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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살바도르 아파네카 이사벨 - 200g, 홀빈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3년 7월
평점 :
절판
점심 식사 시간에 내 식판을 건네다 보며 중년 여성 직장 동료(같은 부서는 아님)들이 한 마디씩 한다. 적게 드시네요. 그러면 나는 대꾸할 말을 못 찾고 그냥 웃어 보인다. 진짜 적게 드신다. 속이 안 좋으신가. 재차 던지는 인사 치레의 말이지만, 뭔가 리액션을 바라듯 같은 말이 반복되지만, 먹는 양 가지고 이렇다 저렇다 하면 진짜 할 말이 없다. 칸막이가 있어도 마스크 벗은 자리에서는 말을 아끼려한다. 그런데도 친화력 좋고 수더분한 어른들은 구성원 중 최고의 아웃사이더, 내내내향성 젊은이와 중년 사이에 낀 이 늙은 밀레니얼(?)에게 말을 건네며 사회성을 단련시켜 주려고 애를 쓰신다. 그러다보면 가장 작은 아이의 나이, 큰 아이의 나이, 두 아이의 나이 차를 물으며 호구조사를 하다가 드디어 공통점을 찾았다!하듯 우리 아이들도, 우리 아이들도 차이가 많이 나지, 하면서 말문을 이어간다. 한창 신나게 자녀들 이야기를 풀어가는 어른들을 앞에 두고 금세 식판을 비운 내가 맛있게 드세요, 하고 먼저 일어나 식당을 벗어나 일하는 자리로 돌아간다.
지금의 이 삶을 벗어나고 싶다.
오늘 박상영 신작 소설 읽는데, 이 문장에 팍 꽂혀 가지고. 저런 기분을 어려서는 너무나 자주 느꼈다. 지금은 삶까지는 아니고, 삶은 그래도 그럭저럭 견딜만한 형태를 갖추어 가는 중인데 밥벌이 공간만은 여기를 벗어나고 싶다, 하며 번민하는 시간이 길다. 아 그런데 박상영 진짜 좀 짱이다. ㅋㅋㅋ 방구석에서 찔찔 짜며 듣던 넬의 어차피 그런 거가 나오고, 중경삼림이 나오고, 콜드플레이도 잠깐 나오고, 캔모아와 월드컵과 비기알! 피엠피!가 나온다!! 박상영이 나보다 쬐에에에끔 어린데 나는 그때 고등학생이었는데 문화 코드가 맞는 거 보니 작가님 중학생 때 성숙했구나… 주마등을 마구 돌려주는 우리 상영이…
오바마의 회고록도 읽고 있는데, 야심차게 세상을 바꾸겠다며 열심히 달리고 있는 사람을 보면 부러운 마음이 잠깐씩 든다. 저런 어마어마한 낙관주의라니. 세상에 관한, 타인에 관한, 자신에 관한 저만한 믿음이라니. 나 하나도 어떻게 못하겠는데 거대한 수억 인구, 더 나아가 나라 밖 전 세계 사람에게까지 큰 영향을 미칠 큰 나라를 이끌어 보겠다는 꿈을 꾸다니. 수많은 사람 앞에 비전과 약속을 설파하는 상상만으로도 숨이 막힌다. 확신 혹은 완벽한 자기기만. 자기최면과 집단최면. 다시 삐딱해짐ㅋㅋㅋㅋ
대충 이런 안타까운 성향으로 굳어진 인간이라 퇴근해서 안전한 공간으로 기어 들어와 새로 온 커피 봉지를 까서 드립하고, 아이참 냄새도 꼬소하고 진한게 이번 커피 내 취향, 중남미 원두 좋다…하면서 적게 먹고 금세 꺼진 뱃속으로 냉동 부리또랑 펑리수랑 아몬드 쿠키 같은 걸 커피와 함께 넘겼다. 잔뜩 먹고 보니 나 적게 먹는 사람 아닌 거 같은데…그저 한 번에 많이 못 먹고 조금씩 자주 먹어야 할 사람일 뿐…일 할 때는 바빠서 그게 안 될 뿐… 나는 안 되는 게 참 많다.
그런데도 욕심은 많아서 이 책도 보고 싶고, 저 책도, 참 주식도 사야 하고, 주식 공부도 더 해야 하고, 수학 문제는 이제 도함수를 마치고 접선의 방정식도 풀어야 하고, 화학 공부는 하다 마네 언제 하지 시무룩, 듀오링고에서 영어랑 아랍어 공부도 시작해버렸어, 이 사람도 저 사람도 챙겨야 하고, 북플에서 걸음 수를 눌러야 매일 50원이라도 벌지, 농협 앱에서 입금도 하고 또 걸음 수 업데이트해야 우대 금리를 준대, 빙글빙글빙글 챙길 게 참 많다. (꼬맹이 둘을 제일 안 챙기는 듯…방치형 육아)
주중에는 캡슐커피만 겨우 마시니까, 토요일이랑 일요일은 새로 산 원두 열심히 드립드립 해서 마셔야겠다. 새 커피 이름도 예쁜데 맛있어서 신난다. 아이참 이쯤 되면 진짜 성인 ADHD아닐까 싶게 생활도 글도 산만하다…오랜만에 일기 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