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문자를 받았다. 시절과 기분을 환불해준다고 절차를 알려왔다. 마지막으로 본 누군가에게 이 책을 넘겨서 내게는 이제 없다. 받는 사람은 본의 아니게 똥을 받았다고 생각할 지도 모르지만 건네던 때만 해도 나는 이 책이 참 좋았거든. 지금도 좋아하는 마음의 일부는 유효하다.
오늘도 연달아 두 개 문자를 받았다. 여름, 스피드와 2020 젊은 작가상 수상작품집 전자책 환불 건이었다. 적립금 얼마를 돌려 받는 대신 책은 더 이상 이용할 수 없다고 한다. 환불 신청 안 하면 그대로 전자책을 이용할 수 있다고도 했다. 그냥 두기로 했다.
전량 회수, 환불된 소설책. 들어본 적 없는데 또 있었나? 안희정과 박원순이 지은이인 책들 아직 알라딘에 판매중인 거 알고 있어?
김봉곤이 다른 이의 글을 무단도용하고, 원하지 않는 사람의 개인적인 부분을 드러내고 한 점은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책의 회수와 절판은 잘 모르겠다.
지워내고 도려내면 나아지고 해결될 거라 생각한 문제들이 있었다. 나같은 경우는 결국 그렇지 못했다.
며칠 전에 겁나 두들겨 패놓고 연달아 날아온 환불해줄게 책을 내놓아라, 하는 문자 앞에서 질척거리는 나라는 새끼의 마음. 봉곤아 사랑했다. 아직 사랑한다...다친 사람들한테 최선을 다해 사죄하고 복붙 안 해도 충분히 잘 쓰니까 지워지면 안 될 지워지는 사람들 이야기 다시 잘 써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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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풍오장원 2020-07-23 15: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 김봉곤이 쓴 소설엔 아무 관심이 없지만, 공권력에 의한 강제적인 판금처분도 아니고(그런거라면 차라리 참작해줄 만 하기라도 하죠) 출판사 스스로 꼬리내리듯 판매를 중단하는 행태는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앞으로 책 쓰는 사람은 완전한 무균상태같은 책만 써야 하나요? 그런 세상은 지옥입니다. 말뿐인 올바름이 지배한 지옥이지요..

반유행열반인 2020-07-23 15:30   좋아요 4 | URL
소설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어쨌거나 예전에는 친밀했고 사랑했던 사람들과 갈등이 제대로 해소되지 못했다는 상황을 알 수 있고, 이런 식으로 일이 이루어진 게 안타까울 뿐입니다. 글쟁이들이 자기 인생 팔아 먹는 게 하루 이틀 아니고, SNS통해 이슈화 되기 전에는 소설 속 화자인 봉곤이, 곤이의 감정과 심리와 애정사에 집중해서 보았지, 그 주변 인물에 대해 어떤 품평하거나 판단하거나 그 사람이 실존인물일 거라는 걸(막연히 추측이야 했겠지만) 막 강하게 의식하면서 읽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일 터지고 문제 되는 소설들을 다시 읽어봤습니다. 그조차 2차 가해라고 뭐라 하는 사람도 있을지도 모르지만. 논란이 된 배경을 지워내면 여전히 지난 사랑 앞에 급한 일 다 내던지는 누군가와, ‘그런 생활’을 하는 누군가의 삶이 생각보다 별 거 아니고, 이성애자나 다른 형태 사랑 하는 사람이나 별 차이 없이 일상을 살고, 평범한 대화로 일상을 공유하고, 가족과 갈등을 겪고, 그래도 사랑하고, 뭐 그런 걸 보여주는 데는 대화체나 메시지를 쓰는 게 가능한 형식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만 겪은 부분을 쓸 때 날 것 그대로의 원전을 가져올 때는 최소한 양해를 구하고 작가의 말이나 소설 맨 뒤에 인용에 대한 것을 명시하고 감사의 말을 전하는 게 제가 보아온 방식이었습니다. 그러한 양해와 동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그대로 붙여다 쓰는 대신 최대한 가공하면서도 분위기를 살리는 쪽으로 갔어야 맞다고 봅니다.
카톡 대화는 수정본 2,3차만 봐서 잘 모르겠지만, 뒤늦게 알려진 페이스북 메시지는 원문 자체가 굉장히 문학적이었고 그게 이 소설에서 차지하는 지분이 (원작자와 그 친구들이 저작권 요구할 정도로) 작지 않았다고 봅니다. 아웃팅 부분은 잘 모르겠습니다. 당사자가 느끼는 바와 독자가 읽을 때의 느낌은 다를 수도 있겠다 짐작만 할 뿐입니다. 독자로서는 적어도 누군가를 특정하거나 유추하거나 구글링하거나 해서 알고 싶거나 알 정도는 아니었거든요. 그냥 수많은 옛 사랑 중 누군가에 적당히 다른 사랑들을 섞었거니 하는 정도지...
무균지옥까지는 아니어도 실존 인물을 다룰 때 고민할 지점은 충분히 시사한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말이 길었네요...

syo 2020-07-24 12: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시절과 기분 아직 안 읽었는데, 책장에 꽂혀 있는데, 이걸 어떻게 해야하는가 상당히 고민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봉곤아 봉곤아 아이고 봉곤아.....

반유행열반인 2020-07-24 12:42   좋아요 1 | URL
버리지 말고 나줘요 레어템임 ㅋㅋㅋㅋㅋㅋ

공쟝쟝 2020-07-29 21: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반반님 긴 댓글 잘 읽었어여.. 일련의 사건들에 대해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반님의 생각에 많은 부분 동의하게 됩니다. 전 김초엽작가님이 이 사건에다 소설의 가치가 한사람의 삶보다 중요하지는 않다고 코멘트 한걸 읽고 그 말이 마음에 남앗어요. 문학, 예술, 대의(?) 위한답시고 스스럼 없이 착취당하거나 절취당하곤 하던 ‘아무개 한사람의 삶’을 작품보다 중요하다고 말해줘서 고마웠고, 그런 윤리가 일부이긴 하지만 맞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에 살짝 감동스러웠어요. 그런 맥락에서 봉곤찡.. 사건은 좀 상징적인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어떤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한 윤리적 기준이 조금더 섬세해지는 것 같아서 전 좋았다는 얘깁니다. 별개로 저는 김봉곤 작가님의 소설이 너무 삶과 찰싹 붙어보여서 좀 뷰담(?)스러워 했던 독자긴 하지만 그래도 그의 다음 소설은 보고 싶어요. 잘 반성하고 잘 극복하셨으면. 주저리주저리~댓글 달고가욤 호호

반유행열반인 2020-07-29 21:50   좋아요 1 | URL
저는 오히려 SF작가인 김초엽이라 상대적으로 저런(주변 팔아먹는)일에 자유로워 목소리 낼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조금 뿔나기도 했어요. 물론 침묵하는 다수가 쓰는 사람으로서 봉곤이가 한 과오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그래서 침묵한 거 같기도 하지만....여하간에 속시끄럽고 복잡한 문제였습니다. 깊은 생각 긴 댓글 감사해요 쟝쟝님.

공쟝쟝 2020-07-29 21:59   좋아요 1 | URL
ㅎ작가들이 제살주변 팔아먹는 것이 문제라기 보다는... 괴앵장히 멀리간거 같은데 전 김기덕이 생각났거렁요..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이랄까요.. 더하기 또 에... 암튼 고런 맥락에서 만드는 과정에 대한 윤리를 따지는 현상은 좋은거 같아요..

반유행열반인 2020-07-30 06:43   좋아요 0 | URL
저는 표현 막히는 걸 더 걱정하는 쪽이라 나 같은 새끼는 뭐 쓰면 안 될 거 같기도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