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욤 아폴리네르 시집 : 내 사랑의 그림자 아티초크 빈티지 시선 10
기욤 아폴리네르 지음, 성귀수 옮김 / 아티초크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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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03 기욤 아폴리네르.

여러 번역시 모은 선집에서 기욤 아폴리네르의 시를 인상 깊게 읽고, 황현산 선생님이 번역하신 ‘알코올’을 전자도서관에서 빌렸다가 보다 말았다. 벌써 기억이 안 나려고 하는데 뭔가 너무 고풍스러운 느낌이었어…
그러다가 기욤이 사모하던 루 라는 여성에게 전쟁터에서 잔뜩 써 보낸 시인지 편지인지 하는 것들을 묶은 책이 있다고 해서 중고로 샀다. 책 소개 페이지의 표지는 뭔가 변태 할아버지 같은 그림이 있는데 내가 받은 건 상대적으로 점잖은 그림이라 오히려 좋았다. 그런데 다시 보니 저 아래 아저씨 표정도 만만치 않네… 출판사 마크인지 엄마는 펭귄 아빠는 올빼미 같이 생긴 귀여운 새 위치가 절묘함…

시는 대체로 야하고, 성애적이고, 여자에게서 좋은 것을 겪어 버린 남자가 욕망과 연인의 부재에 떨면서 잔뜩 써 놓은 것이라…그렇게 정제된 언어는 아니었다. ‘알코올’이 그래도 고급스러운 관능이라면 이건 진짜 날 것의 쌈마이 성애성애…번역이 날 것으로 해 놓아서 그럴 수도 있는데 기욤이 루를 칭할 때 자기야, 이런 표현 너무 간지러움… 우리나라에 뭐 저런 대중가요 있어서(전국노래자랑 같은데 나오면 되게 싫어했음) 그런가 자동 재생되면서 소름이 오소소 해가지고 ㅋㅋㅋㅋ 읽는 내내 썩 즐겁지 않았다.

이메일로 우연히 이어진 사랑을 소설로 쓴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 ‘다섯 번째 파도’ (개웃김 나중에 다시 찾아보니 일곱 번째야…왜 맘대로 두 개 깎음….ㅋㅋㅋ) 두 권을 몇 년 전 여름에 읽었는데, 내 취향은 아니어도 그럭저럭 읽을 만했고 독일 소설인데 미국 영화 같고 적당히 달달하고 적당히 절제하면서도 로맨스 좋아하는 사람들은 좋아하겠다…싶었다. 그런데 실존 인물이 연모하는 이에게 쓴 날 것 같은 (거의 편섹???에 가까운) 시는 편지 쓴 이가 아무리 시인이라도 ㅋㅋㅋㅋ이걸 한 권에 다 엮어 놓은 걸 남이 읽는 건…그리 낭만적이지 않았다. 으으 느끼한 변태 아저씨 ㅋㅋㅋㅋ 개그콘서트에서 연인들 닭살 돋는 짓 구경하면서 주변 사람들이 역겨운 표정 짓는 뭐 그런 느낌 잘 알겠음…

루에게는 기욤 아폴리네르가 꼬시는 중에도 다른 연인(이 사람도 포병)이 있었고, 애칭으로 투투(멍멍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기욤은 그러거나 말거나 하면서 계속 들이대고, 투투와 루, 이렇게 둘에게 편지 보내듯 시를 쓰기도 한다. 개중에 동시 같고 좀 덜 야한 시ㅋㅋㅋ 삼각관계인데 나름 귀엽게 그려 놓았음…그래서 옮겨 적어 봄… 다른 시들은 옮기기 좀 그래…(엉덩이 가슴 천지임…)

- 두 번째 우화
어느 얌전한 멍멍이가 하루는 떡갈나무 아래 떨어진
겨우살이 새순을 보았네
녀석은 아무 생각 없이 그걸 밟으려 했는데
지켜보던 여주인
얼른 막아서더니 나른한 손길 뻗어
겨우살이를 집어 드네
멍멍이 낑낑대며 하는 말 겨우살이야 너 운 좋은 줄 알아라
네가 뭐 그리 귀하다고
그러자 드루이드 사제들의 약초가 대답하기를
멍멍 씨 당신은
늘 충성스럽고 용감해요
그래서 여주인은
항상 당신을 아껴주죠
그 잘난 당신 애교가 살가워서
그러나 나는 위대한 삶의 지침인 사랑
나는 행복이라오
오 멍멍 씨 내 절친한 친구여 나는 꽃 중에 가장 희귀한 꽃
꽃이 피지 않는 풀나무라오
당신이 이상이라면 나는 행복을 가져다준답니다
그러는 동안
느긋하게 누워
아름다운 꽃잎을 무심히 뜯어 날리는
그들의 여주인
오색영롱한 빛깔들
그윽하게 풍겨나는 향기들
그녀는 멍멍이와 겨우살이의 수다를
안 듣는 척하면서 듣고 있지
그녀를 미소짓게 만드는 두 친구의 이야기
우리 꿈꾸듯 그 둘의 행복을 저울질해보는데
다정한 눈길로 바라보던 여주인
갑자기 일어나 그들에게 다가가네
(아무리 따져 봐도) 더 많은 그녀의 입맞춤은
겨우살이가 아닌 멍멍이 차지
반면 겨우살이는
어여쁜 두 젖가슴 사이에 맥없이 끼여 아무것도 시도할 수 없는 처지
오호라 그래도 만족하네
임금에게나 어울릴 그 옥좌
그들끼리 주거니 받거니 하는 입맞춤을 구경만 하면서
겨우살이는 속으로 즐기네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고서
교훈
이해하려고 애쓰지 말지어다
(‘멍멍이와 겨우살이’ 전문. 멍멍이 투투는 루의 다른 애인, 겨우살이gui는 기욤 아폴리네르 이름 앞자…귀귀 생각나네…)

전쟁터에서 생사 오가며 두툼하게 한 권 묶을 정도로 편지를 써 보낸 사랑도 뭐 결말은 가망 없고, 시인의 연보에서 정작 죽기 직전 결혼한 사람은 시인이 부상 당하고 그걸 간호해준 다른 여성이었다. 시인은 나랑 동갑일 때 스페인 독감 걸려 죽어버린다. 사랑 넘치고 어휘와 감수성 넘치던 사람이 적어둔 시랑 편지는 남았다.

바톤 터치하듯 기욤 아저씨(이러니까 귀여운 거 같잖아 으으)는 근처에 꽂혀 있던 프랑스 소설 뒷표지에서 다음 읽을 책을 추천해주고 있었다.
‘싸드는 이전에 존재하였던 가장 자유로운 정신이다._기욤 아뽈리네르’
그래서 다음 독서는 기욤 아폴리네르의 추천으로다가 싸드의 ‘미덕의 불운’ 결정… 참 힘든 여름을 자처하고 있다 내가…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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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끼 2023-07-03 19: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앜……. 열반님 독서는 따라갈 수가 없군요 다음 리뷰도 기다립니다

은오 2023-07-03 20:01   좋아요 2 | URL
그니까요 이거 어케 다 읽었어요 유열님....?! ㅋㅋㅋㅋ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23-07-03 20:04   좋아요 3 | URL
다 보고 구토하는 리뷰 쓰려고 참고 읽다가 읽다 지쳐 그냥저냥 썼어유… 우끼님 기다리지 말아유… 기다림은 힘든 겨…

우끼 2023-07-03 20:06   좋아요 3 | URL
그러면 이 리뷰의 후속 리뷰는 안기다리고 반열님 다음 리뷰만 기다릴께요

미미 2023-07-03 21:0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어머!! 갖고 계신 책 표지 80년대 대한극장? 간판 같아요ㅋㅋㅋㅋㅋ
(근처에 살았던 사람)내용도 참ㅋㅋㅋ
오늘 너무 덥고 멍했는데 열반인님 덕분에 재밌게 읽고 웃고 갑니다. (‘미덕의 불운‘ 찾아봐야지..ㅋ)

반유행열반인 2023-07-03 21:14   좋아요 2 | URL
아니 미미님 서울 중심부 출신?!! 그런데 80년대 극장간판이 기억 나시면 막 엄청 어엄청 언니이십니까…예전에 디즈니 버전 초상(?)뵐 땐 애기였는데(내 맘 속의 미미는 디즈니 요정) 비밀은 아니구 저 자매품 ‘악덕의 번영’ 전자책도 보유중…입니다…왜 부끄럽냐… 근데 사드는 진짜 야한 게 아니라 더럽고 또라이 같은 재미로 이 새끼 어디까지 하나 보자, 하는 오기로 승부욕(?)으로 보는 듯요…

Yeagene 2023-07-04 11:06   좋아요 3 | URL
와 미미님 저도 그 생각했어요 ㅎㅎ 같은 생각하셔서 넘나 반가워요 ㅎㅎ

반유행열반인 2023-07-04 11:47   좋아요 3 | URL
우리 동네 용인극장도 그런 손으로 그린 간판 그림 있었어요 ㅋㅋㅋ농촌 읍 출신 ㅋㅋㅋㅋㅋ

미미 2023-07-04 12:14   좋아요 3 | URL
예진님 저도 반가워요ㅋㅋㅋ
당시엔 극장 간판 그림 이상했는데 이렇게 마주하니 또 반가운ㅋㅋ(간판 화가와 책 표지 디자이너 관련있음을 기정사실화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