아니하여 아주 시들한 기색이 있다.(252)

-그 젊은이(아편쟁이)는 결국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은 셈이었다. (299, I chose not to choose life. I chose somethin’ else. 선생님 트레인스포팅 읽으셨었나요.)

-요롷게 꺼죽은, 요 풍진시상 사는 디에 쭈그러져 추히여도, 속은 안 그런 겨, 글씨 안 그런 겨. 고운 겨 고운 겨 고운 겨.(369,‘심청이-남도 기삼’중. 가혹허다.)

-나로서는, 내 졸작 남도 연작들의 주인공들이 여인들이었으므로 해서, 언제나 여성들이 파괴되어갈 때 남성이 구원을 성취하는 데 반해 계속 파괴되어가며 남성을 정화만 시키던 저 여성의 구원은 대체 어떻게 이뤄지는가, 그 뒷받침만 만들 수 있으면 그뿐이다. (373, 소설 끄트머리에 붙은 아마도 작가의 말. 왜 자꾸 여자들 고생시켜 죽여?하는 질문에 답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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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6-09-26 14: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해가 각혈한다는 게 이 양반
특허였구먼요!

반유행열반인 2026-09-26 16:34   좋아요 1 | URL
각혈도 하고 하혈도 하고 피투성이 좋아하는 양반이셨나 봐요.
 
네루다의 우편배달부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4
안토니오 스카르메타 지음, 우석균 옮김 / 민음사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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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919 저자: 안토니오 스카르메타.


좋아하는 아이돌을 주인공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쳐 지은 이야기를 공유하는 팬덤. 팬픽이란게 있다고 들어만 봤지 제대로 접해보지 못한 장르였다. 오래전 어느 책에 ‘네루다의 우편 배달부’ 책과 ‘일 포스티노’ 영화를 소개해 놓은 걸 읽고 궁금해서 갖춰뒀었다. 작가 자신이 푹 빠졌던 시인 네루다의 삶의 몇 장면을 상상해서 만들어낸 소설이었다. 얇고 금세 읽혔다. 대체로 경쾌한 분위기로 시작해서 계속 밝게 이어지다 노벨상 수상 축하파티에서 흥겨움은 절정에 이른다. 후반부는 군사 쿠데타와 네루다의 죽음, 네루다 전담 우체부 마리오의 어두운 앞날로 마무리되었다. 칠레 사람들은 물론이고 전 세계 사람들이 이 소설과 소설 원작의 영화를 좋아했던 모양이다. 계란 굴리는 마리오-베아트리스 커플의 첫 섹스나, 노벨상 파티 기념 격정적인 섹스 같은 건 나름 웃기라고 쓴 것 같긴 한데 내 취향은 아니었다. 나머지는 재미있는 상상력이네, 하고 읽을 만했다.
많은 비유-메타포가 등장했다. 진부하지 않은 비유를 건져올리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결국 속담처럼 남들이 닳디닳게 쓴 비유들을 키치하게 읊는 게 평범한 사람의 말이다. 시인과 소설가는 그걸 넘어서려고 열심히 단어를 고르고 이야기를 짓고 할 것이다. 문득 네루다가 시를 사랑한 것처럼, 마리오가 베아트리스를 사랑한 것처럼, 작가가 네루다를 사랑한 것처럼 무언가에 푹 빠져 본 기억이 있는가 돌아보았다. 꾹꾹 눌러쓸만큼 모아놓은 말들이 있을까 뒤적였다. 연기처럼 만져지지 않고 먼지처럼 자잘한 것만 있긴 있었는데 이젠 없는 것 같다. 그럼 남이 진지하게 덕질해서 남겨 놓은 걸 재미있게 읽으며 보내도 그만이다. 쿠데타 같은 폭력적인 삶이 덮쳐오기 전까지는 그렇게 편지 배달하고 전화 받고 라면을 삶고 그러다 가끔 들여다보고 뭐라도 쓰고 싶으면 쓰고, 읽고 쓰려고 모두가 위대해질 필요는 없다.

+밑줄 긋기
-“번드르르한 말처럼 사악한 마약은 없어. 출구석 술집년을 베네치아 공주처럼 느끼게 만들지. 그리고 나중에 진실의 순간이 오면, 즉 현실로 되돌아오면 말이란 부도수표일 뿐이라는 걸 깨닫게 되지. 네 미소가 나비보다 더 높이 난다는 말보다 술주정꾼이 주점에서 네 엉덩짝을 치근덕거리는 게 천만번 낫지.”
베아트리스가 펄쩍 뛰었다.
“나비처럼 ‘번진다’고 했어요.”
“난다고 하든 번진다고 하든 그게 그거야. 왠지 알아? 말 뒤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기 때문이야. 허공에서 사라지는 불꽃놀이일 뿐이라고.” (63, 산통을 깨뜨리는 베아트리스의 어머니는 그와중에 비유를 몇 개나 썼냐)

-“닭대가리 같으니! 지금은 네 미소가 한 마리 나비겠지. 하지만 내일은 네 젖통이 어루만지고 싶은 두 마리 비둘기가 될 거고, 네 젖꼭지는 물오른 머루 두 알, 혀는 신들의 포근한 양탄자, 엉덩짝은 범선 돛, 그리고 지금 네 사타구니 사이에서 모락모락 연기를 피우는 고것은 사내들의 그 잘난 쇠몽둥이를 달구는 흑옥 화로가 될걸! 퍼질러 잠이나 자!” (67, 이쯤 되면 베아트리스네 엄마도 전투적인 시인 아닐까)

-크리스마스인데도 여기는 눈이 오지 않으니 정말 이상하죠. 틀림없이 양키 제국주의 때문일 거예요. (121, 사회주의자의 이게 다 ~때문 시전. 아름답다 할 메타포가 넘치는데 난 자꾸 이런 블랙 유머에만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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