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결혼과 섹스는 충돌할까 - 현대 성생활의 기원과 위험한 진실
크리스토퍼 라이언 & 카실다 제타 지음, 김해식 옮김 / 행복포럼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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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19 크리스토퍼 라이언, 카실다 제타.

내 본 머리칼은 흑인들이 많이 가진 곱슬에 가깝다. 감고 내버려 두면 자동 히피펌이 된다. 숱마저 많아서 감당하기 힘든 그것을 2000년도 무렵 새천년과 함께 유행한 매직 스트레이트 라는 신문물이 일정기간 감춰 주었다. 학생이라 돈이 없어 자주는 못 펴고 반년에 한 번씩, 직장을 가지고는 어린이들 평생 갖는 졸업앨범에 민폐를 끼칠 수 없어서 앨범 촬영 철마다 한 번씩, 오랜 시간과 높은 비용을 들여 머리를 폈다. 유효기간은…2주쯤? 새 머리가 뿌리부터 자라면 급속히 말린다 ㅋㅋㅋ그리고 내 곱슬머리는 너무너무 강력해서 펴 놓은 옆머리들도 그쯤 되면 다시 구부러지며 부자연스러운 곡선과 직선이 혼재하게 된다.

마지막 매직 스트레이트는 2년 전 아직 휴직 전이다. 작년에는 공부에 미쳐가지고 커트도 한 번인가 두 번 겨우 했다. 요즘은 날이 더워서 포니 테일 묶는 걸론 해결이 안 되니 머리를 바짝 모아 틀어올려 목덜미가 나오게 하고 있는데, 문득 어제 저녁 아예 짧게 잘라 봐야지…생각했다.

단발까지는 고등학생 때 매직스트레이트 하면서 해 보았는데, 워낙 숱이 많으니 밍키 같은 머리가 되었다. 몇차례 미용실에서 제가 숏컷은 안 될까요…물으면 파마도 빡시게 해야 하고(아니 나 태어나길 파마하고 태어났건만) 그냥 매직이나 하라고 했다. 빡치는데 빡빡 밀까…한 적도 여러번이지만 워워 순간의 실수가 오랜 시간을 좌우한다…

그렇지만 당분간 매인 것도 잃을 것도 없는 나야, 다음 병원 방문은 세 달 후이고, 망하면 안 나가고 칩거해도 별 일 없지 않느냐…이 참에 해 보자… 이 동네 이사 오고 거의 8년 째 가는 국사봉 바로 아래 산꼭대기 미용실(주고객층: 배드민턴 동호회 아저씨들, 국회단지 할머니들)이라면 거절 없이 잘라줄 것 같았다.
고충을 토로하듯 일부러 바글바글 묶지 않고 간 곱슬머리를 미용사 선생님은 가차 없이 슉슉, 평소에도 내 머리는 5분이면 잘라주던 것을 이번에는 조금 신경써서 30분쯤 잘라주시고 바닥에는 곱슬 가발 세 개 쯤 만들 것 같은 머리카락이 덮였다. 이게 다 제 건가요? 그려 니거여…하시는 선생님께서는… 만이천원으로 순식간에 아줌마를 아저씨로 만들어주셨다 ㅋㅋㅋ
생전 처음하는 짧은 머리라 거울 보면 왠 남자애가 자꾸 보여서 친해지려고 매번 손을 흔들어 안녕! 해준다. 그러고나서 책상 앞에 얌전히 앉아 그동안 읽던 흥미로운 책을 마저 다 읽었다.

표지 제목은 왜 이렇게 크게 뽑은 겨. 장미는 무엇. ‘왜 결혼과 섹스는 충돌할까’ 충돌하는 겨? 괜히 곁의 사람이 시무룩할까 봐 아니여 그런 거 아녀…누가 아무 말 안 했는데 괜히 삼가고 사리면서 읽는 동안 책꽂이에 제목 잘 안 띄게 꺼꾸로 꽂아두고 그랬다 ㅋㅋㅋㅋㅋ
원제는 sex at dawn-새벽의 섹스, 하는 관능적 이미지와 인류 여명기의 섹스, 이런 중의적 의미를 담지 않았을까 싶다. 진화심리학, 문화인류학, 생물학 등 다양한 학문의 수많은 연구들 가지고 와서 ‘표준적 담화’라 칭한, 일부일처제, 문화인류학에서 모노가미로 다루는 혼인 내지 짝짓기 행태에 대해, 사실 초기 인류가 그렇게 생겨 먹진 않았어! 하고 반론을 제기하는 문제적 책이었다.

초기 인류는 우리 유전적 이웃인 보노보나 침팬지에 가까운 난혼이었다, 고릴라처럼 승자 독식 일부다처제-는 오히려 아니고, 굳이 말하면 일처다부제-에 가깝다, 몸이랑 뇌가 처음에 그렇게 생겨 먹었고, 진화란 그게 그렇게 단기간 내에 바뀌는 게 아니라 그 모든 것이 지금의 수많은 갈등과 불행의 이유가 되고 있다, 뭐 거칠게 후려치면 이런 이야기로 400쪽을 꽉꽉 채워 두었다.

나는 뭔 책인지도 모르고 제목 담대하네, 이러고 펼쳤는데 기대도 안 했던게 엄청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이 책이 (심지어 유명하고 위대한 스티븐 핑커의 인간관도 엄청 까고) 다양한 기존 주장들을 반박하듯, 이 책을 반박하는 책도 나온 것 같긴 하고, 본인들도 어떤 부분들 서술할 때는 대상화나 반여성적인 측면이라고 공격당할 걱정도 제법한 것 같았다. 그렇지만 어쨌거나, 재미있는 주장이었고, 설득력 있어 보이는 부분도 많았고, 좀 억지스럽다 하는 부분도 있긴 했지만 대체로 공감해 버렸다.

책 말미에 이전에 읽은 에스더 패렐의 ‘mating in captivity’(한국어판 ’왜 다른 사람과의 섹스를 꿈꾸는가‘), 이스턴과 리츠의 ’the ethical slut’(한국어판 ‘윤리적 잡년’)도 인용 되어 있어서, 야, 나 이거 다 봤다, 반갑구만, ㅋㅋㅋ책만큼은 나도 모르게 비슷한 번지수 잘 찾네…뭐 그런 생각도 잠시 하고…

이런 급진적인(?) 책이 나온지는 십년 조금 넘었고, 내가 사는 세상은 어찌 되었나…돌아보니 응 일부일처 안 해 그냥 결혼을 안 해 하는 비혼의 흐름이 대세가 되었고, 너무 성애성애 하는 세상에 지친 듯 에이섹슈얼 내지 그레이섹슈얼인 사람들의 목소리도 제법 들리고(신간 소식도 들리고), 그렇지만 뭐 민법은 여전히 민법이고, 퀴어축제에선 경찰이랑 공무원들이 싸우고, 가장 급진적인 최근의 변화라면 평생 길었던 내 머리가 싹둑 짧아진 것 정도겠다.
어렵지 않아요. 삶은 흐르고 변하는 것. 우리 모두는 유동적인 존재들. 수학하다 시집 읽다 소설 보다 과학책 보다 섹스책 보다 그러는 거지 뭐…인생 별 거 있나…




+ 밑줄긋기
- 어떤동물도 그본성과 조화되는 행동을 했다는 이유로 죽음의 위협을 받아서는 안된다. (117)

-여자와 남자는 결혼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사랑은 계절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오고 간다. (모수오족 여성 양 에르체 나무, 148)

-여성이 많은 자율권과 권위를 가지는 사회는 결정적으로 남성 우호적이며, 평온하며, 관대하며, 성적으로 풍성한 경향이 있다. 남자 친구들이여, 이해하는가? 만약 당신이 살아가면서 성적 기회가 적어 불행하다면, 여성을 비난하지 마라. 대신 여성이 권력, 부, 지위에 동등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보장하라. 그리고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를 지켜보라. (156)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는 특유의 우아함으로 다음과 같은 적절한 질문을 던진다. “당신이 한 사람 이상을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이 그렇게 매우 분명한가? 부모의 사랑(부모는 자신들의 모든 자녀들을 똑같이 사랑하는 체라도 하지 않는다면 비난을 받는다), 책에 대한 사랑, 음식에 대한 사랑, 와인에 대한 사랑(샤코 마고에 대한 사랑이 호크에 대한 사랑을 가로막지 않으며, 우리가 매일 백포도주를 마신다고 해서 적포도주에 대해 불신을 느끼지는 않는다), 작곡가에 대한 사랑, 시인에 대한 사랑, 휴일의 해변에 대한 사랑, 친구에 대한 사랑…에서는 그럭저럭 여러가지를 사랑할 수 있는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왜 성애적 사랑은 그것에 대해 생각조차 해보지 않고 모든 사람이 즉각적으로 인정하는 하나의 예외일까?” (174)

-로버트 라이트는 <도덕적 동물>에서 “남녀 사이에 기본적인 저변의 동학은 상호 착취이다. 때로 남녀는 서로를 비참하게 만들도록 고안된 것처럼 보인다.”라고 통탄한다.
그것을 믿지 마라. 우리는 서로를 비참하게 만들도록 고안되지 않았다. 이 견해는 우리의 진화된 성향들과, 우리가 살고 있는 농업사회 이후의 사회경제적 세계 사이의 부조화에 대한 책임이 진화에 있다고 주장한다. 인간은 선천적으로 일부일처제적이라는 주장은 단순히 거짓말인 것이 아니라 우리가 계속해서 서로에게 이야기하고 있는, 대부분의 서구 사회가 고집하는 거짓말이다. (328-329)

+유인원의 신체 구조를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픽토그램. 너무 수컷 중심 연구 아니냐, 싶겠지만 또 반대로는 어찌, 뭘 재겠나, 가시적이고 쉬운 게 늘 연구되겠지…싶다가도 그런데 저거 다 어떻게 쟀대…사람은 물어보면 거짓말칠테고 고릴라 침팬지 보노보 이 친구들은 설마 죽여서 잰 게 아니길…(눙물 쥴쥴 좆간이 미안해…)

(못생김 주의)
+아줌마에서 아저씨로 변태(metamorphosis), 우화(emergence), 아니 머리카락을 잘랐는데 왜 성별이 바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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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3-06-19 18: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멋, 긴 머리 때도 좋지만짪은 머리도 보기 좋은데요? 보이시하고 시원시원하지 않나요? 저도 사실은 고수머리에 머리숱도 많아 남의 얘기 같지가 않네요. 예전엔 제 머리가 싢었는데 나이 드니까 제 머리가 좋아지더군요. 잘 잘라주기만 하면되니까. 아, 스트레이트 파마 저도 한동안 했는데 처음했던 그 기분은 정말 구원의 빛을 보는 것 같았죠. ㅋㅋ

반유행열반인 2023-06-19 18:44   좋아요 3 | URL
안녕하세요 스텔라 케이님, 처음 잘라보니까 많이 어색한데 오늘 같은 날 정말 시원하네요. 스트레이트 첫날 보다 오늘이 더 구원 받은 느낌이에요 ㅎㅎ 돈도 시간도 덜 들면서 간편한 길이 있었는데 너무 많이 버텼구나 하고요 ㅋㅋㅋㅋㅋ

Yeagene 2023-06-19 18: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머...마지막 열반인님 모습 보고 깜놀했네요 ㅎㅎㅎ 저 무슨 말 하려고 했죠?;;;;

반유행열반인 2023-06-19 18:45   좋아요 1 | URL
무슨 말 하시려고 했는지 저도 궁금한데요? 입틀막 이런 건가 ㅋㅋㅋㅋㅋㅋ하여간에 아저씨 됐네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Yeagene 2023-06-19 18:54   좋아요 1 | URL
아 저는 역시 일부일처제가 좋은 것 같네요 고지식한 사람이거든요 뭐 이딴 얘기하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ㅎㅎ열반인님 션해 보이시네요!♡

반유행열반인 2023-06-19 19:16   좋아요 1 | URL
저는 뭣이 됐든(?) 다같이 사이만 좋으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ㅎㅎㅎ

미미 2023-06-20 15: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 열반인님 위아래가 분위기가 완전 다르네요(당연한 건가?ㅋㅋㅋㅋ)
커트도 제법 잘 어울리시네요. 처음이시군요? 저도 요즘 더워서 숏 커트 할까 벼르고 있습니다🤭

반유행열반인 2023-06-20 17:16   좋아요 2 | URL
넵 처음인데 뭘 그 무거운 예쁘지 않은 털뭉치를 달고 다녔나 싶어요 ㅎㅎ 짧은 버전이 드라이빨이라 감고 보니 혼란의 카오스가 되었어요 ㅎㅎㅎ 같이 시원하시죠 ㅋㅋㅋ

우끼 2023-06-20 16: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짧머 한 어느 어린 날에 동생 친구가 저더러 형이라 한게 잊혀지지 않아요 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23-06-20 17:15   좋아요 2 | URL
우끼형!!!!

새파랑 2023-06-22 06: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 글로만 보던 열반인님의 이미지와는 다르게 실제 이미지는 순해(?) 보입니다~!! 숏컷이 더 잘 어울리시는거 같습니다 ^^

반유행열반인 2023-06-22 17:32   좋아요 1 | URL
제 글은 안 순(?)한 가요? ㅋㅋㅋ 이 편한 걸 이제야 짜르다니…생애 제일 시원한 여름 되겠습니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