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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 에드워드 - 살아남은 아이, 유일한 생존자이자 신이라 불린 소년에게
앤 나폴리타노 지음, 공경희 옮김 / 쌤앤파커스 / 2020년 8월
평점 :
절판
드디어 내 일생일대의 대사건을 말할 기회가 찾아왔다. 군대를 나오고 첫 직장에 입사한지 얼마 안 되어 교통사고가 났다. 횡단보도를 건너던 나를 신호위반의 승용차가 들이받았다. 이후 긴 시간을 망가진 육체보다 집 나간 멘탈로 괴로워했다. 목숨은 건졌으나 사는 게 사는 것이 아니었다. 평생을 불구로 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박탈당한 사회활동으로 불투명해진 미래, 하는 것도 없이 아까운 시간만 흘러가는 나날들. 나는 이토록 죽겠는데 태양은 여전히 눈이 부시고 새들은 노래하며 사람들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 모든 것들이 나를 분노하게 만들었고 차라리 세상에 종말이 찾아오길 바랐다. 시간이 흘러 분노는 곧 염세주의로 바뀌었고 이내 모든 것이 의미를 잃어버렸다. 내가 집착했던 모든 게 다 부질없고 헛되다고 느껴졌다. 그렇게 욕심과 미련이 사라지고 나니 불안과 열등감으로 요동치던 내 삶에 비로소 평온이 찾아왔다. 갑자기 내 인생사를 꺼낸 이유는, 이 책의 주인공의 입장이 나의 과거와 여러 가지로 닮아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재미는 없었는데 내 옛날을 떠올리게 만드는 복잡 미묘한 작품이다.
에디는 추락한 항공기에서 유일하게 생존한 소년이다. 이모 집에서 살게 된 소년은 학교를 다닐 만큼 회복하지만 마음은 낫질 않는다. 자신이 쓸모없다고 생각하기를 수년째, 어느 날 차고에서 편지가 가득 담긴 가방을 발견한다. 편지는 전부 항공기 사고의 유가족들이 소년에게 보내온 것이었다. 겨우 삶의 의미를 되찾은 소년은 그를 기다리는 유가족들을 만나러 간다.
보통 이런 소식을 듣게 되면 당사자의 아픔보다 앞으로의 생계 문제가 더 걱정이 된다. 다행히 에디는 곧바로 보호자가 생겼고, 치료비와 학비와 생활비 등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다. 생계문제를 단박에 해결해버린 작가는 이제 소년의 트라우마에 집중한다. 남들은 아이가 없는 이모 집안에 소년이 와서 서로가 잘 된 거라고 한다. 그러나 소년은 이모를 방해하고 감정을 망치는 존재나 다름없다고 느낀다. 이모와 이모부는 정말 좋은 사람들이지만 소년의 문제로 자주 다툰다. 그 광경은 친부모의 티격태격하던 모습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이웃집에 사는 동갑 친구 쉐이에게는 자유분방하고 당차던 형의 모습이 보였다. 이모를 보면 얼마 얼굴이 생각났고, 수학시간에는 수학자였던 아빠가 생각났고, 위축된 자신을 볼 때마다 정반대 성격이었던 형이 생각났다. 원치 않는 유명인사가 된 에디는 차라리 형이 살았어야 했다며 수없이 자책한다. 내 삶이 중요했던 나는 자기혐오가 겉으로 마구 표출되는 타입이었다. 그러나 가족이 먼저였던 에디는 자기혐오를 속으로 삭히고만 있었다. 그러니 아픔은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런 소년을 일으키는 데에 공조한 삼 인방이 있다. 첫 번째는 교장 선생님이다. 화분에 심은 고사리들을 기르는 게 취미인 교장쌤은 소년에게 화분 관리를 맡긴다. 묵묵히 고사리를 가꾸며 심신의 안정감과 차분함을 얻은 소년은 병으로 죽어가는 식물을 보며 마음이 뒤숭숭해진다.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존재였던 그가 처음으로 다른 대상을 불쌍히 여길 줄 알게 되었다. 두 번째는 에디의 정신 치료 담당 의사다. 수십 번의 상담으로도 진척이 없는 소년을 포기하지 않고 그의 졸업식까지 찾아와 축하해준 의사. 그에게 부친의 애정을 느낀 소년은 받기만 하던 입장에서 보답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 세 번째는 단짝 친구 쉐이이다. 모든 일이 두렵고 낯설었던 소년에게 세상은 생각보다 별것도 아님을 깨닫게 해준 친구. 무엇이든 겁 없이 맞서고 행동하는 쉐이의 영향으로 속앓이를 겉으로 표출하는 데에 성공한 소년. 겨우 본인의 삶을 우선시하는 법을 터득하고서 세상으로 발을 내딛게 된다.
감당 못할 큰일을 당해서 도저히 치유가 불가할 때 흔히들 시간이 해결해준다고 말한다. 그러나 아픔에 무뎌지는 것은 시간이 해결해준 것이 아니라 그 시간만큼 성숙해진 자신이 해결해주는 것이다. 확실한 건 스스로 성숙해질 수는 없다. 나무가 잎사귀를 내고 열매를 맺으려면 햇살과 비와 바람이 있어야 한다. 소년은 그런 햇살 같고 비 같고 바람 같은 사람들이 곁에 있어 회생할 수 있었다. 공청회를 참석한 유가족들의 시선도, 그들의 편지 속 내용들도 감당키 힘들었던 에디. 희생자들의 삶과 이상을 소년이 이어받아 살아주길 당부하는 유가족들. 고통 속에서 자신을 꺼내주었던 주변인들처럼 자신도 유가족들을 도와주기로 결심한다. 이제 삶의 일 순위는 가족에서 자신으로, 그리고 타인으로 바뀌었다.
내가 부정적인 생각 속에서 헤어날 수 있었던 건 나의 쓸모를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부족한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기쁨을 주었을 때 솟아나는 벅찬 감정이 나를 살게 해주었다. 이 책의 주인공도 나와 같은 결말을 향해가고 있었다. 그래서 남 얘기 같지가 않았고 슬픔을 이겨내어 삶의 의미를 되찾은 주인공이 참 대견했다. 사실 이런 감동 실화들은 교훈이나 메시지를 두지 않아 독자들의 반응이 갈리는 편이다. 슬픈 이의 마음은 슬픔을 아는 자만이 이해할 수 있으니까. 반대로 이런 이야기를 공감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만큼 본인도 힘들고 괴로운 시간들을 보냈다는 뜻일 테니. 슬픔이 현재진행형인 분들도 곧 해 뜰 날을 볼 것이다. 부디 지금의 시간들을 잘 견뎌달라고 부탁하고 싶다. 그리고 자신의 쓸모를 꼭 발견하길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