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쓰는가 - 조지 오웰 에세이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 한겨레출판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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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에서 빅브라더의 전체주의에 맞선 행위가 '일기쓰기'로 묘사되었을 때, 조지 오웰이 글쓰기를 얼마나 위대한 행동으로 인지했던 것인지, 새삼 놀랐던 기억이 난다. 절대 권력에 맞서 개인의 존재적 가치를 되찾는 용감한 시도가 '글쓰기'라니.

 

그런 그가 여러 경험과 관찰을 토대로 쓴 에세이답게, 활자 하나 하나에 묵직한 힘이 실려있다. 가장 감명깊에 읽은 부분은 <코끼리를 쏘다>. 식민지였던 버마에서 권력을 가진 자로서, 탈출한 코끼리를 쫓던 중 어떻게 군중의 힘에 밀려, 자신도 모르게 잔인한 결정을 행동으로 옮겼는지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

 

어느 순간 권력의 역동은 그저 권력을 가진 자의 의지가 아니라, 권력 그 자체가 본능처럼 기능화될 수 있음을 짐작하도록 하는 대목. 그저 코끼리를 위협하는 동안 위엄을 갖기 위해 총을 들었던 것 뿐인데, 사람들이 몰려들고, 모든 이목이 자신에게 집중되자, 조지 오웰은 그만 코끼리를 죽여버린다. . 

 

총을 쥔 자의,  권력자로서의 면모를 과시하려는 욕망과 그 광경을 말없이 지켜만 보는 수많은 군중들의 이목이 만나는 접점에서,  전혀 엉뚱한 결말이 나타날 수도 있다는 그의 경험담은 어떻게 히틀러 시대가 가능했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경험적 틀을 제공한다. 그는 일상의 단순한 경험 속에서도  권력의 감추어진 속성을 집요하게 파헤쳐낸다. 권력의 역동은 권력자뿐만 아니라, 피권력자의 영향력도 지대하다는 사실.

 

인간의 존엄성, 개인의 존재적 가치, 자유에 대한 끊임없는 열망이 그의 에세이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권력을 잃고, 부를 잃고, 주변으로 밀려난 사람들에 대한 담담한 관찰은 너무나 정밀하고 예리해서 때때로 표현 못할 서글픔으로 이어진다. 그의 글쓰기는가 갖는 미덕은 줄곧 인간에 대한 연민을 잃어버리지 않는다는 점.

 

자신이 자신일 수 밖에 없는 이유를 탐색하면서,  자신이 누구인지, 왜 사는지, 무엇을 해야하는지, 스스로 묻고, 스스로 답하고, 스스로 행동하는 과정을 배운 적 없는 이들에게, 기꺼이 좋은 스승이 되어주는 책.

 

깊이 있는 인생을 위하여 끊임없이 써나가고, 다시 활자들을 치열하게 되새김질 하는 과정을 여과없이 보여줌으로써, 허튼 자기계발서의 대수롭지 않은 지침들보다 훨씬 더 큰 자극이 된다.  쓴 대로 실천했고, 실천한 대로 쓴 위대한 저자를 만나기란 좀처럼 쉽지 않은 일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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