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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 - 꿈이 끝나는 거리 ㅣ 모중석 스릴러 클럽 26
트리베니언 지음, 정태원 옮김 / 비채 / 2010년 12월
평점 :
절판
<카티야의 여름>을 읽고 반해서 이번에도 많은 기대를 했는데 아 웬걸, 이렇게 텐션 낮은 스릴러라니. 뭐랄까, 티저 영상만 보면 박스오피스 1위인데 막상 보니까 그 티저가 전부였던 그런 느낌이다. 무엇보다 누아르 작품인 줄 알았다면 읽지 않았을거다. 나님은 누아르 안 좋아하거든. 그나마 타 작품에 비하면 문장에 힘을 뺀 편이라 읽기에는 덜 부담이라는 거. 본토에서는 베스트셀러를 여러 번 갱신한 작가라는데 국내에는 세 작품밖에 출간이 안 되어있다. 왜인지 알만하다. 저자의 감성이 우리나라한테는 그리 먹혀들 것 같지는 않다. 그럼에도 특유의 그 감성이 좋아서 다른 작품들도 읽고 싶어진다. 애매하게 취향 저격을 하는 애매한 작가이다.
슬럼가인 메인 거리를 순찰하는 라프왕트 경위. 아무리 질 나쁜 인간들로 득실거려도 라프왕트는 사명을 다해 이곳을 수호한다. 그러나 그의 거친 방식은 매번 민원을 낳았고, 경찰국은 이 최고참을 자르냐 마냐 하는 중이다. 어느 날 뭔가에 찔려죽은 피해자를 발견한 경위는 또 다른 피해자들을 찾아낸다. 이 신성한 구역에서 나 라프왕트를 무시하고 감히 살인을 해? 잡히면 다 뒤졌어 하고 있는데 아니 글쎄, 피해자들이 죄다 인간 말종이었다네? 흠흠. 그래도 살인은 안될 일이지. 잘리거나 말거나 오늘도 제 방식대로 메인을 주무르는 상남자 라프왕트의 이야기 되시겠다.
사건과 수사는 그리 중요치 않다는 듯 매우 느슨한 플레이를 보여주고 있다. 사건에 관한 건 중간마다 한 번씩 집어주는 정도이고, 메인의 분위기나 인간 군상에 대해서 다루는 장면이 더 많다. 폭력과 음행이 난무한 이곳을 정화하고 질서를 잡아가는 주인공의 이야기라고 보면 된다. 그러니 왜 사건 얘기는 안 하고 자꾸 옆길로 새냐며 욱하지 말길 바란다. 내가 그랬거든(소곤). 암튼 가까운 사람들이 차례차례 떠나간 그에게 남은 건 일 뿐인데 그마저도 없어질 판이다. 이곳 메인에서는 라프왕트조차도 소외와 고독을 피해 가지 못하였다.
할아버지와 아내를 떠나보낸 후로 긴 시간을 방황하며 지금까지도 힘들어하고 있었다. 평생을 센 척하며 살았지만 누군가의 손길을 그리워하는 그였다. 그래서 어쩌다 탄생한 할배들의 카드게임을 매주 참여했고, 일부러라도 메인 거리를 순찰하며 사람들을 보러 다녔다. 늘 혼자였던 그의 앞에 두 젊은이가 등장한다. 하나는 사건 담당을 보조하는 신참 경관이었고, 다른 하나는 길에서 만난 어린 매춘부였다. 출근하면 신참과 종일 붙어있고, 퇴근하면 매춘부와 밤을 같이 보내는 나날이 반복된다. 나이가 든 탓인지 귀찮게 하는 이 둘을 딱히 뿌리치지도 않는다. 오히려 이들과 지내면서 허물어져가는 스스로를 발견한다. 신참한테는 자신의 젊은 시절을, 매춘부한테는 죽은 아내의 모습을 보면서 회상에 빠진다. 과연 그는 현재를 살아가는 중일까, 과거에 머물러있는 것일까.
힘차게 떠오른 태양도 때가 되면 저물고 만다. 세상은 주인공에게 그만 좀 물러나라고 소리 지른다. 이렇게 억지로 설자리를 잃어야 한단 말인가. 어쩌면 메인의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이런 기분으로 살아가는 중인지도 모른다. 갈 곳이 없어진 그가, 갈 곳을 잃은 사람들에게 해오던 만행들이 어떠했는지를 돌아봤으면 한다. 여차여차해서 임팩트 없이 사건은 종결되었지만 딱히 추리하고 범인 쫓는 이야기가 아니므로 주인공 인생사에 더 주목하시기를. 힘들게 쌓아 올린 피라미드가 점점 무너져내림을 지켜봐야 하는 기분은 말로 설명할 수가 없다. 그런데 때론 떠오르는 태양보다 저물어가는 태양에게서 위로를 얻곤 한다. 세월의 풍파를 겪은 사람일수록 무슨 말인지 공감하리라 믿는다. 그러니까 있을 때 잘들 하자. 뭐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