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로스 1 : 하나님의 시공간 -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의 원리 카이로스 1
고성준 지음 / 규장(규장문화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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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배우고 읽으면서, 큰 맥락에서 어떤 도식처럼 큰 틀을 알면 좋겠다는 막연한 생각이 있던 터에, 지인의 추천으로 <카이로스>를 읽게 되면서 내 오랜 갈망은 일 순간 해소되었다. 수학을 전공하신 목사님은 놀랍게도 수학의 원리를 설명하듯 고린도전서를 바탕으로, 선명하게 하나님의 세계, 영적 원리를 가르치신다. 


자연 세계의 원리를 배우고 익히듯, 영적 세계의 원리를 이해하고 적용해야 하며, 새 술을 새 부대에 담듯 새로운 용어와 명확한 개념을 통해, 진부하고 모호해 보이던 경험을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체험으로 되살려내야 한다는 목사님의 의지는 책 전반에 걸쳐 한 치의 흐트러짐이 없다. 


먼저 이 세계는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 영원한 것과 유한한 것, 본체와 그림자로 이루어져 있다고 설명한다. 보이는 세계는 보이지 않는 세계의 모형으로, 믿음의 기도로 실체인 영적인 세계를 움직일 수 있다는 점을 덧붙인다. 


한편 인간은 이 두 세계에 낀 존재로 영, 혼, 육을 가진 존재다. 즉 본능을 가진 육적인 존재이며, 지, 정, 의를 갖춘 혼의 존재로 육과 혼은 보이는 세계와 관련되어 있다. 반면 인간은 영적인 존재로, 직관, 양심, 말씀, 믿음을 통해서 영적인 세계와 교통할 수 있다. 


하나님은 인간을 영, 혼, 육의 순서로 지배와 통제를 받도록 창조의 질서를 부여했지만, 인간이 선악과를 먹고 타락하면서 이 질서가 붕괴된다. 그러므로, 육적, 혼적, 영적인 사람으로 구분할 수 있으며, 건강한 영은, 순종, 평안, 확신, 감사, 충만한 기쁨, 인도하심에 민감, 희생과 섬김, 성령의 열매, 능력을 특징으로 한다. 


이어서 이러한 배경 하에서 이루어지는 영적 원리를 소개하는데, 영은 하나 되게 하고, 믿는 것이며, 육이 약해야 영적인 삶을 살 수 있다. 또 영은 갈망이며, 도덕과 윤리의 기준은 영에 속하는 것이고 ,시기와 분쟁은 육에 속한 것으로 영은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을 높인다고 강조한다. 마지막으로 우리 몸은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는 성전이라고 강조한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두 세계, 즉 보이는 세계는 물리적 시공간, 즉 크로노스의 시공간이며 보이지 않는 세계는 영적인 시공간으로 카이로스의 시공간인데,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의 시공간으로 카이로스의 시공간이 들어올 수 있다. 믿음으로 카이로스의 시공간이 열리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된다고 설명한다. 


카이로스의 시공간에는 하나님의 능력, 의미, 기쁨과 행복, 도덕과 윤리-즉 거룩함, 성령의 열매가 존재한다. 이러한 하늘 문을 열기 위해서는 갈망하는 기도, 거룩함-인격적 거룩으로 순종하는 것, 믿음이 필요하며, 카이로스의 시공간이 크로노스의 시공간을 들어오면, 하나님의 임재, 약속과 사명의 하나님 말씀, 위로와 격려, 인도하심, 거룩함, 보호하심, 승리, 자유와 해방, 치유와 기적이 나타난다. 


영이 움직일 때 믿음, 평강, 긍휼과 사랑, 소망, 순종, 긍정적인 생각이 나타나며 육이 움직일 때는 두려움, 불안과 염려, 분노와 미움, 후회, 불순종, 부정적인 생각이 나타난다고 직언한다. 


수학의 공식이나 원리가 문제를 명확하게 짚어내고 나아갈 방향을 논리적으로 뒷받침해 주듯, 이 책은 명징한 구성과 전개를 통해 하나님의 세계에 대해 바른 이해를 돕고, 영적인 삶을 향해 나아가거나 현재의 영적 좌표를 평가할 수 있는 이정표를 제시해주는 느낌이다.  

하나님과의 인카운터는 늘 황홀하고 신비했다. 이 땅의 논리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이 경험들이 나를 흥분시켰다. 분명 우주를 창조하신 질서의 하나님이시라면, 영적 세계에도 질서가 있을 텐데 그것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힐끗힐끗 엿보았던 카이로스의 시공간은 경이롭고 황홀했다. 시간의 흐름도 멈춘 것 같고, 경험되는 공간도 전혀 달랐다.와우, 사람들을 이곳으로 초대했으면 좋겠다. 사랑하는 친구들에게 보여주고 알려주고 싶었다. <나니아 연대기>에 나오는 옷장처럼, 옷장의 문을 열면 새로운 세계가 있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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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 새롭게 읽기 - 예수님의 마지막 일곱 말씀에서 배우는 기독교 핵심
권해생 지음 / 두란노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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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사랑을 한마디로 표현하라면, 무엇보다 '십자가'일 수 밖에 없다. 죽을 수 밖에 없는 우리를 대신해서 예수님께서 돌아가시므로, 우리가 용서를 받았고, 예수님께서 다시 부활하시므로,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니 영생을 살 수 있게 된, 그야말로 복음의 상징. 그런데, 여기에서 더 나가가 십자가의 더 깊고 풍성한 뜻은 무엇일까. 이 책은 제목처럼 십자가를 다시, 새롭게 읽게 한다. 


저자는 본격적인 논의에 들어가기 앞서 십자가형의 의미를 탐색한다. 십자가형은 로마법에 따르면 가장 고통스럽고 수치스러운 형벌이면서, 동시에 유대법에 따르면 나무에 달린 저주받은 자의 형벌을 뜻한다. 인간이 처할 수 있는 가장 비참한 형벌인 십자가가 어떻게 우리에게 사랑이며, 구원일 수 있는가.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께서 하신 일곱 마디 말씀, 즉 가상칠언을 뒤쫓으며 저자는 십자가가 품은 넓고 풍성한 일곱 가지의 뜻을 온전하게 드러낸다. 


먼저 십자가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의미한다고 설명한다. 임마누엘의 의미는, 흔히 알려진 것처럼 단순히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뜻을 넘어서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 예수님을 버린 사건을 함축한다는 것이다. 특히 주목할 만한 부분은 예수님이 줄곧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시다 십자가에서는 '하나님'이라고 부르시는데, 이것은 하나님과 분리되는 고통을 표현하는 것으로, 예수님의 버림받으신 울부짖음은 역설적으로 우리를 버리지 않고 함께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외침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므로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경험한 바울은 감옥에 가고, 사람들에게 버림받으며, 죽음의 위기에 처했을 때도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붙들고 복음을 전달할 수 있었다고 밝힌다. 


저자에 따르면, 십자가의 두 번째 의미는 '희년'을 의미한다. 십자가는 죄 용서를 통해 죄인인 우리에게 자유를 주지만, 그것을 넘어서 희년의 십자가까지 나아간다고 주장한다. '용서하다'의 헬라어 '아피에미'는 자유롭게 하다, 해방시키다, 떠나다를 뜻하는데, 이는 죽은 나사로를 향하여 예수님이 명하시는 '다니게 하라', 즉 '자유롭게 다니게 하라'는 뜻으로 책임과 형벌로부터 자유롭게 하라는 의미를 지닌다. 한편 '희년'은 '아페시스'로 이 역시 '자유', '해방'이란 뜻이다. 안식년의 안식년인 희년은 50년 째 되는 해 7월 10일, 즉 대속죄일에 땅을 돌려주고, 종을 풀어주었다. 죄를 용서하는 대속죄일에 죄, 신분, 물질로부터의 자유가 이루어지는 것으로, 십자가는 우리를 속박하는 것들로부터의 자유, 즉 원 상태로의 회복을 가능하게 한다. 


또 십자가는 익히 알려진 대로, '구원'을 의미한다. 내가 구원받기 위해 내가 믿은 것 같지만, 나를 구원하시려는 예수님의 열심, 그 은혜로 내가 있음을 확인하게 되는 자리다. 


동시에 십자가는 믿음을 위한 십자가다. 저자는 십자가는 구약의 예언, 하나님의 계획을 성취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상징하며,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하나님을 다시 아버지로 부르시면서, 전능하시며 사랑이신 하나님의 성품을 믿어 영혼을 맡기셨다고, 독자들에게 다시 확인시킨다. 십자가는 하나님께 맡기는 믿음을 표현한다. 


나아가 십자가는 새로운 가족을 위한 십자가이기도 하다. 혈육으로 맺어진 관계를 뛰어넘어 십자가가 창조하는, 성령이 낳은 새로운 가족 관계가 성립된다. 예수님은 십자가 안에서 어머니와 제자가 새로운 가족이 되도록 선언하셨다. 


여섯 번 째 십자가의 의미는 '목마름의 해소'를 나타낸다. 목마름은 육체적, 관계적, 영적인 고통으로 심판을 의미하지만, 성령을 통해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생명을 얻기에, 이 세상을 넉넉히 이기며 살아갈 수 있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영원한 생수의 근원이다. 


마지막으로 새창조를 위한 십자가를 나타낸다. 예수님은 죽음을 생명으로 바꾸셨고, 우리는 그로 인해 새로운 존재, 새로운 성품, 새로운 꿈을 갖게 된다. 


십자가가 단순한 악세서리 장식으로 취급되는 요즘, 우리를 너무 사랑하시기에, 기꺼이 가장 비참한 모습으로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대신 죽으신 역설의 표징, 다시 겸허한 마음으로 십자가의 의미를 되새겨본다. 

십자가는 우리가 하나님께 버림받지 않게 하시려고 예수님이 버림받으신 곳이다. 십자가는 희년을 위해 예수님이 우리 죄를 책임지신 곳이다. 십자가는 우리의 구원을 위한 예수님의 열심이다. 십자가는 자신을 하나님의 주권에 맡기시는 예수님의 믿음의 모범이 나타난 곳이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새로운 가족이 시작된 곳이다. 십자가는 우리의 목마름을 해소하시려는 예수님의 목마름이다. 십자가는 우리를 새롭게 창조하시는 예수님의 목표가 달성된 곳이다. - P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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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이 고민입니다 - 일상의 고민을 절반으로 줄이는 뇌과학과 심리학의 힘
하지현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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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가 복잡해질 수록 고민은 늘어가지만, 정작 왜 고민을 하며, 고민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제대로 된 가이드라인이 없던 터에, 감정과 뇌과학을 적용하여 고민의 프로세스를 이해하고, 효과적으로 고민에 대처하는 방식을 안내하니, 출간이 반갑지 않을 수가 없다.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고민이 이루어지고 있는 주요 맥락이라 할 수 있는 감정과 뇌과학의 특성을 설명하고, 실제 고민이 생겼을 때 성숙하게 대처하는 방법, 그리고 고민의 결과와 마주하며 살아가는 자세에 대해 설명한다. 


고민의 프로세스와 관련하여, 먼저 많은 고민을 만들어내고, 또 불필요한 고민을 배태하는 감정을 다룬다. 감정과 관련된 주요 문제로는, 강박으로 치달아 정보만 축적하는 자기 신뢰의 결여, 불안, 낮은 자존감, 우울, 모든 문제를 심리적으로 접근하는 심리화, 현상 유지의 추구 및 문제의 회피, 나쁜 기억, 반추, 집단에 숨어 방관하면서 다른 사람이 고민을 대신하도록 위임하거나 집단에서의 배척과 소외에 대한 두려움으로 자신의 평판에만 관심을 두는 것 등을 소개하고 있다. 


이어서 뇌의 특성을 고민과 연관지어 탐색한다. 뇌는 선택 과정에 이를 때 빠른 판단과 반응을 담당하는 변연계와 신중한 분석을 통해 대처하도록 하는 대뇌 피질의 투 트랙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하면서, 변연계가 우선권을 갖고 이후 그 결과에 따라 결정하도록 셋팅이 되어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런데, 변연계는 동물적 본성을 앞세워 생존을 최우선 과제로 여기는 원시뇌-뇌간과 변연계-에 놓여있고, 낯선 상황에서는 원시뇌가 먼저 작동하기에, 고민이 시작되면 원시뇌부터 우선적으로 활동한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또 뇌가 처리할 수 있는 문제의 한계는 이미 정해져 있으며 오히려 자신의 능력을 명확하게 평가할 수 있는 메타인지를 발휘하는 게 중요하다고 주장하면서, 나를 객관화하면서 고민에 접근해야 한다고 안내한다. 뇌가 피로하면 제대로 일을 할 수 없다거나 배고픔은 합리적인 선택을 방해하도록 하며 의지력이 약해지는 자아고갈의 상태에서도 고민을 진중하게 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더불어 고민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정보를 의식절으로 처리해서 일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차례로 처리하게 하는 작업 기억을 높여야 하며, 욕망이 고민의 방향 및 속도 등과 맞닿아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는 점도 설명한다. 뇌는 모호함과 불분명함을 싫어한다는 점을 인지하고, 생각을 최대한 단순히 하려는 휴리스틱을 창조하는 한편 인간에게는 집단 논리에 순응하고자 하는 본능이 있고, 직관적인 판단이 행동화되어 습관이 되므로 기존의 세팅을 고집해서는 안된다는 주의점도 일러준다. 


고민이 생겼을 때 유의하여 할 사항도 구체적으로 제시하는데, 4가지 기본 원칙을 지키도록 권고한다. 고민할 이유 자체를 줄일 것, 진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순서를 정할 것, 고민할 때 사용되는 에너지의 효율성을 높이고 고민에 필요한 마음의 공간을 확보할 것을 제시하고 있다. 


구체적인 전략으로는 먼저  감정과 인지, 우선 순위, 마음의 자산 등을 점검하면서 고민의 위치를 점검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단언한다. 


그리고 뇌는 일종의 하드디스크처럼 정해진 용량이 있으므로 고민을 처리할 뇌 용량을 확보할 것, 처음부터 고민할 이유를 없앨 수 있도록 루틴을 만들 것, 고민을 덩어리로 재분류하고 맥락과 이야기로 엮어 단순화할 것, 큰 고민거리는 잘게 쪼갤 것, 고통과 견디어내야 할 불편을 구분할 것, 고민의 우선 순위를 정할 것, 큰 그림을 보면서 생각할 것, 때로는 그냥 지켜만 볼 것, 당장 해결하지 않아도 좋은 것이 있다는 것을 인식할 것, 고민이 있을 때 청소나 샤워처럼 행동 모드로 바꿀 것, 최선을 찾기보다는 최악을 피할 것, 너무 먼 미래를 생각하지 말 것, 일단 결정하면 뒤돌아보지 말 것, 자신의 감정 패턴을 알아 감정의 방파제를 세울 것, 관계를 유지하는 데 너무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지 말 것, 타협할 수 없는 최소한의 원칙을 만들 것, 결정과 책임을 오로지 나의 일로 여길 것, 가치와 의미를 생각할 것, 욕망의 한계선을 그을 것, 의지가 약하다는 말을 흘려들을 것, 그리고 배고픔, 통증, 수면 부족, 촉박한 시간, 금전적 압박 등을 체크하면서 자아의 고갈을 막을 것 등을 제시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고민의 과정이 옳았다면 결과는 2차적인 일로 여기고, 운의 영역을 인정하면서 고민이 없는 시간은 없지만, 그래도 고민 없이 산다고 믿으면 고민을 잘 하는 것이라고 격려한다. 


정신과 전문의로서의 전문성 뿐만 아니라 인문학적 식견과 다양한 실험, 연구 사례가 더해져 읽을 거리가 풍성하다. 새로울 것도 없이 이미 다 아는 것 같지만, 돌이키면 생경할 정도로 잊고 있던 기본적인 원칙과 근거를 꼼꼼히 세워준다.  

고민의 정보 압박을 줄이고, 여유 공간을 만들고, 실패에 대한 부담을 줄이는 길은 바로 이런 불확실한 세상과 통제 불가능성, 운의 영역을 인정하는 것에서 온다. 잘 모르겠지만 방향은 이게 맞는 것 같아. 일단 해보지 뭐. 이 정도가 딱 맞다. 고민-결정-실행의 프로세서에서 가운데에 있는 결정의 앞과 뒤를 볼 때, 고민에 너무 많은 비중을 두지 않으려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3대7 정도가 좋지 않을까? 서론이 너무 긴 책은 재미없지 않은가? - P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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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몸을 살다
아서 프랭크 지음, 메이 옮김 / 봄날의책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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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이 발달하면서 건강과 건강하지 않음의 경계가 점점 모호해지고 있다. 만성질환의 경우, 과거에는 병의 이환과 동시에 거의 사망에 이르렀다면, 이제는 적절한 치료 과정을 통해 병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상 생활이 가능하기에, 건강하지 않다고 일방적으로 선언하기에는 모호한 점이 있다. 


바꾸어 말하면, 대척점에 서 있는 질환과 건강의 사이, 완치된 것이 아니라 치료를 하면서 아픈(illness) 몸과 마음으로 사는 구간이 새롭게 생긴 셈이다. 저자의 표현대로 질환(disease)와 질병(illness)의 개념이 구분될 필요성이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 책의 가치는 학술적으로도, 또 질병의 상태로 사는 현대인들에게 큰 시사점을 준다. 우리는 수많은 만성 질병의 상태로 살아가면서도 건강과 질환의 두 지점에 대해 관심을 둘 뿐, 실제로 아픔의 상태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진지한 고민이 부족하니까.


저자는, 이 책을 저술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조건을 갖추었다고 표현할 수 밖에 없을 정도로 드라마틱한 건강의 변화를 겪는다. 달리기를 하다가 심장마비에 걸려 잘 치료 받은 후, 15개월 후에 암을 선고 받는다. 


어떤 사고처럼 마주한 심장마비는 급성 질환이기에 의학적 조치로 바로 수습이 가능했지만, 암은 만성 질환으로 의학적 조치를 하면서도 동시에 유병 기간 동안 환자는 살아내야하는 새로운 상황에 놓이게 된 것. 즉. 질환을 넘어서서 질병의 구간으로, 그것도 사회에서는 아직까지 극단적인 위험으로 인식하는 암 환자로서의 삶을 살게 되고, 그 기간 동안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영적인 측면에서 살아낸 경험과 성찰의 과정을 꼼꼼히 묘사하고 있다. 


통증은 고립과 외로움을 가져오지만, 한 밤의 통증 사이, 창문으로 드리워진 나뭇가지를 보면서 자신이 몸 밖으로 연결되는 것을 느끼자 마음의 평안을 찾아가기도 한다. 돌봄은 아픈 사람의 고유함을 아는 것이지만, 현대 의학의 표준 치료에서는 용이치 않으며, 자신의 몸이지만 어느 순간 의학의 식민지가 되는 몸을 목도한다. 


또 사회에서 병을 통제의 실패로 바라보기에, 효과적인 통제 전략으로 인식된 의학의 권위 앞에서, 환자는 수동적인 역할로 제한받지만, 실제로는 아픈 몸으로 운동도 하고 음악도 들으면서 몸 이상으로 존재하는 몸의 경이로움도 묘사한다. 


환자 역할과 긍정 기대, 낙인과 도덕적 평가, 질병 각본에 맞서 자신만의 질병 서사를 이야기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한편, 보험 제도 탓에 질병에 가치가 매겨지고, 자본과 질병의 치료가 연계되는 문제점에 대해서도 비판한다. 아픈 사람들이 가진 각자의 이야기를 들어야 하며 단순한 의학적 처치나 예후 관리를 넘어서서 영적인 부분까지 포괄하는 적절한 회복 의례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강조한다. 


저자는 학자답게 객관적인 관찰과 추론 등을 통해 자신의 경험을 재구성하면서, 동시에 영적인 관점에서 아픔의 의미를 재해석하려고 노력한다. 암과 관련하여 사느냐, 죽느냐의 싸움 문제가 아니라 암과 더불어 사는 데 초점을 맞춘다. 그러므로 저자는 암에 걸려 살든지, 죽든지 질병의 기간을 잘 살아낸 것만으로도 이미 이긴 것이라고 일축한다. 그리고 욥이 왜 불행이 닥쳤는지 하나님께 물었을 때, 인간은 먼지일 뿐이라는 답변을 듣고 침묵한 것을 예로 들면서 인간이기에 맞서지만, 인간이기에 죽는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또 돌봄자와의 관계를 성찰하면서 아픈 상태로 살아가는 개인적, 관계적 의미에 대해서도 탐색한다. 


이 책의 가장 큰 강점은, 아픈 몸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단순한 의학적 대처에 한정하거나 개인적인 경험으로 설명하는 대신 사회적, 철학적, 영적 의미를 깊이 있게 탐색하면서 건강과 질병의 개념 재구성, 가족과 의료, 사회적 돌봄과 제도 변화, 나아가 의료인 교육에 대한 시사점까지 짧은 지면에 밀도 있게 담아냈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아픈 몸으로 어떻게 살아야할 것인지에 대한 묵상과 경험을 솔직하게 전달한다. 

많은 것을 잃겠지만 그만큼 기회가 올 겁니다. 관계들은 더 가까워지고 삶은 더 가슴 저미도록 깊어지고 가치는 더 명료해질 거예요. 당신에게는 이제 자신의 일부가 아니게 된 것들을 애도할 자격이 있지만, 슬퍼만 하다가 당신이 앞으로 무엇이 될 수 있는지 느끼는 감각이 흐려져선 안돼요. 당신은 위험한 기회에 올라탄 겁니다. 운명을 저주하지 말길, 다만 당신 앞에서 열리는 가능성을 보길 바랍니다 - P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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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루아상 사러 가는 아침
필리프 들레름 지음, 고봉만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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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의 의견대로 영성이 희미해질 때, 삶에서 자극을 추구하고 보다 화려하고 돋보이는 모습을 뒤쫒는다는 것은 어쩌면 진실일런지 모르겠다. 


드라마틱한 승리, 감동, 희열, 도취, 거대한 슬픔, 절망, 좌절, 낙망 등은, 한데 뒤엉켜 삶을 박제하고 관념화하는 데 주저함이 없다. 굴곡진 파도를 타듯 열정과 냉정으로 치닫는 그 간극의 짜릿함은, 마치 중독의 과정처럼 요란해, 주목받는 자기 삶의 특별함을 갈망하게 하고 더욱 극적인 스토리에 몰입하도록 강제한다. 그러므로 밋밋한데다가 때로는 한심해보이기까지는 평범한 일상을 돌아보고 거기에서 의미를 읽어내는 것은 경솔하며 무가치한 일로 치부해도 상관이 없을 정도다. 


이런 맥락에서 이 책의 가치는 더욱 귀하게 느껴진다.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을 잠잠하게 묘사하는 활자를 쫓다보면 어느 순간 마음이 편해진다. 아무 생각 없이 지나치는 작은 삽화들을 곱씹고 관찰해서 생각의 줄거리를 수도 없이 뽑아내는 작가의 역량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가장 인상 깊었던 대목은 <호주머니 속 작은 칼>이었다. 저자의 표현대로 오직 자신만이 오롯이 알고 느끼는 완전한 기쁨은 이제 생소해졌다.  딱히 쓸모없는 칼을 만지작 거리면서 칼과 결부된 상징을 스스로 만들어 내고 지적 허영을 부리면서 만족하는 그 기쁨, 아무런 보상이나 대가를 바라지 않는 동작과 은근한 만족을 만끽하는 그 속에서, 노인이면서 동시에 소년이 된다는 문장을 읽으면서 천국을 생각해보기도 했다. 


어린 아이이자 소년이면서, 동시에 청년이자 노인이 될 수 있는 인격적 존재를 상상하면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한 눈에 알아보지 못한 제자들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가 누구든 시간의 흐름 속에서 부식되는 물질적 존재로서 인식하는데, 어떻게 시간과 무관하게 본질로서 마주하는 그 인격적 실체를 알아볼 수 있었겠나 싶었다. 


분주하고 조급해져 위대하고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있다고 스스로를 속일 때, 소박한 일상의 이면을 드러내어 부드럽지만 명확한 일침을 주는 책. 

사람들은 일반 자전거로 태어나거나 사이클 자전거로 태어난다. 정치적 성향과 거의 마찬가지다. 그런데 사이클 자전거로 태어난 사람들이 명심해야 할 것이 있으니, 그것은 사랑을 하려면 자기 상속분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일반 자전거에서만 사랑에 빠지기 때문이다. - P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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