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의 집 1 펭귄클래식 25
이디스 워튼 지음, 최인자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8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250810 이디스 워튼.
 

 
 연초까지 디킨스의 ‘황폐한 집’을 보았다. 이번에 처음 이디스 워튼의 책, 아직 다는 안 읽었지만 ‘기쁨의 집’ 1권을 보고 나니, 역설을 노리지 않는다면 두 소설의 제목이 바뀌어도 이상할 게 없다 싶었다.
 
 ‘보바리 부인’을 한 번 읽고는 또 봐야지, 하고는 아직 못 읽고 있다. 이런 생각은 든다. 그렇게까지, 그 여자는 독약 먹고 죽을 만큼 잘못한걸까? 누구나 어리석은 실수를 하는데 어떤 선택은 그 사람을 끝으로 몰고 가 약을 삼키든 기차 바퀴 밑에 깔리든 돈에 팔리든 인생을 절단낸다. 릴리 몰리는 꼬라지를 보니 보바리 부인이 자주 생각났다. 아직 2권 안 봤지만 릴리는 결국 죽겠지? 자아실현이 남들 보기에 괜찮은 혼인, 부자 남자 만나 잘 사는 것, 그 이상 선택지가 많지 않던 시절인 걸 감안하면 릴리가 사치스럽고, 허영심 넘치고, 충동적이고, 실제 도박을 좋아하면서 삶 자체도 도박처럼 굴리고, 그렇대도 짠한 마음이 들기는 한다. 이 모든 게 그녀가 예뻐서, 그 아름다움을 소유하고 자기 위신을 세우는 도구로 삼으려는 남자들이 많아서 라는 건 좀 판에 박힌 듯도 싶다. 난 안 예쁘니까, 조연에 만족하고, 사랑도 체념하고, 남에게 헌신하고 각종 자선사업과 사회사업에 헌신하는 패리시를 대조적으로 제시하는 게 더 그런 느낌이 들게 한다. 뭘 말하고 싶은 거야. 장원영처럼 예쁘면 오히려 삶이 고달파질 수도 있다는 거냐. 한 사람 사랑만 얻을 정도로 적당히 생겨먹고 거기에 감지덕지하는 게 미덕이라는 것이냐. 좀 예쁘다고 이거저거 재다가 나이 먹고 절박해지면 삐끗하는 게 여자 팔자라는 것이냐. 도박이랑 과소비는 나빠요! 하는 메시지는 확실한 것 같다.
 
 디킨스 소설에서 선남선녀 만나서 해피엔딩-하던 것도 이 이야기 읽다보면 구시대적 유물 같은 해결책이네 싶다. 그렇지만 이 이야기엔 디킨스 소설과 달리 괜찮은 여자도 괜찮은 남자도 하나도 안 나오는 것 같다. 부를 주체 못해 온갖 돈지랄 떨고 혼인도 돈 써재끼고 싶은 여자와 여자가 돈 써재끼는 걸 감당할 만큼 나 잘났다고 과시하고 싶은 남자들이 한아름 나온다. 셀던이 책 좀 읽고 자유 타령 하면서 자기가 릴리를 구하겠다고 잠시 주접을 떨기도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뻑 하면 튀어버리고 그러는 모습이 돈으로 릴리를 지배하려는 놈들이랑 그리 달라보이지도 않는다. 그 시절 안 살아봤지만 이디스 워튼이 그런 물질만능주의의 시대 미국의 어떤 시절을 잘 잡아서 보여준 게 아닐까 싶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데. 지금은 또 뭐 다른가? 여전히 돈은 좋은 것… 누군가 에르메스에서 뭔 편의점 과자 사먹듯 명품 잡화와 의복을 사 놓고 자기 부인 사준 거라고, 커플템이라고 인터넷에 잔뜩 과시해 놓은 게시물을 본 적이 있는데 거기에 굽신대는 사람들에겐 댓글 달아주고 뭐 하는 사람인데? 하는 물음이나 빈정거림에는 ^^* 하는 걸 보고 뭐지 싶었던 때도 생각났다. 지금은 또 뭐 다른가?
 
 어깨를 다쳐서 운동을 열흘 정도 못했고, 제대로 못 잔 건지 종일 피곤하고 가라앉은 기분이었다. 휴가가 끝나가는 것도 한몫 하겠지… 거기에다 하루 종일 사치부리다 나락가는 릴리 바트양의 이야기를 읽고 있자니 재미있어서 계속 읽기는 하는데 몸도 영 찌뿌드드하고 여기저기 아픈 것 같고 마음도 아픈 것 같았다. 실내자전거 조금 타고 아주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나 잃은 거 없어, 나 완전 만족해, 하던 게 엊그제인데 순식간에 곤두박질 치는 기분을 보니까 사람의 마음이란 어렵고도 어렵구나, 내 마음 한 가지마저 어렵구나 싶다. 일찍 푹 자고 곧 나아지면 다행이고 아니면 줄였던 약을 다시 주섬주섬… 얼른 어깨나 나아서 운동이나 할 수 있으면 좀 나아질 것 같기도...
 
+밑줄 긋기
-과연 여성이 능동적인 역할을 수행하며 아름다움을 창조할 수 있을까? 위대한 예술의 장인이 될 수 있을까? 아니면 언제나 여자는 아름답게 보여야 하고 찬미와 수집과 돌봄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그럼으로써 인간의 존엄성을 빼앗기고 마는 수동적인 운명을 타고난 존재인가?
 
-거티는 착하게 살길 원하고 저는 행복하고 살고 싶어 하죠. 거티는 자유로운 몸이지만 저는 아니에요. 자유로울 수만 있다면, 저 역시 거티의 좁은 집에서도 얼마든지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아, 그게 바로 다른 점이에요. 남자에게는 선택인 것(초라하고 비참한 삶에서 벗어나기 위한 결혼)이 여자에게는 의무가 되죠.”
 
-그녀는 계속 성공을 쫓아야 했고 더 많은 지루함을 견뎌야 했고 날마다 새롭게 순종적이고 유순한 자세를 갖춰야 했다. 그리고 이 모든 노력이, 어쩌면 그라이스 씨가 언젠가는 그녀에게 평생토록 지루함을 안겨 주는 영광을 베풀어줄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기대 때문인 것이다.
이거야말로 너무 끔찍한 운명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거기서 벗어날 수 있단 말인가? 그녀에게 무슨 선택의 여지가 있는가?
 
-“어디 아파요?”
부인이 다시 물었다.
“아프냐고? 아니, 난 망했어.”
바트 씨가 대답했다.
릴리는 깜짝 놀라 헉 소리를 냈고 바트 부인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망했다고요?”
부인은 꽥 소리를 지르려다 곧 이성을 되찾고 침착한 얼굴로 릴리를 돌아보았다.
“가서 부엌문을 닫아라.”
 
-딱 한 가지 부인에게 남은 위안거리는 릴리의 미모를 살피는 것이었다. 부인은 지대한 열정을 가지고, 마치 자신이 천천히 공들여 만들어온 복수의 무기라도 되는 양 릴리의 미모를 요모조모 뜯어보았다. 그것은 그들에게 남은 마지막 자산이었고, 그들의 삶을 다시 재건할 수 있는 토대였다. 바트 부인은 그 미모가 원래 자신의 소유물이고 릴리는 단지 보관자에 불과한 것처럼 질투 어린 눈길로 딸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그런 미모를 지녔을 때 반드시 가져야 할 책임감을 딸에게 심어주기 위해서 애썼다. 부인은 다른 미녀들의 일생을 상상 속에서 그려보며, 딸에게 그런 미모를 통해서 무엇을 성취할 수 있는지 알려 주었다. 또한 미모를 타고났음에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손에 넣지 못한 여자들에 대한 무서운 경고를 길게 늘어놓았다. 바트 부인의 생각에, 자신이 예로 든 여자들의 한탄스러운 결말은 오직 어리석음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불운은 그녀의 잘못이라기보다 달려드는 운명의 모순을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릴리는 지금까지 그라이스 씨에게 아메리카나가 했던 역할을 자신이 대신할 작정이었다. 그가 아낌없이 돈을 쓸 만큼 충분한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단 하나의 소유물이 되려는 것이다. 릴리는 이런 식의 관대함이 사실은 천박함의 한 가지 형태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남편의 허영심과 자기 자신을 완전히 동일시해서, 그녀의 소망을 충족시켜 주는 것이 곧 남편에게는 가장 세련된 방식의 자기 탐닉으로 여겨지게끔 만들 것이라고 굳게 결심했다.
 
-결국 삼십 분 정도 헛되이 기다린 끝에, 릴리는 의자에서 일어나서 주변을 이리저리 거닐었다. 갑작스럽게 피로가 밀려왔다. 환하게 타오르던 불꽃이 꺼져 버리고 인생의 쓴맛만이 입안에 남았다. 릴리는 자신이 여태껏 무엇을 찾고 있었는지, 그리고 그것을 찾지 못했다고 해서 왜 이토록 자신의 마음이 어두워지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저 막연한 실망감이, 그녀를 둘러싼 외로움보다 더 깊은 소외감만이 느껴질 뿐이었다.
 
-“제가 생각하는 성공이란 개인의 자유입니다.”
셀던이 대답했다.
“자유라고요? 모든 걱정에서 자유로워지는 것 말씀인가요?”
“모든 것으로부터의 자유 말입니다. 돈으로부터, 가난으로부터, 그리고 나태함이나 불안으로부터, 모든 물질적인 우연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죠. 일종의 영혼의 공화국을 이루는 것, 그것이 제가 생각하는 성공입니다.”
 
-“그렇습니다. 저에겐 당신에게 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셀던은 몸을 일으켜 앉더니 릴리를 똑바로 마주 보았다.
“하지만 제게 뭔가가 있다면 그건 모두 당신 것입니다.”
릴리는 방금 전보다 더 낯선 태도로 이 갑작스러운 선언을 받아들였다. 그녀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안았다. 짧은 순간 셀던은 눈물을 흘리는 그녀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그녀가 꿈꾸는 방은 사치스럽고 복잡하기만 한 다른 친구들의 방을 완전히 능가할 정도로 완벽한 예술적 감각을 보여 줌으로써 그녀의 우월감을 충족시켜 줄 수 있어야 했다. 그리고 색깔 하나하나와 선 하나하나까지 조화를 이루어 모든 게 그녀의 아름다움을 더욱 돋보이게 해주고 그녀에게 편안한 휴식을 선사해 줘야 했다. 이번에도 그녀의 우울한 마음은 눈에 보이는 물질적인 추함에 대한 예민한 반응으로 표출되었다. 그리하여 보기 흉한 가구들 하나하나가 오늘따라 유난히 툭 튀어나온 것처럼 느껴졌다.
 
-사실 바트 양은 번번이 잘못된 길로 빗나가곤 했다. 그녀를 비난하는 사람들 중 어느 누구도 그녀 자신만큼 그 사실을 뼈아프게 절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잘못된 길에서 나와서 또 다른 잘못된 길로 빠져버리는 치명적인 감각을 갖고 있었다. 돌이키기에는 너무 늦을 때까지 무엇이 올바른 길인지 알아채지도 못했다.
 
-누군가 옆에 있는 것이 불편할 정도로 마음이 상한 사람에게 방이란 두 팔을 활짝 벌리고 자신을 맞아줄 수 있는 장소다. 그러므로 이런 시간에 그런 방을 갖지 못한 사람은 어디를 가든 추방자일 수밖에 없었다.
 
-근래에 셀던이 더욱 아낌없이 베푸는 친절의 본질에 대해서 패리시 양은 더 이상 정확히 규명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나비의 날개에 붙은 고운 가루를 털어서 그 아름다운 색깔의 비밀을 파헤치려고 하지 않듯이. 경이로운 것을 움켜쥐려고 하다가는 괜히 그 꽃만 상하게 하는 법이다. 그러다가 어쩌면 시들고 뻣뻣해진 꽃봉오리만 손안에 남게 될 수도 있었다. 차라리 손에 잡히지 않아 더욱 감질나는 아름다움을 그냥 감상하는 편이 더 나았다. 그러므로 패리시 양은 숨을 죽인 채 눈부시게 빛나는 그것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릴리는 난생처음 멋진 외모를 유지하는 것보다 여자의 명예를 유지하는 데 훨씬 더 많은 비용이 필요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심지어 도덕성을 유지하는 데조차 반드시 돈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자,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세상은 훨씬 더 험난한 곳처럼 보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