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위한 되풀이 창비시선 437
황인찬 지음 / 창비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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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04 황인찬.

다정한 네이버 블로그 이웃님께 무슨 손글씨 쓰는 챌린지에 지목되서, 그럼 나는 아껴 (다시) 읽고 있는 시집을 베껴야지, 했다.

글씨에 점점 영혼이 없다. 짭플펜슬 말고는 진짜 볼펜 쓸 일이 가정통신문 사인 말고는 잘 없는데, 펜을 잡는 것이 이렇게 힘이 많이 들어가는 일인지 잊고 있었다.
간편하게 파바바바 타자나 터치스크린으로 쓰지 않고 한 자 한 자 눌러 적으라고 한다면, 세상의 글과 말은 지금의 몇 분의 일로 줄어들지 않을까, 세상까지 아니어도 내 글과 말은 그렇지 않을까, 하면서도 볼펜을 다시 쥐지 않고 키보드 전원을 켠다. ㅋㅋㅋㅋㅋ

며칠 전에 타이 음식점에 똠양꿍이랑 팟타이를 시켜 먹었다. 똠양꿍은 국물이랑 건더기 일부 뿐이라 집에 있던 쌀국수를 삶아서 퐁당 빠뜨려 먹었는데 쌀국수를 조금 더 삶을 걸 하고 아쉬웠다. 레몬그라스는 씹히지 않아 실수로라도 우물거리면 퉤 하고 섬유질을 뱉어야 했다. 그러다가 시집을 펼쳤는데 시에서 똠양꿍이 나와서 하, 나는 이 시 제목을 봐서 똠양꿍을 먹었던 걸까, 똠양꿍을 먹어서 시집에 똠양꿍 시가 실린 걸까 잠시 궁금했다.

3년 전에 황인찬의 시집을 처음 읽었다는데, 그 사이 3년이나 지났다는 게 너무 놀랍다. 3년이 지나도 휘발되지 않는 글도 있다는 게 신기한 다시 읽기였다. 시집 다시 읽는 건 아마도 네가 처음이야. 3년 후에 다시 읽을 지도. 다른 시집 읽다가 이 시집 읽으면 다른 시집이 샘을 낼까 봐 덮고, 또 한참 읽다가 미처 못 덮을 것 같이 점점 더 좋아서 겁이 나서 읽다가 일부러 덮고, 그러면서 읽었다. 적어 옮기려다가 문득 이거 3년 전에도 똑같이 밑줄그었을 걸, 하는 부분이 있어 찾아 보니 어떤 부분들은 정말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그냥 뭐 이미 그었을 거야, 하고 따로 옮겨 적지 않았다.

3년 전에는 내가 소설 강좌 들으러 다니던 건물에서 황인찬이 시 읽는 법을 가르치고 있었다. 마음으로만 가 보고 싶고 가진 않았다. 그리고 독후감으로 소설 존나 후지게 썼네 창피하다 창피해 막 그렇게 욕을 바가지로 썼던 소설가가 또 그 건물에서 강의를 해 가지고 어느 날 수업 들으러 엘레베이터를 탔다가 엘레베이터 안에서 마주쳤는데 소설가의 표정이 너무 어두워가지고 나는 괜히 미안하고 아는 얼굴이라고 아는 척 할 수도 없고 그냥 악성 독후감은 참 미안한 것이구나 생각을 했다. 황인찬도 탔을 엘레베이터지만 공간은 겹쳤지만 다행히도 시간은 겹치지 않았다. 나는 다행히도를 자꾸 다행이도 라고 쓰고 나중에 고친다. 다행이다.


+밑줄 긋기
-쌓인 눈을 밟으면 소리가 난다
작은 것들이 무너지고 깨지는 소리

“이런 삶은 나도 처음이야”
그렇게 말하니 새하얀 입김이 공중으로 흩어졌고
(‘사랑과 자비’ 중)

-벌써 여름이구나

그렇게 말하는 순간 지난 여름에도 똑같은 말과 생각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렇게 알아차리는 순간 이 알아차림을 평생 반복해오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 순간마다 여름은 창턱을 떠나 날아갈 준비를 한다

이 누적 없는 반복을 삶과 구분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이 시의 서정적 일면이다
(‘아카이브’ 중)

“사랑 같은 것은 그냥 아무에게나 줘버리면 된다.” 는 시인의 말에 3년 전에는 아무에게나는 아냐. 라고 했었다. 그런데 3년 쯤 저 말을 생각하다보니 아닌 게 아닐 수도 있겠다. 저 말을 멋 없게 다르게 고치면 ‘우리는 누구나 사랑할 수 있다.’ ‘우리는 무엇이든 사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나는 고개를 끄덕끄덕.

+그런데 내 시집은 뭔 수놓은 씨스루 같은 걸 입고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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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수 2023-07-04 12: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후.. 황인찬 읽어봐야겠다 결심이 섬. 선성???독후감은 참 강력하구만요! 글씨 나는 좋은데. 영혼이 없는 거란 말이에요!

반유행열반인 2023-07-04 12:18   좋아요 2 | URL
여기에는 영혼도 마음도 없습니다.
황인찬 이 시집 최애입니다. 두 번 읽기 드문데 두 번 봤으니 이제는 최애라고 말할 수 있다 ㅋㅋ 선성독후감 저는 잘 안 쓰는 거라 그런게 존재합니까? ㅋㅋㅋ

우끼 2023-07-04 12: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래요~~ 사랑만세~~ 아무에게나 사랑은 줘버리자~~

반유행열반인 2023-07-04 12:19   좋아요 2 | URL
궁금한데 누구나 우리를 사랑할 수 있다, 이 말은 성립합니까? 무엇이든 우리를 사랑할 수 있다. 이거는 근데 왜 섬뜻하죠? 아무가 필요없어!!!이러면 어쩌죠? ㅋㅋㅋㅋ

우끼 2023-07-04 12:21   좋아요 1 | URL
음.. 그러네… 저도 아무가 필요없어요 ㅋㅋㅋㅋㅋㅋ 그 사랑 자신의 책임에 다 쏟고 여남은거 도움 필요한 사람에게 써라~~ 이런 마음..

반유행열반인 2023-07-04 12:25   좋아요 2 | URL
아 뭐여 책임 도움 거기에다 사랑을
왜 써… ㅋㅋㅋㅋㅋㅋ그러라고 있는 사랑
아닐 건데…ㅋㅋㅋㅋㅋ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23-07-04 12:25   좋아요 2 | URL
그리고 댓글 또 지우시면 저 이제 대댓글 안 답니다 ㅋㅋㅋ달 때는 신중하게 달고 나면 낙장불입!!!!!

반유행열반인 2023-07-04 12:26   좋아요 2 | URL
쓰고나서 부끄러우면 수정 후 비밀댓글 지정이라는 아름다운 기능이 있습니다 ㅎㅎㅎ

우끼 2023-07-04 12:36   좋아요 2 | URL
책임과 도움이야말로 사랑이라는 에너지가 없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요.. ㅜㅜ (사랑 에너지설) 글고 책임없는 사랑 안섹시해~~(나만 그런가)

반유행열반인 2023-07-04 12:39   좋아요 2 | URL
책임은 의무감이 도움은 연민과 자비가 하는 일이쥬… ㅋㅋㅋㅋㅋㅋ

우끼 2023-07-04 12:46   좋아요 4 | URL
사랑이 대체 뭐죠…???? ?.?

반유행열반인 2023-07-04 13:50   좋아요 2 | URL
선생님 그걸 저한테 물으시면…내년까지 알아보고 알려주세요…

희선 2023-07-05 00: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크리스마스 리커버로 나왔던 걸 거예요 몇 년인지 잊어버렸지만... 책이 나오도 다음달 바로 그랬을지, 그랬을 것 같기도 하고 한해 뒤였을지도 모르겠네요 누구나 무엇이든 사랑할 수 있을까요 어쩐지 어려울 것 같은... 저는 마음이 좁네요


희선

반유행열반인 2023-07-05 07:53   좋아요 1 | URL
리커버 판이었군요 ㅎㅎ근데 완전 표지 갈이는 아니고 원래 거에 옷만 입혀줌 ㅎㅎㅎ저는 중고를 구매했거든요 그런데 책 소개 찾아봐도 다 옷 안 입은(?)것만 있어서 궁금했어요 알려주셔서 감사해요 희선님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