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인 경험에 의하면, 모태 신앙의 강점은, 개인이 처한 사회 문화적인 측면에서 판단 기준 없이 어려서부터 신앙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다 보니, 신앙의 경로가 전체적으로 흔들림이 적다는 데 있을 것이다. 반면, 어떤 계기가 있어 각성하여 신앙을 갖게 된 이들의 특성, 즉 치열한 반추나 감격적인 영적 경험이 부족할 수 있어 오히려 믿음의 성장이 더딜 수 있다. 어느 순간 저절로 주어진 교리를 그대로 체화하는 과정에서 이도 저도 아닌 믿음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교회 안에서 오랫동안 '이해'보다는 '믿음'을 우선하다 보니, 자칫 이성과 신앙이 배척 관계까지는 아니더라도, 교리를 깊이 있게 생각해보고, 그 의미를 추적하는 것은 무언가 불필요한 절차처럼 여겨지는 부분도 분명 있다. 이해되지 않는다고 믿지 않다니, 얼마나 불손한 신앙의 태도인가.
그러나 바울은 세상을 꼼꼼히 살펴보면 하나님의 통치와 섭리를 깨닫지 않을 수 없다고 단언했을 뿐 아니라, 첫번째 인간인 아담의 죽음과 의미, 두번째 인간으로 오신 예수그리수도의 부활로 영생을 획득하는 교리를 가르치면서 사고의 힘, 이성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그러므로 기독교를 단순히 종교적으로 이해하는 것 뿐만 아니라 신앙을 공고히 하는데도, 저자의 주장처럼 어떤 믿음의 논리가 필요하다.
이런 의미에서 이 책은 비기독교인의 입장에서는, 기독교 교리를 해석하고 주요 각주를 만들어낸 주요 인물인 아우구스티누스와 아퀴나스의 사상적 차이를 비교할 수 있고, 기독교인들은 말씀의 정수를 더 깊이 있고 올곧게 이해하는 단초를 찾을 수 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방랑의 세월을 보내다 암브로시우스를 만나면서 사상적 성장을 하게 되고, 신플라톤주의와 기독교의 유사성을 발견하면서 이를 기독교에 접목하고 발전시킨다. 신플라톤주의는 최상의 존재인 일자가 있으며, 정신인 누스, 영혼인 프시케의 3중 구조를 주장하는데, 아우구스티누는 이를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 일체와 비슷하며, 인간은 일자와 연합할 때 최고의 행복을 얻는 것처럼, 하나님과의 신비적 연합이 인간 구원의 본질이라고 정리한다.
동시에 신플라톤주의는 일자에서 유출되어 이 세계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진다고 주장한 반면, 그는 하나님은 무에서 유를 창조한, 스스로 존재하는 그 자체임을 강조했다. 또 신플라톤주의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은 우주의 보편적 질서와 원리를 벗어나는 것이라고 생각한 반면, 아우구스티누스는 이것이야말로 이성의 끝에서 신앙의 차원으로 도약하는 특별한 계시라고 주장한다. 즉 이성을 넘어서는 신앙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인간이 하나님의 존재 자체를 의심하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존재를 긍정하는 것이라며 데카르트와 유사한 주장으로 하나님의 존재를 입증하기도 한다. 인간의 감각은 불완전하지만, 지식으로 나아가도록 연결되는 매개체로써 현실의 세계를 인식하도록 도와주며, 영원히 불변하는 진리도 객관적으로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하나님과 인간을 알기 위하여 가시적인 세계를 바라보고, 자신에게 돌아와서, 자신을 초월하는 단계를 거쳐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고 제안기도 한다. 또 구원은 인간의 공로가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총을 통해서만 이루어진다는 점을 확고히 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알기 위해 믿는다'고 주장했다면, 아퀴나스는 '믿기 위해 이해한다'는 입장을 견지한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접목하여 이성을 토대로 한 신앙, 합리주의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그는 이성을 통해 파악할 수 있는 영역이 있고, 은총을 통해서 인식할 수 있는 영역이 있다는 주장을 통해 신앙과 이성을 분리했으며 신학과 철학을 구분하는 데 생각의 기초를 제공한다.
아퀴나스는 하나님의 존재를 창조의 결과인 세상을 통해서, 인간의 경험적인 감각을 통해서 알 수 있다고 주장한다. 움직이는 모든 것은 최초에 움직이지 않는 부동자가 있는데 이가 하나님이며, 모든 원인의 제 1원인이 하나님이라고 주장한다. 또 우연적 존재를 있도록 하는 필연적 존재가 하나님이며 사물의 가치와 완전성의 계층 속에서 최고의 완전성을 유추할 수 있는데 이가 하나님이고, 만물이 존재 목적이 있는데, 이러한 목적 지향성을 부여한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것.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본 것은, 아우구스티누스나 아퀴나스의 사상적 비교뿐만 아니라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처럼 인간 사유의 최극단에 이르러 하나님이나 이상적 세계를 인식하고 유추하려는 노력이 있었다는 점이다. 감각과 이성을 넘어서는 새로운 그 무언가를 지향했던 고대 또는 중세보다 현재의 철학과 논의가 더 풍성하다고 할 수 있을까. 인간이란 무엇이며,참 지식은 어떻게 인식하며 신이 있다면 인간과의 관계는 어떠한가와 같은 질문은 단지 고답적인 체 하는 허세일 뿐일까.
흔히 종교와 과학을 두 개의 다른 지식으로 나누어서 생각하지만 반드시 분리된다고 할 수 없다...중략 가장 중요한 것은 진리를 단 한 가지로만 파악할 수 있다는 오만을 버리는 것이다. 과학만이 진리라는 과학만능주의 또는 과학적 제국주의와 종교만이 진리라는 성서문자주의나 근본주의를 고수하는 일은 우리를 광기와 무지로 몰아간다. 종교나 과학은 자연과 인간의 세계를 설명하는 각각 독특한 은유로서 이해해야 한다 - P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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