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의 금기 살림지식총서 61
장범성 지음 / 살림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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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에서 왜 모략이 발달하고, 걸출한 협상의 귀재들이 배출되었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음식, 언어 사용, 풍습에서 이렇게 피해야 할 것이 많다는 것을 기억하려면, 조금이라도 생각하기를 멈춰서는 안 될 것 같다. 생각하기가 일상이 되어야만 조화로운 삶이 가능할 정도로, 일상의 풍습에 곁들일 이야기가 많다. 쾌종 시계를 선물하는 것이 죽는다는 의미와 음운이 비슷하여 금기가 된다거나, 음양의 조화를 이루는 것은 짝수이므로, 선물을 짝수로 해야 한다거나, 결혼 등 길일을 양력, 음력 모두 짝수로 떨어지는 날을 선호한다는 등의 이야기가 흥미롭다. 말할 때 조상의 이름을 직접 거론하지 않는다거나, 집안에 심어야할 나무와 뜰에 심어야할 나무를 구분하는 것, 아이의 이름을 아무렇게나 지어 생명 연장을 꿈꿨다는 등의 이야기는 같은 유교문화권인 까닭인지 많이 닮았다. 금기라는 주제만으로도 숱한 이야기를 엮어낼 수 있는 중국. 금기 속에서 문화의 힘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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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엘리트 - 마오쩌둥에서 제5세대 지도자들까지 살림지식총서 332
주장환 지음 / 살림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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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정, 항일전쟁, 사회주의 개조, 문화대혁명, 개혁․개방의 5가지 척도로 중국 정치 엘리트의 세대를 구분한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았다. 중국 정치 엘리트의 대다수를 한족이 차지하고, 남성이 월등히 우세하며, 공산당원이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다는 점은 쉽게 추론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개혁․개방의 물결을 타고 등장한 정치 엘리트들이 군인 출신보다 자연과학, 재정, 경제, 응용과학자 출신이 많다는 분석은 현대 중국의 모습을 이해하는 데 좋은 키워드가 될 것 같다. 사실을 근거로 철저히 실험하고 검증하여 결론을 얻어내는 데 익숙한 과학도들이 최고 권력을 독점하고 있다는 점이 특색 있다. 1세대에서 5세대에 이르는 대표적인 정치가를 밀도 있게 추적하기에는 부족하지만, 개괄적으로 훑어보기에는 정갈하고 매끄럽게 잘 정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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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천원 인생 - 열심히 일해도 가난한 우리 시대의 노동일기
안수찬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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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계와 확률이 내게 주는 안도감과 위로는 오랜 시간동안 커다랗게 부풀려져 왔다. 숫자 앞에 설 때마다, 다른 이들이 보일 틈이 없었다. 실업률, 최저임금, 적정 노동시간, 경제 성장률 등등 숫자로 표기되는 경제 지표들은 주변을 돌아보는 대신, 온전히 내 자신에게만 집중하도록 종용했고, 통계의 표본에서 살짝 비껴간 내 상황이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다. 통계에는 비루한 가난의 냄새도 실려 있지 않았고, 현장의 처절한 사투 역시 말끔한 진공상태로 억눌려 제시되었다. 깔끔하게 마감된 통계 치를 보면서 유령처럼 배회하고 있는, 지금도 어떻게든 살아보겠노라고 몸부림치는 이웃들의 모습을 읽어낸다는 것은, 어쩌면 처음부터 잘못된 시도였을런지 모른다. 살로 부대끼고, 눈으로 마주해야 느끼는 삶, 그 자락의 애절한 이야기들을 숫자로 대신 표현한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4명의 기자들을 통해서, 식당 아주머니들의 쉴 틈 없는 노동 잔혹사를 보지 않았더라면, 극한의 피로를 무릎 쓰고 공장 일에 매달리는 직공의 일상을 엿보지 못했더라면, 거대 자본의 부품이라도 된 듯 하청의 연결 고리 가장 아래에서 오늘도 하나라도 더 팔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마트의 유령 점원들을 눈여겨보지 못했더라면,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몰이해와 비인권적인 처우를 마주하지 못했더라면, 숫자들은 끝내 나를 울리지 못했을 것이다. 기자들은 숫자에 현실을 덧입혔고, 비딱해진 양심들 위로 지성의 환기를 주문했다.

   단아한 숫자들을 떠받들고 있는 현실의 비참한 노동 현장, 굴레의 세습이 오히려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기울어가는 사회, 대책은 난무하지만, 정답은 현장으로 진입조차 못하고 있다는 사실.. 읽는 내내 속이 아렸다. 가슴으로 새겨지고, 의식 속으로 거푸 거듭나는 활자들이 결코 가볍지 않다. 그 분들의 노동 가치에 비해 내가 하는 일들이 너무 터무니없이 높게 책정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과연 내가 그 분들보다 개인적인 능력이 있어서(?) 가난한 노동의 순환선을 가까스로 탈출했다고 자평하는 것이 바른 판단인지, 동정어린 시선과 그럴싸한 대안으로 정답을 제시하면서 양심을 가볍게 하는 일에 몰두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아무리 이상적인 사회라 하더라도, 사회 구조 속에서는 누군가는 그늘에 설 수 밖에 없다고, 그것이 마땅하다고 얕은 인식으로 비껴가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활자들은 물음표가 됐다가 느낌표가 됐다가 말줄임표가 됐다가 점점 탄식으로 바뀌어갔다. 그 분들은 타인이 아니고, 내 오빠고, 누나고, 어머니이며, 동생의 얼굴을 닮았다. 6명을 거치면 대한민국 모든 사람을 안다는 데, 그들의 어려움과 절망감을 이렇게까지 모르고 살았다는 게 참 많이 부끄러웠다.

   과연 대안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이 처절한 현장의 이야기를 조금이라도 더 공유하고, 나눌 수 있다면, 거기에서부터 진짜 길 찾기가 시작될 수 있으리라, 그렇게 답하고 싶다. 눈으로 본 사람들이, 들어서 가슴 아파본 사람들이, 그래서 함께 운 사람들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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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우언라이 - UN도 감동한 위대한 지도자
김상문 지음 / 아름다운사람들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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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보다 서열이 낮았던 마오쩌둥이 1인자로 등극할 수 있도록 길을 열었으며, 온갖 압박을 받으면서도 실용노선의 덩샤오핑을 지켜낸 저우언라이. 오늘의 중국이 있기까지 마르크스주의를 고수면서도, 균형감각을 잃지 않으면서 끝까지 정치 미학을 발휘한 저우언라이의 궤적을 한 눈에 담기에는 다소 부족한 느낌이다. 덕망과 청빈한 삶, 현장의 경험을 귀하게 여기며, 국제 무대에서 중국 외교의 힘을 적절하게 발휘한 그의 장점을 읽다보면, 실정과 실수도 찾아서 읽어보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그만큼 이 책은 그의 미덕에 초점이 맞춰 있다. 아니, 어쩌면, 저우언라이의 평생의 정치가 혁명의 선상에서 이루어졌기에, 그만큼 큰 단점을 찾기 어려웠는지도 모른다. 또 삽화 위주의 구성은 역사적 배경 지식 없이 읽으면, 그것이 실제라 하더라도 신화 만들기를 위해 고안된 장치인 것 같은 착각마저 든다. 삽화의 진정성에 대한 의심을 품도록 하는 것, 이 책의 유일한 아쉬움이다.

   트로츠키가 외교관, 행정가로 활약하면서도, 이념을 확대하고 생산하며, 동시에 자신의 신념을 삶으로 보여준 혁명가의 길을 걸었던 것처럼, 저우언라이는 폐허로 주저앉은 중국을 일으켜 세우는 데 혁명가로서 자신의 일념과 인생을 바쳤다. 최고의 권력을 가졌으면서도, 최선을 다해 낮아졌던 정치가. 국가와 이념을 떠나 시대와 역사 앞에서 자신의 좌표를 분명히 자리매김하고, 그 무게를 올곧게 감당한 정치가의 삶은 감동이다. 아내 덩잉차오에 대한 애틋한 사랑, 죽은 혁명 열사들의 자녀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 가르치고 키운 정성, 생선과 고기를 올리지 말라는 명령, 왕푸징 동승화 구둣가게의 헝겊신 삽화..작은 일상 속에서도 그의 넉넉하고 푸근한 인품이 묻어난다. '우리는 현실을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판단할 때 현실성 없는 일을 목표로 삼지 말아야 합니다. 현실과 동떨어지고 불가능한 일을 추구하면 조급증이 발동하고, 이 조급증은 일을 그르칠 수 밖에 없습니다' 뛰어난 현실감각과 이상주의자로서의 냉철함을 겸비한 저우언라이, 나라와 국민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2인자가 되어도 좋다고 생각할 줄 아는 유연한 지도자. 닉슨의 표현대로 마오쩌둥이 없었더라면, 중국의 혁명에 불이 붙지 않았겠지만, 저우언라이가 없었다면 그 불길이 다 타서 재가 되고 말았을 것이라는 데 동감한다.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저우언라이가 있었던 중국이 부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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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버리다 - 더 큰 나를 위해
박지성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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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아공 월드컵을 맞으면서 박지성의 축구 이야기를 육성으로 듣고 싶어졌다. 무명의 설움을 딛고 2002 월드컵, 히딩크의 황태자가 된 박지성. 마침내 꿈의 무대 맨유에 입성한 그의 궤적을 따르다 보면, 왜 그가 추구를 잘 할 수밖에 없는지, 그리고 왜 그의 축구는 아름답고, 축구다운 축구로 다가오는지 쉽게 이해된다.

   그는 자신을 드러내는 축구가 아니라, 자신이 활용되는 축구를 지향한다. 골을 넣을 수 있도록 기여하는 선수를 꿈꾼다. 스스로 드러나는 대신 잠잠히 헌신하고, 그러므로 비로소 발견되기를 바라는 소박한 꿈을 엿보면서, 축구장 밖에서도 통하는 그의 인품과 인격이 다시 존경스러워졌다.

   재활 기간 동안 눈과 귀를 막고, 피아노를 배웠다니, 축구에 몰입하면서도 동시에 축구에서 스스로 외떨어지는 능숙한 재능은, 부러워지기까지 했다. 축구 인생의 좌표를 더듬으며 끊임없이 정진을 재촉하는 그 잰 걸음이, 그의 축구 미학과 철학에 대한 소신이, 기울어가는 일상의 의지마저도 야무지게 다잡도록 유쾌하게 전염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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