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산드라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41
크리스타 볼프 지음, 한미희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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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07 크리스타 볼프.

몇 년 전 다음 웹툰에서 이하진 작가가 연재하는 카산드라를 재미있게 봤었다. 연재가 중단되어 잊고 있었는데 작가가 플랫폼 연재 대신 블로그에 최근까지도 연재를 이어가다 현재는 중단된 걸 방금 검색으로 알았다!! 아직도 완결이 안 되다니… 트로이 전쟁을 카산드라와 그 주변인물을 중심으로 재해석한 게 흥미로웠는데… 작가가 상황이 나아져서 오래 끌어온 이야기를 마무리 짓고 단행본 출간도 되면 좋겠다.
여름에 문학동네 세계문학 MBTI라는 걸 재미삼아 해 봤는데 크리스타 볼프의 ‘카산드라’라는 소설을 소개 받았다. 궁금해서 갖춰두었는데 얇은 책인데도 읽기가 만만치 않아 오래 읽었다.
전쟁이 끝나고 포로로 잡혀와 죽음을 눈앞에 둔 카산드라가 뒤죽박죽 회상하는 형식이라 시간 순서대로 되어 있지 않고, 그리스 신화나 일리아드의 인물들이 잔뜩 등장하는데 전부 읽은지 오래라 이름만 봐서는 제대로 그려지는 인물이 없었다. 아킬레우스는 엄청 짐승 같은 놈으로 나온다. 그렇지, 전쟁 설화는 언제나 영웅의 공적과 승리와 안타까운 죽음만 이어지지만, 여성의 입장에 서자면 그것은 죽음, 강간, 전리품으로 이 남자에서 저 남자로 넘겨지는 굴욕, 전쟁 상황에 대해 의견이라도 제시하려고 하면 버들고리 관짝 같은 데 가둬두고 죽지 않게 연명하되 입은 열지 못하게 하는 게 진짜 이야기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어두운 이야기들은 감춰지고 말하여지지 않는다. 한국전쟁에서 유공자들과 민족상잔의 비극은 자주 말하여진다. 그 전쟁을 직접 겪은 할머니는 일가족이 뒷산 방공호에 피했다가 거기에 폭탄이 떨어져 다들 숯처럼 까맣게 타 죽은 이야기, 미군에게 강간 당해 미쳐버리거나 외모만 봐도 가해자를 떠올리게 하는 아이를 유기하는 이야기, 군인들이 소를 가져다 잡아먹는 이야기, 너무 어린 중공군들과 마주친 이야기를 한다. 그런 이야기는 가려진다. 특히나 아군이 저지른 양민 학살이나 성범죄 같은 전쟁 범죄는 다들 쉬쉬한다.
책 자체는 재미없고 읽기 어려웠지만 전쟁으로 고통 받는 여성의 삶은 생생해서, 끝없이 저항하고 발버둥치고 할말하거나 발작하다 가두어지고 혼나고 반쯤 미쳤다 다시 회복하고 원치 않는 남자들을 받아들이는 카산드라를 보면서 많이 슬펐다. 고대 전쟁이란 걸 이야기로, 말로 치장해봤자 하나도 멋지지 않아. 머리를 베고 활을 쏘고 상대를 잔혹하게 죽이고 땅을 차지한게 뭔 자랑이고 영광인가. 그냥 야만의 역사이다. 전쟁이 시민의 나라를 만들었다는 게 역설적이다. 그 시민에는 당연히 전쟁하는 남자들만 들어가지만.


+밑줄 긋기
-나는 내가 아는 것을 믿을 수 없다는 걸 깨닫는다.
언제나 그랬고, 앞으로도 영원히 그럴 것이다.
우리가, 미리네와 아이네이아스와 내가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 있다는 공포를 느낀 적이 있음에도, 그것이 그렇게 어려울 줄 몰랐다. 아이네이아스에게 그 말을 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가 위로할 줄 모르는 것에 위로를 느꼈다.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그는 반지를, 뱀 반지를 주고 싶어했다. 나는 눈짓으로 거절했다. 아이네이아스는 절벽에서 바다를 향해 반지를 던졌다. 반지가 햇빛에 반짝이며 그린 포물선이 불로 지진 듯 내 가슴에 새겨졌다. 아무도 우리 사이에 있던 그런 중요한 일을 알지 못하리라. 서기들의 단단한, 트로이의 불로 구운 점토판은 궁정의 수입과 지출, 곡식과 항아리, 무기와 포로의 기록을 전할 것이다. 그러나 고통, 행복과 사랑을 표현하는 기호는 없다. 그것이 아주 큰 불행인 듯 느껴진다. (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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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12-07 23:02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열반인님 멋지쉼^ㅎ^

반유행열반인 2021-12-07 23:04   좋아요 5 | URL
못난인데 멋지다고 해주셔서 늘 감사합니다 ㅎㅎㅎ

반유행열반인 2021-12-07 23:06   좋아요 5 | URL
그리고 스트라빈스키도 써 주세요 ㅋㅋ진짜 저때문에 준비하시다 접은 거면 죄송해서 ㅋㅋㅋ나 불새도 들어봤다구!!!!

미미 2021-12-07 23:1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여성 입장에서 보면 전쟁서사에서 빈공간이 의아할수밖에 없는듯 해요. 그마저도 저는 너무 늦게 깨달았어요. 실제로는 지금도 분쟁국가에서 여성들은 갖은 고초를 겪는데 뉴스에서도 그런건 거의 다뤄지지 않더라구요.

반유행열반인 2021-12-07 23:14   좋아요 4 | URL
전쟁은 그냥 악인 거 같아요…남자들은 싸우다가 죽고 망가지고 여자들은 사냥 당하고 소모당하고… 인류가 진보했다면서 아직도 남의 목 자르고 총 쏘고 폭탄으로 온 마을 부셔가며 문제 해결하는 거 보면 우리는 그냥 못된 짐승…

새파랑 2021-12-07 23:2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열반인님과 카산드라 싱크로율 100퍼센트인거 같아요 ^^ 지적욕구가 강한건 정확한것 같아요~!!

반유행열반인 2021-12-08 06:55   좋아요 2 | URL
말 안 듣는 건 닮았는데 백퍼센트는 아닌 거 같아요 ㅋㅋ 트로이는 망하거나 말거나 난 내 살 길 찾을 거야...하고 다른 지중해섬으로 튀었을 듯요 ㅋㅋㅋㅋㅋ

Yeagene 2021-12-08 11: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제가 전쟁이야기를 잘 못 봐요...ㅠㅠㅠ 발췌하신 부분만으로도 꽤 인상적인 책이네요

반유행열반인 2021-12-08 11:47   좋아요 2 | URL
저 부분이 마음에 남고 압축적인데 다른 장면들은 정신이 없어요 ㅋㅋ챕터도 안 나누고 끝까지 주욱 시간 순서 오락가락 하면서 달리는… 주마등 느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