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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 동안의 고독 - 1982년 노벨문학상 수상작 ㅣ 문학사상 세계문학 6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안정효 옮김, 김욱동 해설 / 문학사상사 / 2005년 7월
평점 :
-20250814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재독.
처음 백년의 고독을 읽은 때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데 아마도 20대 대학생 때였다. 민음사판으로 읽고, 아빠가 사는 집에서 도망치면서 두고 나왔다. 그래서 2010년 9월에 동서문화사판으로 새로 산 건 아마도 중역판이고, 호밀밭의 파수꾼이랑 합본으로 되어 있다. 로쟈님께 땡스투를 했다고 되어 있네… 막상 찾으려고 보니 책이 실종되었다. 아무래도 중역판이라고 천대하면서 쇼파 뒤 가려진 책장에 처박아 둔 것 같은데 더워서 차마 뒤집어 내진 못하겠어. 알라딘은 아주 오래된 구매내역까지 확인할 수 있어서 좋다. 안 그러면 사람들은 같은 책 또 사는 짓을 지금보다 더 자주했을 것이다. 부모의 이혼이 마무리되고 아빠는 자기에게는 필요 없는, 엄마와 내가 모은 책들과 나한테 사준 디지털 피아노는 넘겨주었다. (내 기타, 책상, 침대 같은 건 어디다 부숴서 불쏘시개로 쓴 모양) 거기서 민음사판 백년의 고독을 다시 찾았는데, 또 왠일인지 두 권짜리 중에 한 권이 어디로 가버려서 나중에(아마도 2012년 이후에) 다시 샀다.
독후감 적기 시작한 건 그리 오래된 게 아니라 가장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은 걸 찾아보니 2016년 여름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적혀 있네.
https://m.blog.naver.com/natf/221305179714
또 읽어야지, 거듭 다짐을 해 놓고는 결국 거의 10년만에 읽었다. 이번에는 문학사상판. 1977년에 안정효 선생님이 번역했으니 아무래도 이것도 영문판 중역이었을 것이고, 그걸 3판 몇 쇄 해가지고 2007년에 나온 책인데, 아무리 오래됐대도 중고서점에서 1400원인 건 너무 심했어, 이 명작을, 내가 구해주마, 했다. 그래서 한 달 전에 산 김에 백년의 고독 아닌 백년동안의 고독으로 읽게 되었다. 넷플릭스에서 드라마로 나왔다는 게 많이 궁금하긴 하지만 역시 그냥 영상보다는 활자가 마음 편한 나란 인간...
혈육에게 사랑을 느끼는 감정은 완전 이해 못할 부분은 아닌데, 또 희한하게도 이 집구석은 6대 7대 거쳐 대대로 이러는 걸 보면 집안내력이고 근친교배로 진화에서 도태될 운명이었군, 싶고, 집안 여자들은 강력하고 의지가 굳어서 그나마 침울하거나 충동적인 남자들이 진작 말아먹을 집안을 겨우 지탱하다가도 또 이상한 지랄병을 돋궈서 집안 외의 남자들은 자꾸만 밀어내는 게 답답하다 못해 신기했다. 결국 사랑의 감정으로 가지만 그 시작이 힘센 남자의 강간이나 우격다짐인 건 아...이렇게 빻은 마르케스 아저씨니까 어린 창녀 데려다 놓고 잠만 재우는 소설 같은 거 쓰지 싶었고…
그렇지만 나는 이 이야기를 많이 좋아했고 그러니까 여러번 읽었을 것이다. 책 많이 읽었던 내 친구는 반대로 두 번을 읽어도 도무지 재미도 모르겠고 마술적 리얼리즘도 모르겠고 뭐하자는 건지 모르겠다고 해서 조금 놀랐다. 아니 이렇게 야한 책을… 뜨겁고 지랄발광인 책을… 취향과 호불호란 이렇게 다양한 것이다...
후반부에 마콘도 떠나는 카탈루냐 출신 책방 아저씨는 소설 속에 슬며시 들어온 소설가 같은 느낌인데, 사람은 승객칸 타면서 문학은 화물칸에 태운다고 푸념한다. 우리집은 종이 뭉치들이 토템 기둥처럼 여기저기 솟아 올라 사람보다 더 많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만, 내가 죽고 나면 아무래도 폐지수집장이나 소각장으로 갈 수 밖에 없겠지? 불쏘시개가 안 된 책들은 점점 소수자 되는 중인 책벌레들한테 근근히 이렇게 읽혀가며 겨우겨우 꺼질듯 말듯 남았다가 사라지겠지. 마콘도의 부엔디아 가문이 사라지고 집 기둥뿌리가 바람에 뽑혀 날아가도 살아남은 것처럼 사람들과 이야기들이 어디로 다 날려 사라져도 개미떼랑 바퀴벌레떼는 우리가 남긴 것들(시체, 남은 음식, 기타 등등)을 먹으면서 조금 더 번성할 것 같긴 하다.띵작 읽고도 딱히 쓸말을 못찾아서 헤에...섹스섹스… 금기는 어기라고 있는 거지...사람들은 하지 말라면 기를 쓰고 한다고… 바나나는 맛있지만 노동자들 죽이지 말라고… 뭐 그런 말들만 휘적휘적 잡다가 말았다.
+밑줄 긋기
-얼마 있다가 목수들이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의 관을 만들려고 치수를 재는 동안에, 그들은 창밖에 작고 노란 꽃들이 하늘에서 가볍게 빗발처럼 흩날리는 것을 보았다. 꽃비는 소리 없이 밤새도록 내려서 지붕을 덮고 문을 열 수 없을 만큼 집 앞에 쌓였으며, 바깥에서 잠자던 짐승들은 꽃에 덮여 질식했다. 하늘에서 어찌나 꽃송이가 퍼부어댔던지 아침에는 길바닥이 폭신폭신한 방석처럼 두텁게 꽃으로 깔렸다. 장례 행렬이 지날 때에는 길에 깔린 꽃 더미를 삽이나 갈퀴로 밀어내야만 했다. (157)
-“자네는 너무나 군사정권을 미워하고, 그들과 너무 오랫동안 싸움을 하고, 그리고 그들에 대한 생각을 너무 깊이 해왔기 때문에 결국 자네도 그들 못지 않게 나쁜 사람이 되고 말았어. 그토록 비참한 타락을 겪으면서까지 추구할 만큼 고귀한 이상은 이 세상에 없을 지도 모르지.” 그는 결혼반지를 빼고 성모 마리아의 조상이 달린 목걸이를 풀어서 시계와 안경 옆에 나란히 놓았다.
“난 자네가 어떤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지 벌써 환히 알겠어.” 몬카다 장군이 결론을 내렸다. “자네는 마콘도 역사상 가장 폭군적이고 악질적인 독재자가 될 뿐 아니라, 필요하다면 당장 우르슬라도 총살을 하고 말 사람이야.” (179)
-“옵니다, 와요!” 그 여자가 숨을 돌리고 난 다음에 설명했다. “부엌처럼 생긴 것이 뒤에다 동네를 하나 끌고 오는 모양이 무시무시해요.”
바로 그 순간 무시무시한 반향을 일으키는 기적이 울리고, 식식거리며 숨을 헐떡이는 소리에 마콘도가 뒤흔들렸다. 지난 몇 주일 동안 사람들이 몰려와서 침목을 놓고 철로를 깔았어도 마콘도 사람들은 그들이 호루라기와 탬버린을 가지고 와서 그들이 알고 있던 옛 노래를 부르며 방랑하는 예루살렘 예술가들의 춤을 추며 소란을 떠는 집시들이라고만 생각해서 신경도 쓰지 않고, 집시들이 또 무슨 수작이나 부리려는 줄 알았다. 그러나 기적 소리와 숨을 헐떡이는 소리에 놀란 가슴을 가라앉히고 길로 쏟아져 나온 주민들은 기관차 위에서 손을 흔드는 아우렐리아노 트리스테와 처음 계획보다는 여덟 달이나 늦긴 했지만 생전 처음 마콘도에 도착한 꽃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기차를 보고는 얼이 빠진 듯 멍하니 서 있었다. 그리고 죄 없는 그 샛노란 기차는 마콘도에 수많은 불안과 확신을, 기쁘거나 슬픈 수많은 순간들을, 그토록 많은 변화와 재앙을, 그리고 옛 시절에 대한 한없는 그리움을 가져다주게 되었다. (248-249. 칙칙폭폭)
-(…)아무런 두려움도 없이 인간으로 하여금 이토록 심한 고통과 엄청난 곤욕을 치르도록 한 것을 보니 인간이 쇳덩어리로 만들어진 줄 아느냐고 하느님에게 물었다. 이러한 생각을 혼돈 속에서 자꾸 되풀이하면서 우르슬라는 당장 밖으로 뛰쳐 나가 외국인들처럼 멋대로 횡포를 부리면서 모든 것에 대한 반역을 시작해서, 좌절감 따위는 다 던져버리고, 온갖 것들에 똥이나 싸갈기고, 지난 한 세기 동안 참고 참으면서 마음속에 차곡차곡 다져둔 온갖 몹쓸 욕설을 한껏 퍼부어대고 싶은 욕망이 참을 수 없을 만큼 치밀어 올랐다.
“염병할 것!” 우르슬라가 고함을 쳤다.
트렁크에 옷을 꾸려 넣고 있던 아마란타는 그 말을 듣고 우르슬라가 전갈에 물리기라도 한 줄 알았다.
“어디 있어요?” 아마란타가 깜짝 놀라서 물었다.
“뭐 말이냐?”
“전갈 말예요.” 아마란타가 물었다.
우르슬라는 손가락으로 가슴을 가리키며 대답했다.
“이 속에 있다.”
(281-282, 100살이 다 되어 발동한 레벨 하트)
-총탄이 휩쓸고 가자 앞에 있던 사람들은 대부분 땅에 엎어져 있었다. 살아난 사람들은 땅바닥에 엎드리는 대신에 자꾸만 작은 광장으로 달아나려 했고, 겁에 질린 사람들이 용의 꼬리처럼 한데 엉켜서 물결을 이루고 한쪽에서 달려 나오면 반대쪽에서도 또 다른 무리가 용의 꼬리처럼 달려 나와 서로 얽혔고, 방향을 어느 쪽으로 돌려도 그곳에서는 기관총이 기다리고 있다가 쉬지 않고 불을 뿜어댔다. 그들은 꼼짝없이 가운데 갇혀서 거대한 회오리바람처럼 빙글빙글 돌면서 기관총이라는 기계가위로 끊임없이 조직적으로 벗겨내는 양파처럼 가장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떨어져 나갔으며, 군중은 점점 안으로 오그라들면서 줄어들었다. 그 아이는 신기하게도 군중의 그러한 폭주에 조금도 개의치 않으면서 팔로 십자가를 긋고 아무도 없는 곳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여자를 보았다. 호세 아르카디오 세군도는 그를 내려놓자마자 얼굴이 피범벅이 되어서 고꾸라졌고, 얼마 안 있다가 무자비한 군대는 무릎을 꿇은 여자와, 그 여자가 있던 곳과, 높고 가뭄에 찌든 하늘과, 우르슬라 이구아란이 동물과자를 그렇게 많이 팔았던 너저분한 터전을 깡그리 쓸어내었다. (340-341)
-증조모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그는 문 쪽으로 눈을 돌렸고, 미소를 지으려고 하다가 자기도 모르게 우르슬라가 옛날에 자주 하던 말을 되풀이했다.
“이럴 줄 모르셨나요?”그가 태연히 중얼거렸다. “세월은 흐르게 마련입니다.”
“그렇긴 하지.” 우르슬라가 대꾸했다. “하지만 별로 흐르지도 않아.”
이 말을 했을 때 우르슬라는 자기가 옛날 죽음의 골방에서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이 했던 대답을 그대로 되풀이했음을 깨닫고는, 지금 자기가 말했듯이 시간은 흐르는 것이 아니라 커다란 원을 그리며 빙빙 돌고 있다는 생각에 몸을 떨었다. (372)
-그래서 그들은 함께 지난날의 광폭한 탕진 생활과, 으리으리했던 부유함과, 걷잡을 수 없었던 음탕한 삶이 결국은 역겨움에 지나지 않았음을 깨달았고, 고독을 나눌 수 있는 천국을 찾기 위해서 인생을 그토록 많이 낭비했어야만 했다는 사실을 슬퍼했다. 여러 해 동안의 삭막한 생활 끝에 미친 듯이 사랑에 빠진 그들은 침대에서뿐 아니라 식탁에 마주 앉아 있는 순간에도 사랑할 수 있다는 기적을 터득했고, 그러한 행복은 자꾸만 자라나서 그들이 다 낡아빠진 두 늙은이가 되었을 때도 계속해서 토끼새끼처럼 깡충깡충 뛰거나 강아지들처럼 정겹게 같이 놀았다. (376-377, 이 이야기에서 유일하게 해로하고 늘그막에 고독을 벗어난 커플은 아우렐리아노 세군도와 페트라 코테스였네…아우렐리아노랑 아마란따 우르술라는 늙지도 못했다...)
-얼마 안 되는 기간 동안 그들은 개미들보다 훨씬 더 심하게 집을 파괴하게 되었는데, 응접실 가구들은 거의가 부서졌고,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이 전쟁 통에 참호 속에서 슬픈 사랑을 치렀어도 견디던 그물침대도 그들의 미친 듯한 행위에 너덜너덜 닳았으며, 매트리스도 다 찌어져서 터져버렸고, 마룻바닥에서 파도처럼 일렁이는 솜뭉치 속에서 숨 막히는 사랑을 나누었다. (447, 이불 찢는 정도가 아니라 그냥 다 부쉈다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