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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질한 악마 ㅣ 새움 세계문학전집
표도르 솔로구프 지음, 이영의 옮김 / 새움 / 2019년 2월
평점 :
날도 춥고 하니까 러시아 문학이나 읽자 싶어 뒤져보다가 이 작품을 발견했다. 무려 도스토옙스키 다음으로 가장 완벽한 러시아 소설이라는데 그렇담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읽어줘야 인지상정 아닌가. 게다가 내가 좋아하는 찌질 감성의 끝판왕이 나온다고 하니 이래저래 기대가 컸다. 그래서였을까. 아무리 읽어도 작품의 매력을 느낄 수가 없었고, 갈수록 반복되는 이야기에 그만 질려버렸다. 역시는 역시나였다. 평이 화려한 작품들은 경계가 필수인데, 러시아라고 다를 줄 알았던 건지 방심했다가 또 낚였음. 퉤에.
중학 교사인 페레도노프는 오만함, 야비함, 비굴함, 졸렬함 등등 나쁜 것들만 죄다 갖춘 역대급 빌런이다. 인성 파탄자에다 수업도 잘 못하는데 어떻게 선생이 되었는지부터가 의문이지만, 그와 결혼을 원하는 여자들이 줄을 섰다는 전형적인 나쁜 남자라니, 뭐 이런 설정이 다 있냐. 감정 그래프가 쉼 없이 오르내리는 이 빌런은 헛된 망상을 즐기며 그에 따른 폭언과 거친 행동도 아끼질 않는다. 이는 아무리 가깝고 친한 사람이라도 예외가 아니다. 근데 이상하게 주변인들이 주인공의 망나니 짓을 잘만 받아줘서 당황스럽지만 그냥 러시아인들은 다 이런갑다 하게 된달까. 아무튼 등장 인물들이 쾌활과 광기의 중간쯤에 있는데, 일일이 묘사하기도 귀찮으니 궁금하시면 직접 읽어보길 바란다. 참고로 이 작품에는 멀쩡한 인물이 없다시피하다.
동거 중인 사촌 동생 B는 페레도노프와의 결혼을 꿈꾼다. 콧대 높은 오빠를 낚기 위하여, B와 혼인하면 빌런에게 장학관 자리를 내준다는 공작부인의 약속을 꾸며놓는다. 그게 뻥인 줄도 모르고 동네방네 떠들고 자랑하고 다니는 빌런과, 사태의 진실을 알고도 장단 맞춰주는 모든 사람들. 그를 놀려먹는 게 마냥 즐거운 사람들에게서, 그동안 페레도노프를 얼마나 재수 없어 했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자신이 조롱거리가 되었다는 걸 끝내 알지 못했으니 이 작품은 어떤 교훈을 주려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사회를 막 풍자하려는 것 같지도 않았다. ‘찌질한 사람들‘이 제목으로 딱이겠던데.
B한테 속은 줄도 모르고 승진할 생각에 들떠서 어깨에 힘주고 다니는 주인공. 반면 모든 사람들이 자기를 시기하여 죽이려 들거나, 음식에 독을 탄다거나, 마법을 부린다거나, 동물로 둔갑하여 공격할지도 모른다는 이상한 피해 망상에 빠져든다. 물론 원래부터 정상은 아니었는데 이제는 그 수치가 한참을 초과하고 있어, 그나마 귀엽게 봐주었던 허세나 허언증도 더 이상 꼴 보기 싫어질 정도로 변해버렸다. 즐거워했다가, 불안에 떨다가, 윽박지르다가, 혼쭐나고 깨갱했다가, 다시 행복에 겨워하는 사이클의 무한 반복이다. 누군가의 말처럼 ‘삐뚤어진 자기애‘로 똘똘 뭉쳐있긴 하지만 저밖에 모르는 유아독존은 또 아니라서, 도대체 무슨 얘기가 하고 싶은 건지 작가를 이해 못 하겠더라. 해서 메시지 생각 안 하고 그냥 읽었는데 심지어 재미도 일관되게 없었다는...
그래. 사람은 누구나 악한 마음을 품고, 마음 속에 악마가 살고 있다고 해. 그 개개인의 악마를 인물화하여 인간 사회의 추악한 민낯을 고발하고 싶었다 치자고. 그렇담 최소한의 성공과 실패, 상승과 몰락이 나와줘야 하잖아? 근데 이 작품은 정말 모든 사람들이 추잡해서 누가 더 낫다 아니다를 논할 수가 없다. 주인공이 역대급 빌런이면 뭐 하나. 전혀 돋보이질 않는데 말이다. 내가 평소에 생각했던 찌질함과는 거리가 있어서, 차라리 ‘창비‘의 <허접한 악마>나, ‘책세상‘의 <작은 악마>가 더 나은 제목일 듯하다. 이런 게 도스토옙스키의 뒤를 잇는 희대의 명작이라니. 회초리가 어디 있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