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박완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1995년 12월
평점 :
절판


-20210218 박완서.

클럽하우스라는 앱을 깔았다. 트위터는 백만년 전에 탈퇴, 카톡 삭제한 지도 한참, 페이스북도 방치하다 삭제하는 등 SNS는 거의 다 정리한 마당에 뭔가 새로운 걸 까는 심리는 호기심이었다. 인스타그램은 계정만 파서 앱도 없이 웹페이지로 가끔 들러 몇 안 되는 작가들 소식이나 보는 용도에 게시물은 하나도 없는데, 거기 김금희 작가가 온라인 독서모임을 한다는 소식과, 첫 책모임을 인스타라이브로 하는 동시에 클럽하우스에서도 송출한다는 말에 음? 그게 뭐임? 하고 검색했다. 오디오 채팅방 같은 건데, 누군가 나를 초대해야지만 가입이 되고 아직 안드로이드 어플은 개발이 안 되어 있다고 했다. 일단 깔고 기다리면 지인이 초대해준다는 소리가 있길래 그렇게 했더니 정말, 대학 때 후배가 초대해줘서 구경을 할 수 있었다. 서로 연락처가 있는 대학 선후배들 겨우 몇과 팔로우를 하고, 이런저런 방 목록만 구경하다 실수로 눌러 들어가면 사람들이 신나게 떠들고 있었다. 아...난 팟캐스트조차 안 듣던, 오디오는 커녕 지나친 텍스트형 인간인데 왜 여기에...하다가 김금희가 한다는 책 모임까지 다섯 시간 남은 걸 알고 독서모임의 선정도서인 박완서 작가의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를 펼쳤다. 이번에 리커버판이 나왔는데 난 몇 년 전에 중고로 700원에 사 놨더라...어마어마한 가격임...그래도 집에 이미 있는 게 신나서 열심히 읽었지만 라이브 무렵까지 겨우 절반쯤 봤다 ㅋㅋㅋ
아홉시에 독서모임 딱 들어갔는데… 인스타 라이브에 중점을 둬서 그런지 클럽하우스에서는 작가님 목소리가 잘 안 들렸다. 마침 꼬맹이들 뒤늦은 저녁 먹일 타이밍이라 그냥 끄고 밥먹이러 감 ㅋㅋㅋ 그러고나서 오십 분 쯤 지나 들어가니 이미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되었네요-하며 마무리하고 다음 책을 소개하고 있었다. 딱히 책모임 낄 생각은 아닌데도 김금희 작가가 엄청 칭송을 하는 ‘트릭 미러’를 오! 하고 모셔 놓았다. 이날 라이브가 2월 14일이었는데 다음 라이브는 3월14일이라고, 작가님이 스스로를 커플브레이커로 칭하는 우스개 들으며 결국 라이브 본 내용은 하나도 못 듣고 하루를 마무리 했다 ㅋㅋㅋ
아, 다른 매체는 녹화가 되는데 클럽하우스는 대화 내용을 인스턴트로 하고 딱 휘발시키는 형태라 그때 그 방에 있던 사람만 내용을 알 수 있다. 이건 나름의 장점이 될는지 더 확장 못 하고 소멸하는 매체가 될는지...는 아직 클럽하우스에서 입술 한 번 달싹여보지 못한 아웃사이더가 궁금할 지점은 아니고요 ㅋㅋㅋ

그래도 김금희 작가 덕분에 박완서 작가 소설을 처음으로 읽게 되었다. 처음이라니! 몇 년 전에 책 사 모을 때 박완서 작가랑 박경리 작가 책 부지런히 쟁여 놓고 토지 말고는 하나도 안 봤다 ㅋㅋㅋ
이 소설은 한국전쟁 당시 서울 사람들이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고 피난가고 인간성 개박살 나고 누구는 죽고 누구는 다치고 하는 장면들을 너무도 생생하게 그려놔서 재미있게 읽었다. 나 서울대 입학한 여자야, 하면서도 빈집털이해서 연명하고, 숙부에게 의지하고, 피엑스에 취직해서 미군한테 빌붙어 먹고 사는 처지 한탄하는 장면이 이어져 나오는데, 그 비참함을 알 것 같았다. 삶이란 호구란 먹고사니즘이란 무엇인가...그러면서도 화자 자존심 더럽게 세네...분열 오진다 하면서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후반부에서 연애담 나오면서 소설 구성이나 표현이 조금 어그러지는 느낌이 들었다. 앞부분부터 오빠 죽는 부분이나 피엑스 초기까지는 나름 소설답다 객관화 되었다 싶었는데, 지섭과 남편감 사이에서 간보는 장면에서는 너무 내밀한데다 친밀한 사람들 이야기 쓰다보니 온도 조절 안 되네 싶었다 ㅋㅋㅋㅋ(야 임마 니가 박완서 선생님도 까냐...) 화자인 박보다 한 살 어리고 시집 읽고 줄줄 외고 다니고 예쁜 거 모으기 좋아하고 재밌게 노는 데 도가 튼 지섭 보니까 왜 나 저런 사람 알 것 같냐 왜 친숙해ㅋㅋㅋ 지섭과 남편감 인물에 대한 묘사를 보면 그래도 박은 연애 다운 연애도 하고 결혼은 남편감 될 만한 사람을 골라갔구나(뭐 그- 트릴로지 중 삼부작에서 과연 남편이 속 안 썩이고 잘 살았을까 그랬다면 소설가가 됐겠냐 ㅋㅋ싶긴 했지만…아 넘겨짚지 마라 선 넘지 마라 박완서 선생님이시다...) 하면서 또 재미있었다.

글 앞에서 최신상 SNS타령하고 있었는데, 본 적도 만난 적도 없는, 혹은 너무나 오래 전에 스친 사람들하고 한 방에 모인 듯 목소리 나누며 재잘대는 게 가능해진 세상과 전쟁통에 목숨 부지를 걱정하던 소설 속 70년 전을 비교하면 아예 두 세상에 사는 사람들 두 종 자체가 다른 게 아닌가 싶을 정도이다. 그래도 먹고 사는 걱정하고, 가족하고 애착과 애증을 반복하고, 사랑하고 헤어지고, 잘났다고 우세 부리는 가진 사람이나 잘 사는 나라 사람, 높은 계급 계층 사람 보며 아니꼬운 동시에 비참함 느끼는 건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다. 시대는 달라도 박완서 작가는 그런 보편적인 감정과 상황을 소설 안에 잘 담아 놓았다. 그래서 지금 읽는 우리도 재미있게 관심을 가지고, 또 공감하면서 읽는 것 같다. 지금 우리가 풀어 놓는 이야기들은 그렇게 남을 수 있을까? 아니면 그저 순간 번뜩이다 영원히 깜깜하게 잊혀지고 말까. 뭐 깜깜해도 어쩌겠어 지금 번뜩거리고 쓰면서 우리끼리 재밌으면 그걸로 족하다. 미래인들아 우리를 이해하려고 하지 마. 그냥 미개하고 구질구질한 너희와는 다른 미진화 종이란다 ㅋㅋㅋㅋ

+밑줄 긋기
-나도 석간신문을 보다 말고, 앉은 자리에서 고개를 비틀어 미친 듯이 만개한 벚꽃을 내다보았다. 왜 만개한 꽃만 보면 미쳤단 느낌이 드는지 몰랐다. 밤도 아닌, 낮도 아닌 시간의 벚꽃이 풍기는 밝음은 화사하다기보다는 숨을 틀어막을 듯이 요기로워서 그런지도 몰랐다.(275)

-아무튼 다 왼 시보다 토막난 시가 더 생각나는 건 지섭이가 나를 감질나게 한 유일한 예이기 때문이다. 그는 좋아하는 사람하고 같이 있는 동안은 최선을 다해 자기의 존재로 상대방을 완벽하게 채우려는 타입이었다. 딴 생각을 하는 걸 참지 못했고 그럴 새도 주지 않았다. 그가 부산으로 가고 나면 볼일을 보러 갔단 생각보다는 아, 쉬러 갔구나 싶을 정도로 그는 누구를 좋아하는 일에 미련하도록 자신을 혹사했다.(285)

-보셔요, 엄마. 두고 보셔요. 엄마가 그렇게 억울해하는 건 당신의 생살을 찢어서 남의 가문에 준다는 생각 때문인데 두고 보셔요. 나는 어떤 가문에도 안 속할 테니. 당신이 나를 찢어 내듯이 그이도 그의 어머니로부터 찢어 낼 거예요. 우린 서로 찢겨져 나온 싱싱한 생살로 접붙을 거예요. 접붙어서, 양쪽 집안의 잘나고 미천한 족속들이 온통 달려들어 눈을 부릅뜨고 살펴봐도 그들과 닮은 유전자를 발견할 수 없는 전혀 새로운 돌연변이의 종이 될 테니 두고 보셔요. (303-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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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18 22: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2-18 23: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나 2021-02-18 23:0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아니 박 선생님 저 얘기로 소설을 또 쓰셨구나 ㅋㅋㅋ 그 남자의 집에서도 한 번 하셨었는데 학교 졸업하듯이 둘이 엉엉 울면서 이별하고 딴 사람한테 시집 갔다고.. 그리고 나중에 다른 소설에서는 사랑밖에 난 몰라 타입 사촌동생 보고 저렇게 살았어야 했나... 뭐 그런 소설도 있고. 저도 이상하게 박완서 작가꺼는 몇 편 못봤네요.(그 몇 편이 왜 다 연애얘기야 ㅋㅋㅋ) 아, 덕분에 그 힙하다는 앱 구경하게 됐네요.. 😎

반유행열반인 2021-02-18 23:09   좋아요 5 | URL
ㅋㅋㅋ나 초대장 세 개 더 생겼는데 찐친이 너무 없어서 놀리고 있다는요 ㅋㅋㅋㅋ검색해 보니 그 남자의 집이 트릴로지 삼부작이래요! 싱아-그 산-그 놈 순 ㅋㅋㅋㅋㅋ

하나 2021-02-18 23:11   좋아요 4 | URL
아 그렇게 되는 거군요 삼부작이 싱아랑 그 놈(ㅋㅋㅋㅋㅋ) 읽었으니까 저도 그 산 읽겠습니다! 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21-02-18 23:13   좋아요 4 | URL
저 사 놓은 거 있는데 제건 그 남자네 집이네요? 다른 분도 그 남자의 집 하길래 어 내건 유사품인가 하는 중...

하나 2021-02-18 23:15   좋아요 4 | URL
읽은지 오래 돼서 아마 제가 틀렸을 거예요 ㅋㅋㅋ 그 여자네 집도 있으니까 짝 맞춰서 그 남자네 집이 맞네요(검색함) 어차피 그 놈이 그 놈이죠 모 ㅋㅋ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21-02-18 23:21   좋아요 4 | URL
지섭인가요 거기 주인공도? 뭔가 잘생기고 잘 노는 치명적인 남자 느낌이라 그리로 갔으면 인생 꼬였을 거 같고 명작 더 많이 썼을 것도 같다...ㅋㅋㅋㅋㅋㅋㅋ

하나 2021-02-18 23:32   좋아요 4 | URL
그 남자네 집은 현보래요 이름이. 전쟁통에 마당에서 꽃 키우고 같이 있음 되게 행복하고 뭐 그런 묘사가 많았는데 ㅋㅋㅋㅋ 박 선생님 진짜 솔직하다 생각했던 게 안 이루어졌기 때문에 뒤돌아보니 행복했던 거지 모... 이런 냉정한 판단 ㅋㅋㅋㅋ

붕붕툐툐 2021-02-19 08:4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말로만 듣던 클럽하우스 회원님이시네여~ 열반님 핵인싸!!👍👍

반유행열반인 2021-02-19 09:00   좋아요 1 | URL
현실 아싸가 암만 방구석에서 핫한 앱 깔면 뭐해요 ㅋㅋㅋ심지어 거기서도 유령회원 ㅋㅋㅋㅋㅋ’트릭미러’읽는 중인데 인터넷의 이런 속성에 관해 (개뿔 아무것도 안 하면서 넷00이즘 하고 올바른 척 핫한 척 힙한 척 하는 거 ㅋㅋㅋ)읽는 중인데 뼈 맞은 듯 그런게 재미나네요 ㅋㅋㅋ아침부터 갑자기 붕붕툐토님에게 책 팔이 시전 중 ㅋㅋㅋㅋㅋㅋㅋ왜 ㅋㅋㅋㅋ

바다그리기 2021-02-19 09:1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짝사랑남을 보러 먼 길을 내려가고
감히^^ 박완서 작가님도 까는 열반인님, 그래서 너무 멋집니다!
마흔을 코앞에 둔 나이에 등단 하셔서 문단의 거목이 되신 이력만으로도 존경스러워 무작정 팬이 된지라 많은 작품을 읽었는데 열반인님 글과 하나님과의 대화를 읽다보니 내용들이 가물가물해서 그 책들을 읽은거 맞나 혼란에 빠져버렸네요. (아무래도 머리 속에 지우개가 있는듯.. ㅜㅜ)
트릴로지 3부작도 두분 덕에 처음 알았으니 그 핑계로 다시 한번 읽어봐야겠네요.^^

클럽하우스는 요즘 하도 말들이 많아서 궁금하긴 했는데, 안드로이드는 아직 안되는군요.
스스로를 사회적 고립 지향자라고 말하고 다니는 저로선 낯선 이들과의 방에서 청취자와 화자 역할 모두 어렵고 불편할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몹쓸 호기심으로 기웃거리게는 되네요. 종종 올려주시면 대리 체험 해도 될까요? ㅎㅎ
본문의 독서감상도 늘 재미있고 흥미진진해서 열심히 읽지만, 두분의 핑퐁 댓글을 읽으며 스토커처럼 근황도 짐작하고 새로운 정보도 얻고 혼자서 새 책도
챙기고 있어요. 늘 감사해요~
이사 준비는 잘 하고 계신가요?
이사 소식 올려주셨던 때부터 새로운 곳에서 새롭게 펼쳐질 열반인님의 하루 하루들이 건강과 행복과 감사로 가득하길 온라인 절친(제 맘대로^^)이 마음 깊이 응원하고 있습니다.
이젠 정말 따뜻하고 포근한 기쁨을 누리는 날들만 가득하시길요.
음력 설도 지났으니 이제 진짜 새해네요.
복 많이 많이 받으세요~

반유행열반인 2021-02-19 11:01   좋아요 1 | URL
오랜만에 정성스러운 긴 댓글 감사드리고 반갑네요!!ㅎㅎ 오래도록 박완서 작가 좋아하시고 열심히 읽으신 바다그리기님 앞에 겨우 한 권 읽은 제가 막 까고 깝쳐대고 실례는 아닌지 걱정입니다 ㅋㅋㅋ
이사는 딱 두 달 쯤 남았네요. 대출도 받으러 가야하고 공사도 섭외하러 다니고 덕분에 바빠서 심심할 틈이 없어요.
늘 응원해주시고 따뜻하고 정다운 말씀 건네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바다그리기님도 새해 복 담뿍 받으시고 하루하루 전날보다 조금씩 더 행복하시길 빌어요!!!

바다그리기 2021-02-19 11: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두달이면 참 좋은 계절에 이사 하시겠네요.
모든 일들이 물 흐르듯 순조롭게 잘 진행돼서 편안하게 이사 하실 수 있기를 바랄께요.
복 많이가 아니라 ‘담뿍‘ 받으라고 해주시는 인사, 예쁘고 정감 넘치는 표현이라 너무 좋네요. 감사합니다~
매번 댓글 달진 않아도 올려주시는 책과 커피와 일상에 대한 글들 읽으며 위로와 격려 받고 힐링하고 또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그것도 감사드려요~

Yeagene 2021-02-19 13: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박완서 선생님은 오래전 싱아와 호미란 작품만 읽어보았는데 싱아가 트릴로지의 첫번째였군요.열반인님 덕분에 처음 알았네요.이왕 삼부작의 첫번째를 읽었으니 나머지도 읽어봐야겠어요 ㅎㅎ
위의 핑퐁댓글 저도 참 즐겁게 읽었어요..이사가 아직 두달정도 남았군요.열반인님 잘 준비하실꺼라 믿슙니다!ㅎㅎ

반유행열반인 2021-02-19 17:40   좋아요 0 | URL
저도 싱아 가지고 있는데 그 남자네 집 보고서 봐야겠네요 ㅎㅎㅎ예진님도 즐거운 독서되시길 빕니다 ㅎㅎㅎ 늘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