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골목의 약탈자들 - 당신의 돈을 노리는
장나래.김완 지음 / 스마트북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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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03 장나래, 김완.

부모님은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스물네살까지 금은방을 하셨다. 민트색 페인트로 벽을 칠하고, 간판을 달고, 좁지만 환한 조명을 갖춘 매장 벽에는 온갖 시계가 걸려 있었고, 진열장 안에는 금붙이와 보석과 손목시계가 전시되어 있었다. 그렇게나 많은 화려한 장신구들과 온갖 다양한 멜로디로 울려대는 알람시계가 신기해 한참을 살펴보고 만져보았다. 부모님은 그것들이 전부 우리 것이 아니라 빚이라고 했다. 가게를 열고 얼마 되지 않아 아빠는 거의 패닉상태가 되어 밤마다 엄마에게 가게를 그만 닫자, 닫자 했고, 세무조사를 걱정했고, 물건을 싸게 팔면 너무 싸게 팔았다고 닥달했다. 그렇게 가게를 연지 일년 남짓 되었을 때 조현병이 발병한 아빠는 엄마의 목을 조르다가 병원으로 실려가 오래도록 입원했다.
엄마 혼자 그런 물건들을 지키며 가게를 계속 꾸리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칼을 든 강도가 들어오는 건 아닐까 늘 불안에 떨었다. 실제로 부도난 수표로 물건을 구입하고 현금 거스름돈을 받아 사라지는 사기꾼, 반지계를 조직해 놓고 자기만 계를 타 먹고 도주하는 계주, 진열장 아래 숨어 급하게 점심을 먹는 사이 조용히 들어와 귀걸이 진열대를 통째로 들고 사라진 도둑, 여러 외국인이 들어와 이 물건 저 물건 꺼내달라고 요구하며 혼을 빼놓고는 슬쩍 물건을 빼돌려 달아나기도 하고, 물건을 꺼내느라 잠금 장치를 풀어둔 진열대 쪽으로 손을 넣고 물건을 집어가는 사람, 이 세상은 온통 도둑, 사기꾼, 강도만 있는 것인가 싶게 돈에 눈이 멀어 수단 방법 가리지 않는 온갖 사람들이 가게를 거쳐갔다. 나는 엄마 곁에서 온통 곤두선 신경으로 손님이 물건을 몰래 집어가지 않는지 살피며 관찰력을, 혹시나 강도나 도둑이 나타나면 재빨리 비상벨을 누르는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며 순발력을 길렀다. 그리고 누구도 온전히 믿지 않는 삶의 태도를. 그건 내게 득인지 실인지 잘 모르겠다.
가게를 열고 삼 년 후 쯤 외환위기가 닥쳤다. 사람들은 모자란 달러를 마련하자고 금붙이를 내놓는 현대판 국채 보상운동을 했다. 당연히 새로 귀금속을 사는 사람은 없었고 가게는 한동안 텅 비었다. 금모으기 운동본부보다 약간 더 금값을 챙겨주고 매입하자 일부 금을 팔러 오는 손님이 있어서 겨우 연명했다. 그리고 금이 다 수출되고 나니 이후 금값이 치솟아 또 금붙이를 구매하는 손님이 줄었다. 귀금속의 순도보다 합금이어도 세련된 디자인을 뽐내는 브랜드 쥬얼리 가게들이 주위에 들어서자 옛날식 금은방은 인기를 잃어갔다. 결혼예물도 종로의 귀금속거리나 해외 브랜드 쥬얼리를 찾는 사람이 많아졌다.
가게는 도로 확장 예정지 위에 세워진 가건물을 임대해 운영했고, 도로 공사가 시작되면 어떤 보상도 받지 못하고 폐업해야 하는 걸 알면서 시작한 장사였다. 건물주들은 토지 수용으로 넉넉한 보상이 예상되어 있었지만 막상 공사 일정이 다가오자 생계가 막막해진 상인들은 시청 앞에서 시위도 하고 국회의원이니 시의원이니 만나서 호소하면서 대책을 요구했지만 결국 이럴 걸 알고 들어왔으니 누구도 책임을 질 필요가 없다고 했다.
엄마와 집을 나오고 이혼 소송을 하면서 가게가 폐업되는 과정은 지켜보지 못했다. 술에 절어 살고 집나간 우리를 찾아다니며 거의 제 정신이 아니던 아빠가 제대로 물건값을 챙기며 정리를 했을지 알 수도 없고 궁금하지도 않다. 사람들은 친절한 엄마를 좋아했고 물건을 사지 않아도 커피를 얻어 먹으러 오거나 잡담하러 오는 사람-주로 아빠의 지인과 친구들-이 많았다. 아빠는 손님과 자주 싸우고 욕심을 내 비싼 값을 불러 손님을 놓치거나 막상 팔고 나서는 너무 싸게 팔았다고 누구에겐지 모를 화를 낼 때가 많았다. 가게를 자주 비우고 옆 양복점에서 포커를 치거나 친구들을 만나러 가서 술에 떡이 된 채 들어와 보안장치를 제대로 작동시키지 못해 자꾸 쎄콤 아저씨들이 출동할 만큼 가게 셔터를 닫는 일도 제대로 못했다. 그러면서 진열장 앞에서 책 읽는 엄마가 보기 싫다고, 책 보지 말고 너도 텔레비전이나 보라고 화를 냈다. 텔레비전에 자기가 싫어하는 정치인이 나왔다고 욕을 하거나 귀금속 다루는 망치로 브라운관을 깨어 박살내기도 했다. 그러고 집에 돌아오면 밤늦도록 엄마에게 술주정을 하고, 그릇이나 장롱 같은 집안 살림을 깨부수고 현관문을 깨뜨리기도 했다.
장사를 안 했더라도 아빠는 그런 사람이었겠지만, 어쨌거나 그렇게 생계를 이어가던 동안 나와 동생은 어려서 부터 집에 둘이만 있었고, 화려한 가게는 겉보기만 빛이 날 뿐 불안과 근심의 장소였고, 아빠에게 학대 당해가며 적성에 맞지도 않는 장사를 하던 엄마에게는 죽지 못해 사는 지옥이었다. 그래서 자영업에 대한 환상도 꿈도 가져본 적이 없다. 판매업에서 아르바이트를 해 본 경험도 없다.
그래도 왠지 제목이 끌리고, 자영업 시작하면서 호구가 되지 않는 법이라니, 아는 게 낫잖아? 하면서 이 책을 발견하고 읽기 시작했다. 한겨레 기자들이 기획 탐사 보도한 것을 책으로 엮은 것이었다. 사장님이 되는 꿈, 나만의 카페, 음식점, 독서실, 요가센터, 네일샵, 나와 가족을 먹여 살리고 부를 가져다줄 장소를 기대하며 가게를 연 사람들이 절망과 빚만 남은 채 소위 창업 컨설팅업체라는 작자들에게 수수료와 근거 없는 과도한 권리금만 쪽쪽 빨리고 망하는 내용들이 너무도 많이 나와서 읽는 내내 마음이 안 좋았다. 뭘 믿고, 하는 마음이 여러번 들었지만 남을 믿는 마음은 착한 건데 그걸 이용하는 나쁜 놈들 때문에 사업에 실패한 뒤 자책만 남는 사람들의 사연이 안타까웠다. 그래서 혹시라도 자영업을 준비하는 사람이라면 돈 잘 벌고 성공하는 법에 대한 책도 중요하지만, 이 책처럼 허튼 사람들에게 돈 뜯기지 않는 법, 사업 시작과 점포 임대 및 프렌차이즈 개업 같은 다양한 계약에 앞서 신중하게 충분히 정보 수집하는 것에 관한 책을 꼭 읽어 보았으면 좋겠다. 주식 같은 투자도 마찬가지인데, 남에게 일하게 하는 간접투자도 그렇게나 공부를 많이 해야 하는데 스스로 사업을 운영하고 경영하고 수익까지 내야 당장 살 수 있는 상황에서는 정말 많은 준비를 하고 조심해서 개업을 해야 되겠구나 싶었다. 그리고 이렇게나 많은 불공정 거래와 거의 범죄에 가까운 수법들이 판을 치는데도 제대로 개정, 제정되지 않은 법과 제도의 허점도 보완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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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12-03 21:37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그림만 봐도 억소리나네요 ㅜㅜ 먹고살기 힘든 시대인거 같아요. 그냥 월급 받는게 젤 맘 편한듯 합니다 ~
열반인님 많이 힘들게 어린시절을 보내신거 같아 맘이 아프네요 ㅜㅜ

반유행열반인 2021-12-03 21:40   좋아요 6 | URL
월급 따박따박 나오면 감사한 일인데 또 (저란) 사람이란 게 만족을 모르고 만날 불평이라 반성하네요 ㅋㅋㅋ
어려서부터 인생 공부 열심히 했지 싶어 이제는 인생 공부 그만하고 (창업은 참고 노동력이나 팔아라 노역자여…) 수학 과학 공부나 하려고 합니다 ㅋㅋㅋ

오거서 2021-12-03 21:43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진솔한 경험에서 쓰여진 리뷰라서 숙연해지고요, 반유행열반인님의 바람을 담은 메시지가 우리 사회에 널리 퍼져야 합니다.

반유행열반인 2021-12-03 21:46   좋아요 5 | URL
숙연할 정도는 아닌 옛날이야기인데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거서님! 이런 심층 취재해서 문제점 널리 알려주는 기자님들 덕분에 조금씩 퍼지는 것 같아 다행인데 아직 먼 길 같네요 ㅠㅠ

scott 2021-12-03 21:5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열반인님 지난 시절 눈물 납니다 ㅠ.ㅠ 서민들은 이런 악랄한 법망을 벗어난 먹이 사슬 ㅠ.ㅠ

반유행열반인 2021-12-03 21:56   좋아요 5 | URL
자영업이 예나지금이나 힘든 일 같은데 거기에 더해서 뭔 컨설팅이니 브랜드 프랜차이즈니 하면서 사람들 희망고문하다 말려 죽이는 꼴 보니 화가 나는 책이었어요. 그래도 꼭 필요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었습니다. 이제 카페나 무인독서실이나 음식점이나 방문/배달 같은 거 할 때마다 그냥 지나가지 못하고 자꾸 생각날 거 같아요. 저분들 다 엄청 고생하네 하고요…

Yeagene 2021-12-03 22: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열반인님 ㅠㅠㅠ
힘든 세월 잘 이겨내셨어요 ㅠㅠ
이 책은 저도 들어본 적이 있는 얘기들을 하는 듯하네요.언젠가 저도 창업하게 되면 꼭 읽어봐야겠어요.

반유행열반인 2021-12-04 07:30   좋아요 2 | URL
언젠가 창업하시게 되면 꼭 읽으시고 부자되셔요 예진님 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