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 - 누구나 친구가 될 수 있는 나라 우리가 몰랐던 아시아 2
박종현 지음 / 즐거운상상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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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친구가 될 수 있는 나라>라는 부제가 보여주듯이, 읽고 나면 말레이시아에 대해 얼마나 무지한지, 그리고 얼마나 친근한 나라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

 

말레이시아의  말라야 대학에서 석박사 과정을 거치는 동안 장기 체류하면서 현지 생활을 오랫동안 경험했고, 또 직업인 기자 정신을 발휘하여 쓴 글이라서 그런지, 피상적이지 않고 실제적이고 입체적인 말레이시아의 모습이 그려진다.

 

말레이시아는 인도계, 중국계, 말레이계 등 다양한 민족이 어우러져 이루어진 국가답게 다문화의 다름에 대한 수용성이 높고, 영어, 말레이어, 중국어 등 다양한 언어가 통용되면서 수년 째 퇴직 후 살고 싶은 나라 1위로 꼽힐 만큼 동남아시아의 중심 국가로 부상하고 있단다. 특히 이슬람 문화를 가졌으면서도, 기독교, 불교 등 다양한 종교를 허용하고 있는 점도 다민족이 하나의 말레이시아를 이루도록 하는 통합의 기초로 작동하고 있다.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안정되어 있고, 주요 동남아 국가를 2시간 내로 왕복할 수 있는 교통의 요충지라는 점도 말레이시아의 강점이다.

 

만 17세 이하 모든 국민은 남녀를 불문하고 군대를 가야하되, 추첨제를 통해 약 20%만이 입대를 하고, 복무기간이 3개월이라는 점, 지역의 술탄 중에서 5년마다 국왕을 선출하는 데, 술탄이 사실상 모두 말레이계여서, 국왕은 말레이계만 될 수 있다는 점, 제조과정, 제조 회사의 운영까지도 꾸란의 가르침을 준수해야만 인증을 받을 수 있는 할랄푸드 인증제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는데, 할랄푸드가 아니면 제품 경쟁력이 현격히 떨어지므로, 말레이시아에 진출한 세계적인 패스트푸드점조차도 할랄푸드 인증을 받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점, 말레이시아 최고의 대학인 말라야 대학의 교직원 절반이 여성이며, 여성 총장은 물론 공직에 진출한 여성이 많아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높은 편이라는 점, 이슬람 금융의 메카로 부상하고 있으며, '진짜 아시아, 말레이시아'를 앞세우며 국가 브랜드 정책을 우리나라보다 한 발 앞서 내세웠을 정도로 국제적 감각을 갖추었다는 점,  마하티르 총리의 정치적 역량, 우리보다 6개월 먼저 우주인을 배출했을 정도로 우주 산업에 대한 관심도 높다는 점, 우리나라가 신 행정수도 정책을 추진할 때 참고했던 푸트라자야에 대한 소개 등은 말레이시아를 새롭게 인식하게 되는 흥미로운 대목. 

 

종교로부터 시작된 절제된 생활 문화, 다민족을 품은 관용 정신 등이 깊게 뿌리 내린 사회 문화가 어떻게 자본주의의 물결 속에서도  통합, 안정, 신뢰의 사회를 구축할 수 있는지 말레이시아가 그 해법의 단초를 제공하는 것 같다.

 

랑카위, 코타키나발루, 쿠알라룸푸르 등 주요 도시에 대한 소개도 되어 있어, 간략하지만, 여행객들에게도 도움이 될 듯.

 

저자의 의견대로, 동남아시아 국가에 대한 우리의 관심이 부족하고, 편견과 왜곡으로 점철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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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쓰는가 - 조지 오웰 에세이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 한겨레출판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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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에서 빅브라더의 전체주의에 맞선 행위가 '일기쓰기'로 묘사되었을 때, 조지 오웰이 글쓰기를 얼마나 위대한 행동으로 인지했던 것인지, 새삼 놀랐던 기억이 난다. 절대 권력에 맞서 개인의 존재적 가치를 되찾는 용감한 시도가 '글쓰기'라니.

 

그런 그가 여러 경험과 관찰을 토대로 쓴 에세이답게, 활자 하나 하나에 묵직한 힘이 실려있다. 가장 감명깊에 읽은 부분은 <코끼리를 쏘다>. 식민지였던 버마에서 권력을 가진 자로서, 탈출한 코끼리를 쫓던 중 어떻게 군중의 힘에 밀려, 자신도 모르게 잔인한 결정을 행동으로 옮겼는지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

 

어느 순간 권력의 역동은 그저 권력을 가진 자의 의지가 아니라, 권력 그 자체가 본능처럼 기능화될 수 있음을 짐작하도록 하는 대목. 그저 코끼리를 위협하는 동안 위엄을 갖기 위해 총을 들었던 것 뿐인데, 사람들이 몰려들고, 모든 이목이 자신에게 집중되자, 조지 오웰은 그만 코끼리를 죽여버린다. . 

 

총을 쥔 자의,  권력자로서의 면모를 과시하려는 욕망과 그 광경을 말없이 지켜만 보는 수많은 군중들의 이목이 만나는 접점에서,  전혀 엉뚱한 결말이 나타날 수도 있다는 그의 경험담은 어떻게 히틀러 시대가 가능했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경험적 틀을 제공한다. 그는 일상의 단순한 경험 속에서도  권력의 감추어진 속성을 집요하게 파헤쳐낸다. 권력의 역동은 권력자뿐만 아니라, 피권력자의 영향력도 지대하다는 사실.

 

인간의 존엄성, 개인의 존재적 가치, 자유에 대한 끊임없는 열망이 그의 에세이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권력을 잃고, 부를 잃고, 주변으로 밀려난 사람들에 대한 담담한 관찰은 너무나 정밀하고 예리해서 때때로 표현 못할 서글픔으로 이어진다. 그의 글쓰기는가 갖는 미덕은 줄곧 인간에 대한 연민을 잃어버리지 않는다는 점.

 

자신이 자신일 수 밖에 없는 이유를 탐색하면서,  자신이 누구인지, 왜 사는지, 무엇을 해야하는지, 스스로 묻고, 스스로 답하고, 스스로 행동하는 과정을 배운 적 없는 이들에게, 기꺼이 좋은 스승이 되어주는 책.

 

깊이 있는 인생을 위하여 끊임없이 써나가고, 다시 활자들을 치열하게 되새김질 하는 과정을 여과없이 보여줌으로써, 허튼 자기계발서의 대수롭지 않은 지침들보다 훨씬 더 큰 자극이 된다.  쓴 대로 실천했고, 실천한 대로 쓴 위대한 저자를 만나기란 좀처럼 쉽지 않은 일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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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독서 - 세상을 바꾼 위험하고 위대한 생각들
유시민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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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가 유시민의 가장 큰 장점은 수려한 글솜씨와 더불어, 자신의 생각을 활자를 통해 직·간접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정치적 능력이 아닐까 싶다.

 

  <죄와 벌>, <전환시대의 논리>, <공산당 선언>, <인구론>, <대위의 딸>, <맹자>, <광장>, <사기>,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종의 기원>, <유한계급론>, <진보와 빈곤>, <카타리나 불룸의 잃어버린 명예>, <역사란 무엇인가> 등 여러 저작을 빌어 역사와 세계의 지향점, 진보적 가치의 의미, 평등과 자유의 이면, 인간다움과 빈곤의 문제 등을 이야기 하고 있다.

 

   <세상을 바꾼 위험하고 위대한 생각들>이란 부제가 담고 있듯이, 청춘들이 읽고, 세상을 바꾸는 작은 힘과 의지가 되어주기를 바라는 의도가 담겨져 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장은 <맹자><카타리나 불룸의 잃어버린 명예>. 두 서적을 통해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에 대한 울분, 진짜 보수가 가져야할 가치와 태도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에둘러 표현한 점.

 

   직설적인 화법이 아니면 청년들에게 다가갈 수 없다며, 정련되지 않은 훈계조로 참여와 관심 독려하는 대신, 먼저 앞선 지성인들의 활자와 주장을 빌어 생각 거리를 던진 후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중심 화두로 자연스럽게 견인하는 세련됨이 녹아있는 책이다. 다만 아쉬운 점은, 정치가란 저자의 신분 때문에 제시된 저작들이 저자의 정치적 의도대로 재구성되어 전달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가령, 68혁명에서 공산당의 배신은 극우 언론만큼 치명적이었지만, 지면의 한계 탓인지 언론의 병폐만 그려졌을 뿐 다른 지점은 부각될 수 없는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미덕은 청춘들에게, 바꾸고 싶은 세상에 대한 상을 그리는 밑그림의 단초를 제공한다는 점 아닐까 싶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무엇을 그려나가고, 문제 삼아야할지 모를 때, 최소한의 문제 의식이라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그런 독서 목록을 찾기란 여간 힘든 게 아니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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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뒷길을 걷다 - 김인숙의 북경 이야기
김인숙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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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북경에 가기 전에 주요 명소와 역사적 배경을 알아두면 좋겠다 싶어 골랐던 책. 작가는 특유의 감성으로 소소한 이야기를 담담히 그려내고 있다.

 

   세 살에 황제가 되어 쉰 네 살에 일반인이 된 푸이와 완룽의 삽화가 인상 깊었다. 모든 것을 가졌지만, 한 남자의 사랑을 받지 못해 마약까지 손대다가 끝내는 생을 마감한 완룽. 사진 속의 그녀는 여리한 소녀 같다. 남 부러울 것이 없었으면서도 사랑 없는 인생은 그녀에게는 전혀 가치가 없었던 모양이다. 반면 아무 것도 없이 궁에 들어왔지만, 지독한 권력욕을 불태우며 기어이 권좌를 사수한 서태후는 사랑 없는 인생도 가능하다는 듯, 전권을 휘둘렀다.

 

   똑같은 궁이 누군가에게는 감옥이 되었지만, 누군가에게는 지상 천국이었다니, 역사와 인생의 아이러니는 서태후와 완룽의 대비된 인생 속에서 더욱 교차되는 느낌이다.

 

   자금성, 스치하이, 이화원, 만리장성, 류리창, 성당과 사찰, 천단, 명십삼릉과 청 황릉 등을 가로지르며 역사적 배경과 관련 인물들의 이야기를 적당히 소개하고 있는데, 이 책은 두 번 읽는 것이 좋은 듯 싶다.

 

   가기 전에 읽어 북경의 그 자리에서, 활자의 기억을 더듬으며 감상의 깊이를 더 하는 도구로서 한번, 다녀와서 북경의 그 자리에서 자신이 직접 보고 느꼈던 것을 작가와 대화하듯이 상기하면서 읽는 것 한 번..북경에서의 추억을 떠올리며 책장을 넘기다 보니, 류리창과 명십삼릉 등을 못 둘러본 게 이내 아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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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과 열광 - 황우석 사태 7년의 기록
한재각.강양구.김병수 지음 / 후마니타스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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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석 사태는 정치적 민주주의 이후 생활 속 민주주의가 정착되지 않은 한국 사회에서, 자본주의, 민족주의가 일방적으로 교차하고, 거기에 뿌리 깊은 성과지상주의가 중첩될 때, 전문가와 기득권의 강고한 동맹이 어떻게 불행한 결과로 이어지는지 한편의 드라마처럼 보여준다. 특히 비판과 성찰의 문화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전문가의 폭주를 가로막을 사회적 방안이 거의 없다는 점을 뼈아프게 상기시키는 삽화이기도 하다.

황우석 사태의 이면에는 줄곧 정부의 꾸준한 비호와 언론의 지지가 있었다. 1999년 복제소 영롱이, 진이가 탄생했을 때, 김대중 대통령은 그의 노고를 친히 치하했고, 이때부터 황우석 교수는 각종 정부 부처의 굵직한 위원회, 연구 지원 등을 두루 섭렵하는 물꼬를 트게 된다. 2000-2003년까지 이종간 배아복제, 복제돼지, 광우병 내성소 연구 등과 관련하여, 노무현 대통령은 극찬을 아끼지 않았으며, 2004-2005년 <사이언스> 논문이 조작되고, 2005년 11월 <PD수첩>에서 의혹을 제기했을 때도, 노무현 대통령을 비롯 유수의 정치인이 ‘국익’의 이름으로 그를 지지했다. 물론 때마다 언론의 한결같은 찬사와 열화와 같은 보도가 함께 했다. IMF이후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던 김대중, 노무현 정권의 고민 속에서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 연구는, 정부의 21세기 신산업 정책의 핵심으로 자리매김 되었고, 동시에 교육과 의료의 개방을 끊임없이 요구했던 재계의 요구와도 맞물리면서 병원의 영리법인 도입, 민간 의료보험 등 의료 민영화를 정당화하는 촉매제 역할도 담당하게 되었다.

연구 외적으로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지원을 아낌없이 받으면서, 성과주의는 더욱 부채질 되었고, 민주화되지 않은 과학계의 이면은 황우석 교수팀의 연구 윤리마저 무너뜨리게 하는 기폭제가 되었다. 연구에 전혀 기여하지 않은 정치인, 교수가 공동 저자로 이름을 올렸고, 연구에 매진한 대학원생들이 제외되는가 하면, 난자 확보를 위해 연구원의 난자를 사용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특히 생명윤리의 관련 법률이 제대로 사회적으로 논의되지 않은 상황에서, 줄다리기 하는 동안 여성의 건강권에 대한 담론은 제대로 형성되지도 못한 채 난자가 연구에 마구잡이로 사용되었다.

연구노트의 부실, 연구 과정에서의 윤리적 기준 준수 미흡은, 오히려 연구 결과 조작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디씨인사이드의 BRIC과 프레시안 등의 비판을 계기로 밝혀진 바에 따르면 애초에 줄기세포 복제는 이뤄진바 없고, 자료를 겹치고 늘려 조작한 것으로 판명됐다. 황우석 교수팀의 중요한 연구 결과가 논문이 아닌 주로 언론을 통해 발표됐다는 점도 황우석 사태의 단면이라 할 수 있다. 차분히 연구 논문을 검증하고 검토하는 대신, 여과 없는 찬사와 옹호 일색으로 언론까지 뒷받침되자, 과학기술과 기득권의 동맹은 철저히 은폐되었고, 난치병 치료에의 희망과 국익·민족애가 주된 국민적 정서로 굳혀졌다.

저자들의 진단 대로, 황우석 사태에 대한 우리 사회의 대응은 열광 아니면 침묵뿐이었다. 다양한 의견과 진실된 소통이 민주적인 절차와 과정을 거쳐 성찰의 담론으로 되새김질 되는 대신, ‘모 아니면 도’라는 식의 극단적인 도식 속에서 과학의료기술의 전문성, 경제적 부가가치, 애국심은 절대로 깰 수 없는 성역이 되었다.

다양성이 존중되지 않고 구호만 난무하는 무기력한 민주주의는, 성찰과 비판을 가로막아 전문가와 기득권의 동맹을 더욱 강화시키는 수단이 될 수 있다. 황우석 사태가 남긴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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