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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안나 카레니나 3 ㅣ 펭귄클래식 130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윤새라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12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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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30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어깨 사이에 머리를 넣고 열차 아래 온몸을 밀어넣은 안나가 기차 바퀴에 머리가 치이고 몸이 동강나는 동안 무얼 느꼈는지 무슨 생각을 했는지 현실이라면 알 방법이 없다. 그걸 말해줄 안나는 이미 거기에 없으니까. 있었다가 없는 사람. 그렇지만 소설이니까, 톨스토이는 우리에게 전해준다. 마지막 순간 안나가 신에게 용서를 빌었다고.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걸 느꼈다고. 나는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물론 작가에게는 독자가 읽어주길 바라는 방향성이 나름대로 있었을 것이고, 그러니까 레빈이라는 톨스토이의 아바타 같은 인물이 등장해 신의 섭리와 선한 삶이라는 깨달음을 얻으며 죽지 않고 행복하게, 평안한 일상 속에서 어떻게 살 것인지 갈피를 잡기 시작하는 장면을 덧붙여 놓았을 것이다. 그래도 내 마음에 들지 않는 결말이었다. 죽을 때 죽더라도 안나가 끝까지 항복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안나가 모두를 걸고 선택한 브론스키와의 사랑은 유효기간이 있었다. 그 모든 슬픔이 안나의 편집증과 오해였는지, 정말 브론스키의 마음이 달라졌는지는 명확하지 않았지만, 적어도 안나가 사랑받는다고 느끼는 일은 어느 순간 중단되었다. 그때부터 안나는 의심하고, 질투하고, 집착하고, 끝없이 사랑을 갈구하며 브론스키가 안나, 이렇게는 도저히 살 수가 없소. 하는 말을 하게 만들었다. 이렇게 살 수는 없어요, 하던 안나의 말이 브론스키에게로 옮겨 가게 만들었다.
어느 겨울 친구 여럿과 떠난 여행지의 추운 밤 하늘 아래 내 사랑 앞에서 이렇게 살 수는 없어, 하고 나조차도 뜻 모를 말을 하며 울던 날이 떠올랐다. 집착과 환멸의 끝에 내 사랑이 사라지는 걸 바라보던 유월, 내내 부재의 금단현상으로 울며 보내던 어느 여름들도 생각났다.
사랑이 사라져도 삶이 계속 되고, 그 사랑이 돌아오는 행운을 누리거나, 새로운 사랑이 다시 시작될 수 있다는 걸 이제는 안다. 그러니까 여기 있는 나 이외에는 모두 흘러가는 거라고, 그저 이 순간 이 공간에서 내가 담길 수 있는 관계에 감사하고 기뻐하며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기로, 미리 슬퍼하거나 미리 걱정하지 않기로 한다.
안나에게는 그런 말을 건네줄 사람도, 그걸 알만한 충분한 경험도 없었다. 안나를 둘러싼 세상과, 사람들과, 관계의 흐름을 조감하게 해 줄 소설도 영화도 없었을 것이다. 미쳐 날뛰며 죽음 말고는 고통을 벗어날 방법이 없다는 절망감을 느끼는 일이 어떤 건지 알아서 슬펐다. 모르핀도 사랑스러운 자녀도 내내 위로가 될 수 없고, 온세상이 등돌리고 비난하는 중에 마음을 털어놓고 괜찮다 너는 틀리지 않다 지지하는 말을 해줄 사람이 없고, 모든 일의 시작이자 끝인 브론스키마저 곁에 있지 않고 곁에 있을 때도 냉담하게 느껴진다면. 안나는 똑똑하고 아름답고 열심히 책을 읽고 누군가를 보살피기도 했지만 결국에는 모든 걸 역겨워하고 거짓으로 느끼며 사라지는 일을 실행에 옮겼다.
예전에 밀양이라는 영화를 좋아해서 여러 번 보았다. 신실한 한 친구가 말하길 자기 주변의 사람들은 그 영화를 믿음을 가지게 된 신도가 시험에 들자 하나님 뜻을 거스르다 벌받는 내용으로 이해하며 감명깊게 보았더라고 했다. 그 때 같은 책이나 영화라도 살아온 방식이나 가지고 있는 믿음, 세계관에 따라 서사가 얼마나 다르게 읽힐 수 있는지 실감했다.
안나 카레니나 또한 그럴 것 같다. 누군가는 안나를 이해하거나 이해하지 못할 것이고, 좋아하거나 싫어할 것이다. 레빈의 삶에 감동을 느끼고 존경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는 솔직히 레빈이 좋은 사람일수는 있겠지만 매력도 없고 호감을 못 느끼겠다. 차라리 별 고민 없이 저 하고 싶은대로 살면서 여기저기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오블론스키가 워너비인 나란 새끼…이지만 유한한 인간의 사랑 대신 영원하고 조건 없는 누군가의 사랑을 발명한 것조차 기만이고 거짓이야! 너희의 매트릭스고 마약이야! 하는 부정의 말은 마음 속으로만 하고, 그래, 그거라도 있어야 견디는 삶이란, 하고 가여운 마음을 가지기로 했다.
안나도 그저 가여웠다. 앞으로 나아질 거란 위로를 건네봤자 지금의 고통이 덜어지는 건 아니니까, 그냥 죽지 말고 버틸 수 있게 손을 꼭 붙잡고 내내 지켜봐주는 누군가가 있었더라면. 그 누군가가 하나가 아니라는 믿음을 잃지 않고 나도 그렇게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붙들어주는 손이 되어주려면, 죽지 말고 살아야지. 말벌처럼 야금야금 애벌레를 통으로 잡아먹고 오징어살을 오려 먹지 말고, 꿀벌처럼 조금씩 무한번 단맛을 모으고 모으며 버티는 사랑을 해야지. 그런 삶을 살아야지.
(후반부에 레빈이 말벌 타령하는 거 보고 웃겨 가지고 ㅋㅋㅋㅋ말벌하면 예전에 동해안에 말벌 떼 나타나서 오징어살 베어간 게 자꾸 생각나서 말벌 타령으로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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