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더브레 저택의 유령
루스 웨어 지음, 이미정 옮김 / 하빌리스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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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4학년 때였을거다. 어느 지역이나 그렇듯 학교마다 들려오는 괴담이 있었다. 밤 12시만 되면 학교에 있는 동상이 운동장을 돌아다닌대서 친구들과 밤중에 학교로 갔다. 예상보다 일찍 도착한 초딩들은 할 일도 딱히 없어서 건물 안으로 들어가 있기로 했다. 학교들이 지금처럼 문단속을 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아무튼 손전등도 없이 반마다 구경하고 있었는데, 누군가가 복도 끝을 휙 지나가는 게 아닌가. 불빛도 발소리도 없는 그림자 하나가 복도 곳곳을 스쳐 지나갔다. 무서워서 건물 밖으로 뛰쳐나간 우리는 기절할 뻔했다. 동상이 없었다. 친구 하나가 소리 지르며 정문으로 달렸고 나머지도 따라나갔다. 한 친구의 손목시계가 1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겁도 없이 우리는 학교마다 확인해 보기로 했다. 그 당시 다녔던 서울 중구의 흥인초부터 해서 장충초, 청구초 등 몇 군데를 돌았다. 하지만 다른 학교 동상들은 전부 멀쩡했고, 결국 우리 학교만 저주받았다고 믿게 돼, 한동안 학교 다니기가 무서웠던 기억이 난다. 내 기억의 어디까지가 사실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그때 받은 자극이 워낙 강렬해서 지금까지도 실화처럼 느껴지긴 한다. 이 얘기만 했다 하면 msg 그만 뿌리라고들 한다. 내가 분명히 겪었던 일인데도 어째선지 확신이 들지 않는다. 나만 바보 된다는 게 바로 이런 거다. 억울한데도 증명할 길은 없는.


여름이니까 무서운 이야기나 해보자는 건 아니고, 이번에 읽은 책의 주인공이 딱 내 얘기 같아 생각나서 적어봤다. <헤더브레 저택의 유령>은 고딕소설인 <나사의 회전>의 현대판으로 소개되었다. 이 책을 읽고 싶어서 얼마 전에 <나사의 회전>을 읽은 거라능. 이 책에서도 주인공이 가정 돌보미로 한 저택을 방문한다. 그곳은 건축가 부부가 리모델링한 스마트하우스로, 최첨단 기능이 곳곳에 탑재되어 있는 미래지향적인 건물이었다. 부부는 주인공 로완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장기 출장을 가버린다. 어린이집 교사였던 로완의 자신감은, 협조할 마음이 1도 없는 아이들과, 저택의 복잡한 스마트 기능 때문에 급다운된다. 이보다 더 난처했던 건 저택이 무서워서 그만뒀다던 돌보미들의 이야기였다. 이렇게 끝내주는 집의 어디가 대체?


집안에서 하나둘씩 미스테리한 일들이 발생한다. 전혀 모르는 곳에 가 있는 물건들, 자동으로 열리는 현관문, 모두 자고 있는데 들려오는 발소리, 바닥에 놓여진 알 수 없는 꽃, 멋대로 작동하고 먹통이 된 스마트 기능... 이런 상황이 반복되자 우습게 여겼던 유령의 존재를 의식하게 된 주인공. 유령의 짓이 아니면 도저히 있을 수가 없는 현상뿐이었다. A/S 받으러 가면 멀쩡히 작동하는 기계처럼, 다른 누가 있을 때는 물건도 제자리에 있고 기능들도 정상이라 로완은 돌아가시기 직전이다. 이상을 감지한 남직원도 있었으니 피해 망상은 분명 아니었다. 이런 식으로 로완을 내내 쥐락펴락하는데 약간 지루해진다 싶어질 때에 저택의 과거를 빵 하고 터뜨려준다. 제법 밀당할 줄 아는 작가다.


저택 주변 어딘가에 금지된 화원이 있었다. 위험한 식물로 가득한 그곳은 아무도 관리하지 않았다. 왜 이런 곳을 그냥 두는 건지 이해가 안 됐다. 그러다 저택의 전 주인의 딸이 화원의 식물 때문에 죽었다는 걸 알게 돼, 어쩌면 그 아이가 지박령이 된 걸지도 모른다는 가설로 유령의 존재를 더욱더 의식하게 된다. 한편 공포가 극에 달하던 어느 날, 로완은 남직원의 숙소를 방문한다. 그런데 잠깐. 어째서 화원의 꽃이 여기에 있는 걸까. 그 꽃은 저택 거실에 갑자기 떨어져 있던 것과 같은 종이었다. 왜 그동안 눈치채지 못했을까. 의심해 볼 여지는 충분했는데.


고딕소설은 주제 파악이나 작품 해석이 중요치 않은 장르다. 미스테리 요소가 있다곤 해도 그냥 보이는 그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면 된다. <나사의 회전>과 달리 이 책은 구멍 난 문장도 없어 깔끔하고 좋았다. 두 작품은 설정이나 구조 면에서 닮아있지만 크게 다른 한 가지가 있다. <나사의 회전>은 유령이 등장하나 별일은 없었고, <헤더브레>는 유령은 없지만 별일이 다 있다는 것. 전자는 비움으로 겁을 주고, 후자는 채움으로 겁을 주는 방식의 차이다. 귀신보다 무서운 게 사람이라는 말마따나, 현대에는 <헤더브레>식의 연출이 훨씬 그럴듯하게 먹혀든다. <나사의 회전>이 연상되지도 않는 걸 보면 제대로 성공했다. 이제 후반부로 갈수록 반전이 연달아 나온다. 막 놀라울 정도는 아니지만 고딕소설에서는 이 정도가 한계이지 싶다. 이렇게 고전을 현대풍으로 재해석한 이야기는 언제라도 환영입니다. 아시겠죠, 소재 고갈된 작가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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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오 2023-07-14 06: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윙크하는 공유 좀 뷰담스러웟는데 바뀐 공유 좋네요 ㅋㅋㅋㅋ

물감 2023-07-14 09:48   좋아요 1 | URL
이런 댓글 예상하고 있었어요 ㅋㅋㅋ

잠자냥 2023-07-19 15:00   좋아요 1 | URL
얼마나 부담스러웠는지 *뷰담*...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자목련 2023-07-14 08: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공유가 손에 든 건 책은 아니고 작은 수첩일까요 ㅋㅋ

물감 2023-07-14 09:50   좋아요 1 | URL
그래도 화보인데 수첩보다는 책 들고 찍지 않았을까요?ㅋㅋㅋㅋ

자목련 2023-07-14 10:36   좋아요 2 | URL
그래서 확대를 해봤는데 책 느낌은 아니어서 ㅋ
댓글이 책 이야기가 아닌 공유로~~
요즘 악귀를 열심히 보고 있는데 매일 지내는공간과 마주하는 사람이, 가장 강력한 공포가 되는구나 생각해요.
비 피해 없는 하루 이어가세요^^

청아 2023-07-14 11: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초5때 어느 날 화장실에서 홍콩할매 나온다고. 마주치면 숨쉬지말라고 해서 대부분 그냥 화장실을 안갔던 기억이 있습니다. 파리만 날렸을 그 시기의 화장실ㅋ

물감 2023-07-14 15:17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제 외가집도 화장실만 마당 구석에 따로 있었는데요, 초딩일 때는 자다가 화장실 가는 게 그렇게나 무서웠습니다. 거기만 가면 빨간휴지 파란휴지가 생각나서요 ㅋㅋㅋㅋㅋㅋㅋㅋ

coolcat329 2023-07-15 13: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동상이 없었다‘ ㅋㅋㅋㅋㅋ
어릴 때는 이런 괴담이 무서우면서도 이상하게 끌려요. 초4가 밤 12시에 학교라니 정말 무서웠겠어요. 너무 무서워서 순간 동상이 안 보인 건 아닌지요...ㅋㅋㅋ

물감 2023-07-15 18:59   좋아요 1 | URL
보통은 무서워져서 동상이 사라져보이는 거라 생각하는게 맞는데요, 네명 다 그랬다고 하니 뭐가 뭔지 참ㅋㅋㅋ 우리 어릴땐 이런 괴담들이 많았죠. 요샌 초딩들도 조숙해서 괴담 안믿다는...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