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성적 동의 - 지금 강조해야 할 것
밀레나 포포바 지음, 함현주 옮김 / 마티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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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29 밀레나 포포바.

살면서 동의라는 말을 어디서 가장 많이 접할까. 나는 상거래나 사이트 이용, 복지 지원 같은 공적 상황에서 ‘개인 정보 수집 및 이용에 동의하십니까’ 하는 물음에 동의함, 을 체크하지 않으면 해당 서비스 이용이 어렵거나 지원을 받을 수 없는 경우에서 주로 마주쳤다. 어차피 동의함 말고는 선택지가 없는데 왜 묻는 건지 알 수가 없었지만...
법률적 문제 상황을 면피하기 위한 동의 말고, 이 책은 개인 간 성적 교류 또는 관계 맺음을 위해 행위 이전에 반드시 이루어야 할 과정에 관해 파고든다. 다양한 성폭력 사건이 폭로되고 드러나는 상황에서 법에서 지정한 ‘강간’이나 ‘강제 추행’, ‘성희롱’ 등의 문제를 개별적으로 살피는 것이 아니라, 성적 동의 여부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나름의 의의가 있다. 우선 여성이 마주하는 성적 침해 상황은 단순히 강제 성기 삽입으로 국한할 수 없는 다양한 경우가 있고 이를 모두 다룰 여지가 생긴다. 원치 않는 신체접촉은 신체 부위만큼이나 다양하고, 성적 수치심과 위협을 느끼게 만드는 표현 또한 너무나 창의적이다. 너무나 참신한 나머지 주변 사람들은 재미있어 하고 웃어 넘기고 마는데 막상 그 말과 행동의 대상이 되어 당하는 사람은 멘탈이 박살이 나고 그런 장면이 알려졌다는 사실, 다시 겪게 될 수도 있다는 불안 만으로도 일상생활이 어려워진다. 또한 어디까지를 성이라고 볼 것인가 하는 문제도 다시 고려하게 된다. 법에서의 강간은 지극히 이성애자, 삽입 섹스 중심의 성애를 종착지로 보는데, 동성이 저지르는, 성기가 개입되지 않는, 성적 목적 또는 경제적 목적으로 저지르는 성적 침해의 경계가 생각보다 넓고 다양하기 때문이다. 그런 것들은 추행, 모욕, 성희롱, 상해, 폭행 등으로 규정하고 처벌하는 다른 형법이 있지 않냐 물을 수 있지만 그런 과정 자체가 소수자와 이성애 지배적 관념의 위계를 만든다. (피해 정도에 상관 없이 형량도 약하고 사후 조치도 달라진다.)

성적 동의와 관계된 상황을 형법적(범죄 상황), 법률적(민사적 손해 여부와 배상)인 부분에 국한할 수 없다는 의견과 성과 관계된 담론이 문화적으로 구성되고 권력의 영향을 받는다는 주장(그래서 여기에서도 푸코가 나오죠…)에는 수긍이 갔다. 대중문화가 사람들의 인식에 영향을 끼치고 그래서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지만 반대로 대안을 모색할 때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다는 것도 일부 그럴 수도 있겠죠, 싶었다. 그래서 이 책은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같은 소설과 영화, 팬픽문화, 섹스 칼럼이 동의 문화에 줄 수 있는 영향력에 관심을 할애한다. 정교하지는 않지만 생각할 만한 부분이긴 했다.
그렇지만 사법절차의 2차 가해나 법이 해결해주지 못하는 것에 대한 무력감 때문에 이러한 문제에서 법 이외의 해결책을 더 나은 대안으로 내세우는 것은 약간 걱정되는 부분이었다. 미투운동이 그나마 소기의 효과나마 얻었던 것은 폭로와 함께 이슈가 되고, 가해자의 잘못을 비난하고 피해자를 지지하는 여론이 형성되어 얻은 부분도 있지만, 뒤늦게나마 가해자가 수사절차를 거치고 법정 앞에 서고 그 결과 일부라도 나쁜놈들이 처벌을 받고, 그래서 자신들이 그런 짓을 했을 때 잃게 될 것들을 직시하게 되고 (그래서 정치 생명 끝났다 생각하고 삶을 버리든가) 그게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는데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저자가 이야기 하는 변형적 정의는 처벌이나 응보적 목적보다는 교육과 교화를 중시하는 청소년 (또래)법정 같은 데서는 많이 강조되고 있고, 성인이 저지른 성적 침해에 대해 회복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보완적으로 사용될 수는 있겠지만, 그것이 법적인 조치를 대체할 수는 없을 것이다. 강제력이 없는 조치에 누군가에게 위력과 폭력으로 대응하던 사람이 응할지 조차 의문이 든다. 처벌해야 할 상황에서 오히려 대안적 조치를 피해자가 수락하도록 종용될 가능성도 우려가 되었다. 다만 사법 절차 중 유죄나 무죄 여부에 관계 없이 피해 회복과 교육의 목적으로 활용될 가능성은 고려해볼 만 해 보였다.

책을 읽으면서 지나온 삶에서 겪은 일에 대한 인식도 약간 바뀌었다. 친밀함을 느낀 이들에게 성적인 제안을 했다가 까인 일이 과거에 몇 번 있었다. 그때마다 내가 그렇게 매력이 없는가, 하면서 자존감이 하락하고 실패한 연애에 대한 자괴감만 늘었다. 내게 노 라고 말한 친구들은 그 이후로도 오랫동안 친구로 잘 지냈고 다시 나를 만나거나 연락하는데 스스럼 없이 지냈다. 그러니까 어쩌면 친구로는 좋지만 더 나아가는 건 아니에요, 라고 정확히 답해준 그 사람들에게 고마워해야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면 그런 동의 여부를 묻고, 노라고 말하는 사람에게 재차 묻고, 다시 노라고 하는 그 과정이 성별이 바뀌었다면 어땠을까 싶었다. 반복된 제안은 상대에게는(내가 여자이고 위력을 쓸만한 신체능력이 전혀 없다고 하더라도) 상황 자체가 어느 정도 폭력이었을 수도 있겠다 싶어 심히 반성하게 되었다.
반대로 나에게 성적인 침해는 그런 물음이나 혹은 거절할 여지 없이 일어났다. 잘 알지도 못하고 호감을 느끼지 않는 상대, 그런 사람들이 자신이 순간 원하는 대로 원하는 만큼의 신체 접촉을 시도했고, 성적인 말을 던졌고, 그들 중 아무도 사과하거나 처벌받거나 그로 인해 뭔가를 잃지 않았다. 시간이 가면서 조금 덤덤해지고 울지 않고 말할 수 있는 정도까지는 되었지만, 십년 이십년 가까이 지났어도 되돌아보는 나의 가슴은 서늘해진다.

책을 보던 도중 우연히 상품평 페이지에서 별점 테러해 놓은 걸 보고 조금 놀랐다. 내용을 보면 분명 책은 읽지도 않았고, 책이 다루는 주제나 개념도 모르면서, 뜬금 없이 상상이니, 사생활 침해니, 피해망상이니, 판타지니 하는 말을 끄적여 놓았는지. 이 책이야 말로 뭐가 잘못인지 하면 안 되는 짓인지도 모르고 성범죄 저질러서 철컹철컹 하는 일 없이 건전하고 원만한 사회 생활하라고 친절히 가르쳐주는 건데 좀 읽어보지 않겠습니까. 아니 이미 철컹철컹 한 뒤라 억울하고 속상해서 그러는 거면 다시 그런 일이 없도록 더 읽어봐야 하지 않겠습니까...더 나은 삶을 위한 권유일 뿐 강요하지는 않겠습니다...

재작년에 읽은 ‘섹스하는 삶’이라는 책에서 허락해라, 거기에다 거절 당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읽고 좋았다. 노, 라고 말하는 상대에게 자기 자신을 보호해줘서 고마워, 라고 말하는 법을 책은 알려주었다. 우선 묻고, 거기에 거절당하는 것이 치욕이나 자존감 하락의 지점이 아니라 오히려 고마운 일이라고 가르치는 부분이 이 책과 연결할 만한 부분으로 읽혔다. 어린이 책 중에 ‘동의:너와 나 사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레이첼 브라이언)이 나온 것을 마침 알게 되어 나도 읽어보고 꼬맹이한테도 권할 예정이다. 어려서부터 예의를 갖추며 거절하는 법, 그런 거절을 상처 받지 않고 받아들이는 법, 그래서 남에게 어떤 강요나 강압을 저지르지 않는 삶의 태도를 여자 남자 모두에게 가르치는 일이 정말 필요한 것 같다.


+밑줄 긋기
-강간 문화는 가해자가 성폭력을 저지르기는 쉽고,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알리고 그에 맞는 지원을 받는 것은 어렵게 만드는 사고방식과 관습, 사회 구조의 총체다. 여기에는 젠더와 섹슈얼리티에 대한 고정관념이 포함된다(성적으로 남성은 적극적이고 여성은 소극적이라고 여기며, 이에 어긋나는 여성은 ‘음탕하다’라고 낙인찍는 사회 분위기 등). 또 강간으로 판단되는 상황과 ‘진짜’ 강간 피해자라면 응당 어떤 행동을 보이리라고 단정 짓는 것도 강간 문화의 일면이다(육체적 폭력이 수반된 경우에만 ‘진짜’ 강간이라는 인식, ‘진짜’ 피해자라면 사건을 즉시 신고할 것이고 정신적 외상이 심하겠으나 지나치게 히스테리를 부리지는 않으리라는 인식). 강간범은 어두운 골목에서 튀어나온 괴물이며, 남자친구나 아버지, 대학생이나 정치인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 또한 강간 문화의 일부다.

-페미니즘 사상 내에서도 동의의 개념, 정의, 어원에 대한 여러 견해가 경쟁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다양한 이론과 개념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 안에서 성폭력과 맞서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찾아 이해하는 것이다.

-신체적 자율권이란 내가 하는 행동, 내 몸에 일어날 일, 내 몸과 접촉할 수 있는 사람 그리고 그 접촉을 어떤 식으로 허락할지를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권리다. 그리고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 외부의 압력이나 강제, 어떠한 권력 행사도 없어야 한다.

-성 비평 접근법은 문화와 지배적 사고가 개인의 생각과 행동을 형성하고 신체적 자율권을 제한하는 요인이라고 본다. 그리고 성관계에 대해 자유롭게 ‘싫다’라고 말할 수 있는 조건이 무엇인지 묻고 탐색한다. 자유롭게 ‘싫다’라고 말할 수 있는 조건에서야 비로소 ‘좋다’라는 말도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강간 신화는 성폭력의 책임을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에게 묻고 피해자를 비난하도록 몰아가며, 개개인이 성폭력과 피해 당사자를 대하는 태도(친구가 성폭력을 당했다고 털어놨을 때 당신은 어떤 반응을 보였나[또는 보일 것인가])와 사법 제도가 취하는 관점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성적 동의는 나와 상대방의 신체적 자율권을 존중하는 것이다. 타인에게 마땅히 보여야 하는 신중함과 배려를 바탕으로 상대방을 대하고, 내가 그런 것처럼 성관계를 맺을 의사가 상대방에게 있는지 확신할 수 없다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법률 계약은 성적 동의와 아무 관련이 없다. 동의는 소통과 배려, 인간적 존중이 있어야 가능하고 이런 것들은 법으로 규제되지 않는다.

-동의에 관한 한 우리가 제일 먼저 배워야 할 것은 물어보기다.

-‘조건부’ 동의란 “좋아, 나도 너와 섹스하고 싶어. 하지만 이런저런 조건이 갖춰졌을 때만 할 거야”라고 말할 수 있다는 뜻이다.

-성행위를 하는 동안 언제든 무슨 이유로든 마음을 바꾸거나 동의를 철회할 수 있고, 자신의 신체적 자율권을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 행위를 중단하고 싶다면 “그만하고 싶어”라고 말하자.

-섹스를 자기 욕구 만족을 위해 타인의 몸을 이용하는 행위라고 생각하지 않고, 타인을 존중하면서 서로 행복한 성적 경험을 공유하는 행위라고 생각한다면 나뿐 아니라 상대방의 요구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당연해진다. 즉, 상대가 만족하는지, 내 행동을 상대가 좋아하는지, 여전히 동의하는지 거듭 확인해야 한다.

-언제든지, 어떤 이유로든지 싫다는 의사를 표현할 수 있으며, 꼭 그 이유를 설명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싫다고 말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신체 자율권을 존중한다는 것은 곧 상대방의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듣는 것이자 애매하거나 정중한 표현 또한 명확한 거절이라고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오직 섹스만이 관계의 목표인 양 자신과 타인을 압박할 필요는 전혀 없다.

-경계는 내가 괜찮은 것과 괜찮지 않은 것 사이에 놓인 선이다. 성적 상황뿐 아니라 여타 사회적인 상황, 타인과의 일상적 관계와도 관련이 있다.

-성적 상황에서라면 특정 정도의 접촉과 행동은 괜찮지만 그 이상은 불편하다고 느끼는 것, 지금 당장은 성관계를 원하지 않는다거나 어떤 사람과는 하기 싫다고 생각하는 것 모두 내가 정한 경계이다.
내 경계가 어디에 있는지 아는 것은 무척 까다롭다.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을 알고 선을 정하는 일은 시간이 꽤 걸리는 작업이지만, 자신의 경계에 대해 타인과 이야기해야만 개인의 자율권 행사와 사회적 규약 존중 사이의 갈등을 조정할 수 있다.

-동의 협상은 인간관계에서 일어나는 복잡하고 난해한 일이지만 법이나 계약의 문제는 아니다. 지금 집중해야 할 /것은 신체적 자율권 존중을 근간으로 삼고 성관계를 단일한 형태로 규정하는 성 각본을 흔들고 해체하는 것이다. 성기 삽입뿐 아니라 모든 성적 행동에 동의를 구해야 하며, 어떤 대답도 들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고, 상대방과 끊임없이 대화하며 동의가 유효한지 확인하는 것, 이것은 단지 시작일 뿐이다.

-오래된 관계에서는 원치 않는 성관계를 ‘관계 유지’라는 말로 포장한다. 꼭 원하는 건 아니지만 상대방을 기분 좋게 해주거나 현재의 기분 좋은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그리고 상대방도 자신을 위해 그렇게 해준다는 이유로 성관계를 하는 것이다. 한편, 가벼운 만남에서 원치 않는 성관계를 경험한 여성들은 사회에서 말하는 ‘성적으로 진보한 여성’이라는 관점에 영향을 받았다고 말한다. 마찬가지로 원치 않는 성관계에 대한 남성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남자는 성관계에 적극적이어야 하고 항상 성관계를 원해야 한다는 사회적 기대에 압박을 받는다고 말한다. 성적 지향과 관계의 유형도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여성과 만나는 여성들은 그들 사이에서 성관계의 빈도나 횟수를 일정 수준 이상으로 유지하려고 의식적으로 애쓴다. 그 관계에서 로맨틱하고 섹슈얼한 성격이 사라지면 자신들의 관계가 우정과 다를 바 없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런 이야기들은 권력이 개인의 의도적 행위와 자율성을 어떤 식으로 제한하는지를 보여준다.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는 권력이 담론을 통해 작동한다고 주장한다. 즉, 우리가 어떤 것에 대해 말하는 방식이 세계관을 형성하고 행동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권력은 주체, 신체, 실천을 구성하고 생산한다. 또한 권력은 위에서 아래로가 아니라 사방으로 작용한다. 국가가 행사하는 힘만이 권력이 아니다. 권력은 경쟁적이고 모순적인 방식으로 서로에게 그리고 자신에게 행사되는 것이다.

-일과 삶의 균형을 관리할 모든 책임은 자기 자신에게 있다고 말하는 것, 그것이 신자유주의다. 여기엔 우리에게는 더 나은 삶을 위한 행동을 결정할 능력이 있다는 가정이 숨어 있는데, 이는 여전히 문제를 겪고 있다면 그것은 잘못된 결정을 한 우리 자신에게 잘못이 있다는 소리다. 당연히 개인의 통제력을 넘어서는 구조적 요소들은 간과된다. 하지만 임금이나 인사고과 때문에 일하는 시간을 줄이지 못할 수 있고,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일을 여러 개 하느라 운동할 시간이 없을 수도 있다. 또 시간이나 돈의 제약 때문에 식사를 제대로 챙기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신자유주의는 모든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함으로써 구조적 착취와 억압을 은폐한다.

-하지만 반대로 소수자에게 응원을 건네는 포르노가 있을 수 있다. 각자의 성 정체성과 경험을 돌아보고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탐구해보는 마중물의 역할을 포르노가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어쩌면 이 가능성들이 개인이 성적 자기 결정권과 신체 자율권을 행사하고, 더 나아가 성과 관련한 사회 체계에 도전하는 데 일조할지도 모를 일이다.

-2018년 5월 16일 자 『틴 보그』에는 애널 섹스에 관한 글이 게재되었다. 성 소수자 권리와 성적 동의가 핵심 주제였음에도 도입부에는 애널 섹스라는 주제가 불편한 독자는 다른 이슈나 건강에 관한 글로 언제든 건너뛰어도 좋다고 안내한다. 이 글은 사전에 동의 협상이 있어야 하며 동의는 언제든 철회할 수 있음을 강조하고, 남녀 성기 결합만이 유일한 성관계 방식이라는 인식을 깨뜨리는 시도를 계속한다. 그리고 애널 섹스가 일탈적이고 일종의 성적 학대에 해당한다거나 ‘포르노에서나 하는’ 행위라고 일축하지 않고, 많은 이가 즐기는 섹스의 형태임을 인정한다. 또한 항문에 삽입되는 것을 페니스로 단정하지 않고 성 중립적 언어를 사용한다. 어쩌면 ‘포르노’에서 접했을 성행위 이미지를 일상 속으로, 그리고 다양한 가능성이 존재하는 환경으로 가져오고, 누구나 즐길 수 있는 행위로 변환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다.

-법 제도 자체가 성폭력 사건을 공정하게 다루는 데 도움이 안 되는 데다 피해자 대부분이 법 영역에서 2차 피해를 입는다. 관련 법조문은 섹슈얼리티와 행위자의 의사, 신체적 자율권을 개의치 않는 듯하다. 그래서 법적 개선을 추구하기보다 법에 얽매이지 않고 성폭력 문제를 다루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변형적 정의는 가해자 처벌보다 범죄가 야기한 모든 피해를 회복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또한 사건과 관련 있는 모든 당사자에게 필요한 도움을 제공하고 대화와 이해를 촉진하는 자발적 과정으로 실천된다. 재발 방지를 넘어 문제의 구조적 원인을 찾아 바로잡기 위해 노력하는 접근들은 대체로 이 개념을 출발점으로 삼는다.
...당사자 모두 발언할 기회를 가지며, 가해자가 자신이 한 잘못을 이해하고 스스로 변할 수 있게 돕는 수단을 고민한다. 가해자의 인정과 사과, 가해 사실 공개, 재발 방지 교육 프로그램 참석 등이 이 과정 끝에 나오는 결과물이다.

-버크는 미투가 ‘공감을 통해 얻는 힘’이라고 말한다. 성폭력 생존자들이 이 말을 주고받는 것은 ‘당신의 말을 믿습니다. 당신이 무슨 일을 겪었는지 압니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성폭력 피해자의 말을 불신하는 문화에서 ‘나도’라는 한마디는 엄청난 힘을 갖는다.

-미투 운동은 침묵을 강요당하고 피해를 입고도 비난받았던 성폭력 생존자들이 공개적으로 증언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나갔다. 그러나 피해자를 향한 원색적인 조롱은 계속됐고 그들의 폭로와 증언을 믿지 않거나 다시금 침묵하도록 종용하는 일도 사라지지 않았다. 변화의 조짐이 약하게 보이고 있지만, 아직은 피해자의 말을 묵살하기가 조금(단지 조금) 어려워진 정도이다. 처벌받는 가해자는 일부(아주 일부)일 뿐이고, 법과 법조인들이 성폭력 사건을 다루는 방식도 딱 그만큼만 변했다. 하지만 성적 동의는 이제 뜨거운 화두가 되었다(긍정적인 방향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이제 우리는 누군가에게 포옹을 제안하는 적절하고 일반적인 방식을 고민하고, 그 제안을 받아들이거나 거절하는 법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거절의 표현을 더 잘 들을 준비를 해야 한다. 거절 의사가 직접적이든 알아채기 힘들든 상관없이.
두 번째는 강간 문화를 굳건히 지탱하는 담론을 통한 권력 작용에 민감하게 대응하고 그것을 해체하는 것이다. 우리는 강박적 성애 개념이 소외 집단에 어떤 나쁜 영향을 미치는지 더 잘 이해해야 한다. 또한 전통적인 성 역할과 섹슈얼리티에 대한 지배적 담론을 끊임없이 추궁하고, ‘정상적’이고 ‘인정되는’ 성관계와 그것의 ‘정해진 방식’을 깨야 한다.

-교육에서 신체적 자율권을 원칙으로 삼는다는 것은, 아이에게 꼭 해야 하는 일의 이유를 시간을 들여 신중히 설명한다는 것이고, 마찬가지로 아이가 싫어하는 일의 이유를 이해하는 데 시간을 들이고 갈등이 생기면 참신한 해결책을 찾는다는 것이다.

-가령 여학생이 남학생의 행동 교정 및 진정에 영향을 주리라 기대하면서 여자‒남자를 짝지어 앉히는 것 같은 교육 관행은 어쩌면 어울리고 싶지 않은 사람과 억지로 가까이 지내게 강요하는 것일지 모른다. 그리고 이는 남성의 행동을 여성이 책임지게 하는 성차별적 문화를 그대로 옮겨놓은 꼴이다. 교복과 복장 규정은 아이들의 자율권을 박탈하며 자기 표현 능력을 제한하다. 이런 구조적 문제에 대항하여 개선을 꾀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하지만 동의 문화를 공고히 하기 위해 지나칠 수 없는 과제이다.

-강간 문화는 가부장제, 자본주의, 인종차별, 장애인 차별, 시스젠더‒이성애 중심주의, 강박적 성애, 그리고 이 시스템의 수혜자들에 이르기까지, 거대한 권력과 억압 시스템의 일부다. 사적 경계를 침해하고도 그 사실을 무마하고 묵살하는 태도와 섹슈얼리티를 우월 집단과 열등 집단을 나누는 잣대로 삼고 성폭력을 ‘합법화’하며 피해자를 탓하고 2차 피해를 스스럼없이 입히는 사회 환경도 마찬가지다. 이 시스템은 변화를 막고 그에 저항해 살아남았다.
역사적으로 강간 문화는 피해자에 대한 침묵 강요, 남성 성욕 담론이나 강박적 성애 개념처럼 지배적 관념에 의해 재생산되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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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2021-01-29 22: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열반인님 자녀들이 부러워지네요. 근데 진짜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지만, 공부가 필요한 일인 거 같아요. 전에 비슷한 주제의 책 리뷰(재작년에 읽은 ‘섹스하는 삶’이라는 책에서 허락해라, 거기에다 거절 당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읽고 좋았다.˝ )에서 말씀하신 것과도 이어지는 거 같은데, 미리 알았더라면 좀 더 씩씩하게 ˝경계˝를 확립하면서 살 수 있었을 거 같은데. ^^

반유행열반인 2021-01-29 22:35   좋아요 2 | URL
미리 아니라 지금 알아도 괜찮아요ㅎㅎ아쉽지만 그때 그래서 지금 더 씩씩할 수 이써!!! ㅋㅋㅋ와이라고 애들 보는 만화 시리즈에 성교육 있길래 중고로 사다 놓고 먼저 보니 이거 좀 아니다 싶은 게 많이 있더라구요? 그래도 만화니까 입문 허들 낮으니 일단 보라 그러고 보충설명 하고 다른 독서 권하면 되지, 맘 먹고 내밀었더니 필요없어! 이러고 거부하고 도망감 ㅋㅋㅋ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됐나 싶어 기다리기로 ㅋㅋㅋ엄마만 괜히 각오 충만 앞서 나갔다 ㅋㅋㅋ

하나 2021-01-29 22:42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ㅋㅋㅋ 열반인님네 넘 귀여워 엄마만 괜히 각오 충만 앞서 나갔다 ㅋㅋㅋㅋ 저는 큰 어린이님에게 자극 받아서 지킬박사와 하이드를 어른 버전으로 읽었어요 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21-01-29 22:45   좋아요 2 | URL
어려서 그냥 무슨 괴기담이나 에스에프로 알았는데 커서 보니까 잘 썼더라구요...배경묘사고 인물묘사고 심리묘사고 다 훌륭해 ㅋㅋㅋ형식도 막 이야기 전하고 편지남기고 괜히 후대까지 읽히는 거 아니다...인간 내면 보편성에다 형식적 실험도 겸해야 남는 거다...(또 또 엄마가 너무 앞서 나간다 ㅋㅋㅋㅋ)

하나 2021-01-29 22:49   좋아요 2 | URL
와 근데 열반인님이랑 아이랑 진짜 좋은 친구될 거 같아여 독서모임 벌써 하고 있어 ㅋㅋㅋㅋ 저도 생각보다 형식에 신경 많이 썼구나 생각했어요 편지가 있어야 할 곳에 있으니 또 좋더구만요(엄마 친구도 같이 앞서 나간다 ㅋㅋㅋ)

공쟝쟝 2021-01-30 15: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안녕^^ 푸코^^ 반가워^^ 요즘 통 못읽었네.. 애정은 식지 않았어.. 우리..다...다음달에 만나...^^

반유행열반인 2021-01-30 17:13   좋아요 1 | URL
슬쩍 나왔다 가더라규요 대머리 넌 안 끼는데가 없냐 눈치 없이...

2021-01-31 09: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1-31 16: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1-31 18: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1-31 20: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1-31 20: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1-31 21: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1-31 21: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Yeagene 2021-01-31 17:1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굉장히 중요한 문제들을 얘기하는 것 같네요..그런데 이런 책 읽어보지도 않고 무조건 벌점테러하는 인간들이 있더라구요.정말 왜 그러는지...-_-;;;

반유행열반인 2021-01-31 17:22   좋아요 3 | URL
피해를 줄이고 없애고 침해된 권리 회복하자는 거에 억울해 하는 사람들의 심리도 궁금하긴 해요. 왜 그 사람들이 그렇게 반응하도록 사고구조가 짜여지는 지도...사실 저도 불과 얼마전만 해도 여혐적 사고를 완전 탈피했던 건 아니라 자라온 분위기나 누군가 감내하는 게 당연하다고 여기는 문화 같은 게 생각보다 영향이 큰 것도 같구요.

붕붕툐툐 2021-02-01 14: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정말 필요한 일인거 같아요. 사실 성적인 부분 말고도 정말 많은 부분에서 진짜 동의가 가능한 사회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처음 말씀하신 정보동의 같은 것도 말이죠. 일단 상대의 경계를 존중하는 자세를 저부터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금 다짐하고 갑니다!!😄

반유행열반인 2021-02-01 17:53   좋아요 1 | URL
네 저도 남의 경계를 침범하지 않고 허락을 구하고 조심히 살피는 노력을 지금부터라도 기울이려고 합니다. 반성할 일이 넘쳐.... ㅋㅋㅋㅋㅋ

2021-02-01 14: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2-01 17: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2-01 18:45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