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전쟁 같은 맛
그레이스 M. 조 지음, 주해연 옮김 / 글항아리 / 2023년 6월
평점 :
-20230903 그레이스 M.조.
책을 알게 된 건 책소개 기사문을 통해서 였다. 어머님은 분유가 싫다고 하셨어. “그 맛은 진절머리가 나.” “전쟁 같은 맛이야.” 책을 읽고 보니 제목이 다했다. 나의 부모들은 전후 베이비붐 시절 태어난 1957년, 1959년생이긴 하지만 비슷한 전쟁(후) 음식 같은 게 하나씩 있는 것 같다. 학교에서 나눠주는 옥수수빵, 설익은 밀가루 수제비 같은 것. 지긋지긋하고 수치스러운 맛.
한국 전쟁을 겪고 이후 한국을 떠나 미국살이 해야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 어머니의 조현병과 이를 이해하기 위한 사회학 연구 같은 소재에 처음에는 흥미가 갔다. 그렇지만 음식에다 힘 또는 적응 또는 저항, 문화적 향수, 엄마와 다시 이어지는 계기, 치유 등등 그렇게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 건 내가 크게 공감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책의 대부분이 음식을 만들거나 먹거나 하는 모습이라 읽는 동안 처음의 흥미가 많이 흐려지는 기분이었다. 음식 투정하는 새끼가 음식 나오는 책 기껏 골라 쳐 봐 놓고 투정해서 미안…
아주 많은 나이 차이가 나는 미국 상선 선원이던 아버지와 미혼모로 그레이스의 오빠를 키우고 있던 엄마 군자씨는 한국에서 그레이스를 낳고 얼마를 살다가 미국으로 건너온다. 그레이스가 십대 중반이던 1980년대 중순경 군자씨는 피해 망상에 시달리는 모습을 보이고, 그레이스는 정신 건강 관련 도서를 읽으면서 엄마가 조현병임을 의심하지만 아버지도, 오빠도, 상담사도 아무도 엄마를 돕지도 조치를 취하지도 않는다. 그레이스는 군자씨의 바람대로 열심히 공부해서 우수한 학업 성적으로 명문대학인 브라운대학에 입학하고 집과 멀어지면서 엄마의 병세에 대한 관심도 멀어지고 자기 나름대로 대학 생활과 친구 관계와 연애 생활을 이어간다.
1994년에 그레이스는 올케로부터 엄마가 성매매 여성이었다는 말을 전해듣고는 충격에 빠진다. 그 무렵 엄마 군자씨는 두 차례 자살 시도를 한다. 비슷한 시기 한국에서는 나의 아빠가 조현병이 발발했고, 역시나 자살 시도를 했다가 실패하고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퇴원했다를 반복한다. 공간은 다르지만 시기나 경험은 묘하게 겹치는 부분이 있구나, 나의 부모는 나에게 아빠의 치료과정이나 입원 생활에 관해 제대로 이야기 한 적 없지만 비슷한 의학적 조치를 받았다면 어머니 군자씨가 먹던 약을 아빠도 먹었겠구나, 그래서 그렇게나 부작용에 시달리고 약이 안 맞다고 싫어하고 자살 충동에도 시달렸구나, 짐작만 할 뿐이다.
그레이스가 군자씨 인생의 마지막 시절 동안 엄마가 알려주는 조리법 대로 한국 요리를 하면서 멀어졌던 사이를 회복하고, 음식을 해주는 사람이나 함께 먹는 사람이나 둘다 치유의 경험을 겪는 것이 나에게는 생소했다. 내게 어린 시절 식사 시간은 즐겁지 않은 시간이었다. 맨정신일 때도 아빠는 인상 쓰고 억지로 음식을 먹거나 반찬 타박을 하고, 우리의 식사 습관에 관해 끝없이 잔소리를 했다. 아빠는 술에 취하면 밥상을 수시로 뒤엎었고 바닥에 깨진 그릇과 음식이 흩어졌다. 조현병 발작이 심했던, 그러나 가족들 중 아무도 그것이 정신질환이라고 생각은 못하고 아빠가 왜 저럴까 하던 시절, 아빠는 검은 자동차들이 집 주위를 돌며 자신을 감시한다고 생각했고 모든 걸 의심하고 엄마조차 믿지 못해 자신을 죽이려 든다며 엄마를 먼저 죽이려고 목을 조르기도 했다.
아빠 상태가 너무 안 좋아서 엄마 혼자서 가게를 보고 아빠랑 나랑 단둘이 집에 있던 날이었다. 바깥에 종을 울리며 두부장사가 왔는데 아빠는 날 더러 순두부를 사오라고 심부름을 보냈다. 나중에 생각하면 정말 두부장사인지 감시꾼인지 탐색을 보냈던 것 같기도 하다. 비닐봉지에 담긴 뜨끈한 순두부를 냉장고에 그냥 놓으면 자꾸 쓰러지니까, 이걸 다른 그릇에 받쳐야 하나 어째야 하나 부엌에 서서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부엌 불도 안 켜고 무슨 짓을 하는 거야. 거기에 뭘 탔어.
갑자기 부엌에 들이닥친 아빠가 무서운 목소리로 나를 다그치기 시작했다. 나는 아무 것도 아니라고, 이걸 어디 놓을지 몰라서 그랬다고 울기 시작했다. 열두살이었다. 그런 상황을 겪고 대응하기에는 너무 어렸다. 얼마 후 아빠는 학교 가는 나를 누군가 납치한다며 붙잡고 못 나가게 하다가 겨우 보내주고는 내가 학교간 사이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 되었다.
그래서 나는 어린 시절 먹던 음식들도 싫고, 엄마가 해주는 음식도 별로 안 좋아한다. 한식은 대체로 꺼리고 최대한 원래 먹고 자란 것들과 관계 없는 것들을 찾아다닌다. 유년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건 그냥 다 피하고 싶다. 그레이스랑 나랑 아픈 사람이 엄마인지 아빠인지 차이도 있고, 음식에 얽힌 경험이 부정적인지 긍정적인지 차이도 있어서 이렇게나 다른 방식으로 인지하기도 하나 보다. 내게 음식은 그냥 생존 수단이고 마지 못해 먹는 것이지 요리도 섭식도 그닥 즐거운 순간은 아니다. 병든 인간… 풀 뜯는 사자, 개미 먹는 사슴아… ㅋㅋㅋ
사회학을 공부한 저자이고, 군자씨의 삶을 설명하고 의미를 부여하는데 한국전쟁과 그 이후 한국인의 또다른 식민화된 삶, 빈곤, 그런 걸 연관 짓는 것은 크게 무리가 없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엄마의 삶과 기지촌 여성, 미군을 상대로 한 성매매 그런 부분을 연관 짓는데는 엄마의 경험 증언이나 살아온 시간에 대한 어떤 진술도 없었다. 그저 정황과 공부를 하며 찾은 기록물들, 아버지 이야기 일부, 올케의 오락가락하는 진술(어머니가 매춘부였다고 했다가 금세 번복하고 칵테일바 웨이트리스였다고 하는 등)만 가지고 어슴푸레하게 헤매는 모습은 조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머니가 정신 건강이 안 좋으셔서 정말 어떤 삶을 살았는지 말씀하기 어려웠을 수도 있고, 책에서도 어렸을 때 한국에서의 삶을 물으면 입을 다물었다고는 하지만… 직접 본인에게 묻거나 한국의 친족들에게 물어본 것 없이 너무 에두르면서도 단정짓는 부분도 있는 것 같아서, 그러고서 그렇게 짐작한 상황들에 또 너무 매몰되고 고통스러워 하는 것 같아서 좀 안타까웠다. 자세한 상황은 모르지만 최근 이웃님 통해 오빠네 가족들과도 책에 서술된 부분에 관해 합의되지 않은 부분 때문에 갈등이 있고, 많은 부분이 논픽션이 아니라 저자의 상상력의 산물이라는 식으로 비난이 있었다는 이야기도 이런 부분이 문제가 아닐까 막연하게 추측만 해 볼 뿐이었다.
군자씨 삶의 많은 부분이 그레이스의 엄마가 된 이후 조현병을 앓고 남편과 불화를 겪고 식이 장애를 겪는 등 고통스러운 시간이 길고, 그레이스와 가족들 또한 그것을 지켜보고 견뎌내면서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거기에 군자씨의 결혼 이민, 익숙한 자기 민족을 벗어나 이방인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낯선 땅에서 적응해야 했던 외로움, 결혼 이전의 전후의 비참한 삶 등이 그레이스의 짐작대로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그런 엄마를 이해해 보기 위한 딸의 몸부림, 자신이 가진 사회학이라는 도구로 설명하고 해석해 보려는 노력이 담긴 책이었다. 읽는 이에게 공감을 얻거나 그 시도가 납득할 만한 것인지 따져 보는 것은 뭐 크게 의미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책 읽은 나는 그 부분은 유감이지만…) 그러니까 에세이 정도로 읽되 사회학적인 학술적 측면은 크게 기대할 만하지는 않다. 저자에게 한풀이의 과정이 되었다면 그건 그거대로의 가치가 있을 것이고… 그 과정에서 생긴 다른 가족들과의 오해나 그들의 한이 있다면 그건 또 잘 대화 나누며 풀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남의 가족 이야기는 이렇게 쉽지만 사실 난 내 엄마든 아빠든 더 이해하려고 시도하고 싶지도 않고 과거를 떠올리고 왜 그랬을까 하고 궁금해하고 싶지도 않다. 그냥 유전적 요인이나 환경적 요인이 많다는 (증조할머니고 할아버지고 죄 또라이었던데) 그 조현병이 나한테는 제발 좀 안 왔으면 좋겠고 ㅋㅋㅋ내 새끼들이 나 이해해보겠다고 전쟁 같은 맛 같은 책 쓸 일 없었으면 좋겠고 ㅋㅋ니들은 문과 하지 말고 이과 해라...사회학 난 잘 모르겠다… 공부라고 오래한 게 그나마 그쪽인데 양적연구고 질적연구고 난 모르겠다...ㅋㅋㅋㅋ 대불호텔에도 유령 나오고 그레이스의 박사논문에도 유령나오고 그러는데 뭘 말하고 싶은지는 알겠는데 그게 문학적 수사까지는 그러려니 하겠지만 그레이스의 과거 회상에서 죽은 아이 모습 보았던 경험 적어 둔 거 보면서 아 그레이스도 좀 아픈가 보다...했다.
끗.
+밑줄 긋기
-강제로 아니면 자유롭게, 이는 잘못된 이분법이다. (327, 내가 누칼협이라는 말을 너무너무 싫어하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