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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중독 - 너무 지나치게 사랑하는 병
수잔 피보디 지음, 류가미 옮김 / 북북서 / 2010년 12월
평점 :
절판
-20200906 수잔 피보디.
한동안 메마르게 지냈다. 내 스스로 다양한 과몰입에 취약한 것을 알고, 현재 상태가 금단 현상인 걸 알았다. 그렇지만 뭘, 어쩔 수 있을까. 게임 중독이 심하면 아예 삭제하고 돌아보지 않았다. 술과 약이면 닿지 않는 곳에 치워버렸다.
갈망하는 대상이 사람이라면, 관계라면. 대개는 내 바람과 상관 없이 상대의 무관심과 냉담이 알아서 먹이를 주지 않았다. 그렇게 멀어진 거리에 괴로워하다 한참 지나면 견딜만큼 저절로 희미해지고 나아졌다.
제일 힘들 때 검색을 하다 이런 제목의 책을 찾았다. 10년 전쯤 나온 이 책이 꽤나 절실했는데 절판인데다 도서관에서도 구할 수 없었다.
권여선 소설 ‘봄밤’에서 영경은 사랑하는 수환마저 내버려두고 요양병원을 뛰쳐나와 술을 퍼마신다. 당장 미칠 듯한 중독자의 몸과 마음은 필요한 것을 채워주면 일단은 진정이 된다. 장기적으로는 해로울지 모르지만 어쨌거나 숨은 돌린다.
여름이 다 가기 직전 원하던 걸 잔뜩 퍼마시고 다소 진정되었다. 그때 중고알리미가 절판된 이 책을 찾아줘서 차분한 마음으로 읽었다. 책을 먼저 읽었다면 마구 퍼먹지 않아도 서서히 가라앉았을까. 이제는 알 수가 없네.
사람과 사랑과 관계에 중독되는 원인과 과정, 그로 인한 문제점을 이 책은 잘 정리해 놓았다. 한 두 가지가 아닌 원인의 거의 대부분에 해당되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불화와 결핍과 트라우마와 소외의 경험, 과거의 상처를 채우기 위해 기대는 대상이 사람이고, 친밀해 질 무렵 지나치게 관계에 집착하고, 의심하고, 그러다가 관계가 악화되고, 잘못된 상대를 만나면 일방적으로 스스로를 희생하다가 지쳐 나가 떨어지곤 했다. 아주 어릴 때 너무 여러 번 잘못 패턴화된 짝사랑을 경험했다. 십 대 후반쯤 이 책을 보았으면 그런 관계들을 조금 줄일 수 있었을까. 애초에 그런 일을 겪지 않았다면 이런 책에 관심이 없었을 지도 모르겠다.ㅎㅎㅎ
언제나 문제는 자기존중감, 스스로를 사랑하는 마음, 혼자여도 괜찮다는 꿋꿋함이다. 나이를 먹어도 상실에 대한 지나친 두려움은 왜 사그라들지 않을까. 너무 애쓰지 않기, 어쩔 수 없는 일은 받아들이기, 변화가 나를 죽이지는 않는다는 것 알기, 오히려 지나친 사랑이 나를 죽일 수도 있다는 걸 깨닫기. 이제는 할 수 있을까.
원인과 문제점은 상세하고 정확하게 짚은 책이지만 ’회복’이라는 챕터에 제시된 해결책은 미흡하게 느껴졌다. 자기 인식을 정확히 하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도움이 될 테지만, 지지해 주는 사람들의 도움을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갑자기 영성 타령 하면서 신(또는 자신이 믿는 절대적인 존재, 힘)에 의탁하는 방법이 스스로를 구할 수 있다 하는 대안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영성을 향한 사랑 만이 유일한 영원한 사랑 어쩌고 하는 건 내내 잘 읽다가 순간 짜게 식게 만들었다. 12단계 회복 프로그램을 책 말미에 소개하는데 여기서도 계속 신 타령 기도 어쩌고 해서 주욱 훑어보고 말았다. 종교를 가졌거나 뭔가를 간절히 믿을 수 있는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겠지… 불신자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놈들이 가는 지옥불에서 영원히 활활 타오를 예정입니다...
집착을 줄이고, 관계와 사람에 대한 강박을 덜고, 스스로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고 믿고, 외로워도 괜찮다고, 내가 나를 위로할 수 있는 힘을 기르고 싶다. 그 정도는 노력해보겠다.
잘 지냅니다. 계속 잘 지내려고 합니다.
+밑줄 긋기(이 페이지가 책 한 권의 핵심을 거의 다 담고 있다.)
-친밀한 관계는 우리의 인생을 믿을 수 없을 만큼 확장시킨다. 우리는 친밀한 관계를 통해서 커다란 만족을 얻고 자신의 잠재력을 발휘하는 데 큰 도움을 얻는다. 그러나 친밀한 관계는 우리의 생존에 꼭 필요한 요소는 아니다. 그것은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그만인 선택 사항이다. 더군다나 우리의 자기 존중감은 특별한 누군가를 만나느냐에 달려 있지 않다.
성적 끌림이나 욕망만으로 인생을 살아나갈 수 없듯이, 사랑만으로도 인생을 살아나갈 수 없다. 인생을 살아나가기 위해서는 사랑만큼이나 주의 깊은 판단력, 힘든 일을 마다하지 않고 열심히 일하는 것, 자기 자신을 성장시키는 일 또한 중요하다.
결국 우리는 완벽한 사랑은 평생토록 지속된다는 신화를 맹목적으로 따르는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된다. (오로지 영적인 사랑만이 영원히 지속된다.) 우리가 변화하는 대로 우리의 관계도 변화한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사랑도 사라져간다. 그렇다고 해도 낙담할 필요는 없다. 변화가 인생의 한 부분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라. 그리고 그 변화가 인생을 흥미롭게 만든다는 사실을 깨달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