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아침
파스칼 키냐르 지음, 류재화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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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816 파스칼 키냐르.

작가의 이름은 들어봤지만 전혀 아는 바는 없어서 책을 읽기 전 작가연보를 먼저 보았다. 객관적인 사실 나열이 아니라 발표된 작품에 대한 해설까지 섞어놔서 읽으면서도 좀 이상하네, 했다. 번역 문제였을지, 프랑스에서 책 낼 때부터 출판사에서 그렇게 연보에까지 멋을 부려놨을지 모르겠다.
파이프 오르간 연주가 이어갈 가업, 스트라디바리우스(!)를 물려받았다 도난 당한, 음악적 유산을 존속들에게 물려 받은 사람이란 외계 행성계 생명체만큼 아득했다. 꼬박꼬박 악기 연습하던 사람이 악기 도난 당하고 손가락도 안 좋아져서 연주 포기하고 나머지 시간에 책 읽고 글쓰며, 그의 글은 문학계에서 열심히 연구되는 대상이 되었다. 그리고 아직 안 죽었어… 어려서 (부모의 문화 자본 덕에) 너무 많은 언어에 노출되어 자폐를 두 번이나 겪었다는 건 좀 특이한 성장담이었다.

천재성 띄는 예술가의 원형, 전형, 그에 대한 고정관념, 괴팍함과 똥고집의 집합체 같은 생트 콜롱브는 비올라 다 감바를 고안하고 또 연주하는 음악가이다. 다리 사이에 놓고 연주한다는데 첼로 같은 건가? 어떤 악기인지 감이 오지 않아서 연주하는 모습을 찾아 보았다.

이 악기가 비올라 다 감바래...
https://youtu.be/80mF23zen6s

첼로와 비올라 다 감바를 분별할 눈도 귀도 갖지 못한 나는 아름답고 섬세한 것들에 대한 문장으로 이 얇은 책이 꽉 차 있을까 봐 약간 불안을 느꼈다. 이 책을 권해주던 친구도 걱정스레 난 이 책이 좋았는데, 넌 어쩔지 모르겠네...하면서도 분량이 많지 않으니까 읽어보라고 했다.

프랑스 소설이지만 약간은 서양 놈들이 생각하는 동양적 정신? 생트 콜롱브의 삶은 강호에 병이 깊어 죽림에 누워 음악에 파고드는 삶이고, 왕(루이14세가 뿅 나와서 여기서야 시대를 대강 짐작할 수 있었다)이 궁정 악사로 부르자 펄펄 뛰는 데서 벼슬길 사양하고 안빈낙도, 하는 양반네들 모습도 보였다.
후반부에서 생트 콜롱브가 마랭 마레를 맞이해 기뻐하며 자기 음악을 들어줄 유일한 제자인 것처럼 다시 받아들여 연주를 하면서 마무리할 땐, 지음, 지기지우, 이런 고사성어가 떠오르고 선문답 주고 받는 노승과 동자승 보는 듯하면서도 얼탱이가 없었다. 기껏 가르쳐놨더니 배신 때리고 왕궁 악사가 되어버리고, 자기 딸하고 연애만 실컷하다 딴 여자랑 결혼해서 큰딸래미 피말라 죽게 한 놈이 다시 나타나면 나같으면 칼로 베어버리든지 비올라 다 감바로 뚝배기를 깨놓든지 했을 것이다. 모든 걸 초월하는 예술적 고고함과 공명 같은 거… 난 모르겠고 여기 나온 남자 새끼 예술가놈들 다 짜증났다.

크리스티앙 보뱅도 그렇고, 내가 느끼기엔 굉장히 탐미적이고 섬세한 문장으로 가득 찬 책들은 나에게 좌절감을 불러일으키는 걸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남들이 아름답다고 찬사를 보내며 빠는 글들을 도저히 동감할 수 없는, 심미안 따위 갖추지 못한 스스로가 분해가지고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진짜로 조금 울었음). 강물처럼 잔잔하면서도 저음의 현악기 연주가 깔리는 그런 소설 보고 느끼는 감정이 분노인 건 진짜 나도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런 나라서 미안해...

간결하고 담백한 문장이라서 전체적으로는 미문이지, 하지만 또 어느 한 구절 이거다, 해서 퍼 놓을 문장은 찾지 못했다.
어느 순간 부터 이야기 초점 화자가 마랭 마레로 넘어가는 느낌인데, 그의 심리 상태를 설명하면서 집요하게 그의 성기 상태를 가지고 표현을 해 놔서 두 번까지는 그래 그래라...하다가 세 번이나 그러는 걸 보고 화딱지가 나서 그것만 퍼왔다. 마랭 마레 새끼의 뇌가 고추에 있다는 걸, 그래서 이놈이 호로잡놈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던 것이냐. 아니면 이거야 말로 독자에게 와닿는 심리묘사라 여겼던 것이냐. 그렇다면 작가 너는 너의 독자로 세상 절반만 염두에 두고 쓴 것이냐.

생트 콜롱보의 두 딸 마들렌과 투아네트는 아버지가 가르치는대로 비올라 다 감바를 배워 삼중주를 하고, 대개는 적당히 잘해주지만 말 안 들으면 지하실에 갇히고, 아버지가 화낼 때 절절 매고, 아버지 손님 맞이 시중을 들고, 아버지가 제자로 받은 놈의 성욕까지 두 딸다 받아주며 사랑인 듯, 그렇지만 둘다 가슴 한 번씩 까놓고 누가 더 큰가 크기 비교나 당하고 이런 부분에서도 나는 화가 많이 났던 것 같다. 그러니까 같은 프랑스 작가래도 난 미친 드러운 놈이요 우헤헤 하고 쓴 애들은 그나마 읽어주겠는데 고상한 척 난 예술가야, 난 아름다움을 추구해, 하면서 어느 구석에서 추잡스러움이 느껴지는 작가를 나는 못 읽는 놈으로 자라 버렸다...그게 너무 슬프다…

+밑줄 긋기(마랭 마레 씨의 고추 모음집)
-허벅지 사이의 묵직하고 털 난 성기는 축 늘어져 있었다. (42)

-그가 그녀에게 말했다.
“당신을 떠나겠소. 봤잖소. 당신한테는 더 이상 서지 않소.” (87, 역대급 이별선언...그럼 잘라 이새끼야 니가 고장난 거야)

-성기는 완전히 쪼그라들고 얼어붙었다.(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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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 동안의 고독 - 1982년 노벨문학상 수상작 문학사상 세계문학 6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안정효 옮김, 김욱동 해설 / 문학사상사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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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814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재독.

처음 백년의 고독을 읽은 때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데 아마도 20대 대학생 때였다. 민음사판으로 읽고, 아빠가 사는 집에서 도망치면서 두고 나왔다. 그래서 2010년 9월에 동서문화사판으로 새로 산 건 아마도 중역판이고, 호밀밭의 파수꾼이랑 합본으로 되어 있다. 로쟈님께 땡스투를 했다고 되어 있네… 막상 찾으려고 보니 책이 실종되었다. 아무래도 중역판이라고 천대하면서 쇼파 뒤 가려진 책장에 처박아 둔 것 같은데 더워서 차마 뒤집어 내진 못하겠어. 알라딘은 아주 오래된 구매내역까지 확인할 수 있어서 좋다. 안 그러면 사람들은 같은 책 또 사는 짓을 지금보다 더 자주했을 것이다. 부모의 이혼이 마무리되고 아빠는 자기에게는 필요 없는, 엄마와 내가 모은 책들과 나한테 사준 디지털 피아노는 넘겨주었다. (내 기타, 책상, 침대 같은 건 어디다 부숴서 불쏘시개로 쓴 모양) 거기서 민음사판 백년의 고독을 다시 찾았는데, 또 왠일인지 두 권짜리 중에 한 권이 어디로 가버려서 나중에(아마도 2012년 이후에) 다시 샀다.
독후감 적기 시작한 건 그리 오래된 게 아니라 가장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은 걸 찾아보니 2016년 여름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적혀 있네.
https://m.blog.naver.com/natf/221305179714

또 읽어야지, 거듭 다짐을 해 놓고는 결국 거의 10년만에 읽었다. 이번에는 문학사상판. 1977년에 안정효 선생님이 번역했으니 아무래도 이것도 영문판 중역이었을 것이고, 그걸 3판 몇 쇄 해가지고 2007년에 나온 책인데, 아무리 오래됐대도 중고서점에서 1400원인 건 너무 심했어, 이 명작을, 내가 구해주마, 했다. 그래서 한 달 전에 산 김에 백년의 고독 아닌 백년동안의 고독으로 읽게 되었다. 넷플릭스에서 드라마로 나왔다는 게 많이 궁금하긴 하지만 역시 그냥 영상보다는 활자가 마음 편한 나란 인간...

혈육에게 사랑을 느끼는 감정은 완전 이해 못할 부분은 아닌데, 또 희한하게도 이 집구석은 6대 7대 거쳐 대대로 이러는 걸 보면 집안내력이고 근친교배로 진화에서 도태될 운명이었군, 싶고, 집안 여자들은 강력하고 의지가 굳어서 그나마 침울하거나 충동적인 남자들이 진작 말아먹을 집안을 겨우 지탱하다가도 또 이상한 지랄병을 돋궈서 집안 외의 남자들은 자꾸만 밀어내는 게 답답하다 못해 신기했다. 결국 사랑의 감정으로 가지만 그 시작이 힘센 남자의 강간이나 우격다짐인 건 아...이렇게 빻은 마르케스 아저씨니까 어린 창녀 데려다 놓고 잠만 재우는 소설 같은 거 쓰지 싶었고…

그렇지만 나는 이 이야기를 많이 좋아했고 그러니까 여러번 읽었을 것이다. 책 많이 읽었던 내 친구는 반대로 두 번을 읽어도 도무지 재미도 모르겠고 마술적 리얼리즘도 모르겠고 뭐하자는 건지 모르겠다고 해서 조금 놀랐다. 아니 이렇게 야한 책을… 뜨겁고 지랄발광인 책을… 취향과 호불호란 이렇게 다양한 것이다...

후반부에 마콘도 떠나는 카탈루냐 출신 책방 아저씨는 소설 속에 슬며시 들어온 소설가 같은 느낌인데, 사람은 승객칸 타면서 문학은 화물칸에 태운다고 푸념한다. 우리집은 종이 뭉치들이 토템 기둥처럼 여기저기 솟아 올라 사람보다 더 많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만, 내가 죽고 나면 아무래도 폐지수집장이나 소각장으로 갈 수 밖에 없겠지? 불쏘시개가 안 된 책들은 점점 소수자 되는 중인 책벌레들한테 근근히 이렇게 읽혀가며 겨우겨우 꺼질듯 말듯 남았다가 사라지겠지. 마콘도의 부엔디아 가문이 사라지고 집 기둥뿌리가 바람에 뽑혀 날아가도 살아남은 것처럼 사람들과 이야기들이 어디로 다 날려 사라져도 개미떼랑 바퀴벌레떼는 우리가 남긴 것들(시체, 남은 음식, 기타 등등)을 먹으면서 조금 더 번성할 것 같긴 하다.띵작 읽고도 딱히 쓸말을 못찾아서 헤에...섹스섹스… 금기는 어기라고 있는 거지...사람들은 하지 말라면 기를 쓰고 한다고… 바나나는 맛있지만 노동자들 죽이지 말라고… 뭐 그런 말들만 휘적휘적 잡다가 말았다.

+밑줄 긋기
-얼마 있다가 목수들이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의 관을 만들려고 치수를 재는 동안에, 그들은 창밖에 작고 노란 꽃들이 하늘에서 가볍게 빗발처럼 흩날리는 것을 보았다. 꽃비는 소리 없이 밤새도록 내려서 지붕을 덮고 문을 열 수 없을 만큼 집 앞에 쌓였으며, 바깥에서 잠자던 짐승들은 꽃에 덮여 질식했다. 하늘에서 어찌나 꽃송이가 퍼부어댔던지 아침에는 길바닥이 폭신폭신한 방석처럼 두텁게 꽃으로 깔렸다. 장례 행렬이 지날 때에는 길에 깔린 꽃 더미를 삽이나 갈퀴로 밀어내야만 했다. (157)

-“자네는 너무나 군사정권을 미워하고, 그들과 너무 오랫동안 싸움을 하고, 그리고 그들에 대한 생각을 너무 깊이 해왔기 때문에 결국 자네도 그들 못지 않게 나쁜 사람이 되고 말았어. 그토록 비참한 타락을 겪으면서까지 추구할 만큼 고귀한 이상은 이 세상에 없을 지도 모르지.” 그는 결혼반지를 빼고 성모 마리아의 조상이 달린 목걸이를 풀어서 시계와 안경 옆에 나란히 놓았다.
“난 자네가 어떤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지 벌써 환히 알겠어.” 몬카다 장군이 결론을 내렸다. “자네는 마콘도 역사상 가장 폭군적이고 악질적인 독재자가 될 뿐 아니라, 필요하다면 당장 우르슬라도 총살을 하고 말 사람이야.” (179)

-“옵니다, 와요!” 그 여자가 숨을 돌리고 난 다음에 설명했다. “부엌처럼 생긴 것이 뒤에다 동네를 하나 끌고 오는 모양이 무시무시해요.”
바로 그 순간 무시무시한 반향을 일으키는 기적이 울리고, 식식거리며 숨을 헐떡이는 소리에 마콘도가 뒤흔들렸다. 지난 몇 주일 동안 사람들이 몰려와서 침목을 놓고 철로를 깔았어도 마콘도 사람들은 그들이 호루라기와 탬버린을 가지고 와서 그들이 알고 있던 옛 노래를 부르며 방랑하는 예루살렘 예술가들의 춤을 추며 소란을 떠는 집시들이라고만 생각해서 신경도 쓰지 않고, 집시들이 또 무슨 수작이나 부리려는 줄 알았다. 그러나 기적 소리와 숨을 헐떡이는 소리에 놀란 가슴을 가라앉히고 길로 쏟아져 나온 주민들은 기관차 위에서 손을 흔드는 아우렐리아노 트리스테와 처음 계획보다는 여덟 달이나 늦긴 했지만 생전 처음 마콘도에 도착한 꽃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기차를 보고는 얼이 빠진 듯 멍하니 서 있었다. 그리고 죄 없는 그 샛노란 기차는 마콘도에 수많은 불안과 확신을, 기쁘거나 슬픈 수많은 순간들을, 그토록 많은 변화와 재앙을, 그리고 옛 시절에 대한 한없는 그리움을 가져다주게 되었다. (248-249. 칙칙폭폭)

-(…)아무런 두려움도 없이 인간으로 하여금 이토록 심한 고통과 엄청난 곤욕을 치르도록 한 것을 보니 인간이 쇳덩어리로 만들어진 줄 아느냐고 하느님에게 물었다. 이러한 생각을 혼돈 속에서 자꾸 되풀이하면서 우르슬라는 당장 밖으로 뛰쳐 나가 외국인들처럼 멋대로 횡포를 부리면서 모든 것에 대한 반역을 시작해서, 좌절감 따위는 다 던져버리고, 온갖 것들에 똥이나 싸갈기고, 지난 한 세기 동안 참고 참으면서 마음속에 차곡차곡 다져둔 온갖 몹쓸 욕설을 한껏 퍼부어대고 싶은 욕망이 참을 수 없을 만큼 치밀어 올랐다.
“염병할 것!” 우르슬라가 고함을 쳤다.
트렁크에 옷을 꾸려 넣고 있던 아마란타는 그 말을 듣고 우르슬라가 전갈에 물리기라도 한 줄 알았다.
“어디 있어요?” 아마란타가 깜짝 놀라서 물었다.
“뭐 말이냐?”
“전갈 말예요.” 아마란타가 물었다.
우르슬라는 손가락으로 가슴을 가리키며 대답했다.
“이 속에 있다.”
(281-282, 100살이 다 되어 발동한 레벨 하트)

-총탄이 휩쓸고 가자 앞에 있던 사람들은 대부분 땅에 엎어져 있었다. 살아난 사람들은 땅바닥에 엎드리는 대신에 자꾸만 작은 광장으로 달아나려 했고, 겁에 질린 사람들이 용의 꼬리처럼 한데 엉켜서 물결을 이루고 한쪽에서 달려 나오면 반대쪽에서도 또 다른 무리가 용의 꼬리처럼 달려 나와 서로 얽혔고, 방향을 어느 쪽으로 돌려도 그곳에서는 기관총이 기다리고 있다가 쉬지 않고 불을 뿜어댔다. 그들은 꼼짝없이 가운데 갇혀서 거대한 회오리바람처럼 빙글빙글 돌면서 기관총이라는 기계가위로 끊임없이 조직적으로 벗겨내는 양파처럼 가장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떨어져 나갔으며, 군중은 점점 안으로 오그라들면서 줄어들었다. 그 아이는 신기하게도 군중의 그러한 폭주에 조금도 개의치 않으면서 팔로 십자가를 긋고 아무도 없는 곳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여자를 보았다. 호세 아르카디오 세군도는 그를 내려놓자마자 얼굴이 피범벅이 되어서 고꾸라졌고, 얼마 안 있다가 무자비한 군대는 무릎을 꿇은 여자와, 그 여자가 있던 곳과, 높고 가뭄에 찌든 하늘과, 우르슬라 이구아란이 동물과자를 그렇게 많이 팔았던 너저분한 터전을 깡그리 쓸어내었다. (340-341)

-증조모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그는 문 쪽으로 눈을 돌렸고, 미소를 지으려고 하다가 자기도 모르게 우르슬라가 옛날에 자주 하던 말을 되풀이했다.
“이럴 줄 모르셨나요?”그가 태연히 중얼거렸다. “세월은 흐르게 마련입니다.”
“그렇긴 하지.” 우르슬라가 대꾸했다. “하지만 별로 흐르지도 않아.”
이 말을 했을 때 우르슬라는 자기가 옛날 죽음의 골방에서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이 했던 대답을 그대로 되풀이했음을 깨닫고는, 지금 자기가 말했듯이 시간은 흐르는 것이 아니라 커다란 원을 그리며 빙빙 돌고 있다는 생각에 몸을 떨었다. (372)

-그래서 그들은 함께 지난날의 광폭한 탕진 생활과, 으리으리했던 부유함과, 걷잡을 수 없었던 음탕한 삶이 결국은 역겨움에 지나지 않았음을 깨달았고, 고독을 나눌 수 있는 천국을 찾기 위해서 인생을 그토록 많이 낭비했어야만 했다는 사실을 슬퍼했다. 여러 해 동안의 삭막한 생활 끝에 미친 듯이 사랑에 빠진 그들은 침대에서뿐 아니라 식탁에 마주 앉아 있는 순간에도 사랑할 수 있다는 기적을 터득했고, 그러한 행복은 자꾸만 자라나서 그들이 다 낡아빠진 두 늙은이가 되었을 때도 계속해서 토끼새끼처럼 깡충깡충 뛰거나 강아지들처럼 정겹게 같이 놀았다. (376-377, 이 이야기에서 유일하게 해로하고 늘그막에 고독을 벗어난 커플은 아우렐리아노 세군도와 페트라 코테스였네…아우렐리아노랑 아마란따 우르술라는 늙지도 못했다...)

-얼마 안 되는 기간 동안 그들은 개미들보다 훨씬 더 심하게 집을 파괴하게 되었는데, 응접실 가구들은 거의가 부서졌고,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이 전쟁 통에 참호 속에서 슬픈 사랑을 치렀어도 견디던 그물침대도 그들의 미친 듯한 행위에 너덜너덜 닳았으며, 매트리스도 다 찌어져서 터져버렸고, 마룻바닥에서 파도처럼 일렁이는 솜뭉치 속에서 숨 막히는 사랑을 나누었다. (447, 이불 찢는 정도가 아니라 그냥 다 부쉈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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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의 집 2 펭귄클래식 26
이디스 워튼 지음, 최인자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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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811 이디스 워튼.

이디스 워튼이 그린 인물들은 마냥 선량하거나 사악하지 않았다. 상황에 따라 유혹에 빠지기도 하고, 충동적이기도 하다가, 갑자기 절제심을 발휘하고, 사랑이 솟다가 환멸을 느끼고, 친했던 사람에게 등을 돌리고 험담을 하고, 상대에게 증오가 솟다가도 한없이 돌보고 도우려는 마음을 가졌다.
많은 이야기들이 사람을 납짝하게 누르고, 우리 또한 그렇게 쟤는 착한 놈, 쟤는 나쁜 놈, 너는 우리 편, 저새끼는 개호로잡놈의 우리의 적, 세상을 사람들을 단순하게 해석하는 편이 덜 복잡하고 편안하긴 하겠지. 그렇지만 그게 세상을 이해하는 제대로 된 방식은 아니다.
새삼 그런 사실을 일깨워주며 사람의 변덕스럽고 모순되고 몇 마디 말로 후려칠 수 없는 면모를 담아 펼쳐주는 게 좋은 소설이라는 생각을 했다. 물론 약 먹고 죽는 건 뻔해서 어떤 창작자들은 모래밭에 스스로 구덩이를 파고 밀려드는 파도에 익사하는 것부터 나무에 매달려 서서히 사라지는 것, 굴 밑에 산 채로 묻혀 죽는 때까지 사는 것 등등 다양한 최후를 그려보지만 어쨌거나 모든 이야기 속 사람들 모두 언젠가는 죽는다.

그러니까 그 전까지는 예쁜 연꽃도 보고, 예쁜 연꽃이 되어 보고, 진흙구정물 같은 이야기도 읽어 보고, 밤에는 잠을 잘 자면 좋겠다.

+밑줄 긋기
-그 아가씨는 평소에는 부지런히 땅을 갈고 씨를 뿌리며 노예처럼 죽도록 노력하지만, 정작 추수를 거두어들여야 할 때가 되면 늦잠을 자버리거나 소풍을 떠나 버리기 일쑤라니까요.

-“방금 나더러 진실을 말하라고 했지? 글쎄, 진실은 바로 이런 거야. 어떤 아가씨든 일단 한 번 소문이 나면 그걸로 끝장이라는 거지. 진실을 해명하려고 하면 할수록 더 꼴만 우스워진다니까. 오, 우리 착한 거티. 근데 혹시 담배 한 대 가진 거 있니?”

-릴리는 짜증스러운 손짓으로 이 질문에 응답했다.
“거티, 난 사람들이 어떻게 훨씬 더 많은 돈을 쓸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항상 이해할 수 있어. 하지만 어떻게 돈을 덜 쓸 수 있는지 결코 모르겠거든!”

-릴리가 아는 사람들은 남자나 여자나 할 것 없이 모두 제각기 고립된 채 빙글빙글 맴을 돌며 떠도는 원소들과 같았다. 그러므로 릴리는 어떤 지속력을 지닌 삶의 모습을 그날 저녁 네티 스트루더의 부엌에서 난생처음 본 것이었다.
그 가엾은 노동자 처녀는 산산이 부서져 버린 삶의 파편들을 어떻게든 다시 주워 모을 힘을 찾았고, 그 파편들로 자신만의 보금자리를 만들어냈다. 릴리가 보기에는 그런 그녀야말로 존재의 핵심적인 진실에 도달한 사람 같았다. 물론 그것은 초라하기 짝이 없는 삶이었다. 냉혹한 가난의 가장자리에 서서, 언제든 병이 들거나 불행이 닥쳐올 수 있는 아슬아슬한 처지였다. 하지만 그것은 벼랑 끝에 매달린 새의 둥지처럼 연약하지만 끈질긴 힘을 지니고 있었다. 그 둥지는 겨우 지푸라기와 잎사귀를 엮어놓은 것에 불과했지만, 살아 있는 것들이 믿고 몸을 맡길 수 있을 만큼 단단하게 결속되어 있어서 검은 심연 위에 무사히 매달려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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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의 집 1 펭귄클래식 25
이디스 워튼 지음, 최인자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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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810 이디스 워튼.
 

 
 연초까지 디킨스의 ‘황폐한 집’을 보았다. 이번에 처음 이디스 워튼의 책, 아직 다는 안 읽었지만 ‘기쁨의 집’ 1권을 보고 나니, 역설을 노리지 않는다면 두 소설의 제목이 바뀌어도 이상할 게 없다 싶었다.
 
 ‘보바리 부인’을 한 번 읽고는 또 봐야지, 하고는 아직 못 읽고 있다. 이런 생각은 든다. 그렇게까지, 그 여자는 독약 먹고 죽을 만큼 잘못한걸까? 누구나 어리석은 실수를 하는데 어떤 선택은 그 사람을 끝으로 몰고 가 약을 삼키든 기차 바퀴 밑에 깔리든 돈에 팔리든 인생을 절단낸다. 릴리 몰리는 꼬라지를 보니 보바리 부인이 자주 생각났다. 아직 2권 안 봤지만 릴리는 결국 죽겠지? 자아실현이 남들 보기에 괜찮은 혼인, 부자 남자 만나 잘 사는 것, 그 이상 선택지가 많지 않던 시절인 걸 감안하면 릴리가 사치스럽고, 허영심 넘치고, 충동적이고, 실제 도박을 좋아하면서 삶 자체도 도박처럼 굴리고, 그렇대도 짠한 마음이 들기는 한다. 이 모든 게 그녀가 예뻐서, 그 아름다움을 소유하고 자기 위신을 세우는 도구로 삼으려는 남자들이 많아서 라는 건 좀 판에 박힌 듯도 싶다. 난 안 예쁘니까, 조연에 만족하고, 사랑도 체념하고, 남에게 헌신하고 각종 자선사업과 사회사업에 헌신하는 패리시를 대조적으로 제시하는 게 더 그런 느낌이 들게 한다. 뭘 말하고 싶은 거야. 장원영처럼 예쁘면 오히려 삶이 고달파질 수도 있다는 거냐. 한 사람 사랑만 얻을 정도로 적당히 생겨먹고 거기에 감지덕지하는 게 미덕이라는 것이냐. 좀 예쁘다고 이거저거 재다가 나이 먹고 절박해지면 삐끗하는 게 여자 팔자라는 것이냐. 도박이랑 과소비는 나빠요! 하는 메시지는 확실한 것 같다.
 
 디킨스 소설에서 선남선녀 만나서 해피엔딩-하던 것도 이 이야기 읽다보면 구시대적 유물 같은 해결책이네 싶다. 그렇지만 이 이야기엔 디킨스 소설과 달리 괜찮은 여자도 괜찮은 남자도 하나도 안 나오는 것 같다. 부를 주체 못해 온갖 돈지랄 떨고 혼인도 돈 써재끼고 싶은 여자와 여자가 돈 써재끼는 걸 감당할 만큼 나 잘났다고 과시하고 싶은 남자들이 한아름 나온다. 셀던이 책 좀 읽고 자유 타령 하면서 자기가 릴리를 구하겠다고 잠시 주접을 떨기도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뻑 하면 튀어버리고 그러는 모습이 돈으로 릴리를 지배하려는 놈들이랑 그리 달라보이지도 않는다. 그 시절 안 살아봤지만 이디스 워튼이 그런 물질만능주의의 시대 미국의 어떤 시절을 잘 잡아서 보여준 게 아닐까 싶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데. 지금은 또 뭐 다른가? 여전히 돈은 좋은 것… 누군가 에르메스에서 뭔 편의점 과자 사먹듯 명품 잡화와 의복을 사 놓고 자기 부인 사준 거라고, 커플템이라고 인터넷에 잔뜩 과시해 놓은 게시물을 본 적이 있는데 거기에 굽신대는 사람들에겐 댓글 달아주고 뭐 하는 사람인데? 하는 물음이나 빈정거림에는 ^^* 하는 걸 보고 뭐지 싶었던 때도 생각났다. 지금은 또 뭐 다른가?
 
 어깨를 다쳐서 운동을 열흘 정도 못했고, 제대로 못 잔 건지 종일 피곤하고 가라앉은 기분이었다. 휴가가 끝나가는 것도 한몫 하겠지… 거기에다 하루 종일 사치부리다 나락가는 릴리 바트양의 이야기를 읽고 있자니 재미있어서 계속 읽기는 하는데 몸도 영 찌뿌드드하고 여기저기 아픈 것 같고 마음도 아픈 것 같았다. 실내자전거 조금 타고 아주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나 잃은 거 없어, 나 완전 만족해, 하던 게 엊그제인데 순식간에 곤두박질 치는 기분을 보니까 사람의 마음이란 어렵고도 어렵구나, 내 마음 한 가지마저 어렵구나 싶다. 일찍 푹 자고 곧 나아지면 다행이고 아니면 줄였던 약을 다시 주섬주섬… 얼른 어깨나 나아서 운동이나 할 수 있으면 좀 나아질 것 같기도...
 
+밑줄 긋기
-과연 여성이 능동적인 역할을 수행하며 아름다움을 창조할 수 있을까? 위대한 예술의 장인이 될 수 있을까? 아니면 언제나 여자는 아름답게 보여야 하고 찬미와 수집과 돌봄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그럼으로써 인간의 존엄성을 빼앗기고 마는 수동적인 운명을 타고난 존재인가?
 
-거티는 착하게 살길 원하고 저는 행복하고 살고 싶어 하죠. 거티는 자유로운 몸이지만 저는 아니에요. 자유로울 수만 있다면, 저 역시 거티의 좁은 집에서도 얼마든지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아, 그게 바로 다른 점이에요. 남자에게는 선택인 것(초라하고 비참한 삶에서 벗어나기 위한 결혼)이 여자에게는 의무가 되죠.”
 
-그녀는 계속 성공을 쫓아야 했고 더 많은 지루함을 견뎌야 했고 날마다 새롭게 순종적이고 유순한 자세를 갖춰야 했다. 그리고 이 모든 노력이, 어쩌면 그라이스 씨가 언젠가는 그녀에게 평생토록 지루함을 안겨 주는 영광을 베풀어줄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기대 때문인 것이다.
이거야말로 너무 끔찍한 운명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거기서 벗어날 수 있단 말인가? 그녀에게 무슨 선택의 여지가 있는가?
 
-“어디 아파요?”
부인이 다시 물었다.
“아프냐고? 아니, 난 망했어.”
바트 씨가 대답했다.
릴리는 깜짝 놀라 헉 소리를 냈고 바트 부인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망했다고요?”
부인은 꽥 소리를 지르려다 곧 이성을 되찾고 침착한 얼굴로 릴리를 돌아보았다.
“가서 부엌문을 닫아라.”
 
-딱 한 가지 부인에게 남은 위안거리는 릴리의 미모를 살피는 것이었다. 부인은 지대한 열정을 가지고, 마치 자신이 천천히 공들여 만들어온 복수의 무기라도 되는 양 릴리의 미모를 요모조모 뜯어보았다. 그것은 그들에게 남은 마지막 자산이었고, 그들의 삶을 다시 재건할 수 있는 토대였다. 바트 부인은 그 미모가 원래 자신의 소유물이고 릴리는 단지 보관자에 불과한 것처럼 질투 어린 눈길로 딸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그런 미모를 지녔을 때 반드시 가져야 할 책임감을 딸에게 심어주기 위해서 애썼다. 부인은 다른 미녀들의 일생을 상상 속에서 그려보며, 딸에게 그런 미모를 통해서 무엇을 성취할 수 있는지 알려 주었다. 또한 미모를 타고났음에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손에 넣지 못한 여자들에 대한 무서운 경고를 길게 늘어놓았다. 바트 부인의 생각에, 자신이 예로 든 여자들의 한탄스러운 결말은 오직 어리석음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불운은 그녀의 잘못이라기보다 달려드는 운명의 모순을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릴리는 지금까지 그라이스 씨에게 아메리카나가 했던 역할을 자신이 대신할 작정이었다. 그가 아낌없이 돈을 쓸 만큼 충분한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단 하나의 소유물이 되려는 것이다. 릴리는 이런 식의 관대함이 사실은 천박함의 한 가지 형태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남편의 허영심과 자기 자신을 완전히 동일시해서, 그녀의 소망을 충족시켜 주는 것이 곧 남편에게는 가장 세련된 방식의 자기 탐닉으로 여겨지게끔 만들 것이라고 굳게 결심했다.
 
-결국 삼십 분 정도 헛되이 기다린 끝에, 릴리는 의자에서 일어나서 주변을 이리저리 거닐었다. 갑작스럽게 피로가 밀려왔다. 환하게 타오르던 불꽃이 꺼져 버리고 인생의 쓴맛만이 입안에 남았다. 릴리는 자신이 여태껏 무엇을 찾고 있었는지, 그리고 그것을 찾지 못했다고 해서 왜 이토록 자신의 마음이 어두워지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저 막연한 실망감이, 그녀를 둘러싼 외로움보다 더 깊은 소외감만이 느껴질 뿐이었다.
 
-“제가 생각하는 성공이란 개인의 자유입니다.”
셀던이 대답했다.
“자유라고요? 모든 걱정에서 자유로워지는 것 말씀인가요?”
“모든 것으로부터의 자유 말입니다. 돈으로부터, 가난으로부터, 그리고 나태함이나 불안으로부터, 모든 물질적인 우연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죠. 일종의 영혼의 공화국을 이루는 것, 그것이 제가 생각하는 성공입니다.”
 
-“그렇습니다. 저에겐 당신에게 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셀던은 몸을 일으켜 앉더니 릴리를 똑바로 마주 보았다.
“하지만 제게 뭔가가 있다면 그건 모두 당신 것입니다.”
릴리는 방금 전보다 더 낯선 태도로 이 갑작스러운 선언을 받아들였다. 그녀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안았다. 짧은 순간 셀던은 눈물을 흘리는 그녀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그녀가 꿈꾸는 방은 사치스럽고 복잡하기만 한 다른 친구들의 방을 완전히 능가할 정도로 완벽한 예술적 감각을 보여 줌으로써 그녀의 우월감을 충족시켜 줄 수 있어야 했다. 그리고 색깔 하나하나와 선 하나하나까지 조화를 이루어 모든 게 그녀의 아름다움을 더욱 돋보이게 해주고 그녀에게 편안한 휴식을 선사해 줘야 했다. 이번에도 그녀의 우울한 마음은 눈에 보이는 물질적인 추함에 대한 예민한 반응으로 표출되었다. 그리하여 보기 흉한 가구들 하나하나가 오늘따라 유난히 툭 튀어나온 것처럼 느껴졌다.
 
-사실 바트 양은 번번이 잘못된 길로 빗나가곤 했다. 그녀를 비난하는 사람들 중 어느 누구도 그녀 자신만큼 그 사실을 뼈아프게 절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잘못된 길에서 나와서 또 다른 잘못된 길로 빠져버리는 치명적인 감각을 갖고 있었다. 돌이키기에는 너무 늦을 때까지 무엇이 올바른 길인지 알아채지도 못했다.
 
-누군가 옆에 있는 것이 불편할 정도로 마음이 상한 사람에게 방이란 두 팔을 활짝 벌리고 자신을 맞아줄 수 있는 장소다. 그러므로 이런 시간에 그런 방을 갖지 못한 사람은 어디를 가든 추방자일 수밖에 없었다.
 
-근래에 셀던이 더욱 아낌없이 베푸는 친절의 본질에 대해서 패리시 양은 더 이상 정확히 규명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나비의 날개에 붙은 고운 가루를 털어서 그 아름다운 색깔의 비밀을 파헤치려고 하지 않듯이. 경이로운 것을 움켜쥐려고 하다가는 괜히 그 꽃만 상하게 하는 법이다. 그러다가 어쩌면 시들고 뻣뻣해진 꽃봉오리만 손안에 남게 될 수도 있었다. 차라리 손에 잡히지 않아 더욱 감질나는 아름다움을 그냥 감상하는 편이 더 나았다. 그러므로 패리시 양은 숨을 죽인 채 눈부시게 빛나는 그것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릴리는 난생처음 멋진 외모를 유지하는 것보다 여자의 명예를 유지하는 데 훨씬 더 많은 비용이 필요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심지어 도덕성을 유지하는 데조차 반드시 돈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자,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세상은 훨씬 더 험난한 곳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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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당선작 적립금으로 산 책은 이것입니다. 시와 새 했더니 시집과 새(조)책을 갖게 됐다. 야생 조류 도감도 가지고 싶은데 12만원...후덜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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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nk123q34 2025-09-21 10: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시나몬왕관앵무 미쳤다.. 미모 최고네요 볼에 시나몬 연지곤지 뭐야..

반유행열반인 2025-09-21 11:24   좋아요 1 | URL
왕관 앵무 사실 전 잘 구분 못하는데 호주에선가 쓰레기통 뚜껑 따고 비둘기처럼 다 뒤지고 다닌다는 걸 어디서 들었네요...미조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