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06 이원하.서울에 여럿이 살고 약은 끊었어요수도권을 떠나 살아본 적이 없어요. 경기도에서 나고 자라 서울에서 어른이 되었어요.그래서 다른 지역에서 자랐거나 서울을 떠난 사람들이 가끔은 부러워요. 굳이 제주도가 아니어도 어디라도 사람 사는 곳이라는 게 신기해요. 이런 말 하면 내가 예의 없는 사람이래요. 맞는 말이에요. 서울 안 개구리라서 자주 창피해요.시집 제목부터 내내 -해요, 하는 말끝으로 가득했어요. 이게 마냥 적응이 안 됐어요. 바다가, 꽃이, 자연이 가득한데 나에겐 너무 어려웠어요. 나도 -해요, 하고 말해보면 조금은 가닿을까 싶어서 따라하는데 안 되겠어요. 간지러워 뒤지겠어요. 안 하던 짓을 하면 사람은 곧 죽는대요. 시를 읽기 전에 시인 얼굴을 먼저 봤어요. 일부러 그런 건 아닌데 유튜브에서 갑자기 툭 튀어나왔어요. 장성규가 미워요. 시인은 화면 안에서 귀여운 척 보였어요. 시를 읽으니 척이 아니라 실제로 귀여운 시를 쓰는 사람이었어요. 내가 삭이기에는 아직 멀었어요.결이 맞는 시가 있고 아닐 때가 있어요. 서정과 전원과 소위 여성형의 부드러움이 나에게는 어려워요. 이런 말들이 나를 울리고 떨리게 하는 날이 언젠가는 올까요. 아직은 으드득 씹어먹고 찢어 발기는 말들을 더 좋아해요. 내 마음을 사포로 갈아주세요. 문지르는 일은 나 밖에 할 사람이 없네요. 멀지 않은 때 제주에 가고 싶어요. 바람일 뿐 제주 바람은 아득히 멀어요. 안 하던 짓 하려니 미치겠어서 그만 써야겠어요. +밑줄 긋기-눈 쌓인 섬도 살결이 푸른 바다도 전부 사람의 마음을 흔들지만 내겐 아무 소용이 없어요 당신과 함께 보면 좋을 일들이 전부 사느라 아무 소용이 없어요(‘참고 있느라 물도 들지 못하고 웃고만 있다’ 중)-섬을 떠나는 일이 뭐가 그리 어려울까 싶은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 말해주고 싶다 그건 너에게만 그런 일이다(‘바다를 통해 말을 전하면 거품만 전해지겠지’중)-봄을 꽃이나 감동이라 부르지 않고 그냥 봄이라 부르는 것처럼 바다도 서쪽과 동쪽으로 구분하지 않고 파랗다거나 칠흑이라 표현하지 않고 그냥 물이라고 부르면 될 텐데 번거롭게도 바다 앞에선 생각이 많아져요(‘귤의 이름은 귤, 바다의 이름은 물’중) -추억하는 일은 지쳐요 미련은 오늘도 내 곁에 있어요 내가 표정을 괜찮게 지으면 남에게만 좋은 일이 생겨요 복잡한 감정을 닦아내기엔 내 손짓이 부족해요 용서는 혼자서 할 수 없죠 하는 수 없이 새벽 늦게 잠이 들죠 이번 문제 때문에 단 몇 초 만에 터널이 막혔어요 괜찮은 척 애써도 어떻게든 터널은 뚫리지 않았어요 영영 마주치지 않게 해달라고 빌었던 적 없으니 만나야 했어요 속은 한번 상하면 돌이킬 수 없어서 아껴야 하는데, 이미 돌이킬 수 없어서 목요일은 잔뜩 풀이 죽어야 했어요 당신은 왜 일을 이렇게 만들었습니까? 외치고 싶을 때마다 나는 제법 멀리에 서서 되도록 비좁은 자리에 서서 가능한 한 당신이 없는 길에 서서겉보기에만 괜찮은 표정으로 남 좋은 일 시켜줍니다(‘서운한 감정은 잠시라도 졸거나 쉬지 않네요’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