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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의 집 2 ㅣ 펭귄클래식 26
이디스 워튼 지음, 최인자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8년 11월
평점 :
-20250811 이디스 워튼.
이디스 워튼이 그린 인물들은 마냥 선량하거나 사악하지 않았다. 상황에 따라 유혹에 빠지기도 하고, 충동적이기도 하다가, 갑자기 절제심을 발휘하고, 사랑이 솟다가 환멸을 느끼고, 친했던 사람에게 등을 돌리고 험담을 하고, 상대에게 증오가 솟다가도 한없이 돌보고 도우려는 마음을 가졌다.
많은 이야기들이 사람을 납짝하게 누르고, 우리 또한 그렇게 쟤는 착한 놈, 쟤는 나쁜 놈, 너는 우리 편, 저새끼는 개호로잡놈의 우리의 적, 세상을 사람들을 단순하게 해석하는 편이 덜 복잡하고 편안하긴 하겠지. 그렇지만 그게 세상을 이해하는 제대로 된 방식은 아니다.
새삼 그런 사실을 일깨워주며 사람의 변덕스럽고 모순되고 몇 마디 말로 후려칠 수 없는 면모를 담아 펼쳐주는 게 좋은 소설이라는 생각을 했다. 물론 약 먹고 죽는 건 뻔해서 어떤 창작자들은 모래밭에 스스로 구덩이를 파고 밀려드는 파도에 익사하는 것부터 나무에 매달려 서서히 사라지는 것, 굴 밑에 산 채로 묻혀 죽는 때까지 사는 것 등등 다양한 최후를 그려보지만 어쨌거나 모든 이야기 속 사람들 모두 언젠가는 죽는다.
그러니까 그 전까지는 예쁜 연꽃도 보고, 예쁜 연꽃이 되어 보고, 진흙구정물 같은 이야기도 읽어 보고, 밤에는 잠을 잘 자면 좋겠다.
+밑줄 긋기
-그 아가씨는 평소에는 부지런히 땅을 갈고 씨를 뿌리며 노예처럼 죽도록 노력하지만, 정작 추수를 거두어들여야 할 때가 되면 늦잠을 자버리거나 소풍을 떠나 버리기 일쑤라니까요.
-“방금 나더러 진실을 말하라고 했지? 글쎄, 진실은 바로 이런 거야. 어떤 아가씨든 일단 한 번 소문이 나면 그걸로 끝장이라는 거지. 진실을 해명하려고 하면 할수록 더 꼴만 우스워진다니까. 오, 우리 착한 거티. 근데 혹시 담배 한 대 가진 거 있니?”
-릴리는 짜증스러운 손짓으로 이 질문에 응답했다.
“거티, 난 사람들이 어떻게 훨씬 더 많은 돈을 쓸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항상 이해할 수 있어. 하지만 어떻게 돈을 덜 쓸 수 있는지 결코 모르겠거든!”
-릴리가 아는 사람들은 남자나 여자나 할 것 없이 모두 제각기 고립된 채 빙글빙글 맴을 돌며 떠도는 원소들과 같았다. 그러므로 릴리는 어떤 지속력을 지닌 삶의 모습을 그날 저녁 네티 스트루더의 부엌에서 난생처음 본 것이었다.
그 가엾은 노동자 처녀는 산산이 부서져 버린 삶의 파편들을 어떻게든 다시 주워 모을 힘을 찾았고, 그 파편들로 자신만의 보금자리를 만들어냈다. 릴리가 보기에는 그런 그녀야말로 존재의 핵심적인 진실에 도달한 사람 같았다. 물론 그것은 초라하기 짝이 없는 삶이었다. 냉혹한 가난의 가장자리에 서서, 언제든 병이 들거나 불행이 닥쳐올 수 있는 아슬아슬한 처지였다. 하지만 그것은 벼랑 끝에 매달린 새의 둥지처럼 연약하지만 끈질긴 힘을 지니고 있었다. 그 둥지는 겨우 지푸라기와 잎사귀를 엮어놓은 것에 불과했지만, 살아 있는 것들이 믿고 몸을 맡길 수 있을 만큼 단단하게 결속되어 있어서 검은 심연 위에 무사히 매달려 있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