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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야생의 위로 - 산책길 동식물에게서 찾은 자연의 항우울제
에마 미첼 지음, 신소희 옮김 / 심심 / 2020년 3월
평점 :
-20200824 에마 미첼. 읽다 말았어요.
이 년 전 봄부터 휴직을 하고, 거의 이 년 가까이 집에만 있었다. 젖을 물리고, 똥오줌을 치우고, 빨래를 하고, 이유식을 먹이고, 안아서 재우고. 아기가 잘 때 책을 읽고 글을 썼다. 움직이지 않으면 살이 찔 것 같은데, 아니었다. 몸을 이루는 물질들이 어디론가 마구마구 빠져나가서 근육이 사라지고 몸무게가 44킬로그램까지 줄었다.
작년 11월, 어쩌다보니 나는 동네 구석구석 온 방향을 향해 걷고 있었다. 4년 동안 이 동네를 살면서 몰랐던 좁은 골목을, 대로변을, 고택 옆을, 산길을 헤매고 다녔다. 걸으면서 이백 킬로미터 밖의 친구와 매일 전화로 긴 수다를 떨었고, 그러는 동안 지난 태풍에 꺾인 나무, 해질녘 하늘과 노을에 물든 구름, 어둑한 골목 사이로 내려다보이는 건너편 동네의 불빛, 기와 지붕 위 새파란 하늘과 구름, 낙엽이 되기 직전 색빠진 나뭇잎을 보았다. 조금씩 내려가는 기온과 다가오는 추위가 걷느라 흘린 땀을 식혔다. 가족, 학교 다닐 때 있던 일, 오늘 먹은 음식, 지나간 연인, 머물던 장소, 수다의 소재와 길이는 경계가 없었고 시간은 자꾸만 녹아 없어졌다. 어느 저녁에는 지나던 내 머리 위의 가로등이 때맞춰 켜졌다. 네가 불켜줬지. 우리는 웃었다.
열심히 돌아다닌 덕에, 우울증 없는 겨울을 맞이했다. 잘 지냈다. 다리에 근육과 살이 붙어서인지 몸무게는 다시 팍팍 불었다.
좋은 시간은 영원할 수 없고 바쁘고 멀어지고 할 일이 생기고 어떤 계기로든 관계는 소원해질 수 있다. 마냥 떠들기만 하고 살 수는 없지. 그냥 그런 날이 있었고 지나갔다. 마구 써버리던 시간은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복직하면서 직장을 옮겼다. 매일 동쪽 뜨는 해를 마주 보고 삼십 분 걸어서 출근해서, 지는 서쪽 해를 보며 다시 삼십 분을 걸어서 퇴근한다. 조용히 있던 일을 생각하며 혼자 걷는다. 생각하기 싫은 날에는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들으며 걷는다.
하루 한 시간 남짓 일광욕과 걷기의 힘은 생각보다 강력했다. 여전히 수면장애는 겪고 있지만, 적어도 내 어깨에 매달린 검은 개는 멀리 어딘가 가두어져 있는지 찾아오지 않는다. 가벼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물론 울어야 할 이유는 다양해서 빨간 개, 누렁 개, 하양 개 이것저것 아직 남아 있다. 그것들이 더 이상 우울이 아닌 건 우울을 오래 겪어 본 사람은 알 수 있다.
책의 저자인 박물학자는 반려견 애니를 데리고 꽃과 나무와 열매와 화석과 새와 포유동물 등 온갖 자연의 존재들을 마주치고 스치며 움직인다. 걷거나 운전한다. 영국의 식생은 잘 모르지만, 책의 초반에 내가 좋아하는 자그만 개암나무와 산사나무가 연달아 나와서 반가웠다. 계절은 10월에서 시작해 다음해 9월까지 흘러간다. 자연은 계속 변하고, 또 다시 반복된다. 스케치와 사진이 좋은 게 참 많았다. 아기자기하게 늘어놓은 산책의 수확물이 귀엽고 예뻤다.
우울을 겪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 공감이 갈까, 했는데 오히려 더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열심히 주변 풍경을 묘사하고 있지만 머릿 속에 잘 그려지지 않았다. 생각보다 재미가 없었다. 계절은 변하는데 서술은 내내 비슷하게 반복되어 지루했다. 상상력이 부족해서일까, 위로와 치유(원제에 remedy가 들어간다)의 단계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따뜻한 위로가 고마운 날이 있었다. 그래서 가까워지고 싶고 잘 알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지만 사람은 다 다르고 모두와 잘 지낼 수는 없다. 분명 같은 사람의 말과 글인데도, 시간이 지나고, 무언가가 어그러지면 위로를 건네던 말과 글이 나를 매정하게 패대기치기도 한다. 권하던 책을 읽다가 그런 일을 겪으니 상처가 더 컸다. 읽다 만 책을 덮었다. 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야생은 내게 위로가 되지 않았다. 그런 위로는 필요없다.
해로운 새다. 손가락질에 나는 해로운 새가 된다.
AW: 당신이 그렇다고 하면 그런 거겠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