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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상화, 그려진 선비정신 - 피부과 의사, 선비의 얼굴을 진단하다
이성낙 지음 / 눌와 / 2018년 3월
평점 :
-20240707 이성낙.
피부질환, 하면 증상이 무엇이든 남이야기 같지 않다. 태어나서 얼마 되지 않아서부터 아토피성 피부염을 오래 앓았다. 잠못드는 가려움도 문제지만, 염증성 피부를 긁다보면 손상이 오고, 감염도 오고, 그렇게 생긴 상처는 일반적인 것보다 아무는 것도 더디다. 심할 때는 회복에 몇 달이 걸리기도 한다. 스테로이드 연고 남용으로 부작용도 심하게 겪었다. 안쓰러운 마음에 부모는 의원, 민간요법, 한의원, 온갖 수단을 동원했지만 오래도록 차도가 없었다. 그냥, 앓을 만큼 오래 앓고 나을 때 되면 나았다.
성인기에도 재발과 호전을 반복해서 2005년 대학 2-3학년 무렵엔 학업도 삶도 다 중단하고 싶을 만큼 괴로운 시기를 오래 보냈다.(그무렵 아토피 전문 한의원이라는 곳엘 다녔고… 나는 한의학에 대한 모든 기대를 버렸다. ㅋㅋㅋ) 좀 나았나 싶더니 취업 무렵 2008년에 다시 재발해서 피부과 다니면서 스테로이드 부작용을 토로했지만, 의사가 그래도 친절하게 복약 지도를 해 줘서 치료를 지속했고 더디지만 나았다. 마침 습윤반창고가 나와서 심하게 벗겨진 피부를 인공피부마냥 보호해줘서 그전보다는 긴 치료기간도 버틸만 해졌고 다리는 상처투성이었지만 출퇴근도 무리없이 했다. 2015년에 또다시 온 얼굴까지 염증이 심해졌는데, 마침 어려서 역시 심하게 아토피성 피부염을 앓던 큰어린이까지 피부염이 같이 심해져서 조금 고생했다. 그렇지만 또 우연히 친절한 피부과 선생님 만나서 위로도 많이 해주시고 스테로이드 연고 부작용 염려 덜도록 정확한 사용량도 알려주시고, 먹는 약도 처방하시고, 조금 낫고 나니 스테로이드 대안으로 프로토픽도 여러 용량으로 처방해주셔서 역시나 치료를 잘 마쳤다.
쓰고 보니 병이 거의 십 년 주기로 재발하는데 벌써 십 년이 다 되어 가서 조금 걱정이다. ㅋㅋㅋㅋ 점점 피부질환 진료보는 피부과는 줄고 레이저 쏘는(원래 전공은 다른 과목이거나 그냥 일반의 선생님들이 운영하는) 병원만 많아서 무좀약 처방 한 번 받으러 가려해도 큰일이다. 약은 안주고 보험 안 되는 비싼 레이저 쏘라고 하는 경우도 많다고… 그래도 우리 동네 피부과(전공은 비뇨기과…)에 발톱 무좀약 처방 받으러 가보니 선생님이 바로 다른 치료 권하진 않고 내복약이 제일 효과 좋다고, 일단 환자 선호대로 바르는 것(그나마도 보험 지원 되는 싼 일반의약품으로 주심) 주고 안 나으면 먹는 약 지으러 다시 오라고 하셨다.
’초상화, 그려진 선비정신‘이란 책이 피부과 의사가 쓴 책이라고 해서 제법 관심이 갔다. 책을 만나게 된 경로는 또 수능 국어공부이다. ㅋㅋㅋ 문제집에서 조선과 중국의 그림 화풍 차이를 다룬 지문을 읽다가, 갑자기 궁금해져서 윤두서인지 강세황인지 초상을 검색해 찾아 보았다. 그런데 대상 인물의 온갖 피부 흠결까지 그린 조선 초상화에 관한 기사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https://m.khan.co.kr/culture/culture-general/article/202304250500001
기사 내용은 대부분 맨 아래 참고 서적 중 이성낙 저자의 도서에 기댄 부분이 많은 것 같았고, 그래서 직접 그 책을 읽어보기로 했다. 중고판매자에게 6770원에 저렴하게 겟...ㅋㅋㅋ
책표지 안쪽의 저자 소개를 보고 좀 놀랐다. 1938년에 태어난 할아버지 저자는 60년대에 독일 유학가서 피부과 의사가 되어 돌아와서 국내 이런저런 의대 총장 학장 지내신 교수님이었다. 그림 연구하고 초상화에서 피부 질환 찾아내는 취미 내지 여흥이 있으셨는데, 그러느라 모은 자료들을 어쩌나, 하는 말에 지인들이 그냥 논문 써...해서 진짜로 70대에 미술사학과 가셔서 박사 논문을 써 버리셨다...ㅋㅋㅋ 이 책의 많은 내용 바탕도 그 논문에 두고 있었다. 80살에 이 책을 펴내신 이성낙 박사님은 아직 건재하게 잘 계신 것 같다. 의대 증원 문제에 관해 조심스럽게 칼럼 써 놓으신 것도 찾아 보고…(의대정원 막은 건 그간 의료계가 아닌 정부였다, 그러니 증원 자체가 나쁜 건 아닌데 갑자기 의대가 수용하기도 힘들게 한해에 왕창 늘리는 건 재고해라 점진적으로 가자...뭐 이런 의견으로 읽힘…)
조선 화원들은 거의 편집증에 가깝게 인물의 세밀한 구석구석을 다 그려 두었다. 초상화를 남긴 인물은 주로 왕이나 고위관직 공신들이고, 그래서 그림 그린 화원들도 국가 소속 최정예 실력자들이었다. 너무 세세하게 가감없이 잘 남겨둬서 현대의 피부과의학자들이 그림 보고 어떤 질환인지 진단 가능할 정도라고, 저자는 그 부분에 주목해서 조선 초상화의 가치를 높게 평가했다. 그리고 그런 표현상 특징을 선비정신과 연관지어서, 이게 다 선비정신 갖춘 양반들이 정직하게 있는 그대로 그리도록 동의해서 그런 것이다, 그리고 그런 선비 정신은 조선 왕조 지탱에 기여한 바가 있으니 다시 살아날 만 하다, 그런 논조로 책 전체를 이어가고 있었다.
사람들이 곱게 보지 않을 수많은 병변들, 당장 앓고 있거나 예전에 앓던 질환들, 그로 인해 변한 피부의 형태와 색깔, 질환은 아니더라도 노화로 인한 주름과 검버섯, 터럭, 혹, 점, 얼굴 실루엣의 변화까지 세밀하게 파악할 수 있는 기록이 남아 있는 건 후대에게 도움 되는 바가 있긴 할 것이다. 나도 당장 흥미롭게 볼 수 있었고… 지금도 뽀샵을 거쳐 스노우필터가 유행하고, 에이아이 프로필 앱 서비스 같은게 인기를 끄는 걸 보면 사람들은 어떻게든 흠결을 감추고 고쳐서 실물과 다른 나를 만들고, 그걸 나라고 인식하며 자존감을 높이는 쪽을 택하는데, 과거의 초상화도 대부분은 그랬을 것이다. 그런데도 조선 시대 국가 주도 제작 초상화, 혹은 그런 국가 주도 그림 제작 기관에 속한 화원들은 노빠꾸로 천연두 곰보자국에 반점에 주먹코에 실명한 눈에 다 그려놔…
워낙 높은 사람들이고, 그 사람들의 동의 없이 그런 흠결을 그렸을리 없다, 그런 흠결조차 남기는 걸 동의하는 그 사람들, 정직하다, 이것이 선비 정신, 여기에는 많은 의문을 느꼈다. 일단 정직이라는 미덕부터 야 이거 정말 조선 시대에도 있던 걸까 새마을운동 때 성실 정직 이러고 나온 거 아니냐...하면서 찾아보니 공자가 말하는 군자의 덕목에 직, 이라는 게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곧고 강직한 것보다 솔직함에 가까운 미덕이라고 하였다. 그렇군. 이렇게 동양철학에 무지한 나새끼 한 가지 더 배우고요…
그렇더라도 정말로 공신들이 정직하게 그대로 그려줍쇼, 오케이, 했을지는 잘 모르겠다. 일단 왕이 하사하는 그림인데 예쁘게 그려달라고 떼부릴 수 있었겠나… 심지어 도화서 초상화 그리는 원칙이 정확하게 그대로! 이런 것을 아 좀 유도리있게 점 몇 개 지워주시고...할 수 있었겠냐고…
사진 없던 시절이라 자신의 모습을 누군가 세세하게 그려서 제공하면 나름 특별한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피사체가 된 초상화의 주인공은 아무래도 많이 상처 받았을 것 같다. 개의치 않는 사람들도 있었겠지만 심한 피부병변 흔적은 대다수 이들에게 콤플렉스였을텐데, 그걸 굳이 그려서 직접 자기 눈으로 또 확인하고, 그게 후손들한테도 남고, 아마 2024년도의 나새끼가 흥미거리로 읽고 구경할 건 생각도 못했겠지…
역사적 기록, 후대에 과거에 있던 일들을 최대한 자세히 남기는 것, 혹은 피부의과학 연구에 기여하는 목적이라면 그대로 병변의 모습들을 남기는 게 가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건 오늘날에 그 자료에 관심 갖는 사람들의 사후적 해석인 것 같다. 그냥 결과론적인 것이고, 미학적, 미술사적 측면에서는 최대한 있는 그대로, 실사구시, 이런 게 뭐 필요는 하겠지만 미술이나 예술 측면에서 우수한 것으로 칭송할 만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이상 현대예술 뽕에 취한 포스트모던 넘어 온갖 것 해체하는데 미친 놈 생각이니 거르셔도 되고요...ㅋㅋㅋㅋ 자료 자체는 특정 분야에서 가치 있는 부분이지만 그나마도 저렇게 세세하게 얼굴 남겨서 불멸에 오른 자들은 대부분 남자구요… 서양 미술 초상 사례로 모나리자나 진주귀고리 같은 여성 모델 거 가져왔던데 우리 역사에 남은 여성들은 저정도 퀄리티 초상도 없어서 막 현대 화가들이 열심히 고증해서 그려봤자 맨날 논란 일고 저 얼굴이 맞냐 답도 안 나올 걸로 옥신각신… 논개가 그랬고 춘향이가 그랬고 신사임당은 잘 모르겠다… 예시 인물이 일천한 것도 한숨 나오고요… 적어도 저 얼굴이 정말 윤두서 강세황이 맞냐 하는 논란은 안 나오겠다… 아참 자화상이지… 화가들은 셀프로 그리니 그런 특권 누려도 뭐 할 말은 없다.ㅋㅋㅋㅋ
얼굴 사진이 흔한 시대라, 원하면 일초에 수십장 찰칵찰칵찰칵챡칵 찍어 동영상도 만들 수 있는 때라 정직한 기록의 미덕 운운하기도 애매하게 되긴 했다. 심지어 에이아이 기술 나와서 영상도 이미지도 다 뜯어 고치니 후대 사람들은 우리 조상님들은 전부 턱이 뾰족하고 눈이 왕방울 만하셨군요...하고 실물과 다른 이해를 해도 별 수 없겠지만… 글의 말미에 이렇게 얼굴에 흉한 병변 있어도 높은 벼슬에 오를 수 있었다, 능력주의라 해야 할까 아니면 혈연과 가문으로 인한 특권일까 알 수는 없지만 그래도 남들이 흠결이라 할 모습을 그대로 남겨 놓은 게 그린 이나 그려진 이나 조금의 용기가 없었다고는 할 수 없겠다. 못생긴 셀카 안 지우고 남겨둘 자신 있냐고요...ㅋㅋㅋ 저는 추한 것도 냅두자 주의였지만 이제는 점점 고우나 미우나 잘 안 남기는 쪽으로 가고 있네요… 아토피성 피부염 얼굴까지 앓을 때 남은 사진 보면 그저 가엾네요…
이 정도면 그래도 그려진 사람이 봐도 그러려니 하겠는데… (출처, 위의 책 31쪽)
천연두 자국 저렇게 디테일하게 얼굴 전체에다 그려 준 거 보면 나라면 맴찢일 듯…(출처, 위의 책 31쪽)
이건 중3 미술 시간에 남긴 자화상… 곱슬에 점에 흉터자국까지 정직하게 못생김 탈탈 털어 그린 나놈도 선비정신 넘치는군요...ㅋㅋㅋㅋ 지금도 딱 저렇게 생겨서 지나가다가 누가 날 알아볼까 걱정이네요...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