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계속 불편하면 좋겠습니다
홍승은 지음 / 동녘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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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820 홍승은.
 
 
 월요일, 오랜만에 정신 없는 하루 보내고, 또 오랜만에 시각장애인 카페에 가서 컵빙수를 하나 시켜 먹었다. 시원하고, 달고, 그런 한 잔이면 힘이 나겠네 싶었다. 카페에 딸린 도서관에서 2017년에 나온 홍승은 에세이를 발견하고는 반가웠다. 이후의 에세이 세 권 정도 봤지만 맨처음 낸 책은 안 봤다. ‘당신이 글을 쓰면 좋겠습니다’ 를 5년 전에 좋게 읽었다. 밑줄도 아주 많이 그었었다. 그때 독후감을 찾아보니 시작은 이렇군.
 
나는 언제까지 읽는 사람으로 살까.
나는 쓰는 사람으로 살 수 있을까.
 
 아직까지 읽는 사람으로 살고 있다.
 독후감도 쓰기니까 쓰는 사람이라고 하자.
 
 달고 찬 음료? 디저트? 아이스크림? 셔벗? 빙수는 뭐라 분류할지 모르겠다. 네 가지 다 되는 것 같다. 하여간에 그걸 먹으면서 60페이지 정도 읽다 집에 돌아왔다. 서울전자도서관 뒤져보니 읽던 책이 있어서 마저 바로 읽을 수 있다! 하고 반가웠다.
 
 젊어서 너무 잘 쓰다가 점점 아쉬워지는 작가들 떠나보내면 조금 슬펐다. 좋아하는 소설가, 시인, 에세이 작가의 초기작은 늘 미루다 나중에 보거나 안 봤던 것 같다. 뭐 그런데 또 어떨 때는 처음부터 뛰어나지 않던 걸 발견하면 좋기도 하다. 점점 나아지는 걸 보는 기분은 점점 나빠지는 걸 보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벌써 나온지 8년 전 책인데, 이 책 속에서 언급된 사람들, 자기 삶을 드러내는 글쓰기를 하는 작가, 작가와 친밀하고 사랑하는(던) 사람들, 미래의 독자는 그 이후가 궁금하지만 남의 인생 흥밋거리로 찾아보는 건 또 망설여져서 그냥 궁금해하기만 한다.
 
 어쩌면 이렇게 살았을지도 모른다. 조직의 굴레와 억압을 거부하고, 관습에 매이지 않고, 자본주의에 무릎 꿇지 않고, 내가 아는 옳음을 찾아서 그렇게 살았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난 그냥 투덜투덜 욕이나 하면서 책이나 읽고 수학 문제나 풀면서 도망칠 방법만 찾았다. 그러다가 도주에 실패했다. 옷 사고, 신발 사고, 책 사고, 운동(이 책에 나온 운동은 아니다)하고, 치열하지 않아도, 자본주의의 나사 하나가 되어도 삶은 그럭저럭 굴러간다. 굴욕이래도 굴복했대도 살아는 진다. 좋은 세상을 위해 싸우고 할 말하고 계속 쓰겠다고 다짐하는 오래전 젊은이의 글을 그와중에 읽어 본다.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과 우려와 공격과 그만큼 많은 담론들이 오가던 시절이었다. 지금은 어디선가 여전히 책을 읽고 공부하고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그 시절보다는 젠더 이슈들이 잘 다루어지지 않는 것 같다. 주류 담론으로 자리 잡지 못했지만 어디에 아직 살아는 있겠지.
 
 오늘은 인스타그램 디엠을 통해 저질러진 성폭력 사건을 접한다. 그 말을 날린 아이도 그 말을 전한 아이도 그 말의 당사자가 된 아이도 너무 어린데 그 말이 너무너무 혹독해서 아침부터 어지럽고 슬펐다. 혐오와 폭력은 아직도 일상에 있다. 그걸 아직도 자주 보면서 산다. 관료제는 사건을 축소하고 덮으려는 때가 많으니까 초조해진다. 계속 지켜보겠지만 무기력한 기분이다. 끔찍한 어린이들이 자라서 끔찍한 어른이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럴 수 있으려면 뭐랑 싸워야 하는지 모르겠다. 사람을 외로움과 소외감으로 죽게 하는 고독사에 대해 이야기했다. 비슷한 이유로 남을 따돌리고 배척하는 것도 조금씩 사람이 죽어가게 하는 거라고 그래서 그런 일을 하면 안 된다고 이야기했다. 남의 얼굴이나 몸을 동의없이 함부로 사진찍으면 불법 촬영이고 범죄이고 또 그런 일이 발생하면 부모님께 알리고 벌점도 주고 심각한 경우에는 학교폭력으로 처벌도 할 수 있다고 겁을 주면서 사진첩의 사진들을 보는 앞에서 지우게 했다. 그렇지. 내가 싫었던 건 이런 환경이었지. 말로 많은 것을 해야 하는데 말은 말일 뿐이지. 차분하게 일들을 처리하려고 애쓰고 있지만 차분한 척 해야 하는 것도 화가 난다. 사실 화는 충분히 낸다. 다 미쳤다고 욕도 한다. 나도 조금 미쳐있지만 더 미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보고 이렇게 불편하라는 제목은 아니었을 텐데...흑흑흑
 
+밑줄 긋기
-여섯 번의 이사를 통해 배운 점. 창문을 통해 날씨와 시간을 가늠할 수 있는 게 당연하지 않다는 것, ‘역시 집이 최고’라는 말이 모두에게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 다른 누군가에게 내 불편한 자리를 떠넘기고 지금 내가 ‘잠시’ 편할 뿐이라는 것. 새로운 건물이 세워질 때 그 옆 낮은 건물이 걱정되는 것처럼, 몸으로 익힌 인식의 확장이었다.
 
-나는 내가 경험하고 겪은 부분에 한해서만 잘 느끼고 알 수 있을 뿐이고, 다른 상황은 분명 모를 수 있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내 입장에서는 마땅히 그래야 하는 일이 누군가에게는 마땅히 그렇기 어려운 상황일 수 있다.
 
-나는 진보정당·마을공동체·사회적경제·시민단체에서 활동하면서 자신을 정의롭다고 확신하는 사람들을 경계한다. 그들은 손쉽게 인권과 평화를 외치지만, 여성이나 성소수자·장애인 등 사회적 소수자나 동물은 그 말의 적용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 부차적인 존재라고 여기기 쉽다. 그들이 말하는 인권은 절대적이고 마땅한 개념일지 모르지만, ‘그’들이 아닌 다른 존재에게 인권은 지금까지도 쟁취의 과정이다.
 
-한 시인을 만났다. 그는 세월호의 슬픔에 누구보다 가슴 절절한 시구를 뱉어내는 사람이었다. 시에서 느껴지는 진심에 감동해서 그를 만날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런데 처음 마주한 그는 다짜고짜 ‘어린’ 내게 반말을 했고, 먹을 것 좀 사오라며 대뜸 카드를 내밀었다. 그 뒤로도 쭉 이어진 그의 무례한 말과 행동에 한 번 놀라고, 본 행사 때 진심 어린 표정으로 슬프게 시를 읽는 모습에 다시 한 번 놀랐다. 잠깐 동안 마주한 두 얼굴이 너무 이질적이어서 한동안 우두커니 멍해진 정신을 다잡아야 했다. 그 뒤로는 그 시인의 책은 쳐다보지도 않는다.
 
-저는 무언가를 공부하고 알아가는 건 부끄럽고 수치스럽고 화가 나는 일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내가 가담해왔던 세계를 직면하면, 나도 모르는 새 저질러왔던 폭력이 선명해지면서 자책과 후회·부끄러움이 밀려와요. 동시에 내가 폭력인지 모르고 당하고 지나쳐왔던 일이 선명해지면서 분노와 슬픔이 밀려오고요. 그렇게 복잡한 감정 속에서 상처받는 게 아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누구나 어떤 조건에서도 ‘정상’의 범위에서만 안주할 수 없는 현실이니까, 당장 상대가 앎을 삶으로 잇지 못한다고 해도 일단 알게끔 해주는 건 중요한 일 같아요. 침묵이 평화가 아니듯, 모른다고 폭력이 없는 건 아니니까요.
 
-어쩌면 사람들이 영웅에 열광하는 이유는 자신의 삶을 표현할 언어가 없거나, 표현할 방식을 잃어버렸기 때문은 아닐까. 그래서 누군가 내 마음 같은 목소리를 내줄 때, 나를 대변해준다는 위안과 고마움과 기대가 생기는 것 같다. ‘저 사람이라면 나를 대변해줄 거야. 내 마음처럼 싸워줄 거야’라는. 하지만 내 불편함을 가장 진실하게 구체적으로 이야기할 사람은 ‘나 자신’밖에 없으니, 상대를 향한 바람은 대부분 실망과 회의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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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 하나는 거짓말
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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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818 김애란.

1. 김애란의 작품이 나올 때마다 꼬박꼬박 사 보고 또 아껴본 적이 있었다.
2. 김애란 산문집을 읽고 알라딘 중고서점에 팔아 김금희의 ‘너무 한낮의 연애’를 샀다.
3. 소설 속 아이들이 평평하고 순하게 그려져서 고등학생이 아니라 (교복을 입었다니 초등학생 고학년은 제외하고) 중학생 같다는 생각을 했다.
4. 이 소설을 읽는 동안 단 한 문장에도 밑줄을 긋지 못했다.
5. 김애란의 신작인 단편소설집을 사 볼 것이다.

이중 하나는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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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도 간단한 독후감 겨우 남기고서 AI에게 골라보라고 했더니 다들 너무 진지하게 연산 시간도 평소보다 훨씬 길게 고민하다 0번! 하는데 대부분 합리적 결론 도출이라 해도 첫번에 맞추는 놈이 없었다. 그나마 가장 빠르게 답에 근접한 건 두 번만에 대충 찍어낸 뤼튼… 챗지피티는 거의 소거법 수준으로 두루두루 이거저거 난리고, 클로버엑스는 연산과정이 문장형태로 보이는데 막 눈알 굴리면서 대답 한참 못하고 이런저런 의식의 흐름 보이는데 웃겼고, 제미나이는 그냥 게임 끝 이러고 빨리 끝내버리려고 했다.

이중 하나는 거짓말 이라는 말이 거짓일 수도 있는 거다. 이중 하나는 거짓일수도 아닐수도 있는 거다.

+내가 구한 건 니트에디션이라 표지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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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5-08-19 15: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인상 깊은 서평. 인정함!

반유행열반인 2025-08-19 17:57   좋아요 2 | URL
아이참 뭘 인정 받았는지 몰라도 감사한데요 ㅋㅋㅋ 팔백작님 말투도 왜 에이아이 친구들 생각날까요 ㅋㅋ얘들이 사람 흉내 점점 잘 내나 봐요...
 
부모와 다른 아이들 2
앤드류 솔로몬 지음, 고기탁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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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817 앤드루 솔로몬.

첫 아이를 가졌을 때, 도저히 아이가 생길 수 없다고 믿던 시기에 임신을 했기 때문에 임신 중에도, 출산 후에도 거듭 생각했다. 내가 낳기로 한 게 아니라 이 아이가 생겨나기로 스스로 원했다고. 그건 어쩌면 책임감을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에게 떠넘긴 비겁함인지도 모르겠다.

스스로 생겨나기로 원한 아이니까 나는 아직 미혼이어도 아이를 낳겠다고 생각했고, 가장 친밀한 이들에게 의사를 비쳤고, 찰나에 가까운 시간이나마 임신 중단 요구를 받았다. 직장에는 배불러서 어떻게 다닐 거냐고, 혹은 흐느낌과 함께 한 번만 봐 달라고. 나는 내일 모레면 서른 살인데 마치 십대 미혼모 취급 받는게 열받기도 했고, 나만 그러냐, 당신은 내년이면 서른 살인데 더 미루고 다음을 말할 건 무어냐, 가난하다고 태어날 권리도 없냐, 하고 강하게 저항해서 친밀한 이들을 겨우 설득하고 임신을 유지할 수 있었다. 부모되기야 애기 태어나기 전에 혼인신고만 하면 뭐 법적으로는 간단한 일이다. 살 집과 돈이 없으면 은행에다가 전세대출해주세요, 해서 사천만원 빌리고 나중에 갚으면 되는 일…가능하면 곰팡이 안 피는 집으로 알아보세요...

아이는 신생아 시절 매우 심한 아토피성 피부염으로 길게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냈지만, 대개는 건강했다. 호기심 많은 동그랗고 반짝이는 눈으로 세상을 흡수하듯 무엇이든 잘 배웠고, 자기는 태어나서 기쁘고 자신의 가족과 삶에 대해 만족한다고 늘 긍정적인 말을 했다. 나는 품고 낳기만 쉬웠지 양육을 하기에는 많이 우울하고 폭력적인 인간이었고, 아이를 포기하자고 했던 친밀한 사람들은 기대보다 훨씬 더 큰 헌신과 애정을 담아 나보다 더 아이를 다정하게 돌보았다. 그래서 향정신성의약품과 성대결절약까지 한움큼 먹는 중의 임신이라 걱정했던 것과 달리 아이는 매우 똑똑하고 비교적 몸과 마음이 건강하게 자랐다. 그래서 이제는 자기방 문을 꼭 걸어잠그고 틀어박히는 고독한 청소년이 되었지…

내 망상과 달리 아이는 부모를, 태어나거나 태어나지 않기를 선택할 수 없다. 반대로 부모는 낳거나 낳지 않을 기회를 가질 수도 있다. 어쩌면 자신의 선택과 의지로 택한 길이라 부모들은 자녀가 어떤 사람이 되든 무거운 책임감을 가지고 최대한 그들을 사랑하려고 애쓰는 것 같다.

앤드루 솔로몬의 이 책 1권에서는 청각장애, 다운증후군, 소인증, 자폐, 정신분열증을 가진 아이들과 그들의 부모를 다루었다. 바깥에서 보기에는 장애와 질환인 것이 누군가에게는 정체성이 될 수 있다는 것, 수평적 정체성이라는 개념이 참신했다. 2권의 주제는 조금 더 무겁고 혹독했다. 첫머리로 음악 신동에 대해 다뤘는데, 탁월한 재능을 가진 아이의 부모도 장애인 아이를 기르는 것과 별반 차이 없다는 것이 어느 정도 수긍이 갔고, 처음에는 뜬금 없다 생각했던 신동이라는 주제가 이 책에 낄 법하다고 생각이 바뀌었다. ‘위플래시’란 영화를 오래전에 봤을 때 부모는 아니지만 아이의 선생이 최고의 연주를 할 수 있도록 몰아 붙이는 것을 보고 이건 굉장히 가학적인 아동학대물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분명 스스로 음악을 아주 사랑해서 숨쉬듯 자연스럽게 음악가로서의 재능을 연마한 아이들도 있긴 하겠지만, 많은 아이들이 부모에게 인정 받고 사랑받으려고, 자신에 대한 부담스러운 기대를 충족시켜주려고, 대부분의 평범한 아이들이 갖는 소소한 어린 시절의 행복을 내려놓고 고행에 가까운 연습과 공부를 했을 것이다. 언론에서 본 영재들 이야기, 초등학교 다닐 나이에 우수한 학생들이 모이는 고등학교나 대학교에 간 아이들이 자신들이 가진 재능 외에도 공동체 생활에 필요한 능력을 아직 갖추지 못해 적응을 못할 때, 안쓰럽게 여기는 대신 영재 부모의 욕심을 욕하는 반응을 보고 어느 정도는 부모 책임도 있겠지만 왜 저렇게들 가혹하게 까내릴까 싶었다. 아마도 시기와 질투가 있을 것이고, 완벽할 수 없는 인간에게 완벽하지 않다고 자기일 아니라고 그렇게 마구 비난할 수 있었을 것이다. 직전에 읽은 ‘세상의 모든 아침’에서 음악하는 사람의 가족과 연인들이 그들을 보조하면서 그다지 순탄하지 않게 사는 걸 보면서 아...어린이들에게 너무 탁월한 사람이 아닌 걸 감사해야 하는 건가 싶었다. 피아노학원 다닌지 거의 30년 된 나에게 야매로 피아노를 배우고 있는 어린이들은 적당히 잘 배우지만 신동 근처도 못 가니까 나중에 음악을 즐기고 스스로 원하는 소리를 낼 정도까지만 어떻게 해보려고….(했는데 실상은 위플래시의 선생님처럼 자세랑 오류 교정하면서 개혼내고 있으니… 이율배반이라는 말 여기다 쓰는 것이로군.)

강간 피해자가 가해자 때문에 아이를 가지고 결국 출산까지 하게 되면서 몇겹의 고통을 겪는 사례는 가장 읽기 힘들고 슬픈 부분이었다. 저자는 이 주제 다룰 때 서구 지역 어머니들 뿐 아니라 내전으로 종족간 학살이 일어난 아프리카 르완다 등의 지역 여성들도 인터뷰했다. 아이를 보는 것 자체가 트라우마인 사람, 오히려 축복처럼 소중한 아이를 만나기 위한 과정이었다 여기는 사람, 어떻게 하면 이 아이를 사랑할 수 있을지 그 방법을 묻는 사람, 모두 아이에게 사랑을 주는 어머니가 되려고 애쓰고 있었다.

범죄 청소년의 부모 이야기는 자식이 죄인 되는 순간 부모도 함께 엄청난 비난과 죄의 굴레를 함께 쓰는 게 거의 만국 공통이라, 그런 부모들의 목소리를 듣는 기회조차 흔하지 않았다. 앤드루 솔로몬은 소년원이 아닌 징벌보다는 재사회화, 사회 적응, 가족 관계 개선에 초점을 둔 홈스쿨의 부모와 범죄 청소년들을 주로 만나면서 범죄 또한 때로는 자유 의지로도 통제가 안 되는 질병과 장애처럼 바라보고 그들이 치유되도록, 그러지 않는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범죄 청소년을 이끌어야 한다는 입장을 가진 듯했다. 일부 맞는 말이긴 했지만 그동안 목소리를 못 냈던 가해자 부모 위주로 인터뷰를 해서, 범죄 피해자들 입장에서 이 챕터를 읽었다면 극소수는 가해자의 입장도 헤아렸겠지만 대부분은 그냥 다 죽였으면 하고 분노에 찼을 듯하다.

LGBT중 앤드루 솔로몬은 트랜스젠더와 그 가족을 집중적으로 인터뷰했다. 게이를 안 고른 게 의외였는데 그 부분은 마지막 챕터에서 길게 뽑을 예정이었던 것...내가 진짜 나라고 여기는 나의 모습으로 살기 위해 분투하는 아이들과, 트랜스 이전의 아이를 잃는 슬픔에 빠진 부모와, 아이들을 교정할 수 있다 믿고 정신과치료를 시도하면서 아이를 불행하게 만드는 부모와, 아이들을 적극 지지하기 위해 협회나 재단이나 행사까지 만들고 지원하는 부모들까지 다양한 모습을 살펴볼 수 있었다. 트랜스젠더에 대한 증오범죄는 이전 ‘트라우마 클리너’나 ‘젠더를 바꾼다는 것’, ‘퀴어, 젠더, 트랜스’ 같은 책에서 일부 살펴볼 수 있었는데, 이 책의 사례들은 훨씬 참혹하고 나열하면 끝이 없어서 읽는 내내 안타까움을 넘어 두렵기까지 했다. 트랜스젠더의 다름에 대해 저렇게 폭력성을 드러내는 인간 무리가 있다면, 나의 어떤 다름에 대해서도 그것이 표적이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으니까. 대부분 스스로 평범한 보통의 사람이라고 안도하며 남들처럼 살려고 애쓰려는 것도 저런 다름에 대한 압제 때문이겠다 싶어서 속상했다.

게이나 동성애자의 부모자녀 관계에 대해 저자가 할 말이 제일 많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책의 후반부는 게이인 저자가 아버지가 되기 위해 거친 여러 과정들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이 부분은 흥미롭기도 하고 놀랍기도 했다. 정상가족에 대한 관념이 편견과 고정관념에 뿌리를 두고 조금이라도 다른 가정의 아이들에게 그들이 어떤 잘못이라도 하면 그게 다 엄마/아빠가 없어서 그래, 하고 아무렇지 않게 평가하는 게 당연한 세상에서, 앤드루와 그 친구들은 아이들에게 아주 많은 부모를 만들어 주고 새로운 가족관계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굳이 그런 걸 보여주려고 한 게 아니라 그냥 자녀를 원해서 그렇게 한 것이다. 그런데도 미혼의 여자 방송인이 정자 기증으로 아이를 낳아 혼자 키우는 걸, 레즈비언 커플이 역시나 정자 기증으로 아이를 낳아 함께 키우는 걸 어머니 욕심으로 아이 처지는 생각도 안 하고 이기적이라고 심하게 댓글로 욕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 걸 보았다. 중요한 건 그 어머니, 아버지들이 아이를 충분히 보살피고 사랑해주고 학대하지 않는 것인데, 오히려 있으니만 못한 어머니, 아버지를 다 갖추고서 나쁘게 힘들게 크는 아이들도 있는데, 세상은 과거에 비하면 동성 부부와 그들이 아이를 키우는 것까지 허용하는 지역이 등장할 만큼 바뀌기도 했지만, 아직까지 여전한 것들이 있다. 아마 그런 적의와 혐오와 그에 기반한 폭력은 오래도록 남아 있을 것 같다.

두 권의 벽돌로 이루어진, 쓰는 데만도 10년은 걸렸다는 이 책은 분량은 제법 되지만 읽었을 때 못 알아들을 말은 거의 없었다. 그저 우리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기울일 준비가 되어 있는지의 여부가 중요할 독서였다. 이 책을 읽고 그동안 나쁘게만 생각했던 부모나 자녀들에 대한 생각을 바꾸는 사람이 있다면 참 좋겠지만, 늘 반추하듯 정작 읽어야 할 사람들은 안 읽는 책들이 많다. 이 책을 읽었으면 싶은 사람은 단언컨대 누구나, 모두다, 이다. 인간에 대한 이해와 삶의 다양성에 대한 지평을 넓힐 수 있는 이야기를 많은 사람들이 접했으면 좋겠다.

+밑줄 긋기
-절대음감을 타고나지는 않았지만 훈련을 통해 음을 인식할 수 있게 되는 사람들도 있다. 학습을 통해서 이를테면 ‘G‘를 내는 법을 배우고 해당 음을 기준으로 해서 다른 음들을 계산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절대음감이 항상 음악적 능력을 높여 주는 것은 아니다. 한 가수는 그녀가 속한 합창단의 다른 단원들이 사분음 낮게 부를 때 자신이 겪는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녀는 다른 단원들과 불협화음을 내서라도 악보에 적힌 대로 노래를 부르고 싶은 어쩔 수 없는 충동을 느꼈다. (44-45, 이 부분 읽기 직전 난 저렇게는 할 수 있는데, 생각했더니 언급이 되었다. 그런데 그건 별 쓸모가 없네요…라이브 연주 듣다가 기타 피치가 안 맞네 하는 쓰잘데 없는 거슬림만...내가 그래서 떼창하기도 싫어해요…)

-그의 부모는 그가 동성애자라고 밝히자 몹시 화를 냈다.그가 말했다. ‘나는 부모님의 편협한 애정에 화가 났습니다. 부모에게 자식이란 다양한 모습을 지닌 복합적인 존재입니다. 따라서 자식의 다른 부분은 제쳐 놓고 반짝이는 부분만 골라서 사랑할 수는 없는 거예요.’ (57)

-그런 부모들은 그들 자신의 희망과 야망, 정체성을 있는 그대로의 자녀가 아닌 자녀의 능력에 투자한다. 자녀의 호기심을 길러 주기보다는 자신의 명성을 향해서 전력 질주한다. 내 기준에서 그런 부모들이 잔혹하게 보일 때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자녀에게 앙심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다만 부모와 자식 사이에 존재하는 삶의 경계선에 대한 비극적인 몰이해를 보여줄 뿐이었다. 절대권력은 부패하기 마련이고 부모의 권력만큼 절대적인 권력은 없다. 그런 부모를 둔 자녀는 이미 부모의 강박적인 관심에 종속되어 있음에도 자신이 부모의 관심을 받지 못한다는 생각에 괴로워한다. 그들의 비애는 엄격한 연습에서 기인한다기보다 자신의 불가시성에서, 즉 부모가 자신을 봐주지 않는 데서 기인한다. 성취는 앞으로 기대되는 승리를 위해 현재의 즐거움을 포기하도록 요구하며, 이 같은 사실은 자녀들이 반드시 배워야 할 자극이다. 하고 싶은 대로 내버려 두면 그들은 열살 이전에 절대로 세계적인 수준의 연주가가 될 수 없다. (75, 이 책은 음악 신동에 한정해서 해당 장을 서술하고 있지만, 학업이나 스포츠, 모든 분야에 대한 부모의 기대에 적용될 만한 것으로 보였다.)

-우리는 보다 인간적이고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장애인을 돕는다. 비범함에 대해서도 동일한 마음가짐으로 접근할 수 있다. 동정은 장애인의 자존감을 저해한다. 탁월한 재능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적의가 유사한 장애물이다. 동정과 적의는 하나같이 우리와 근본적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느낄 때 나타나는 징후다. (129)

-‘그의 상상력은 나의 상상력을 바꿔 놓기 일쑤였다’라는 한 문장은 비범한 자녀를 양육하는 부모가 보여 줄 수 있는 훌륭함의 극치를 보여 준다. 부모는 그처럼 자신의 상상력을 대체함으로써 자녀의 상상력 발달에 도움을 준다. 신동 자녀를 둔 부모로서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그 같은 현명한 태도는 큰 대가를 요구하는 일이지만, 신동 자녀의 총명함을 등불 삼아서 자신의 길을 재설정할 수 있는 부모는 장차 자녀가 세상을 새롭게 바꿔 나가는 방식에서 엄청난 위안을 얻게 될 것이다. (136, 나는 나의 상상력을 자꾸만 어린이들에게 강요하는 게 아닌가 하는 반성을 하게 되는 부분…)

-“여러분의 자녀가 친하게 지내는 친구를 살펴봐야 합니다.” 그가 말했다. “자녀가 나쁜 무리와 어울리기 시작하면 나쁜 무리가 아이들을 타락시키고 결국 여러분의 자녀는 나쁜 짓을 저지르게 될 겁니다.”나는 아이들의 타고난 순수성을 더럽히는 ’나쁜 무리‘에 대한 교회의 비난에 충격받았다. 설교자는 계속해서 악을 열거하기 시작했다. 그의 설명에 따른면 이 교회 사람들은 ’동성애 왕국‘에 반대해서 일어나야 했고, 현대판 고리대금업자는 거룩한 장소에서 추방되어야 했다. 미니애폴리스의 흑인 문제가 동성애자와 유대인, 은행의 잘못이라는 그 같은 발상은 내게 세 번의 차 사고에 대한 다숀테의 변명이나, 다리우스가 자신을 속여서 위법행위를 저지르게 했다는 그의 주장을 떠올리게 했다. 타인에 대한 신도들의 증오는 이상하게도 갱단의 정신을 연상시켰다. 그 공동체는 호전성과 뒤얽힌 관용을 보였고, 가혹함과 친절이 뒤섞인 설교자의 주장을 예수그리스도가 무한한 사랑과 최후의 심판에 있을 가혹한 판결을 예언했던 것과 동일 선상에서 이해했다. (278, 저자의 성적지향을 알았으면 초대하지 않았을 사람들 틈에서 “우리 애는 안 그래요”를 시전하는 공동체를 대하는 마음은 어떤 것일지 조금 알 것 같은 기분… 우리 애는 절대 안 그런 애인데 친구를 잘못 사귀어서 그래요… 그런 소리 안 들으려고 나는 친구가 별로 없다. 읭.)

-“우리에게 마음을 열고 솔직하게 대해 주어서 정말 고마워요. 당신이 동성애자이고 애인이 있다고 해서 변하는 것은 없어요. 당신도 우리가 흑인이라고 해서, 쿨이 감옥에 다녀왔다고 해서, 내가 혼자 자식을 키우면서 도심의 빈민 지역에 산다고 해서 우리를 나쁘게 생각하지 않았잖아요. 사랑하고 행복할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에 이제 나는 당신이 그런 기회를 얻었다는 사실을 알았고 그래서 기뻐요. 나는 친구를 사귈 때 그 사람의 마음을 봐요. 그리고 보다 커다란 어떤 목적을 위해서 하느님이 우리를 친구로 맺어 주었다고 믿어요.” (279, 앞에서 내가 저렇게 투덜댈 걸 알고 바로 뒤에 다숀테의 엄마 오드리의 다정한 반응을 첨언해 놨다. 실제 인식과 감정이 어떻든 간에 속을 터 놓은 상대에게 저렇게 편지 써 줄 수 있는 마음은 쉽지 않은 일 같다.)

-인간의 충동이 다양하다는 점을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들과, 애초에 유혹을 느끼지도 않았던 행동에 빠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우월감을 느끼는 사람에게는 특유의 오만이 있다. 성범죄자를 혐오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아동에게 성적으로 끌리지 않는다는 사실은 인정하지 않은 채 아동과의 성관계를 추구하지 않는 데 의기양양해한다. 약물에 의존하는 경향이 없는 사람들은 중독자를 경멸한다. 소식가들은 병적으로 비만인 사람들을 멸시하기 일쑤다. 아마도 100년 전이었다면 나는 동성애 때문에 감옥에 갔을 것이다. 다행히도 나 자신에 대해 솔직할 수 있는 장소와 시대에 살고 있을 뿐이다. 내가 동성애자로서의 내 욕구를 거부해야 했더라면 그것은 거부해야 할 욕구가 없는 이성애자의 경험과는 사뭇 다른 경험일 것이다. 나는 범죄자들과 시간을 보내면서 그들 중에는 충동을 조절하지 못하거나, 나약하거나, 어리석고 파괴적인 사람도 많지만 강박적인 충동에 이끌리는 사람도 많다는 것을 알았다. 어떤 이들은 자신의 내면에서 훔치고 싶은 욕망이 매순간 불타오르고 있음에도 절도를 자제함으로써 엄청난 용기를 보여 준다. 그들이 스스로 없애 버릴 수 없는 악마를 억누르는 일은 절도를 달갑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법을 지키는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대체로 범죄자의 가족들은 그들의 자녀가 파괴적인 짓을 했다는 점을 인정하기 위해, 그리고 어쨌거나 그를 계속 사랑하기 위해 애쓴다. 그럼에도 어떤 이들은 사랑하길 포기하거나 나쁜 행동을 모른 체하기도 한다. 포기나 외면 어느 쪽에도 해당하지 않는 이상적인 상태는 죄는 미워하되 죄인은 사랑하라는 개념에서 시작되지만 죄와 죄인은 그렇게 쉽게 분리될 수 없다. 인간이 죄인을 사랑한다면 그의 죄도 포함해서 사랑하는 것이다. (324)

-그러나 악은 항상 예측이나 설명이 불가능한 방식으로 나타난다. 자폐증이나 정신분열증 환자의 가족들은 분명히 건강하다고 생각했던 자녀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인지 의아해한다. 마찬가지로 끔찍한 행동을 하기 시작한 자녀 문제로 씨름하는 가족들은 그들이 이해한다고 생각했던 순진한 자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의문을 갖는다. (326)

-나에게 일어난 가장 큰 변화는 남자에서 여자가 된 것이 아니에요. 비밀을 숨기고 있던 사람에서 더 이상 비밀이 없는 사람이 된 것이죠. 당신이 간절히 바라는 꿈과 가장 깊은 슬픔을 다른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것, 우스운 것으로 여긴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힘든 일이에요. 이중생활은 고단하고 궁극적으로는 비극이죠.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보여 줄 수 없다면 사랑받을 수도 없기 때문이에요. (386)

-’(…)그럼에도 나는 아들에게 “세상의 반응에 대응할 준비가 된 것이 확실하니?”라고 물었어요. 모세가 대답했죠. “문제는 세상이 나에 대한 준비가 되었냐는 거죠.” 나는 “얘야, 아버지인 나부터도 너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구나”라고 말했습니다.‘ (433)

-‘(…) 우리는 출생증명서에 인종을 기입하지 않아요. 인종은 자기 인식 행동에서나 의미가 있을 뿐 더 이상 법적으로 유의미한 범주가 아닙니다. 젠더도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 ‘사람들은 자신의 성에 매우 애착을 느낍니다. 나도 그렇고요. 그리고 이러한 애착은 종교와 매우 흡사합니다. 정부가 사람들의 종교를 규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충격적일 것입니다. 정부가 누군가의 젠더를 규정할 수 있다는 발상도 마찬가지로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져야 합니다.’ (460, 인권변호사 섀넌 민터 씨의 말)

-한편으로 나는 선택이, 특히 일상적이지 않은 선택이 부담스럽고 고단하며 두려울 수 있다는 사실을 안다. 내가 처음으로 쓴 책은 소련의 예술가 집단에 관한 내용이었다. 그들이 서구 사회로 넘어왔을 때 나는 그들과 함께 있었다. 그들 중 한 사람이 서로 다른 상표의 20가지 버터가 진열되어 있던 독일 슈퍼마켓에서 서구 사회가 그에게 요구하는 수많은 선택을 견딜 수 없어서 울음을 터트렸던 일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나는 피곤한 선택이 수반될 것을 알면서도 우리가 모든 것을 선택할 수 있는 미래를 상상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런 미래가 온다면 아마도 나는 내가 지금 가진 것들을 선택할 것이다. 그럼에도 스스로 선택했기 때문에 그것들을 더욱 사랑할 것이다. (474, 슬픈 버터, 나는 선택하지 않음을 선택. 버터 말고 카이막 먹을래)

-‘(…) 정상이란 주관적인 상태다. 그리고 우리한테는 장애가 정상이다’(481, 영국 장애 인권 운동가 조애나 쿼파시아 존스의 말)

-어떤 여성도 당사자가 두려워하는 임신을 강요받지 말아야 하고, 또 어떤 여성도 당사자의 의지에 반해서 낙태를 강요받지 말아야 한다. 수평적 특징을 가진 자녀를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은 태아기 검사를 했든 하지 않았든 간에 그들의 아이에게 존엄성을 부여한다. 우리는 생식에 관련된 과학기술에 손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되면서 어떤 아이가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지, 우리가 어떤 아이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을지 추측한다. 이러한 추측을 기피하는 것도 무책임한 행동일 수 있지만 추측에 필요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무지한 행동이다. 가정에 근거한 사랑은 실질적인 사랑과 아무런 공통점이 없는 까닭이다. (489)

-또 불안이 엄습할 때마다 내가 운전 면허 시험을 보려고 집을 나설 때 어머니가 들려주었던 조언을 떠올렸다. 인생에는 우리를 주눅 들게 만드는 일 두 가지가 있으며 주눅을 이겨 내기 위해서는 그 두 가지가 거의 누구나 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상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바로 운전과 자식을 낳는 일이다. (496, 나는 운전을 할 줄 모르므로 반대로 아이를 낳지 않기로 한 사람에게도 이 조언은 크게 쓸모가 없겠지만, 면허 시험을 보고 아이를 가지려고 노력한 앤드루 솔로몬에게는 도움이 되었겠다. 맥락은 너무도 중요해서 잘못 문장 뜯어오면 이상하게 오독이 되고, 그러다보면 너무 많은 덩어리를 퍼오게 된다. 밑줄 긋지 말까…타자쳐서 책 내용 옮기는 게 반추하길 좋아하는 나의 미래한테는 도움이 될 수도 있겠지만 아 또 뭘 이러고 있을까 다 남의 말일 뿐인데 이게 뭐라고 싶기도 하다. 그치만 남의 말 중에 그럴싸하니까 옮겨온 거잖아...그냥 하던 대로 해...)

-또한 예전의 내가 종종 억압받는다는 느낌을 받았던 것처럼 이질적인 아이에게 나 역시 똑같이 억압하는 사람이 될까 봐 두려웠다. (497, 나도야…)

-내가 갓 태어난 그녀를 안은 후에 블레인도, 리처드도, 존도 그녀를 안았다. 우리 모두는 이 황홀한 존재에게 누구일까? 그녀는 우리에게 어떤 존재일까? 그녀의 존재로 인해 우리 어른들의 관계에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이미 연구를 한창 진행 중이던 나는 모든 아이가 수평적인 특징을 조금씩 갖고 있으며, 부모의 특징을 재구성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단서를 찾고자, 그리고 그녀가 나를 어떤 사람으로 바꿀 것인지 힌트를 얻고자 나는 그녀의 작은 얼굴을 유심히 살폈다. (500-501, 저자 앤드루는 존과 동성 부부가 되었고, 그 이전에 앤드루는 친자를 가지고 싶은 열망을 가지고 있다가 역시나 어머니가 되고 싶어하던 오랜 친구 블레인에게 농담처럼 필요하면 내가 도와주지, 했는데 그녀가 수락해 버려서 존하고 갈등은 좀 생겼지만 잘 상의해서 블레인은 아이를 갖게 되었고, 그 사이 블레인은 리처드와 결혼하게 되었다. 존은 더 일찍 레즈비언 커플 친구들-로라와 태미-에게 정자를 기증하고 대신 양육권/양육비 요구 같은 법적 의무 권리는 모두 포기하는 절차를 밟아서 아기들의 생물학적인 아버지이긴 하지만 법적인 연결고리는 없다. 앤드루는 자신의 성을 블레인이 낳은 작은 블레인에게 물려줄 것이고, 아이는 블레인과 함께 살테지만 하여간에 앤드루는 아버지가 되고 싶었고 아이를 만든 두 사람은 거기에 동의를 했다. 이 혼란 속에 나는 그렇게 자신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삶을 만들어가는, 그리고 그 선택으로 태어난 아이들에게 경제적으로든 지적으로든 지원을 충분히 해 줄 만한 부모들의 자부심 같은 걸 본 것 같아 그 용기가 놀랍기도 했지만 배도 아팠다.)

-우리 두 사람은 사랑의 행위라고 생각하고자 했던 일이 경제적 특권이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사실이 유감스러웠다. (503, 결국 앤드루는 자신의 정자에다 기증받은 난자, 대리모, 이렇게 앤드루-존 부부가 양육할 아이를 만들기로 존과 합의했다. 대리모의 존재 자체와 이런 시장에서의 거래 자체를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에 앞의 아이 못지 않게 앤드루의 두번째 아이도 논란이 되었을텐데, 새 생명이 온전히 환영 받지 못하고 어떤 문제거리나 사회와 관습에 대한 도전, 벗어난 무언가로 바깥 사람들에게 다루어질 가능성을 먼저 걱정하게 되는 건 또 서글픈 일이었다. 미안, 앤드루. 걱정이 많은 나라서… 그런데 바로 다음 장에 존이 정자를 기증해서 아이를 가졌던 레즈비언 커플의 로라가 대리모가 되어 주겠다고 기꺼이 나선다. 참으로 정이 돈독한 친구들이다...)

-조지가 태어난 뒤로 나는 복잡하게 얽힌 우리 모두의 관계가 어떻게 제자리를 찾아갈지 의문이었다. 존과 나는 조지를 전적으로 책임진다. 블레인과 나는 작은 블레인과 관련되어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는 함께 결정한다는 조건에 진작 합의했다. 로라와 태미는 독립된 친권을 가졌고, 우리는 올리버와 루시의 삶에 대해 아무런 결정권이 없으며, 마찬가지로 로라와 태미도 조지에 대해 아무런 권한이 없다. 이 세 건의 합의 내용은 모두 제각각이고 우리는 서로의 상황을 비교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514, 이쯤에서 백년의 고독이나 연연세세나 오이디푸스의 비극 볼 때처럼 가계도를 그려볼 생각도 잠시 했지만, 사실 앤드루가 이렇게 한 번 더 명료하게 정리해놔서 그럴 필요도 없겠다, 그런 걸 그린다면 그냥 내 흥미거리로 이 가족을 소비하는 짓이겠구나 싶어서 말았다.)

-어떤 사람들은 사랑의 총량이 한정되어 있어서 우리 같은 사람들이 그들에게 공급되어야 할 사랑을 고갈시킨다는 믿음에 갇혀 있다. 나는 사랑의 경쟁 모델을 인정하지 않는다. 오직 가산 모델만 인정한다. 가족과 이 책을 둘러싼 여정을 통해서 나는 사랑이 확대되는 현상이라는 사실을 배웠다. 즉 어떤 사랑이든 늘어난다면 세상의 다른 사랑도 그만큼 강해진다는 사실을 배웠다. (515-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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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아침
파스칼 키냐르 지음, 류재화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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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816 파스칼 키냐르.

작가의 이름은 들어봤지만 전혀 아는 바는 없어서 책을 읽기 전 작가연보를 먼저 보았다. 객관적인 사실 나열이 아니라 발표된 작품에 대한 해설까지 섞어놔서 읽으면서도 좀 이상하네, 했다. 번역 문제였을지, 프랑스에서 책 낼 때부터 출판사에서 그렇게 연보에까지 멋을 부려놨을지 모르겠다.
파이프 오르간 연주가 이어갈 가업, 스트라디바리우스(!)를 물려받았다 도난 당한, 음악적 유산을 존속들에게 물려 받은 사람이란 외계 행성계 생명체만큼 아득했다. 꼬박꼬박 악기 연습하던 사람이 악기 도난 당하고 손가락도 안 좋아져서 연주 포기하고 나머지 시간에 책 읽고 글쓰며, 그의 글은 문학계에서 열심히 연구되는 대상이 되었다. 그리고 아직 안 죽었어… 어려서 (부모의 문화 자본 덕에) 너무 많은 언어에 노출되어 자폐를 두 번이나 겪었다는 건 좀 특이한 성장담이었다.

천재성 띄는 예술가의 원형, 전형, 그에 대한 고정관념, 괴팍함과 똥고집의 집합체 같은 생트 콜롱브는 비올라 다 감바를 고안하고 또 연주하는 음악가이다. 다리 사이에 놓고 연주한다는데 첼로 같은 건가? 어떤 악기인지 감이 오지 않아서 연주하는 모습을 찾아 보았다.

이 악기가 비올라 다 감바래...
https://youtu.be/80mF23zen6s

첼로와 비올라 다 감바를 분별할 눈도 귀도 갖지 못한 나는 아름답고 섬세한 것들에 대한 문장으로 이 얇은 책이 꽉 차 있을까 봐 약간 불안을 느꼈다. 이 책을 권해주던 친구도 걱정스레 난 이 책이 좋았는데, 넌 어쩔지 모르겠네...하면서도 분량이 많지 않으니까 읽어보라고 했다.

프랑스 소설이지만 약간은 서양 놈들이 생각하는 동양적 정신? 생트 콜롱브의 삶은 강호에 병이 깊어 죽림에 누워 음악에 파고드는 삶이고, 왕(루이14세가 뿅 나와서 여기서야 시대를 대강 짐작할 수 있었다)이 궁정 악사로 부르자 펄펄 뛰는 데서 벼슬길 사양하고 안빈낙도, 하는 양반네들 모습도 보였다.
후반부에서 생트 콜롱브가 마랭 마레를 맞이해 기뻐하며 자기 음악을 들어줄 유일한 제자인 것처럼 다시 받아들여 연주를 하면서 마무리할 땐, 지음, 지기지우, 이런 고사성어가 떠오르고 선문답 주고 받는 노승과 동자승 보는 듯하면서도 얼탱이가 없었다. 기껏 가르쳐놨더니 배신 때리고 왕궁 악사가 되어버리고, 자기 딸하고 연애만 실컷하다 딴 여자랑 결혼해서 큰딸래미 피말라 죽게 한 놈이 다시 나타나면 나같으면 칼로 베어버리든지 비올라 다 감바로 뚝배기를 깨놓든지 했을 것이다. 모든 걸 초월하는 예술적 고고함과 공명 같은 거… 난 모르겠고 여기 나온 남자 새끼 예술가놈들 다 짜증났다.

크리스티앙 보뱅도 그렇고, 내가 느끼기엔 굉장히 탐미적이고 섬세한 문장으로 가득 찬 책들은 나에게 좌절감을 불러일으키는 걸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남들이 아름답다고 찬사를 보내며 빠는 글들을 도저히 동감할 수 없는, 심미안 따위 갖추지 못한 스스로가 분해가지고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진짜로 조금 울었음). 강물처럼 잔잔하면서도 저음의 현악기 연주가 깔리는 그런 소설 보고 느끼는 감정이 분노인 건 진짜 나도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런 나라서 미안해...

간결하고 담백한 문장이라서 전체적으로는 미문이지, 하지만 또 어느 한 구절 이거다, 해서 퍼 놓을 문장은 찾지 못했다.
어느 순간 부터 이야기 초점 화자가 마랭 마레로 넘어가는 느낌인데, 그의 심리 상태를 설명하면서 집요하게 그의 성기 상태를 가지고 표현을 해 놔서 두 번까지는 그래 그래라...하다가 세 번이나 그러는 걸 보고 화딱지가 나서 그것만 퍼왔다. 마랭 마레 새끼의 뇌가 고추에 있다는 걸, 그래서 이놈이 호로잡놈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던 것이냐. 아니면 이거야 말로 독자에게 와닿는 심리묘사라 여겼던 것이냐. 그렇다면 작가 너는 너의 독자로 세상 절반만 염두에 두고 쓴 것이냐.

생트 콜롱보의 두 딸 마들렌과 투아네트는 아버지가 가르치는대로 비올라 다 감바를 배워 삼중주를 하고, 대개는 적당히 잘해주지만 말 안 들으면 지하실에 갇히고, 아버지가 화낼 때 절절 매고, 아버지 손님 맞이 시중을 들고, 아버지가 제자로 받은 놈의 성욕까지 두 딸다 받아주며 사랑인 듯, 그렇지만 둘다 가슴 한 번씩 까놓고 누가 더 큰가 크기 비교나 당하고 이런 부분에서도 나는 화가 많이 났던 것 같다. 그러니까 같은 프랑스 작가래도 난 미친 드러운 놈이요 우헤헤 하고 쓴 애들은 그나마 읽어주겠는데 고상한 척 난 예술가야, 난 아름다움을 추구해, 하면서 어느 구석에서 추잡스러움이 느껴지는 작가를 나는 못 읽는 놈으로 자라 버렸다...그게 너무 슬프다…

+밑줄 긋기(마랭 마레 씨의 고추 모음집)
-허벅지 사이의 묵직하고 털 난 성기는 축 늘어져 있었다. (42)

-그가 그녀에게 말했다.
“당신을 떠나겠소. 봤잖소. 당신한테는 더 이상 서지 않소.” (87, 역대급 이별선언...그럼 잘라 이새끼야 니가 고장난 거야)

-성기는 완전히 쪼그라들고 얼어붙었다.(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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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 동안의 고독 - 1982년 노벨문학상 수상작 문학사상 세계문학 6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안정효 옮김, 김욱동 해설 / 문학사상사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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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814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재독.

처음 백년의 고독을 읽은 때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데 아마도 20대 대학생 때였다. 민음사판으로 읽고, 아빠가 사는 집에서 도망치면서 두고 나왔다. 그래서 2010년 9월에 동서문화사판으로 새로 산 건 아마도 중역판이고, 호밀밭의 파수꾼이랑 합본으로 되어 있다. 로쟈님께 땡스투를 했다고 되어 있네… 막상 찾으려고 보니 책이 실종되었다. 아무래도 중역판이라고 천대하면서 쇼파 뒤 가려진 책장에 처박아 둔 것 같은데 더워서 차마 뒤집어 내진 못하겠어. 알라딘은 아주 오래된 구매내역까지 확인할 수 있어서 좋다. 안 그러면 사람들은 같은 책 또 사는 짓을 지금보다 더 자주했을 것이다. 부모의 이혼이 마무리되고 아빠는 자기에게는 필요 없는, 엄마와 내가 모은 책들과 나한테 사준 디지털 피아노는 넘겨주었다. (내 기타, 책상, 침대 같은 건 어디다 부숴서 불쏘시개로 쓴 모양) 거기서 민음사판 백년의 고독을 다시 찾았는데, 또 왠일인지 두 권짜리 중에 한 권이 어디로 가버려서 나중에(아마도 2012년 이후에) 다시 샀다.
독후감 적기 시작한 건 그리 오래된 게 아니라 가장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은 걸 찾아보니 2016년 여름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적혀 있네.
https://m.blog.naver.com/natf/221305179714

또 읽어야지, 거듭 다짐을 해 놓고는 결국 거의 10년만에 읽었다. 이번에는 문학사상판. 1977년에 안정효 선생님이 번역했으니 아무래도 이것도 영문판 중역이었을 것이고, 그걸 3판 몇 쇄 해가지고 2007년에 나온 책인데, 아무리 오래됐대도 중고서점에서 1400원인 건 너무 심했어, 이 명작을, 내가 구해주마, 했다. 그래서 한 달 전에 산 김에 백년의 고독 아닌 백년동안의 고독으로 읽게 되었다. 넷플릭스에서 드라마로 나왔다는 게 많이 궁금하긴 하지만 역시 그냥 영상보다는 활자가 마음 편한 나란 인간...

혈육에게 사랑을 느끼는 감정은 완전 이해 못할 부분은 아닌데, 또 희한하게도 이 집구석은 6대 7대 거쳐 대대로 이러는 걸 보면 집안내력이고 근친교배로 진화에서 도태될 운명이었군, 싶고, 집안 여자들은 강력하고 의지가 굳어서 그나마 침울하거나 충동적인 남자들이 진작 말아먹을 집안을 겨우 지탱하다가도 또 이상한 지랄병을 돋궈서 집안 외의 남자들은 자꾸만 밀어내는 게 답답하다 못해 신기했다. 결국 사랑의 감정으로 가지만 그 시작이 힘센 남자의 강간이나 우격다짐인 건 아...이렇게 빻은 마르케스 아저씨니까 어린 창녀 데려다 놓고 잠만 재우는 소설 같은 거 쓰지 싶었고…

그렇지만 나는 이 이야기를 많이 좋아했고 그러니까 여러번 읽었을 것이다. 책 많이 읽었던 내 친구는 반대로 두 번을 읽어도 도무지 재미도 모르겠고 마술적 리얼리즘도 모르겠고 뭐하자는 건지 모르겠다고 해서 조금 놀랐다. 아니 이렇게 야한 책을… 뜨겁고 지랄발광인 책을… 취향과 호불호란 이렇게 다양한 것이다...

후반부에 마콘도 떠나는 카탈루냐 출신 책방 아저씨는 소설 속에 슬며시 들어온 소설가 같은 느낌인데, 사람은 승객칸 타면서 문학은 화물칸에 태운다고 푸념한다. 우리집은 종이 뭉치들이 토템 기둥처럼 여기저기 솟아 올라 사람보다 더 많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만, 내가 죽고 나면 아무래도 폐지수집장이나 소각장으로 갈 수 밖에 없겠지? 불쏘시개가 안 된 책들은 점점 소수자 되는 중인 책벌레들한테 근근히 이렇게 읽혀가며 겨우겨우 꺼질듯 말듯 남았다가 사라지겠지. 마콘도의 부엔디아 가문이 사라지고 집 기둥뿌리가 바람에 뽑혀 날아가도 살아남은 것처럼 사람들과 이야기들이 어디로 다 날려 사라져도 개미떼랑 바퀴벌레떼는 우리가 남긴 것들(시체, 남은 음식, 기타 등등)을 먹으면서 조금 더 번성할 것 같긴 하다.띵작 읽고도 딱히 쓸말을 못찾아서 헤에...섹스섹스… 금기는 어기라고 있는 거지...사람들은 하지 말라면 기를 쓰고 한다고… 바나나는 맛있지만 노동자들 죽이지 말라고… 뭐 그런 말들만 휘적휘적 잡다가 말았다.

+밑줄 긋기
-얼마 있다가 목수들이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의 관을 만들려고 치수를 재는 동안에, 그들은 창밖에 작고 노란 꽃들이 하늘에서 가볍게 빗발처럼 흩날리는 것을 보았다. 꽃비는 소리 없이 밤새도록 내려서 지붕을 덮고 문을 열 수 없을 만큼 집 앞에 쌓였으며, 바깥에서 잠자던 짐승들은 꽃에 덮여 질식했다. 하늘에서 어찌나 꽃송이가 퍼부어댔던지 아침에는 길바닥이 폭신폭신한 방석처럼 두텁게 꽃으로 깔렸다. 장례 행렬이 지날 때에는 길에 깔린 꽃 더미를 삽이나 갈퀴로 밀어내야만 했다. (157)

-“자네는 너무나 군사정권을 미워하고, 그들과 너무 오랫동안 싸움을 하고, 그리고 그들에 대한 생각을 너무 깊이 해왔기 때문에 결국 자네도 그들 못지 않게 나쁜 사람이 되고 말았어. 그토록 비참한 타락을 겪으면서까지 추구할 만큼 고귀한 이상은 이 세상에 없을 지도 모르지.” 그는 결혼반지를 빼고 성모 마리아의 조상이 달린 목걸이를 풀어서 시계와 안경 옆에 나란히 놓았다.
“난 자네가 어떤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지 벌써 환히 알겠어.” 몬카다 장군이 결론을 내렸다. “자네는 마콘도 역사상 가장 폭군적이고 악질적인 독재자가 될 뿐 아니라, 필요하다면 당장 우르슬라도 총살을 하고 말 사람이야.” (179)

-“옵니다, 와요!” 그 여자가 숨을 돌리고 난 다음에 설명했다. “부엌처럼 생긴 것이 뒤에다 동네를 하나 끌고 오는 모양이 무시무시해요.”
바로 그 순간 무시무시한 반향을 일으키는 기적이 울리고, 식식거리며 숨을 헐떡이는 소리에 마콘도가 뒤흔들렸다. 지난 몇 주일 동안 사람들이 몰려와서 침목을 놓고 철로를 깔았어도 마콘도 사람들은 그들이 호루라기와 탬버린을 가지고 와서 그들이 알고 있던 옛 노래를 부르며 방랑하는 예루살렘 예술가들의 춤을 추며 소란을 떠는 집시들이라고만 생각해서 신경도 쓰지 않고, 집시들이 또 무슨 수작이나 부리려는 줄 알았다. 그러나 기적 소리와 숨을 헐떡이는 소리에 놀란 가슴을 가라앉히고 길로 쏟아져 나온 주민들은 기관차 위에서 손을 흔드는 아우렐리아노 트리스테와 처음 계획보다는 여덟 달이나 늦긴 했지만 생전 처음 마콘도에 도착한 꽃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기차를 보고는 얼이 빠진 듯 멍하니 서 있었다. 그리고 죄 없는 그 샛노란 기차는 마콘도에 수많은 불안과 확신을, 기쁘거나 슬픈 수많은 순간들을, 그토록 많은 변화와 재앙을, 그리고 옛 시절에 대한 한없는 그리움을 가져다주게 되었다. (248-249. 칙칙폭폭)

-(…)아무런 두려움도 없이 인간으로 하여금 이토록 심한 고통과 엄청난 곤욕을 치르도록 한 것을 보니 인간이 쇳덩어리로 만들어진 줄 아느냐고 하느님에게 물었다. 이러한 생각을 혼돈 속에서 자꾸 되풀이하면서 우르슬라는 당장 밖으로 뛰쳐 나가 외국인들처럼 멋대로 횡포를 부리면서 모든 것에 대한 반역을 시작해서, 좌절감 따위는 다 던져버리고, 온갖 것들에 똥이나 싸갈기고, 지난 한 세기 동안 참고 참으면서 마음속에 차곡차곡 다져둔 온갖 몹쓸 욕설을 한껏 퍼부어대고 싶은 욕망이 참을 수 없을 만큼 치밀어 올랐다.
“염병할 것!” 우르슬라가 고함을 쳤다.
트렁크에 옷을 꾸려 넣고 있던 아마란타는 그 말을 듣고 우르슬라가 전갈에 물리기라도 한 줄 알았다.
“어디 있어요?” 아마란타가 깜짝 놀라서 물었다.
“뭐 말이냐?”
“전갈 말예요.” 아마란타가 물었다.
우르슬라는 손가락으로 가슴을 가리키며 대답했다.
“이 속에 있다.”
(281-282, 100살이 다 되어 발동한 레벨 하트)

-총탄이 휩쓸고 가자 앞에 있던 사람들은 대부분 땅에 엎어져 있었다. 살아난 사람들은 땅바닥에 엎드리는 대신에 자꾸만 작은 광장으로 달아나려 했고, 겁에 질린 사람들이 용의 꼬리처럼 한데 엉켜서 물결을 이루고 한쪽에서 달려 나오면 반대쪽에서도 또 다른 무리가 용의 꼬리처럼 달려 나와 서로 얽혔고, 방향을 어느 쪽으로 돌려도 그곳에서는 기관총이 기다리고 있다가 쉬지 않고 불을 뿜어댔다. 그들은 꼼짝없이 가운데 갇혀서 거대한 회오리바람처럼 빙글빙글 돌면서 기관총이라는 기계가위로 끊임없이 조직적으로 벗겨내는 양파처럼 가장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떨어져 나갔으며, 군중은 점점 안으로 오그라들면서 줄어들었다. 그 아이는 신기하게도 군중의 그러한 폭주에 조금도 개의치 않으면서 팔로 십자가를 긋고 아무도 없는 곳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여자를 보았다. 호세 아르카디오 세군도는 그를 내려놓자마자 얼굴이 피범벅이 되어서 고꾸라졌고, 얼마 안 있다가 무자비한 군대는 무릎을 꿇은 여자와, 그 여자가 있던 곳과, 높고 가뭄에 찌든 하늘과, 우르슬라 이구아란이 동물과자를 그렇게 많이 팔았던 너저분한 터전을 깡그리 쓸어내었다. (340-341)

-증조모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그는 문 쪽으로 눈을 돌렸고, 미소를 지으려고 하다가 자기도 모르게 우르슬라가 옛날에 자주 하던 말을 되풀이했다.
“이럴 줄 모르셨나요?”그가 태연히 중얼거렸다. “세월은 흐르게 마련입니다.”
“그렇긴 하지.” 우르슬라가 대꾸했다. “하지만 별로 흐르지도 않아.”
이 말을 했을 때 우르슬라는 자기가 옛날 죽음의 골방에서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이 했던 대답을 그대로 되풀이했음을 깨닫고는, 지금 자기가 말했듯이 시간은 흐르는 것이 아니라 커다란 원을 그리며 빙빙 돌고 있다는 생각에 몸을 떨었다. (372)

-그래서 그들은 함께 지난날의 광폭한 탕진 생활과, 으리으리했던 부유함과, 걷잡을 수 없었던 음탕한 삶이 결국은 역겨움에 지나지 않았음을 깨달았고, 고독을 나눌 수 있는 천국을 찾기 위해서 인생을 그토록 많이 낭비했어야만 했다는 사실을 슬퍼했다. 여러 해 동안의 삭막한 생활 끝에 미친 듯이 사랑에 빠진 그들은 침대에서뿐 아니라 식탁에 마주 앉아 있는 순간에도 사랑할 수 있다는 기적을 터득했고, 그러한 행복은 자꾸만 자라나서 그들이 다 낡아빠진 두 늙은이가 되었을 때도 계속해서 토끼새끼처럼 깡충깡충 뛰거나 강아지들처럼 정겹게 같이 놀았다. (376-377, 이 이야기에서 유일하게 해로하고 늘그막에 고독을 벗어난 커플은 아우렐리아노 세군도와 페트라 코테스였네…아우렐리아노랑 아마란따 우르술라는 늙지도 못했다...)

-얼마 안 되는 기간 동안 그들은 개미들보다 훨씬 더 심하게 집을 파괴하게 되었는데, 응접실 가구들은 거의가 부서졌고,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이 전쟁 통에 참호 속에서 슬픈 사랑을 치렀어도 견디던 그물침대도 그들의 미친 듯한 행위에 너덜너덜 닳았으며, 매트리스도 다 찌어져서 터져버렸고, 마룻바닥에서 파도처럼 일렁이는 솜뭉치 속에서 숨 막히는 사랑을 나누었다. (447, 이불 찢는 정도가 아니라 그냥 다 부쉈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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