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견문록 (보급판 문고본) - 에디오피아에서 브라질까지 어느 커피광이 5대륙을 누비며 쓴 커피의 문화사
스튜어트 리 앨런 지음, 이창신 옮김 / 이마고 / 2008년 4월
평점 :
품절


-20210129 스튜어트 리 앨런.

원제 The Devil’s Cup.

알라딘에서 첫 원두를 구매한 때가 겨우 일 년 전이다. 그 이후 생긴 일: 알라딘 원두 14종을 사 먹었다(…) 드리퍼를 갖췄다. 드립 주전자도 갖췄다. 캡슐 머신도 갖췄다. 캡슐도 200개 넘게 샀다. 그만 갖춰 제발…
다양한 나라에서 온 원두를 내려마실 때마다 검색을 해서 몰랐던 곳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어디 커피 산지에 관한 책이 없나...찾아보니 있었다.

우리 부모 세대는 과립 형태의 인스턴트 커피에 설탕과 프림을 섞어 마시기 시작했다. 그런 커피를 다방에서 시켜 먹는 아빠 옆에 앉아 있으면 다방 언니가 빨대 꽂은 야쿠르트 하나 가져다 주던 기억이 난다. 그러다가 맥심이가 한 봉지 안에 그 세 개를 황금비율로 섞어서 툭 까 넣고 뜨거운 물만 부어 휘휘 저어 마시면 되는 진짜 인스턴트를 만들어 해외로 수출하는 경지에까지 갔다. 이건 (사무실이나 작업장의) 노예야 일해라 포션 쯤으로 여전히 롱런하고 있다.
다음 세대는 커피나 프림 넣지 않고 원두만 물로 추출해 먹는 아메리카노를 카페에서 사 먹기 시작했다. 쓴 거 싫어하는 사람들은 우유에 에스프레소 타고 카라멜이나 바닐라시럽 같은 달달한 걸 탄 라떼류를 먹었다. 생각해보면 그런 커피를 마시기 시작한 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 쓰고 시커먼 커피는 이름도 여러가지던데 차이가 뭐야…1도 모르겠다... 했던 때도 있었다.

-에스프레소: 기계로 원두에 열과 압력을 가해 진한 커피 원액 추출한다. 그대로도 마시고, 커피 음료 만드는 기본 원액이 되기도 한다.
-아메리카노: 에스프레소에다 물이나 얼음 타서 마신다.
-라떼: 우유에다가 에스프레소 타고 거기에 무슨 시럽이나 맛내는 재료 넣어서 신제품(?)만든다. 돌체라떼(연유), 흑당라떼(흑설탕이나 원당 시럽) 같은 거…
-드립 커피: 기계 말고 커피 내리는 깔때기에 여과지 얹고 간 원두 붓고 그 위로 물 부어 여과시켜서 방울방울 떨궈 내려 먹는다. (초딩 때 실험관찰 시간에 혼합물 거르기 거름종이 실험하는 거랑 비슷함)
-콜드 브루(더치): 원두에 차가운 물 부어 오랫동안 내리는 특수 기구 같은 게 있는데, 그렇게 내린 원액을 에스프레소 원액처럼 여기저기 넣어 아메리카노나 라떼 해 먹는다.
이런 걸 구분하고 마신 게 얼마 안 되었다. 지금은 저 모든 종류를 돌려가며 마시지...

커피 종류와 이름만 들으면 커피 마시는 문화의 시작이 아메리카나 유럽일 것 같지만, 커피 열매는 더운 열대기후 고산지대나 아열대기후에서 잘 자라고 냉온대기후 지역에서는 온실을 동원하지 않는 이상 재배가 어렵다. 그러니까 커피의 시작은 더운 나라들이고, 오늘날 대부분 저개발국에 속한 지역이 일찍부터 커피를 마셨고, 지금도 그곳에서 커피를 재배해 전 세계로 수출한다.

커피는 커피라는 이름 이전에 부나, 카와, 알모카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다. 책을 읽기 전에는 몰랐던 잊힌 이름들이었다. 다양한 이름 만큼이나 커피 만드는 방법도 동네별로 다양했다. 막판에 원두에 계란 알맹이랑 껍질이랑 이거저거 다 때려넣고 향이야 날아가거나 말거나 달달 달여 먹는 충격적인 방식이 나오는데, 이게 예전 미국 커피 레시피였다. (심지어 백악관 요리 레시피 책에도 실림…) 오히려 스타벅스야 말로 미국식 커피 제조법 버리고 이탈리아식 커피 만드는 방식 고집해서 인기 끈 케이스라고…(그런데 원두맛은 왜 그렇게 쓰고 탄 맛이죠…)

이 책은 다양한 커피 산지와, 유럽과 미국 이전에 커피 문화가 번성했던 아프리카, 서아시아, 남부아시아를 주 무대로 한 여행기였다. 캘리포니아 출신 자유로운 방랑자인 저자는 케냐, 에티오피아, 지부티, 예멘, 터키, 인도, 오스트리아, 프랑스, 브라질, 미국의 온갖 도시를 거치며 커피가 퍼져나간 경로를 추적한다.
초반부터 저자의 똘기가 예사롭지 않았다. 1988년 케냐에 있던 스튜어트는 에티오피아 커피가 끝내준다는 말에 총든 국경수비대한테 사정해서 국경 넘어가서 커피 한 잔을 마시고 돌아온다. 다음 날 한 번 더 마시러 가…(두 번째는 통과 안 시켜줘서 못 먹고 돌아옴...) 에티오피아의 하레르에 시인 랭보가 커피 장사 하러 갔다가 망하고 돌아온 건 이 책에서 처음 알았다. 거기에 랭보 저택이 있고 현지인들이 람보, 람보, 하고 부르는 것도 몰랐다. 사실 랭보도 잘 모르지만…
스튜어트가 탄 아프리카 동부에서 예멘 건너가는 허름한 배 안에는 소말리아 난민 아이들이 있었다. 아예 나라라는 게 무너진 곳에서 국민들이 카트나 씹고 앉은 역시나 망한 나라로 떠나는 난민들의 처지가 안타까웠다. (둘다 외교부 지정 여행금지 국가다…)
오스만제국이 빈 쳐들어갔다가 전쟁 망하고 도망가면서 두고 간 원두가 유럽 카페 개업의 밑천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커피가 아프리카와 이슬람의 서아시아에서는 도입 초기에 종교 의식에 쓰였고, 약으로 여긴 곳도 많고, 환각제 취급 받으며 이슬람이나 기독교나 종교적 이유로 탄압을 시도한 시기가 있다는 것도(심지어 현대 미국에서도 약물로 취급해 규제를 시도함) 재미있는 지점이었다. 확실히 커피를 마시면 읽고 쓰고 일할 때 도핑되는 느낌은 있다. 너무 마셔서 밤에 못 자고 상념에 젖는 날은 괴롭지… 커피가 종교와 자주 연관되다보니 저자는 여행 도중 커피를 사용하는 (또는 지금은 커피가 빠졌지만 나머지 의례는 남아 있는) 여러 종교 의식을 참관한다. 커피를 추적하는 도중 브라질리아의 외계인 믿는 신흥종교 교단에 끌려 갔다가 시껍하고 도망쳐 나오기도 한다.
프랑스 갔을 때는 루이14세랑 사드가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둘다 변비탈출하고 싶어서 커피를 애용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 책 대부분이 서프라이즈나 믿거나 말거나 같지만, 아프리카와 서아시아 쪽 자료는 직접 현지 답사하고 주민에게 탐문하고 현지 도서관 자료 찾아 적어 놓은 거니 그 이상 사실 여부 확인할 길이 없고, 그렇게라도 알려준 노고를 칭찬해야겠다.
인도에서 양기(이름부터 느낌 이상한...)에게 사기 당해 프랑스 시골구석까지 가는 에피소드도 길게 이어지는데 덕분에 라자스탄 자이푸르라는 지역을 구글링으로 찾아보았다. 핑크시티라고, 도시에 온통 분홍분홍하고 화려한 궁전 유적이 많이 남아있었다. 아이참 18세기면 무술제국 말미냐? 영국놈들 쳐들어오는데 황제 새끼들은 인민 착취해서 저런 사치나 하고 있었구나 하고 괜히 욕나왔다. ㅋㅋㅋ

1999년에 나온 책이고 남자 저자라 그런가 가끔 농담이라고 던지는 여성 비하적이고 성적인 빻은 소리들이 거슬리긴 했지만, 아주 가끔이고 수위도 약한 편이라 넘길 만한 수준이었다. 이제 막 인터넷이 보급되고 토론방, 이메일 같은 게 유행하던 시기라 그 초기의 모습을 보는 것은 흥미로웠다. 순수 카페인 들고가다 코카인으로 오해 받고 경찰한테 혼나고 다 쏟아버린 경험을 토론방에 올리니까 다른 유저들이 저자 편들어주고 같이 경찰 욕해주는 게 웃겼다.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되게 비슷해서 ㅋㅋㅋㅋ
로부스터 품종의 최대 산지이자 소비지인 동남아시아-베트남,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등, 최근에는 중국 운남성도 차 대신 커피 산지로 바뀌고 있는데 조금 오래된 책이라 그런지 이쪽 문화권은 네덜란드가 식민지 플랜테이션 농장 만든 것 살짝 언급만 하고 여행지로 선택하지 않아서 조금 아쉬웠다.(뭐 그 쪽 커피 맛 없긴 해…)
책의 마무리는 미국의 고속도로 한가운데에 저자와 여행 동반자인 매그가 맛탱이 간 상태로 차를 멈춰서는 장면에서 끝이 난다. 미국이 약물과 커피에 취한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싶은 것인지...우리는 영화나 뉴스에서 제일 잘나가는 미국의 최첨단 도시들의 화려함만 보지만, 사람 사는 곳 똑같고 미국 남부나 소도시들은 다 암울하다. 화이트 트래시라고 자국민을 조소하면서 획일화되고 특색없는 커피맛과 희망 없는 꼬라지를 결말로 한 게 뭔가 저자놈 생각보다 회의적이구나 싶었다.
다음 여행지는 어디?하고 묻는다면 여기에요 여기, 한국, 코로나 때문에 카페 문닫으니까 집집마다 커피머신까지 갖추고 종류별로 열심히들 마시고 있답니다...하고 싶었다.

예사롭게 마시는 커피에 얽힌 노예무역, 식민지배, 종교탄압 등 다양한 역사를 풀어 놓으니 재미있게 읽혔다. 커피농장의 현재에 관한 이야기를 모은다면 그것 또한 재미있을 것 같은데 저자만큼 용감하게 전 세계를 떠도는 건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인도, 이슬람, 전부 여성들에게는 악명 높은 여행 금지 내지 적색경보 국가잖아...뒤지기 싫으면 그냥 책이랑 원두랑 구글링으로 만족해야겠다. 그래서 오늘의 아침 커피는 이탈리아 어쩌구 하는 캡슐 내린 에스프레소, 스콘이랑 먹었다. 낮에 콜롬비아 드립 커피 한 잔 먹든가 귀찮으면 믹스커피(모두가 외면한 홍삼라떼...이거 만든 남양이랑 이거 산 나새끼랑 다 죽어라….)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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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1-01-29 12: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홈삼 아니 홍삼라떼 라는 게 있었군요!! 반유행열반인님은 드셔보았음이 틀림없음으로 추정됩니다! 비추천으로 이해했어요^^

반유행열반인 2021-01-29 12:44   좋아요 3 | URL
먹으면 은은하니 넘어가긴 하는데 내가 커피를 먹는 거 같진 않고ㅋㅋㅋ 선심쓰며 내밀어도 모두가 거부하는 아이템이라 비추합니다 ㅋㅋㅋ

syo 2021-01-29 15:3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홍삼라떼! 삼이한테 처먹이고 싶은 이름입니다!

반유행열반인 2021-01-29 16:48   좋아요 2 | URL
삼이님이 어 이거 달달하니 맛있는데...몸에도 좋은 기분이고...할 것 같은 느낌적 느낌...(갖다 바칠까...)

Yeagene 2021-01-29 15:3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너무 진지하게 읽어나가다가 마지막 홍삼라떼에서 뿜었어요!ㅋㅋㅋ
이런 제품도 있었나요..ㅋㅋㅋ
열반인님 왜 사셨어요..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21-01-29 16:49   좋아요 3 | URL
그러게요 왜 샀대 나새끼야 ㅋㅋㅋㅋ흑당라떼랑 1 1하길래 배리에이션!하고 자매품 고른 것이 패착이었습니다... ㅋㅋㅋㅋㅋㅋ그냥 드립 먹었어요 오늘은 ㅋㅋㅋ

하나 2021-01-29 22:2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알라딘이 쏘아올린 열반인님의 커피 견문록이네요~ 우리 열반인님 먹는 걸로 모험하는 타입이구나... ㅋㅋㅋㅋㅋㅋㅋ 저 홍삼라떼 이상하게 끌리는데 사실 옛날에 인삼껌 좋아했어요... ㅋㅋㅋㅋㅋ 잘 안 팔아서 사람들이 그거 발견하면 너 생각나서 사왔다 이러고 막 던져줌 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21-01-29 22:36   좋아요 2 | URL
아 그럼 아마도 홍삼라떼와 사랑에 빠지실지도....진짜 향이 옛날 그 인삼껌임... ㅋㅋㅋ옛날에 나 초딩때 은단껌 두리안껌 별 게 다 있었는데 ㅋㅋㅋ

얄라알라 2021-01-29 22:5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코로나 시대 위축되는 마음을 열반인님 서재 댓글 읽으며 빵빵 터뜨려 키웁니다 ㅋㅋㅋ˝먹는 걸로 모험하는 타입˝에 ˝인삼껌˝까지, 넘 유쾌합니다. 두리안 껌이라니, 이건 금시초문이네요^^

반유행열반인 2021-01-30 09:10   좋아요 1 | URL
저도 믿기지 않지만 두리안이 뭔지도 모를 시절 두리안껌을 씹어봐서 그런가 십수년 후 진짜 두리안을 마주했을 때 거리낌 없이 먹어지더라구요ㅋㅋㅋ그치만 홍삼라떼는...😔

공쟝쟝 2021-01-30 15: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알라딘 원두 14종 ㅋㅋㅋㅋ 저는 왜 알라딘 원두는 좀 싱겁게 느껴지죠? 아 최근에 먹은 건 맛있었는 데(기억이 ..) 핸드드립으로 찐하게 내려진거 마시고 싶을 때는 역시 스타벅스 원두입니다!! 한번 사서 갈아드셔보세요, 아니면 갈린 걸 사서 내려드셔보세요... ㅋㅋ

공쟝쟝 2021-01-30 15:57   좋아요 2 | URL
기억났어 (검색함) 이번에 나온 콜롬비아 아스무까에스 톨리마 훌륭합니다🙌🏻

반유행열반인 2021-01-30 17:12   좋아요 2 | URL
쟝쟝님은 으른의 맛(스모키한) 거 좋아하시는 듯해요 스타벅스 캡슐 먹어봤는데 저는 으른의 맛 윽 하는 ㅋㅋㅋ알라딘이 좀 슬쩍 뽂아서 맛이 약하게 느껴지긴 해요 이번 콜롬비아도 비교적 세게 볶은 맛 같아요 카누맛 무난함ㅋㅋㅋ다시 세 보니 13종이네...한 종류 뻥튀기했네...

공쟝쟝 2021-01-31 00:36   좋아요 2 | URL
옴멈머 맞나바 저 스모키한거 좋아하나봐여 왜냐면 제가 스모커거덩요 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21-01-31 07:39   좋아요 2 | URL
스모크핫커피리필 달이 뜨지 않고 니가 뜨는 밤- 이러는 노래 생각나네요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