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해의 몸짓
장성욱 지음 / 도서출판 아시아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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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16 장성욱.

올해 들어 나의 독서는 아주 비루하고 비참해졌다. 낮은 성적과 문제 풀이 공부해야 한다는 강박에 집에 쌓인(진짜로 쌓여 있음) 수천권 책들은 잠시 잠깐 책등의 제목만 읽는다. 아련하게, 그립고 아쉽게. 눈앞에 있는데도 책꽂이에서 차마 꺼내지 못하는 읽었거나/읽고 싶은 사랑하는 책들.

그나마 숨쉴 구멍은 수능 국어 영역의 문학/독서 지문이다. 원체 지식 교양서나 과학책 읽는 거 좋아하니까 독서 지문 읽는 건 괴로운 일이 아니어…야 할텐데 이게 또 이 짧은 글을 빠른 시간 안에 정확히 읽고 정답을 맞춰야 하니 고역이 되어 버렸다. 분야나 주제도 막 지적재산권, 행정입법, 원근법의 원리, 블루투스와 CDMA, 광학촬영/손떨림 보정 기술, 배의 진수와 독, 피씨알의 종류별 차이, 온갖 동서양 철학자들의 이런저런 요런저런 관점 차이 등등…하…

문학 지문에서 시나 소설(심지어 고전문학도) 읽는 건 그에 비하면 완전 꿀이다.(그렇다고 안 틀리는 건 아니지만…) 그러나 그 꿀물은 원없이 벤티 싸이즈로 벌컥벌컥 하는 게 아니라 스포이드로 찔끔찔끔, 재미있으려고 하면 여기까지, 나머지는 네가 나중에 찾아 읽…으라고 하진 않는다 너 시간 없지 메롱메롱 한다.

그때마다 떠오르는 영화 속 장면. 나는 박찬욱 영화들을 너무너무 좋아해서 감독 전작을 (스토커 빼고) 각각 최소 세 번 많게는 열 번 넘게도 봤다. 설거지하다가도 가끔 영화 속 대사나 장면을 떠올려 본다. 올드보이를 아마도 제일 많이 봤는데, 거기서 감금방에 갇힌 오대수가 텔레비전을 시계이자 달력이고, 학교고, 집이고, 교회며, 친구이자 애인으로 표현한다. 민해경이 보고 싶은 얼굴을 부르는 모습을 텔레비전을 통해 보며 자기 위로를 하다가 ‘우리 애인의 노래는 너무 짧다’하고 노래가 딱 끝나 버린다. 고개를 푹 숙인 나는 문학 지문을 짧게 맛보며 그런 자괴감을 느낀다… 공부 좀 잘하지 책도 못 읽고 이게 뭐니…

그렇게 두달에 한 권 겨우 읽을까 말까 한 감질나는 시간 동안 뭘 읽을지 고민하는 시간도 아까워 바로 옆에 코스모스를 펼치고 서문만 읽고는 멈춰두었다. 또 그러다가 새로 나온 소설의 앞표지-손짓인 듯 암매장인 듯 정체 모를 그것이 나를 불러서 공부를 잠시 멈추고 잠시 읽었다.

-수족관
작가의 등단작으로 신춘문예 지면에서 이미 읽은 적이 있었다. 그렇지만 읽은지 5년 지나면 안 본 거지… 그렇게 오래 지났어도 그때 신선하게 느껴졌던 요소들은 여전히 기억에 남았다. 등장인물이 새우, 넙치, 개불, 은어 등등으로 명명되고 서로 공동의 목표가 있지만 화합하지 못하고 삽질만 (아니 삽질조차 못)하는 모습을 보며 쟤들은 이미 죽었네, 수족관은 커녕 횟집 수조도 아니고 이미 어물전 바랜 눈깔 같은 모습이다 싶었다. 원래 인물 하나쯤은 읽는 사람이 동질감 가지고 그녀석한테 이입하면서 쫓아가게 되는데 이 소설도 그렇고 책 속 대부분의 인물들은 거리를 두고 싶은, 그렇지만 사실 깊숙하게 숨겨둔 내 안의 치졸함, 부끄러움, 그래서 저건 나랑 달라, 나는 아냐, 하면서 부정하지 못할 지점들을 건드리고 있었다.

감춰야 하지만 감추지 못한 것들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벗어 놓고 미처 세탁기에 집어 넣는 걸 잊은 속옷, 아빠 몰래 훔쳐둔 담배 한 개피(걸려서 뒤지게 혼나고 휴대전화 빼앗김), 어색하고 갑작스러운 마주침들, 사람은 사실 그렇게 선한 존재가 아니고 선해야 한다고 자꾸만 혼나니까 점점 쭈그러드는 게 아닌가, 작가의 사람을 보는 시선도 공감이 가고 또 그렇다고 그래서 다 나쁜 놈들! 하지 않고 조금의 연민도 (아닌 척 하지만) 남겨둔 거 같아서 읽는 재미가 있었다.

-데피니션과 저스티스
정의란 무엇인가. 너무 유명한 제목이 되어놔서 대부분 누군가 정의를 묻는다면 (수능 문항 제외하고) 저스티스일 것 같긴 한다. ㅋㅋㅋ 면접장의 여러 인물이 우연히 한 공간에 갇혔을 때 각자의 본색이 드러나버리는 장면이 약간 일본영화 같기도 하고 화자 새끼의 비서를 보는 시선이 비서직 하는 사람이 보면 엄청 썽질낼 것도 같긴 하지만. 그런 빻은 시선이 존재하는 걸 드러내는 것도 인물의 구차하고 평범하고 속물적인 욕구를 드러내는데 필요한게 아닌가 싶었다. 그러니까 저는 사드의 책이 아직도 (널리는 아니지만) 읽히는 거라 싶구요… 문학한테 너무 청정한 거 바라지 말라구… 패는 건 독자 몫이고…

-비극의 제왕
비겁의 제왕이 되어도 좋겠다, 싶었다. 재완이 말고 주변 사람들이 그렇다. 남의 비참으로 나를 조금 더 끌어올리고 그러려고 곁에 두는 사람들 그러다 조금 궁색해지면 내친 사람들에 대해 생각했다. 하여간에 한 장면은 한 번 읽으면 잊지 못할 만한데, 그 부분 때문이 아니라 그냥 평범하면서도 치졸한 어떤 마음들과 관계 맺음 때문에 부끄러워졌다. 남자들만 우루루 나오면 그안에서 별별 빻은 짓거리 빻은 소리 다 나오는데 그런 거도 써줘야지 읽고 알고 거를 수 있지 않겠는가…싶으면서도 우루루 나이트 가고 숙박업소 보내고 흐뭇해하는 장면은 정떨어지더라…

-어제부터 사람들이
이 소설을 읽으면서 권여선의 ‘손톱’과 소희가 자꾸 떠올랐다. 수현. 초성이 비슷해서 그렇겠지. 그렇게나 익숙한 이름들. 그래도 수현이 좀 더 씩씩해 보여서 더 짠했다. 체불 임금 받기 위한 로드무비. 비정규직 지망이지만 아직 체험하지 못한 비정규직의 현실에 대해 내가 소설만 읽고 뭘 말할 수 있겠나. 그래도 노동에 대한 소설은 자꾸 슬프다.

-꽃을 보면 멈추자
이전에 (벌써 4년 전이야) 작은 책으로 묶어 나온 걸 먼저 읽었었는데 비틀어보는 시선이 그럭저럭 재미있었다. 또다른 나를 찾아 올게, 나는 안 그러고 싶다. 내가 둘이라면 아마 나는 그 나랑 진짜 피터지게 싸울 것 같다. 엄청 꼴보기 싫을 것 같기도… 아프면 환자지 무슨 청춘이야 그 말도 자꾸 생각나고…

-화해의 몸짓
상호 파괴적이거나 같이 작당하고 바깥 세상을 뿌시고 다니는 커플들의 이야기에 늘 관심이 많았다. 조커와 할리퀸은 오히려 그런 서사에 식상해질 무렵에 알게 되었고. 시드와 낸시, 보니와 클라이드, 커트와 커트니(이건 아닌가)등등. 지독하게 싸우고 지독하게 사랑하고 같이 이런저런요런저런 일들을 하고- 역시 내집단의 불화는 외집단과 대립하면 자연 해소되고 내집단의 결속도 강화되고 그런 거지요… 이제 사회학과는 영 멀어지긴 했지만… 하여간에 여기에도 그런 커플 둘이 나와서 티격태격한다. 관찰자는 아저씨. 아저씨 혐오를 멈춰주세요…

-네가 웃어야
목살집 왜 가본 거 같은 기분이지…영상이 된다면 상수 역에 왠지 김윤석이 딱일 것 같다. 나도 영웅담을 믿지 않아요.

-낭만적 사람과 사회
정이현을 읽은 사람은 제목을 보고 익숙했을 것이다. 그런데 정이현도 재크린 살스비의 사회학 책에서 따온 거지롱… 나는 이제 어디가서 평생 구호를 외치거나 팻말을 드는 짓은 하지 않기로 했다.

오랜만에 소설 읽었다고 주절주절 하고 싶어가지고 아침 공부시간도 다 날리고 오랜만에 공부 회피 스킬 시전 중인 나새끼여…. 작가는 아직 할말이 많을 것 같고 다른 이야기들이 궁금하다. (아…그리고 해설은…ㅋㅋㅋ 평론가라고 이름 달고 원고료 받고 지면 실을 거면 좀 책임감 있게 했으면… 요약 일색에 그나마도 후져서 오히려 독서에 방해가 되겠다…여러분 해설은 빼고 읽으세요…) 다음 소설집은 저 수능 끝나고 내주시길…다음에 또 만나요… 다시 두달 동안 수학 감방(=스터디카페)에 칩거… 15년 동안 군만두만 먹는 기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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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agene 2022-05-16 13:3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15년 동안 군만두만 먹는 기분ㅎㅎㅎ
공부하는 게 딱 그런 기분인 것 같습니다.그래도 가끔 이렇게 칩거에서 벗어나 바람도 쐬고 그러세요.열반인님 가끔씩 쉬는 시간도 필요하니까요♡

반유행열반인 2022-05-17 09:44   좋아요 3 | URL
감사합니다 예진님 ㅋㅋ 놀다 보면 자꾸 놀 거 같아서 책 펼치는 것도 겁나요ㅋㅋ 막 갑자기 혼자 아무데나 돌아다니고 싶고 ㅋㅋㅋ

새파랑 2022-05-16 11:5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열반인님 좋아하는 책도 못읽으시고 열공하시는데 이번 수능 기대가 됩니다 ^^ 뉴스에 한번 나오시면 좋겠어요~!! 군만두만 드시지 마시고 건강 챙기시면서 열공하시길 바랍니다~!!

반유행열반인 2022-05-17 09:45   좋아요 3 | URL
뉴스에 나오면 막 공부하다 기절...성적표 받고 혼절...이런거 아닐까요...응원 감사합니다!!

페넬로페 2022-05-16 18: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공부하면 왠지 다른것들을 어루만지고 싶죠~~
6월이 되어 저는 슬럼프에 빠졌던 생각이 납니다. 벌써 시간이 아득하게 많이 흘렀어요~~
열반인님!
빨리 책상으로 돌아가시오.
열공하기를 바라며 항상 건강 챙기시고요~~

반유행열반인 2022-05-17 09:46   좋아요 3 | URL
아, 책상으로 가라고 떠미는 사람 페넬로페님이 처음이에요!!! 제 슬럼프는 월 계절 안 가리고 수시로 두드려 패는 것 같네요 ㅋㅋ건강 열공 빌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얄라알라 2022-06-28 01: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열반인님, 자알 지내시고 계시지요?

건강히, 부지런히 지내시리라 믿고 조용한 응원 드리며 지나갑니다^^ 곧 7월이네요

반유행열반인 2022-06-28 20:32   좋아요 1 | URL
얄님 안녕하세요? 안부 물어주시고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ㅎㅎㅎ 습하고 더운 여름 부지런히 보내고 있습니다. 늘 건강히 제 몫까지(?) 즐겁게 읽으시며 잘 지내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