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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김연수 지음 / 자음과모음 / 201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 김연수 / 자음과 모음


김연수.


이 이름이 상징하는 바 혹은 의미하는 바를 무엇에 비유할 수 있을지 잠시 생각해 봅니다. 한국문단의 봉준호? 아니면 한국의 조너선 사프란 모어? 뭐 어떤 것이든 딱이다 싶지는 않네요. 봉준호는 봉준호고 조너선은 조너선이고 김연수는 김연수일테니까요. 그러나 한가지는 분명합니다. 한국소설에서 김연수라는 이름이 이제는 하나의 브랜드가 되었다는 사실 말입니다. 김연수는  잘 나가는 작가 이상의, 한국문단의 젊음 혹은 한국문단의 새로움을 상징하는 이름인 것이지요. 브랜드가 될 정도로 이름을 알렸는데도 여전히 새로움으로 기억된다는 것 또한 참으로 특이한 경우라 할 수 있습니다. 김연수가 이제 결코 적지 않은 나이임에도 그가 낸 작품의 수 역시 적지 않음에도 김연수라는 이름은 여전히 그렇게 신선하게 다가옵니다.


그러나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그는 항시 새롭지만 새로움을 위한 새로움을 추구하진 않습니다. 그는 자신이 문학을 하고 있다, 는 정체성을 결코 잃지 않으면서도 그 안에서 충분히 새로울 수 있다는 걸 증명해 왔습니다. 그 새로움의 형태는 때로는 형식으로 때로는 내용으로 때로는 문장으로 표면화 되었지만, 그 형태가 무엇이든 그의 작품은 탄탄한 서사와 살아있는 캐릭터...즉 이야기 본연의 재미와 완성도를 결코 잃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의 소설은 새로우면서도 어렵거나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김연수의 신작이 당도했습니다.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이라는 제목입니다. 역시나 김연수 다운 제목. 호기심을 자극하는, 지극히 시적인. 이번에는 어떨까? 얼마나 새로우면서 또 얼마나 재미있을까... 설레이는 마음으로 책을 열었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역시 그는 실망시키지 않았습니다. 분명 김연수의 소설이었지만,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김연수의 소설이었습니다.


입양아를 다룬 이야기. 21세기의 디아스포라. 드디어 김연수가 현재를 이야기하면서 역사를 보듬으려 하는구나, 싶었습니다. 과거이거나 현재이거나가 아닌, 과거이면서 현재, 현재이면서 과거, 그 단절될 수 없는 아픈 이어짐을 이야기하려 하는구나, 지레짐작했습니다. 그리고 미국에 살던 입양아가 한국으로 자신의 엄마를 찾아온다고 했을 때는 시간적인 넘나듬을 넘어 공간적으로도 지역과 세계를 함께 아우르려하는구나 싶었습니다. 나는 지역에 살고 있지만, 결국 세상의 모든 사람은 다 '지역'에 살고 있고 그 지역들이 모여 세계가 되며 중심이란 그렇게 내가 지금 딛고 있는 이 땅, 이 곳이라는 것을...김연수가 드디어 말하려 하는 모양이라 생각했습니다.


저의 이러한 기대는 물론 어김없이 맞아 떨어졌습니다. 그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고 우리도 드디어 진정한 의미에서의 '보편성을 갖춘 이야기', 혹은 '역사를 아우르는 이야기'를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끝이 아니더군요. 김연수는 카밀라에서 시작해서 희재(그녀의 한국이름)으로 끝내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그의 생모인 지은으로 끝낸 것도 아닙니다. 분명 카밀라에서 지은으로 나아가지만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카밀라도 지은도 아니었습니다. 죽은 지은이 카밀라를 너라고 부르며 화자로 등장하기 까지 하지만, 그 신선한 혼란스러움에 잠시 머릿속이 멍해졌지만...이러한 형식적 새로움은 그저 김연수가 김연수임을 보여주는 작은 디테일일 뿐입니다. 


놀랍게도, 라고 밖에 할 수 없을 만큼... 김연수는 끝내 우리가 살아낸 지난 반세기의 이 땅의 한 귀퉁이를 가져다 놓는데 성공해버렸습니다. 조금 과욕이라는 생각이 들고, 통째로가 아닌 한 귀퉁이를 보여주는데 그치고 말지만 김연수이기에 이러한 시도가 가능한 것이라는 생각이 새삼 들었습니다. 뭐랄까요. <밤은 노래한다>를 읽었을 때와 비슷한 기분이었습니다. <밤은 노래한다>를 읽었을 때는...그 엄청난, 너무 엄청나서 아무도 해내지 못한 이야기를, 아직은 버거운 걸 알면서도,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기에 용감하게 도전했던. 그렇기에 완성도가 조금은 떨어지고 전체적으로 어수선함이 남아있을 수 밖에 없었음에도...그럼에도 참 좋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더랬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때보다 훨씬 여유로웠고, 무엇을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 지 정확히 알고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훨씬 매끄럽고 훨씬 능수능란했습니다. 당연하게도 그간의 세월과 경험의 값일 터입니다. 그렇기에 <밤은 노래한다>와 이번 소설을 비교하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을텐데도 자꾸만 그 소설이 떠오르는 건...아무래도 김연수가 이번 소설 역시 그때 그러한 기분으로 쓰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겠다는. 좀 더 무르익어도 좋겠지만, 그때가 되면 지금 이 나이에 쓸 수 있는 이야기와는 다른 이야기가 될 수 있기에, 일단 지금의 최선을 다해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해보자는...뭐 그런.

 

어쩌면 이러한 마음가짐 때문에 김연수가 '공부하는 작가'라는 타이틀을 얻은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마음가짐 때문에 김연수는 항시 새로울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 또한 들었습니다. 조금 덜 여물었지만, 바로 지금이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부족한 부분을 공부하고 노력해서 채워내면서라도 써내고야 마는. 그렇게 10년이 지나서 돌아봤을 때...지금 쓰면 더 잘 쓸 수는 있을지 몰라도 그때처럼 모든 걸 걸고 써낼 순 없으리라는 생각이 드는. 그런 소설. 그런 소설을 쓰는 작가.  


그런 김연수가 세상의 끝에서 세상의 모든 지은, 세상의 모든 카밀라에게 말을 건다. 

그런 김연수가 시간의 끝에서 과거의 모든 지은, 미래의 모든 카밀라에게 손을 내민다.


그리고 말한다.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너를 생각하는 것은 나의 일이었다,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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