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승부사들 - 열정과 집념으로 운명을 돌파한 사람들
서신혜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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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가는 버스에서 읽다. 천민으로 태어났는데도, 상례에 대한 예학에서 최고가 된 유희경의 일대기가 마음을 사로잡았다. 


남언경을 만난 후 오히려 양반에게 상례의 도를 가르치는 전문가가 된 것도 그렇지만,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키기도 하고, 재정을 모아 전쟁을 충당했다는 활약. 거기에  실력과 더불어 겸손함을 갖춰 늘 스스로를 낮췄다는 평가는 머리를 절로 숙이게 한다. 더구나 매창의 연인이 유희경이었다니, 더 놀랐다. 시로써 사랑을 노래한 연인들의 마음은 더 애틋하고. 

이화우 흣날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님
추풍낙엽 저도 나를 생각하는가
천리에 외로운 꿈만 오라가락 하돗다//

 
낭자 집은 낭주에
나의 집은 한양에
그리는데 볼 수는 없어서
오동잎 빗소리에 애가 끊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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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만원 세대 - 절망의 시대에 쓰는 희망의 경제학 우석훈 한국경제대안 1
우석훈.박권일 지음 / 레디앙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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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지옥과 개미귀신에 대한 묘사가 내내 뇌리에 남는다. 선택되지 못한 98%의 20대가 가장 밑바닥으로 떨어져 개미귀신에게 먼저 잡혀먹히지 않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하는 개미지옥. 패자부활전이 아니라, 마침내 모두가 죽을 수 밖에 없지만, 연대와 저항을 배워보지 못한 20대는 힘을 모아 개미귀신에게 대항하는 대신, 일단은 나 살고 보자는 식으로 개별 전선을 형성하면서, 자꾸만 퇴락하고 있다는 관찰기.

 1. 첫 섹스에서 새로운 관점을 보다.

10대의 성적자기결정권은 결국 사회적 관심과 지원 없이는, 얼빠진 구호일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유럽을 통해서 새삼 깨닫는다. 10대의 동거권이 보장되지 않는 시스템 속에서 성적자기결정권을 외치기 보다는 차라리 필리핀처럼 초중고 공교육의 기간을 줄여, 성인으로 편입되는 나이를 줄이는 것이 더 현실적일테다. 50-60%의 주택보조비 지급, 낮은 대학등록금, 알바 임금의 현실화..성적자기결정권에 대하여 아이들과 토론할 수 있는 좋은 주제.

 

2. 교육 해법

전두환 대통령처럼 사교육 금지 정책을 강하게 편다 한들, 사교육은 절대 사라질 수 없을 것이다.사교육이 지하로 위치를 옮길 뿐일테다.  사교육이 문제가 아니라, 입시 과목의 결정이 더 문제다. 국어, 영어, 수학이 왜 입시에서 주요과목이 되어야 하는지 근본적인 성찰이 없이는, 잔가지를 자른다며, 오히려 비둥한 몸통을 더 살찌우는 꼴이 될 수도 있다. 교과목 이해관계자가 교육과정을 결정하는 현 시스템을 뜯어 고쳐야 한다.

 

3. 바리케이트와 짱돌에 대해 가르치기

콜라보, 유겐트, 단카이 세대..새로운 내용을 익혔다. 앞선 세대들은 학교에서 배우지 못해도, 시대가 연대와 저항을 가르쳤다. 그러나 지금 20대를 비롯해서, 우리 세대는 학교에서고, 시대에서고..바리케이트를 치고, 짱돌을 드는 법을 배워본 적이 없다. 우리가 서 있는 좌표를 누가 개미지옥이라고 알려주었나.똑똑한 시간강사들이 연대하여 힘을 모으지 못하는 점을 안타까워하던 목소리가 기억난다. 연대의 기치를 드는 것은, 21세기 예수님이 되겠다고 선언해야 가능한 일. 치열하게 싸우고 난 뒤, 독립투사에게 우리 역사가 했던 일은, 온  집안이 깡그리 망하도록 내버려둔 것  뿐이었다, 386세대가 힘껏 대항하고 난 뒤, 그 중 앞섰던 몇몇이 입신의 길로 갈아타고 난 후, 남은 이들은 쓴 물을 삼키며, 자신들의 20-30대를 스스로 자랑스러워하는 것, 그것 말고는 아무런 위로도 보상도 없었다. 결과적으로, 386세대를 이끌었다는 몇몇의 입신을 위하여, 많은 이들이 너무도 조용하게 제물로 바쳐졌다. 그 모든 것을 지켜보고, 관찰하며, 배워 온 20대가 무엇을 위하여, 바리케이트를 치고, 짱돌을 들 수 있을까..차라리 88만원도 못 받아야 진짜 생존을
위해 일어설 수 있을 것이다. 저자의 우려대로 파시즘의 광기가 몰아닥칠지도 모를  일이다. 

 

4. 바리케이트와 짱돌의 한계

지금 정말 필요한 것은 바리케이트와 짱돌이 분명하다. 그러나, 현실을 돌파할 수 있는 투쟁력과 실제를 조정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지 않을 때, 어떻게 불행한 불균형이 나타나는지, 그리고 그것들이 정말 중요한 의제를 얼토당토 않은 논리로 균열로 내몰게 되는지, 지난 몇 해동안 똑똑히 보았다. 투쟁력과 실력의 균형점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지..20대에게도, 그리고, 독자인 나에게도 여전히 숙제다. 

  

5. 기타

일탈-저항-조정-편입..세대간 담론에 대한 박권일 기자의 표현은, 그 자신의 말대로, "적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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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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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기억에 신경숙 작가의 소설 중 가장 먼저 읽었던 것은, <풍금이 있던 자리>였다.
아버지의 여자..어머니를 대신한 그 여자를 증오하고, 미워했던 형제들..그 기억이
아내가 있는 남자를 사랑하고 있는 현재의 자신을 반추하게 했다.

 

<외딴방>은 읽었지만,  내용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주간에는 일하고, 야간에는 학교에서
공부를 했다던 작가의 자전적 소설..내용 대신 <외딴방>은 <절규>의 배경처럼 온통 붉고,
노란빛이 감도는 방의 이미지로 기억된다. 내가 철들기 전 세상이 이렇게 돌아갔구나..
겸연쩍은 호기심이 더 발동했던 것 같기도 하다.


작가의 강점은, 세세한 감정표현과 넉넉하고 소박한 시골 특유의 풍광을 제대로 표현하는
것 아닐까 싶다. 나물을 무치는 법, 찌개를 끓이는 법, 마당의 흙을 돌돌말아 흩어지는
바람결..읽으면 마음이 어느새 따뜻해진다 .다만, 이러한 장치들이 때로는 소설의 흡인력을
떨어뜨리기도 한다. 이야기가 아니라 이미지가 남는 것. 그 이미지가 작가의 글 속에서 계속해서
되풀이되는 것. 소설이 별개의 작품이 아니라, 하나의 작품을 이루는 낱개의 장처럼 느껴질
때가 있는 것 같다. 

 

<엄마를 부탁해>에서는,어머니를 잃어버린 가족의 풍광을 그리면서, 어머니의 삶, 가족들의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묶어 담담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여자로서의 삶을 포기하고,어머니로서의 삶을 흡인하며 살아오느라, 일상의 모든  풍광에서 투명인간처럼 지워져버린 '어머니'란 여자.그리고, 어머니의 실종 앞에서 몸둘 바를 몰라하고, 당혹해하는 가족들.  

어쨌든 마지막 바티칸의 장미묵주와 피에타 설정은, 아무래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성모 마리아와 어머니를 대비하여, 마음으로 짠물이 흘러내리도록 장치했지만, 오히려 마지막 결론 때문에 어머니의 실종이 소설 장치라는 게 들통나버린 것 같았다. 


바티칸의 피에타까지 끌어들이지 않아도, 어머니의 실종이란 설정에서 이미 가슴은 먹먹해지고, 요동치기 마련인데...


다행히, 소설을 읽고 난 후, 마음밭에는 이슬이라도 뿌려진 것 같다. 찢어질 듯 아파보는 것,
깊은 슬픔으로 빨려들어가는 것..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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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장 지글러 지음, 유영미 옮김, 우석훈 해제, 주경복 부록 / 갈라파고스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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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루다의 표현이 황폐한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그들은 모든 꽃들을 꺾어버릴 수는 있지만,
결코 봄을 지배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인두세를 폐지하고, 국가를 재정비한 부르키나파소의 상카라, 아이들에게 매일 0.5리터의 우유를 무상으로배급하겠다고 선언한 칠레의 아옌데 대통령..조국을 살리고자 했던 충정들이 기득권에 가로막혀 좌초된 이야기를 읽고 보니, 기아의 무기화에 대해 새삼 분노하게 된다. 지글러의 표현대로라면, 분노하면 고통이 느껴지는 탓인지, 거대한 음모와 비열한 탐욕을 마주하는 것이 결코 편하지 않다..돌아보면, 기득권의 빼앗기지 않으려는 욕망은 얼마나 견고하고 단단한지..

상카라의 일화들은 더욱 인상 깊어서, 자료를 찾아봤다. 눈빛이 살아있는 저 젊은 장교가 친구의 손에 죽임 당하기 전, 체의 죽음을 언급했었다니,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그저 아프리카인들이 게을러서, 전쟁이 난무해서, 땅이 척박해서, 근본주의가 성행해서..뿌리없는 내 얕은 인식이 산산히 깨져버린 느낌이다. 멜서스의 논리로 배워오고, 그 논리로 세계를  인식하고  있는 지금, 이 책이 아니었다면, 많은 것들을 간과하며, 엷은 동정심을 피워올리며 연민의 눈길 한번 보내는 것으로 만족했을 것이다. 우석훈 교수의 말대로, 지글러야말로 학자이며, 활동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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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 장영희 에세이
장영희 지음, 정일 그림 / 샘터사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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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세이를 읽지 않은지 오래. 여백으로 채워지는 감성이 팔 그늘 아래로, 눈 그림자 밑으로
스몄다가 번져 나간다. 꾸미지 않은 말투, 있는 그대로를 있는 그대로, 묘사하시는 담백함. 투영하지 않고, 반추하지 않은 날것으로의 삶, 어쩌면 그게 희망일 것이다. 


결혼하지 못한 이유..게으름. 미루고 미뤄대다 끝내 마감을 넘기고야 마는 천형같은 습관. 김점선 화백에게 화사한 붉은 말로 표현될 정도로 뜨거웠던 열정, 강박장애에 시달리다 천로에 뛰어들기 전 장영희 교수님을 찾은 제자..그 이야기들 속에서 몇 가지 공통분모를 찾아냈다.

장영희답게 산 것처럼, 김지학답게 살라고, 씩씩한 활자들이 등을 토닥인다. 

어부
              -김종삼

바닷가에 매어둔
작은 고깃배
날마다 출렁거린다
풍랑에 뒤집힐 때도 있다
화사한 날을 기다리고 있다
멀리서 노를 저어 가면서
헤밍웨이의 바다와 노인이 되어
중얼거리려고.

살아온 기적이 살아갈 기적이 된다고
사노라면
많은 기쁨이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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