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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겔다마
박상륭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7년 10월
평점 :
-20260926 저자: 박상륭.
박상륭 전집의 ‘박’이 책등에 새겨진 첫 권은 작가의 중단편소설집이 다섯 권 모여 있다. 그 중 또 첫째 권 <<아겔다마>>를 순서대로 먼저 읽었다. 전집 읽기 순서는 륭->상->박 거꾸로였지만 이번엔 차례를 지켰다. 삶이 권태였는가 또 생고생 하려고 단편 독파를 시도 중이지만, 말이 단편 모음이지 아직 다섯 권 중 한 권 읽었다. 이 글들이 장편의 씨앗이 됐음직 한데 그래서인가 엄청 어렵거나 사변적인 건 적다. 종교와 죽음에서 영감 얻은 이야기는 제법 된다. 그런데 읽는 재미는 장편 쪽이 읽는 고통만큼은 더 크다. 누군가 박상륭을 읽고 싶대면 시간 아주 넉넉하게 잡고 네이버 한자사전 앱(한자 사진 찍으면 글자 알려줌) 깔아두고 죽음의 한 연구->칠조어론->나머진 니 맘대로 라고 권하고 싶다. 단편은 덜 어렵지만 이거 다 읽고 읽을래다가 아예 작파하지 싶다. 단편 한 권 읽는 마음은, 이미 장편 다 읽었지롱, 나중에 칠조어론 또 읽어? 말아? 하는 아직 제 삶이 여유 넘치는 줄 아는 젊은이도 늙은이도 아닌 젊늙이의 마음으로는 심심파적으로 읽을만 했다.
소설은 단편집 위주로 읽던 때가 많은데, 언제부터인지 짧은 이야기 모은 책 독후감 남기는게 더 어렵게 느껴진다. 이야기마다 단상 같은 걸 덧붙이는 게 나중 읽기엔 아, 이런 느낌으로다가 이런 이야기를 읽었구나, 하기엔 유리하겠지만 글로는 좀 허접하다. 언제 허접하지 않던 적이 있던가. 아무래도 상관 없겠다. 그때그때 읽고 싸고 읽고 싸고 하기로 했다.
소설집 속 동명의 단편 ‘아겔다마’를 읽다 가롯 유다 이름을 보고 이게 그 사람들이 나쁘다 하는 유다인가 했다. 애기 때 교회를 아주 잠깐 다녔지만 성경 속 인물에 대한 지식은 무에 가깝다. 그래서 가롯 유다(유다 이스카라옷)에 관해 검색해보았다. 아겔다마가 피밭을 의미하는 것도 미리 알았다. 자청해서 스포일러를 찾았다.
늘 박상륭의 장편소설만 보다가 이렇게 금세 끝이 나니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았다. 검색해 읽은 자료들보다도 더 짧았다. 유다의 관점에서 그의 비참한 결말을 그려보고 싶었던 것 같다. 빌런의 마음을 살피는 것도 이야기를 만드는 오랜 방법이다.
‘장끼전’에는 가뭄으로 망해가는 마을 사람들과, ‘다비소’라는 극락 세계로 가는 병든, 늙은 나그네와, 무고한 목숨들이 희생 번제물이 되는, 그러고도 결국 다 죽어가는 절박하고 끔찍한 상황을 그려놓았다. 떠나고 싶어도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을 그렇게까지 미련맞고 고통 받게 그렸어야 했나...평범한 삶은 그냥 그렇게 죽는 걸까.
‘강남견문록’은 무지개나, 파랑새 좇는 것과 비슷하게 오솔길과 거기서 이어진 황금 세계 타령이 나왔다. 박상륭의 많은 등장인물 대부분 남성들은 길을 떠나고 길에서 죽고 길에서 누군가를 만난다. 그리고 자꾸만 뱃속의 아이들과 옌네들은 죽는다. 떠난 이는 한 번쯤 출발지로 되돌아온다. 이 이야기 자체는 별로였고 그냥 이후 이어질 이야기의 거름이려니, 파편이려니 했다.
‘담쟁이네 집‘은 작가 가려놓고 박완서 소설이다, 해도 뭐 그렇겠네 (비슷한 단편이 있다) 하도록 큰 특색도 사건도 없었다. 늙고 쓸쓸한 사람의 끝까지 늙고 쓸쓸하고 잠잠한 일상이었다.
‘각설이 일기1,2,3’ 쿠마장, 산동장, 산남장은 시리즈처럼 각설이 화자가 장마다 다니며 겪는 일들. 독관 파는 노인의 죽음과 낳자마자 떨어져 죽는 아이와 그 어미 지켜보기, 순대국집 약탈하는 장애인 무리 속에 섞여 가다 그중 비장애인이 대장 노릇하는 걸 해체시키도록 선동하기, 문둥이 노파에게 잡혀 돌로 머리를 쪼거나 불태워질 뻔하다가 살아남아 어머니 만들고 아버지 되기. 슬슬 유리가 가까워지는 느낌의 찜찜한 이야기들인데 각설이가 너무 쾌활함.
-‘천야일화’ 징병된 어린 아들과 늙은 아버지가 주마등 켜며 외치는 아버지, 각자 부르는 아버지는 다른 듯하고. 같은 흙구덩이에 쏟아부어지는 건 좀 작위적이지만 전쟁문학 같은 걸 박상륭 선생님도 쓰셨구나 싶었던 것. 소설은 진작에 읽고 이 글 쓰는 오늘 전쟁영화 보고 왔는데 너무 교훈적이고 참회록 같고 피씨하면서도 인간의 영웅, 빌런 이중적 모습을 노골적으로 그려놔서 아 그렇구나...또 배트맨이네, 오펜하이머네, 하고 돌아왔는데, 이건 영웅도 빌런도 못 되고 그냥 개죽음 된 제대로 묻히지 못한 자들의 이야기였다.
-세 변조‘ 세 이야기가 겹치는 지점이 있는 듯도 하고. 처음에는 한자를 못 읽어서 세 변주인 줄 알았다. 경작왕(농부)의 3층 집 속 고독, 고려장 이야기, 길 떠난 어부의 소금 뿌려진 최후. 키우는 짐승들이나 자기나 다름 없는 오히려 곁에 암소도 당나귀도 없는 삶, 변명과 합리화, 다시 돌아가고 싶어도 못 빠져나올 구덩이 속 항아리 그게 비슷한 점, 연결고리가 있는 듯 없는 듯 했다.
-‘최판관’ 저승 염라대왕 같은 걸 지난 소설 읽기에서도 최판관이라 부르는 걸 봤었는데, 여기서 그 최판관이 죄의 무게에 세 사내를 올리는 걸 보았다. 살라는 대로 착하게 살다 죽은 자는 고통, 얼음 지옥에 가라 하니 후회한다. 할 거 못하다 다 하다 다 그만둔 중은 윤회를 벗어난다. 이건 믿는 자들에게 싹 다 거짓말이면 어쩔래? 하고 도발하는 느낌이 든다. 방언으로 인물 특징 세우는 걸 여기서도 연습한다. 그런데 왜 권위 있는 존재 최판관은 표준말 써?
-‘각설이 일기4, 산북장’ 각설이 시리즈 끝인 줄 알았는데 하나 더 있었다. 이곳은 전쟁 때 무기 만들라고 모아둔 고자된 대장장이들의 마을, 전도사 하나는 광증이 났는지 눈 속에 각설이를 끌고 선지자 행세를 하다 팔이 잘려 죽고, 각설이 앉혀 놓고 대장장이 할배 할매가 손 타령하며 누군가를 기다리다 숯가마에 던져진 할머니에게서 튀어오른 숯으로 성한 눈마저 망가진 할배의 손을 각설이가 망치로 짓이기고 눈밭으로 나선다. 교회당 전도사네 남매의 풍금소리 정도를 희망이랍시고 남겨뒀는데 말세 같은 걸 쓰고 싶었나 보다. 그런데 신도 악도 없고 그냥 버려진 사람들의 섀도우 복싱만 잔뜩 있었다. 아무데나 아무 사건이나 벌어지면 그게 다 장터였다. 전장의 장도 장터의 장이나 같은 거였다.
-‘숙주-열명길 기이’ 왕과 광대는 칠조어론의 읍장겸직판관의 친구였다가 판관겸직읍장이 된 자의 관계를 떠올리게 했다. 그 이야기를 전설처럼 조금 더 풀어놓은 것 같았다. 통속적이면서도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왕이 죽고, 허수아비 왕이 잠시 세워지고, 누군가 지략을 발휘하고, 허수아비를 몰아내고, 그제서야 마지못해 왕좌에 오르는 이야기는 반지의 제왕이고 조지 워싱턴이고 하여간에 많이 듣던 이야기였다.
-‘심청이-남도 기삼’ 성별 불문 떠돌고 고생하다 죽게 만드는 건 이 소설가 특이지만, 여성 인물이 제 아비 찾아, 애 아빠 찾아 떠돌고 떠돌다 죽는 건 싫었다. 씨만 뿌리고 떠난 것들 왜 그리워 해… 작가의 말 이어지기 전까지 전부 다양한 화자들이 사투리 구어체로 이야기를 이어가는 건 익숙한 듯 낯선 듯 그런데 뭔말인지 알겠는게 신기했다.
읽자마자 남은 중단편 소설 차례인 걸 얼른 덮어서 전집 박스에 꽂아버렸다. 이제 고운 것 좋은 것 말랑한 것 좀 보자...
+밑줄 긋기
-“당신은 저주받아 마땅합니다. 쌍십자가라도 당신에겐 오히려 부족했을 정도였소. 그래요, 부족했고 말고요. 로마 율법이란 건 엉뚱한 판결을 좋아한단 말야. 당신 같은 이는 십자가 대신 지하 감옥이 더 적당했을 것인데. 당신의 그 푸른 눈이 멀고 고름이 나고, 그 희디흰 손에 문둥병이 돋고, 그리고 당신의 그 냉정이 광란으로 변하고, 그리하여 골고다 언덕에 던져 버려졌더라면, 당신이 참으로 메시아인지 아닌지가 판명되었을 것이오. 메시아라고 했더라도 지상적인 것에 굴복하였을 것인데…” (19, ‘아겔다마’ 중. 그래서 작가 선생님은 나중에 칠조를 땅 속에 가둔다.)
-그들에겐 한결같이 어떤 표정이 없다. 그래도 그들은 사는 날까지는 살아볼 모양이었다. 논밭을 둘러볼 생각 같은 건 가지지도 않고, 나무 그늘에 누워 멍청이 하늘이나 보면서-누에처럼 하늘이나 뜻어 먹으면서-
그런 맹폭한 팔월 어떤 날 오후였다. (25, ‘장끼(원문은 이 글자는 아니다)전’ 중. 가뭄과 체념)
-그리고 그들의 입술은 다시 다물어졌고, 다시 그들의 흐린 눈은 하늘 쪽에로 옮겨졌고, 하늘은 진이 빠진 담배 연기 색깔로 엷은 구름장 하나 없고, 태양은 시뻘겋게 달구어지고, 부풀어 올라 수레바퀴만큼이나 커 보였고, 새도 날아다니지 않았고, 하루살이 떼가 윙윙거리며 날았을 뿐인데, 그것들은 흡사 까마귀 떼들처럼 실의한 육신에서 살점을 뜯으려는 것 같았다. 새라도 날아다녔더면, 새의 날갯질에서 비롯된 실낱같은 흐름이라도 있었을 것인데. 그러면 그 기류를 통해 더위가 자락 접는 해조음이라도 들을 수 있었을 게다. 그러나 녹은 납물 같은 더위가 출렁임도 없이 천지를 가득 채우고 있을 뿐이므로, 그 바닥엔 산 자들이 이완되어 실의 속에 침전되어 있었다. 그런 오후의 더위 속을, 나그네는 열사 위의 지렁이처럼 꿈틀거리며 걸어오고 있었다. 그의 동작은 무기력했으며, 능률이 없었으나, 하여튼 쓰러지려는 몸뚱이를 지탱하며 걷기에 진땀을 뺴는 것 같았다. (25-26, 초반부터 이 정도는 먹여줘야 하는 것…)
-그이 역시, 삼 년 동안의 편력 중에서, 어떤 여인과의 야합으로 딸을 하나 얻었는데, 그 딸이 바로 나의 어머니다. 어머니는 열일곱 되었을 때, 어떤 곡마단의 무대 장치를 맡아보는 녀석하고 배가 맞아 돌아다녔는데, 그 배 부딪치는 곳에서 발하는 섬광적인 빛이 나로 뭉쳤다. 그러니까 나는 유서 깊고 전통있는 후레새기이다.(45, ‘강남견문록’ 중. 참신한 자기 소개.)
-해가 각혈을 하며 바다를 붉게 물들이더니 기진되어 바닷속에 익사되려고 하고 있었다. 산들바람이 그곳으로부터 불어왔는데, 자연의 위대함 앞에서는 부자나 거지나, 학대하는 것이나 받는 것이나의 옷을 벗겨 본래의 것으로 되돌아오게 하는 뭣이 있었다. (59, 해질녘은 이렇게 쓰는 거다 임마)
-능긍하다:몹시 무섭거나 두려워 몸이 벌벌 떨리다.(172)
-전쟁 좋아 떠나버린 남편 기다리면서, 애비 없는 자식 하나 보고, 그래도 절개를 지키느라 흙벽 집이 완성되면 재혼하겠다는 구실로 하루 이틀 쌓은 것이, 일하다 보니 자기는 늙었고, 그 많던 구혼객들은 사라지고 없었다. (202, ‘세 변조’ 중. 마침 영화 ‘오디세이’를 보고 와서 읽는 구절)
-“아니, 자네는, 자네가, 선택해서, 온, 길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 쳐도, 이젠, 때가, 늦었어!” 노인은 무정하게 말하며 배낭에서 아까와 같은 것을 움켜내어 주룩주룩 쏟는 것이었다. 어부는 그것을 맛보고 소금인 것을 알았다. 어부는 더욱 비통스러워졌다. (215, 비통스럽다.)
-“즈기 말씸입니더, 그카이, 죄락 카므넌 요눔이 살았었든 기, 그기 말캉 죄 앙이긋는교?”(218, ‘최참판’ 중. 괜히 원죄가 아니지.)
-삽삽하다(222, 여기서는 “정중하고 삽삽해.”했으니 1번 용례):
1.태도나 마음 씀씀이가 마음에 들게 부드럽고 사근사근하다.
2.바람이 몸으로 느끼기에 쌀쌀하다.
3.매끄럽지 아니하고 껄껄하다. 말이나 글이 분명하지 못하여 이해하기 어렵다. 맛이 매우 떫다.
백찌(또는 백지): 표준어 ‘괜히’, ‘공연히’, ‘아무 이유 없이’를 뜻하는 경상도 방언
-옷소매를 잘라내어 어깨로부터 맨살이 드러난 왼쪽 어깨엔, 고추와 숯을 꿴 외로 꼰 새끼줄을 둘렀고, 벗은 그 팔뚝은 피로 보이는 붉은색을 온통 철갑해 소름이 끼치게 하는 사내가, 누구나 다 달고 있는 그런 평범한 오른쪽 팔뚝의 오른손으론, 내놓은 자신의 음경을 잔뜩 움켜쥐고 바쁜 듯이, 골목을 통과해나갔다. 밀폐 같은 눈이 밀폐로 내리고 있어, 누구하나 내어다보는 사람도 없고, 개도 짖지 않았는데, 북쪽에선지 어디서인지, 모루를 치는 망치 소리가 한 번씩 들려오긴 했지만, 그 소리는, 밀폐의 열두 겹 항아리 속에서 우는 사산아의 노래였을 뿐이고, 마을은 떠난 듯 보이지 않았다. 마을은 정말 떠난 듯했다. 그것도 오래전에 떠나고 밀폐같은눈같은저녁수풀, 밑의 이엉 이은 지붕들에 눈만 내리고, 눈만 자꾸 내리고 그 닫긴 속에서, 해수 걸린 죽음만이 참아지고 있었다. 참고 있었다. 불은 아까부터 꺼지고 끄르륵 소리만 내는 장죽을, 이 없는 잇몸으로 한사코 빨아대며 누워서. 그러다 갑자기 생각이 난 듯, 피 흘러 빠진 생명의 때 묻은 흰 그림자를 벗어 횃대에 걸곤, 음험한 실체를 일으키더니 더덕 진 문구멍에 눈을 댁 빼꼼히 밖을 내다본다. (241, ‘산북장-각설이 일기 기사(4)’중. ‘죽음의 한 연구’ 시작 비슷하게 마침표 없는 문장인가 하고 옮겨 적다 보니 네 개나 있었다. 거장들은 어느 순간 마침표 찍기 싫어 병이 깊어지나 싶게 문장들은 길어지고, 괴이한 풍경 묘사를 좋아하나 싶고, 내가 그렇게 쓴다면 아무도 안 읽어주겠지, 아니 단문병에 걸려도 마찬가지 아닐까, 그렇다면 나도 마침표 낭비를 그만둬도 되지 않을까, 하면서도 끄트머리는 늘 마침표.)
-난 기습당한 트로이의 저 어둡던 밤을 이해할 수가 있었다. 내 속에서 한 두 마리의 목마가 하혈을 한 것이다. (245, 갑자기 각설이의 트로이 이해)
-어릿드군한(247, 사전에 안 나오는 말. ‘터무니없는 어릿드군한 집이 한 채,’로 쓰이고 있으니 뜬금없고 어색한 걸 말하는 걸로 짐작)
-시쁘둥하다:마음에 차지 아니하여 아주 시들한 기색이 있다.(252)
-그 젊은이(아편쟁이)는 결국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은 셈이었다. (299, I chose not to choose life. I chose somethin’ else. 선생님 트레인스포팅 읽으셨었나요.)
-요롷게 꺼죽은, 요 풍진시상 사는 디에 쭈그러져 추히여도, 속은 안 그런 겨, 글씨 안 그런 겨. 고운 겨 고운 겨 고운 겨.(369,‘심청이-남도 기삼’중. 가혹허다.)
-나로서는, 내 졸작 남도 연작들의 주인공들이 여인들이었으므로 해서, 언제나 여성들이 파괴되어갈 때 남성이 구원을 성취하는 데 반해 계속 파괴되어가며 남성을 정화만 시키던 저 여성의 구원은 대체 어떻게 이뤄지는가, 그 뒷받침만 만들 수 있으면 그뿐이다. (373, 소설 끄트머리에 붙은 아마도 작가의 말. 왜 자꾸 여자들 고생시켜 죽여?하는 질문에 답하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