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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톤 다이어리 ㅣ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캐롤 쉴즈 지음, 한기찬 옮김 / 비채 / 2015년 8월
평점 :
<스토너>의 여자 버전이라고 들어서 냉큼 읽어보았다. 소문대로 색채나 여운은 비슷했으나 엄연히 <스토너>와 닮았다고는 할 수 없을 작품이었다. <스토너>는 주인공 한 사람을 조명해 주던 반면에 <스톤 다이어리>는 주인공을 비롯해 일가족과 주변인들까지도 소개하는 나름의 대형 무대를 갖추고 있더랬다. 그럼에도 분량은 길지 않아 생략된 구간이 많은 편이다. 그 빈틈을 독자가 알아서 채워 넣어야 하는 겉바속촉의 감성이 필요하니 참고하시길요.
어머니는 딸을 낳다가 죽고, 아버지는 이웃집 부인에게 딸을 맡긴다. 부인은 말도 없이 가출해 큰아들 집으로 와서 데이지를 키운다. 갑작스러운 이별을 겪은 부인의 남편과, 계획에 없던 가장이 된 큰아들. <스톤 다이어리>는 이런 식으로 예상치 못한 멘붕이 연거푸 날아든다. 이후 부인은 사고로 죽고, 아버지는 일 밖에 모르고, 어머니는 기억조차 없는 데이지. 심지어 신혼여행 중에 남편이 죽어, 결혼하자마자 과부가 되었고 시댁과 주변에게 애꿎은 비난을 받는다. 겨우 이십 년 남짓 인생에 별별 굴곡이 다 들어선 것이다. 그러나 데이지는 낙담할지언정 어떤 감정도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산다는 게 다 그렇단 듯이.
요양하러 고향 땅에 왔다가 어릴 때 같이 살던 부인의 큰아들을 만나는 데이지. 이어서 식물학자가 된 그와 결혼하고 세 자녀를 낳은 엄마가 된다. 겨우 얻게 된 안정감 앞에서 자신의 두 배나 되는 남편의 나이는 문제도 아니었다. 오히려 한마디씩 하던 지인들의 나쁜 소식만 들려와, 어떤 선택이든지 간에 잘 되리라는 법은 없음을 직간접적으로 알게 된 그녀였다. 안 그래도 고달픈 삶이 밑바닥을 친다면 패배자든 악바리든 뭐라도 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데이지는 어느 쪽도 아니었다. 단지 주어진 현실과 상황을 군말 없이 받아들였고 아픔은 조용히 삼켜내었다. 그냥 흘러가는 대로 살았다고도 할 수 있겠으나 내게는 이것이야말로 지혜 중의 지혜라 생각된다. 원래 삶이라는 게 화려하고 시끌벅적한 성질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 삶의 공식을 깨우친 지혜자들은 그 공평성 앞에 겸손을 갖추고 살아간다. 이제껏 내가 보아온 이들은 다 그랬다. 이 책의 주인공도 그러했고.
데이지의 친부는 꽤나 재능 있는 석공이었다. 아내를 잃은 슬픔을 석탑 만들기로 떨쳐낸 그는 영입해간 기업의 대표 자리까지 올라간다. 그리고 먼 훗날 재혼하고서 갑자기 거대한 피라미드를 쌓기 시작한다. 한편 이 시기에 데이지는 남편을 떠나보낸 후 정원을 가꾸는 일로 슬픔을 달래었다. 그러다 남편의 식물학회 및 각종 단체에 초대되어 연을 맺고, 원예 칼럼을 기고하며 제2의 인생을 맞는다. 여기서 두 사람의 대조되는 지점이 흥미롭다. 돌로 세운 아버지의 조형물들은 변치 않을 영원함이었고, 각종 식물로 만든 딸의 정원은 언젠가 없어질 죽음이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석탑은 관광객들의 손을 타면서 형태를 잃었고, 피라미드는 갑작스러운 그의 변심으로 싹 다 밀어버렸다. 오히려 유한한 생을 지닌 딸의 식물들은 제 역할이 끝나면 스스로 마감하였고 또다시 생명화로 피어났다. 이렇듯 움켜쥘수록 손안에서 빠져나가기만 하는 삶이었고, 그 도발에 말려든 인간의 실수는 반복돼 왔다. 그러니 지금부터라도 욕망과 욕심을 잘 구분하여 앞으로의 흑역사를 줄여가보자.
그 밖에도 예상치 못한 짐을 떠안은 일이나, 자식들의 이런저런 실패와, 다 흩어져 혼자가 된 외로움을 표할 데가 없는 나날 등등, 쓸쓸하지만 그것이 자연의 섭리라고 생각되는 장면이 가득하다. 인생을 되돌아보게 만들고 참 보잘것없구나 느끼게 해주는 이야기들. 이것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서사가 아닐까 싶다. 사람은 누구나 특별해지고 싶고, 성공하고 싶고, 인정받고 싶어 한다. 하여 그런 미래를 꿈꾼다거나 그 같은 인맥을 자랑하곤 하지만, 정작 필요시에 위로와 격려를 받게 되는 것은 평범한 이들의 삶에서다. 화려하지 않아도 상관없고, 유명하지 않아도 충분하다는 믿음은 오늘날 병든 현대인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요소가 되었다.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인생에 호언장담이 웬 말이랴. 각자 어떤 생을 살았든지 그 공평성을 마주할 때가 분명히 올 것이다. 부디 그날이 오면 ‘잘 놀다 갑니다‘라고 말해줄 수 있는 당신과 내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