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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아침
파스칼 키냐르 지음, 류재화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8월
평점 :
-20250816 파스칼 키냐르.
작가의 이름은 들어봤지만 전혀 아는 바는 없어서 책을 읽기 전 작가연보를 먼저 보았다. 객관적인 사실 나열이 아니라 발표된 작품에 대한 해설까지 섞어놔서 읽으면서도 좀 이상하네, 했다. 번역 문제였을지, 프랑스에서 책 낼 때부터 출판사에서 그렇게 연보에까지 멋을 부려놨을지 모르겠다.
파이프 오르간 연주가 이어갈 가업, 스트라디바리우스(!)를 물려받았다 도난 당한, 음악적 유산을 존속들에게 물려 받은 사람이란 외계 행성계 생명체만큼 아득했다. 꼬박꼬박 악기 연습하던 사람이 악기 도난 당하고 손가락도 안 좋아져서 연주 포기하고 나머지 시간에 책 읽고 글쓰며, 그의 글은 문학계에서 열심히 연구되는 대상이 되었다. 그리고 아직 안 죽었어… 어려서 (부모의 문화 자본 덕에) 너무 많은 언어에 노출되어 자폐를 두 번이나 겪었다는 건 좀 특이한 성장담이었다.
천재성 띄는 예술가의 원형, 전형, 그에 대한 고정관념, 괴팍함과 똥고집의 집합체 같은 생트 콜롱브는 비올라 다 감바를 고안하고 또 연주하는 음악가이다. 다리 사이에 놓고 연주한다는데 첼로 같은 건가? 어떤 악기인지 감이 오지 않아서 연주하는 모습을 찾아 보았다.
이 악기가 비올라 다 감바래...
https://youtu.be/80mF23zen6s
첼로와 비올라 다 감바를 분별할 눈도 귀도 갖지 못한 나는 아름답고 섬세한 것들에 대한 문장으로 이 얇은 책이 꽉 차 있을까 봐 약간 불안을 느꼈다. 이 책을 권해주던 친구도 걱정스레 난 이 책이 좋았는데, 넌 어쩔지 모르겠네...하면서도 분량이 많지 않으니까 읽어보라고 했다.
프랑스 소설이지만 약간은 서양 놈들이 생각하는 동양적 정신? 생트 콜롱브의 삶은 강호에 병이 깊어 죽림에 누워 음악에 파고드는 삶이고, 왕(루이14세가 뿅 나와서 여기서야 시대를 대강 짐작할 수 있었다)이 궁정 악사로 부르자 펄펄 뛰는 데서 벼슬길 사양하고 안빈낙도, 하는 양반네들 모습도 보였다.
후반부에서 생트 콜롱브가 마랭 마레를 맞이해 기뻐하며 자기 음악을 들어줄 유일한 제자인 것처럼 다시 받아들여 연주를 하면서 마무리할 땐, 지음, 지기지우, 이런 고사성어가 떠오르고 선문답 주고 받는 노승과 동자승 보는 듯하면서도 얼탱이가 없었다. 기껏 가르쳐놨더니 배신 때리고 왕궁 악사가 되어버리고, 자기 딸하고 연애만 실컷하다 딴 여자랑 결혼해서 큰딸래미 피말라 죽게 한 놈이 다시 나타나면 나같으면 칼로 베어버리든지 비올라 다 감바로 뚝배기를 깨놓든지 했을 것이다. 모든 걸 초월하는 예술적 고고함과 공명 같은 거… 난 모르겠고 여기 나온 남자 새끼 예술가놈들 다 짜증났다.
크리스티앙 보뱅도 그렇고, 내가 느끼기엔 굉장히 탐미적이고 섬세한 문장으로 가득 찬 책들은 나에게 좌절감을 불러일으키는 걸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남들이 아름답다고 찬사를 보내며 빠는 글들을 도저히 동감할 수 없는, 심미안 따위 갖추지 못한 스스로가 분해가지고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진짜로 조금 울었음). 강물처럼 잔잔하면서도 저음의 현악기 연주가 깔리는 그런 소설 보고 느끼는 감정이 분노인 건 진짜 나도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런 나라서 미안해...
간결하고 담백한 문장이라서 전체적으로는 미문이지, 하지만 또 어느 한 구절 이거다, 해서 퍼 놓을 문장은 찾지 못했다.
어느 순간 부터 이야기 초점 화자가 마랭 마레로 넘어가는 느낌인데, 그의 심리 상태를 설명하면서 집요하게 그의 성기 상태를 가지고 표현을 해 놔서 두 번까지는 그래 그래라...하다가 세 번이나 그러는 걸 보고 화딱지가 나서 그것만 퍼왔다. 마랭 마레 새끼의 뇌가 고추에 있다는 걸, 그래서 이놈이 호로잡놈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던 것이냐. 아니면 이거야 말로 독자에게 와닿는 심리묘사라 여겼던 것이냐. 그렇다면 작가 너는 너의 독자로 세상 절반만 염두에 두고 쓴 것이냐.
생트 콜롱보의 두 딸 마들렌과 투아네트는 아버지가 가르치는대로 비올라 다 감바를 배워 삼중주를 하고, 대개는 적당히 잘해주지만 말 안 들으면 지하실에 갇히고, 아버지가 화낼 때 절절 매고, 아버지 손님 맞이 시중을 들고, 아버지가 제자로 받은 놈의 성욕까지 두 딸다 받아주며 사랑인 듯, 그렇지만 둘다 가슴 한 번씩 까놓고 누가 더 큰가 크기 비교나 당하고 이런 부분에서도 나는 화가 많이 났던 것 같다. 그러니까 같은 프랑스 작가래도 난 미친 드러운 놈이요 우헤헤 하고 쓴 애들은 그나마 읽어주겠는데 고상한 척 난 예술가야, 난 아름다움을 추구해, 하면서 어느 구석에서 추잡스러움이 느껴지는 작가를 나는 못 읽는 놈으로 자라 버렸다...그게 너무 슬프다…
+밑줄 긋기(마랭 마레 씨의 고추 모음집)
-허벅지 사이의 묵직하고 털 난 성기는 축 늘어져 있었다. (42)
-그가 그녀에게 말했다.
“당신을 떠나겠소. 봤잖소. 당신한테는 더 이상 서지 않소.” (87, 역대급 이별선언...그럼 잘라 이새끼야 니가 고장난 거야)
-성기는 완전히 쪼그라들고 얼어붙었다.(1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