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콜리 평원의 혈투
이영수(듀나)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중학교 시절 여름방학에 납량특집으로 방송했던 [V]를 아시는지 모르겠다. 지금은 새로 제작하여 그때보다는 더 세련된 맛이 있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나는 어린 시절 봤던 그 충격적이었던 예전의 [V]보다는 못하다는 느낌이 든다. 어느날 갑자기 외계인들의 방문이라니, 더군다나 인간의 모습까지 해서 더욱 친근해 보였던 그들. 그러나 그들의 의도는 지구정복이었다. 여름방학이 끝난 후 우리는 삼삼오오 모여 참새처럼 [V]에 대해 재잘댔다. 외계침략의 주제는 어제 오늘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늘 그들로 부터 염탐을 당하는 입장으로는 두려울 수 밖에 없는 존재인것은 맞다.

여러가지의 스토리로 구성 되어 있다. 나는 그다지 옴니버스식 글을 좋아하지 않는다. 읽을만 하면 끝나고, 제법 스토리에 빠져들만 하면 끝나는 구성은 나를 힘들게 한다. 스토리에 어느정도 흠뻑 빠지게 되면 다시 새로운 것에 집중을 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런 유형은 드라마를 보는 나의 시각과도 같다. 드라마에 푹 빠져 있다가 그 드라마가 종영이 되고나면 새로 시작하는 드라마를 보기 힘들다. 종영했거나 다 읽은 경우, 드라마나 책의 주인공에 헤어나지 못하고, 그 뒷이야기를 나름 상상하기도 하고, 지난 이야기를 다시 곰곰히 되짚는 내 습관들은 새 드라마나 새 책의 스토리에 다시 집중하기엔 그동안 사랑해왔던 지난 날의 주인공들과 헤어질 마음의 준비를 하기엔 너무나 턱없이 시간이 부족하다. 그런 이유로 옴니버스식의 이야기는 뭔가 허전한, 절대적으로 채워지지 못한 공허함,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기엔 아주 많이 시간이 부족한 그런 글들의 구성이 내가 싫어하는 옴니버스식의 이야기이다.

이번 나의 일정이 모두 끝난 뒤에, 내가 읽어야 할 책들 중에서 제일 먼저 골라 든 책은 바로 <브로콜리 평원의 혈투>다. 내가 힘들어하는 구성의 책이란 사실도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먼저 선택한 이유는 바로 저자의 기발한 상상력의 돋보임이 있는 책이라는 사실이었다. 듀나라는 필명의 작가는 무척이나 생소했다. 인터넷 연재 소설이라는 책이라는것도 생소했다. 인터넷 서점이라는 공간에 글을 올리기 시작한 것도 이제 5개월 남짓 됐다. 그중 3개월은 그저 회원가입만 해 놨을 뿐인 상태였고, 본격적으로 블로깅을 시작한것은 2개월 정도다. 그랬던 내게 인터넷 연재 소설의 생소함은 너무 낯설었다. 듀나라는 필명까지도.

그녀의 상상력에 호기심을 가진 나는, 왜 모두가 그녀의 상상력을 찬양하는지 깨달았다. 끝도 없이 마르지않는 샘물같은 상상력으로 내가 죽었다 깨어나도 상상해내지 못할만큼의 이야기로 나를 사로잡았다. 때로는 전설의 고향처럼, 때로는 환상특급처럼, 때로는 SF영화처럼 단 한순간도 지루할 틈이 없는 듀나의 소설.

제일 무서웠던 이야기는, 첫번째로 소개됐던 <동전마술>이다. 첫번째 이야기부터 매력적이니 그 다음에 쉽게 빨려들어갈 것은 너무나 당연한 진리 아닐까? 사실 그 뒷부분도 너무 궁금했다. 다른 세계로 가는 틈새가 너무나 궁금했지만, 그 다음 이야기들이 소개가 될때마다 나는 궁금해 하면서 또 빠지고, 그 다음 이야기에 또 빠지고 궁금해 하기를 반복했다. 군더더기 하나 없는 말끔하고 깔끔한 글은 책을 읽으면서도 이 책 참 매력적이다 라는 생각이 끊임없이 들었다. 너무 허황스러운 이야기라고도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SF판타지를 읽으면서 허황되다고 한다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이 책을 읽기전 꼭 장르가 SF판타지임을 알고 읽는다면 그런 헷갈림은 없을 것이다. 오히려 이 책과 듀나의 매력에 흠뻑 빠질 것이다.

SF판타지. 그렇다. 이야기들의 대부분은 외계의 이야기다. 이미 인간은 퇴물로 전락한 시대쯤이다. 콜로니를 만들어 자신의 삶을 추구한다거나, 외계 바이러스인 링커바이러스, 인간들의 진화는 점점 종을 알수 없는 유형으로 진화를 한다거나, 로봇들의 이야기는 끊임없이 독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브로콜리 색의 띠지에 소개한 듀나, 상상력의 끝은 어디인가?! 라고 적혀있는데 아주 마음에 꼭 드는 말이다. 이 책을 통해서 본 그녀의 상상력은 여기가 끝은 아닐듯 싶다. 내 상상력을 넓혀주는 그녀의 상상력. 꼭 또다시 만나게 될 그 날을 손꼽아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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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1-03-24 15: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뒤집힌 장르소설로 가득한 서재대문 사진보고 트랙백해 왔어요.
듀나의 명성은 익히 알고 있는데, 이 책 그렇군요.
재밌겠어요, 님의 리뷰도 재밌구요~^^

첫눈 2011-03-24 17:10   좋아요 0 | URL
사진찍다 보니 거꾸로 되어있더라구요 ㅎㅎㅎ

이 소설은 정말 흥미진진해요.
끝이 있는 소설은 아니지만 챕터 하나하나 마다 상상력을 자극해요.
리뷰를 재밌게 봐주셨다니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와주시고 좋은 댓글까지 남겨주시고 ㅎㅎ
저도 찾아뵙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