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화이트 호스
강화길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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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26 강화길.

강화길 소설을 처음 읽은 건 2017년 젊은 작가상 수상작품집이었다. 이후로 2020년 젊은 작가상 수상집, 멜랑콜리 해피엔딩, 나의 할머니에게, 악스트에 연재하던 장편(제목 생각 안 나…) 같은, 여러 작가 작품이 실린 책에서만 작가의 소설을 드문드문 읽었다.
몇 편 읽지 않았지만 나랑 별로 결이 안 맞는 작가 같아...했었다. 그리고 나 강화길 책 안 볼 거야...하는 마음까지 가게 된 것은 옹졸한 이유였다.
올해 초 어떤 외국소설 리뷰대회가 있었다. 책이나 작가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별로 관심도 없어서(특히나 저렇게 대회랑 상금 걸고 책 팔아 먹는 거 왠지 싫어...하면서) 그런 게 있나 보다 하고 넘겼다. 마감을 얼마 남기지 않고 갑자기 친구가 같이 리뷰대회 참가해보자고, 꼭 나랑 함께 하고 싶다고 했다. 얼떨결에 전자책을 사서 두툼한 책을 부지런히 읽고 독후감도 썼다. 그런데 정작 일이 너무 바빴던 친구는 중간에 책읽기를 포기했다. 내 리뷰는 선정되지 않았다.
그때 리뷰대회 심사위원이 강화길이었다. ㅋㅋㅋㅋ 앞으로 강화길 책 안 볼 거야! 하고 선언했다. 나중에 돌아보면 강화길에 대한 서운함보다 친구에 대한 원망이 더 컸던 것 같다. 그 뒤로 친구와 몇 번을 다투었다. 너는 왜 쉽게 약속하고 쉽게 어기는 거야. 나는 그 사소한 일들이 신뢰를 허무는 문제라고 심각하게 생각했다. 머리로는 친구의 과도한 초과근무 시간과 바쁜 몸과 지친 마음을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지쳐서 나를 챙기지 않고 외롭게 내버려두는 모습에 더 크게 실망했던 것 같다.
지금은 뭐 이러나 저러나 아무 상관이 없고, 친구와도 잘 지내고 그러니까 강화길 소설집 읽어야지 헤헤 하고 빌렸다. 안 볼 거야! 아니고 안 사 볼 거야! 라고 중얼대면서...나는 참 치사한 인간이다.

서평 형식을 취한 ‘오물자의 출현’을 제외한 나머지 소설은 모두 ‘나’의 1인칭 시점이고, 화자 모두 여성이다. 그들이 느끼는 불안, 불편, 불만족, 막연한 두려움 같은 감정과 기분을 작가는 섬세하게도 그려놓았다. 그래서 읽는 이도 덩달아 불안하고 불편하다. 이 분야는 거의 독보적이 아닐까 싶다. 일상이 스릴러다. 가장 친밀한 배우자가, 연인이, 선생이, 제자가, 시어른이, 조부모가, 이웃이, 그리고 정체 불명의 존재가 그 불안의 근원이다. 사실 불안은 바깥이 아닌 내 안의 감정이다. 기질이든 성장배경이든 지난 경험이든 사회구조든 가족관계든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그런 감정을 불러일으키도록 휘젓고 흔든다. 그 속에서 소설 안의 나들은 체념하지 않고 질문하고 반항한다. 불확실하고 불분명한 불안의 근원을 직시하기 위해 탐색을 멈추지 않는다.
답은 찾는 경우도 있고, 그렇지 못하는 때가 더 많지만,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이야기가 되지 않잖아? 작가가 꽂혀버린 하얀 말에 대한 집요한 관심을 나는 끝내 이해하지도 흥미롭게 읽지도 못했지만 나머지 소설은 괜찮게 읽었다. 야, 이런 거 잘하네, 나도 만만치 않은 불안쟁이인데 이걸 이렇게 쓰네, 이렇게 쓸 수 있구나, 읽는 사람에게 불안감도 옮길 수 있구나, 다음 번 책에서는 그 불안에 어떤 쥐구멍만한 탈출구라도 내어줬으면 좋겠다 싶었다.

-음복
제사 스릴러
-가원
가혹한 양육자 외할머니와 다정했지만 한량이었던 외할아버지와 빈집
-손
내가 틀릴 수도 있다, 학교+마을 스릴러
-서우
네가 속을 수도 있다, 학교+택시 스릴러
-오물자의 출현
오물자는 인형이라는 뜻이다, 기록은 언제나 불완전하다
-화이트 호스
세입자 스릴러
-카밀라
실연 스릴러

...나새끼 후려치는 게 예의 없구나…


+밑줄 긋기
-그때 나는 이미 뭔가를 예감했던 것 같다. 이를테면, 앞으로 내가 그와 비슷한 남자들을 만나게 되리라는 사실을. 자신의 진짜 능력을 제대로 펼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남자들. 어쩔 수 없이 부당한 현실을 감내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남자들. 기회만 주어진다면, 이번만큼은, 정말이지 이번만큼은 제대로 해낼 수 있다고 믿는 남자들. 그들과 헤어질 때마다 나는 생각했다. 내가 어쩌다보니 겨우 이 정도 얄팍함에 자신을 갖는 남자들만 만난 것일까. 아니면 이 세상에는 이런 남자들만 있는 것일까. 결국 나는 그저 확인하고 싶은 것은 아닐까. 그러니까,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이들 중 누구도 달라지게 할 수 없다는 것을. 그러니까 내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그날 벌어진 일도.(‘가원’ 중)

-이런 말들을 듣고 있으면 소문이란 진실보다는 어떤 바람에 더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제발 실제로 그랬으면 하는 마음. 이 모든 일의 원인을 찾을 수 있었으면 하는 소망. 그러면 적어도 무엇을 조심해야 하는지 판단할 수 있다. 언제 마음을 놓아야 하는지 알 수 있다.(‘서우’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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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2020-12-26 18: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일상 스릴러 종합 세트네요. 이걸 이렇게 쓰네... 느끼신 걸 보면 강화길 작가가 불안에 대해 잘 썼나봐요. 다음 번에는 어떤 쥐구멍만한 탈출구라도 내어줬으면, 하는 마음 어떤 마음인지 알 거 같아요! 저도 까만 말이 더 좋아요! 까악까악~

반유행열반인 2020-12-26 18:43   좋아요 1 | URL
말로 설명되지 않는 감정을 잡히게 쓰니까 신기하네요. 하긴 쥐구멍이 있으면 이만큼 긴장감 없겠죠 영악한 작가 같으니... 까악까악ㅋㅋㅋ

파이버 2020-12-26 18:3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글 제목에서 빵 터졌어요ㅎㅎ 까만 말이 더 좋다니ㅎㅎㅎ 저는 가원이 제일 좋았었어요 소설집 뒤에 발표 시기가 실려 있던데 최근에 발표한 소설 순으로 좋았었습니다.

반유행열반인 2020-12-26 18:44   좋아요 1 | URL
네 저도 최근작이 좋고 음복 가원에서 빵 터지는 거 보면 역시 어디서든 꾸준하고 끈질기게 존버하면 뭐라도 되는구나 싶었어요. 하얀 말에 왜 꽂혔는지 아직도 노이해...컨츄리를 안 좋아해서 그런가...

막시무스 2020-12-26 19: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러고 보니 저도 단편집을 통해 음복, 손, 호수를 보았는데, 지금 이 글보고 생각해보니 쓰릴러네요!ㅎ 서늘한 뭔가가 있었네요! 개인적으로 음복이 참 좋았던것 같아요!ㅎ 즐건 주말저녁되십시요!

반유행열반인 2020-12-26 19:49   좋아요 2 | URL
네 일관되게 등골에 소름 심어줘서 조금 물리기도 해서 쉬엄쉬엄 봐야겠더라고요 ㅎㅎ즐거운 주말 보내시길 빕니다!!

반유행열반인 2021-08-21 19: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신작 읽고나서 다시 이 리뷰보니까…정말 쥐구멍 내줬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