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질의 삶을 살려면 다른 사람에게 끌려가지 말고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

 

남극, 북극 그리고 에베레스트 산을 정복한
노르웨이인 엘링 카게(Erling Kagge)가 말하는
’책임감’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이제는 출판 사업가로서 멋진 삶을 일구어 가는 그의 이야기는
귀담아 들을 만한 귀한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1. 지금도 내 안에는 쉬운 쪽을 택하라고 속삭이는
작은 목소리가 존재한다.
타인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심지어 나 자신에 관한 것이라도
아주 많은 책임을 지지 말라고 한다.


#2. 20세기 독일의 대표적인 철학자이자 현상학자인
마르틴 하이데거는 이렇게
’자신에게 편한 것을 찾는’ 태도로
인간 행동의 우선순위가 정해진다

고 설명했다.


#3. 인간에게 있는 특별한 가능성은
세상으로부터 도망치려는 태도다.
그는 조심하지 않으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런 태도의 노예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스스로 구덩이 속으로 들어가 다시는 빠져나오지 못하게 된다고 말이다.


#4. 하이데거는 이러한 삶의 방식과 반대로
적극적으로 자신의 책임을 다하며 주도적으로 사는 방식을 구분해서 설명한다.
인간 존재의 문제는 돌이나 식물의 존재처럼
단순한 차원에 그치지 않는다.
인간은 세상 속에 존재하는 자기 자신과 관계를 맺어야 한다.
그리고 자유로워지려면 더 많은 짐을 짊어져야 한다.



#5. 지금의 나는 탐험가지아 가정을 가진 사람으로서
많은 자유를 포기하는 쪽을 선택하였다.
젊은 시절에는 최대한의 자유를 추구했다.
매번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자유,
파티를 하고 공부와 일을 하고 스키를 타러 가고 경우에 따라
가볍거나 심각하게 데이트 신청을 하는 자유.


#6. "평범한 사람은 제멋대로 행동할 수 있을 때
자신이 자유롭다고 생각하지만 바로 제멋대로라는 점에서 그 사람은
자유롭지 않다."

독일 철학자 헤겔의 말이다.
헤겔이 말하려는 요지는, 우리가 자유를 필연적인 것의 반대로 생각한다면
자유에는 우연이라는 개념밖에 남지 않는다는 것이다.


#7. 하지만 우연과 자유는 다르다.
인생을 기회에 맡긴다면 그것은 자유로운 삶이 아니라
우연이 지배하는 삶이다.
허나 책임과 통제는 자유의 중요한 부분이다.
이러한 가치를 바탕으로 하는 선택을 우연에 맡길 수는 없다.
다시 말해 내가 한때 자유로운 삶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진짜 자유로운 게 아니었던 것이다.


-출처: 엘링 카게, (생각만큼 어렵지 않다), 라이온북스, pp,.152-155

 

공병호경영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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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에 포스팅한 로버트 팰컨 스콧(Robert Falcon Scott)이 언급되면 빠질 수 없는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스콧에 30일 앞서 남극점을 정복한 로알 아문센(로알 엥엘브렉트 그라브닝 아문센(Roald Engelbregt Gravning Amundsen))인데요, 어쩌면 후대의 관점에서 승리자인 아문센이 먼저 조명되고 스콧이라는 라이벌이 있었다고 회자되겠지만 '생각만큼 어렵지 않다 - 엘링카게'를 읽다가 남극점에 도착했으나 이미 아문센의 노르웨이 깃발과 텐트를 발견한 스콧 원정대의 사진을 보고 뭔가 애잔한 느낌을 받아 먼저 포스팅을 했었습니다. ^^

마침 올해가 아문센이 남극점을 정복한지 100년 되는 해입니다.(아문센이 1911년 12월 14일, 스콧은 1912년 1월 17일)

아문센과 스콧은 후대에서도 자주 회자되는 라이벌이기도 한데요, 동시대에 같은 목표를 가졌지만 성격과 탐험 방식은 정반대였습니다.

스콧은 탐험과 도전의 과정에서도 신사로서의 태도를 잃지 않아 지금까지도 영국의 신사도의 상장적인 인물로 추앙받고 있습니다.

탐험루트와 함께 지질학조사도 수행하였고 감상을 하며 일지에 낭만적인 기록을 남겨두지요.

그러나 아문센은 극도로 철저한 준비와 실질적인 모습으로 남극점에 도전합니다. 당시 유럽인들이 혐오하던 이누이트족의 모피를 입었으며, 조랑말을 쓴 스콧과 달리 개를 이용해 썰매를 끌고 필요가 없어지면 식량으로 썼습니다. 당시에 일부에서는 비난도 받았다지만 이러한 철저한 현지적응으로 스콧보다 30일 먼저 남극점을 정복하였으며 탐험대 전원 생환하게 되었죠.

재밌는 점은 아문센이 미국의 탐험가 로버트 피어리에게 북극점 최초 정복을 뺏기고 남극점 정복에 도전하게 되었는데, 96년에 피어리의 일지가 발견되고 그 일지에 피어리가 북극점으로부터 40km 못미치는 곳까지만 탐험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어 죽은 지 수십년 후에 인류최초로 남극점과 함께 북극점도 정복한 위대한 탐험가가 되었습니다. 만약에 북극점을 피어리에게 뺏기지 않았더라면 남극점에 도전하지 않고, 남극에 최초에 도달한 탐험가는 스콧이 되었을지도 모를텐데요....

 



 

로알 엥엘브렉트 그라브닝 아문센(Roald Engelbregt Gravning Amundsen 문화어: 아문젠, 1872년 7월 16일 – 1928년 6월 18일?)

 

인류 최초로 남극점과 북극점을 탐험한 노르웨이의 탐험가이다.

 

1910년–1912년 아문센이 이끈 원정대는 1911년 12월 19일 인류 최초로 남극점에 도달하였다. 이는 식량이 부족해도 살 수 있고 몸이 가벼운 개를 이용해서 썰매를 운행시키는 치밀한 준비덕분이었다.

 

 아문센은 오슬로 근교 보르게(Borge)에서 네 형제중 막내로 태어났다. 선장을 아버지로 두어 어려서부터 바다를 동경하였다. 1888년 프리티오프 난센의 그린란드 횡단에 감명을 받아 탐험가가 되기로 결심했지만, 어머니의 뜻에 따라 의학을 공부하였다.

 1893년 어머니가 죽자, 의과 대학을 그만두고 뱃사람이 되어 탐험가의 길을 나섰다.

 

 1897년 탐험대의 일원으로 선발되어 남극 탐험대의 일등 항해사가 되었다. 남극 대륙을 돌아 노르웨이로 돌아온 그는 북극 탐험대를 조직하여 탐험선 벨지카호를 타고 네덜란드 헤이그 항구를 떠났다. 하지만 북극해로 떠나던 벨지카호는 거대한 빙산에 갇혀 2년 동안 아문센과 프레드릭 쿠크는 굶주림으로부터 바다표범과 펭귄을 잡았다. 아문센은 선장을 대신해 벨지카호를 지휘하여 빙산을 깨뜨려 탈출했고 이 공로로 1899년 선장이 되었다. 그 해 봄에 이외아호의 선장이 되어 북서항로를 탐험하기로 했으나 암초 사이에 걸리는 등 여러 시련 끝에 베링 해협을 지나 킹 윌리암스 섬에 도착했다.

 1903년 북극 탐험 길에 올라 갖은 고생 끝에 자석상의 북극의 위치를 확인한 후, 1905년 알래스카 놈에 도착함으로써 서북 항로를 개척하고 돌아왔다.

프람호로 북극점을 정복하려했던 아문센은 미국의 피어리가 먼저 북극점을 정복하자(1996년 발견된 피어리의 일지에서 피어리는 북극점에서 40km 못미친 지점까지만 도달했다는 것이 밝혀졌기 때문에, 아문센은 두 극점을 모두 정복한 첫 탐험가가 된다.) 남극점 정복을 결심하고 1910년 남극 탐험길에 올라 로버트 스콧과의 경쟁 끝에 1911년 12월 19일 인류 최초로 남극점을 정복했다.

 

 남극 탐험 몇 년 후 아문센은 북극 탐험을 결심해 모드호를 타고 북극으로 갔으나 모드호는 긴 시간 동안 표류했고 북극점에 도착하진 못했으나 북동항로 발견에 큰 기여를 했다.

 아문센은 다시 비행선을 타고 북극으로 갔으나 다시 실패했다. 1926년 움베르토 노빌레 등과 함께 비행선 노르게호를 타고 북극해 탐험을 시도하여, 북극상을 통과하고 알래스카에 무사히 착륙했고[2] 이로 인해 국왕으로부터 최고 훈장을 받았다. 이 탐험으로 서유럽과 아시아·북아메리카 대륙을 북극해와 연결함으로써 세계의 거리를 좁아지게 하였다.

 그 후 1928년 아문센은 자신의 친구이자 이탈리아 탐험가였던 움베르토 노빌레가 이탈리아호라는 비행선을 타고 탐험을 갔다가 북극해에서 조난당하자, 수상 비행기로 수색에 나섰으나 자신도 행방불명되었다. 노빌레는 다른 구조대에게 구조되었으나 아문센은 비행기 부품이 발견됨으로써 사망한 것이 확인되었다.

 저서로 <남극> <극지 비행> <최초의 극해 횡단 비행> 등이 있다.
<출처 : 위키백과사전>



“…… 우리가 지금 떠나려는 여행에서 중요한 건 장비가 아닙니다. 이런 원정을 성공으로 이끄는 것은 돈도 아닙니다. 물론 있으면 좋겠지만요. 내가 생각하기에 상당 부분 가장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원정을 준비하는 태도입니다. 그 태도에 따라 어떤 어려움이 다가올지, 그리고 어떻게 그 어려움을 해결하거나 피할 건지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승리는 모든 것을 제대로 갖춘 자를 기다립니다. 우리는 그걸 성공이라고 부릅니다. 필요한 철차를 등한시한 자에게는 시간이 지난 후에 반드시 실패가 찾아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것을 불행이라고 부릅니다.”
아문센이 자신이 어떻게 세계 최초로 남극점에 도착할 수 있었는지를 설명하며 한 말이다. 대담하지만 정확한 말이다. 나는 아문센이 이런 말로 자신과 다른 사람을 비교하거나 누군가를 깎아내리려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단지 사실을 말하고 있었다. 탐험 원정에서 하루가 어떻게 끝날지는 아침에 텐트 밖으로 나오기 전에 이미 결정된다. 아니, 애초에 원정을 떠나기 전에 결정된다.

 

출처 [생각만큼 어렵지 않다 - 엘링 카게 지음, 강성희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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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 어록
잘 세운 것은 뽑히지 않고 잘 안은 것은 벗어나지 않으며, 이리하면 자손의 제사가 끊이지 않는다. 도로 몸을 다스리면 그 덕은 참되고, 도로 가정을 다스리면 그 덕은 여유가 있고, 도로 고을을 다스리면 그 덕은 오래가고, 도로 나라를 다스리면 그 덕은 나라를 풍성하게 하고, 도로 천하를 다스리면 그 덕은 천하에 두루 미친다.


 

 노자는 이렇게 말했다. 도를 행하기에 능한 사람은 영원히 도를 떠나지 않고, 덕을 닦기에 능한 사람은 영원히 덕을 버리지 않으며, 이러한 사람은 백세에 길이 빛나 영원토록 후세의 우러름을 받을 것이다.
노자는 또 이렇게 말했다. 도덕적 원칙으로 자신에게 요구해야 덕행이 비로소 진실하고, 도덕적인 수양으로 가정을 감화시켜야 덕행이 비로소 여유로우며, 도덕적 수양으로 한 고을을 감동시켜야 덕행이 비로소 오래 이어지고, 도덕적 수양으로 한 나라에 영향을 미쳐야 덕행이 비로소 풍성해지며, 도덕적 수양으로 천하를 이끌어야 덕행이 비로소 넓고 크게 된다.


 노자의 도덕관은 유가에서 말하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의 수련 과정과 거의 같다. 노자와 공자, 두 성인의 사상 관념은 큰 차이를 보이는데 이 문제에서만은 놀랄 만큼 일치한다. 아마도 자신에 대한 엄격함에서 시작해 타인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유일하게 옳은 처세의 도를 따랐기 때문일 것이다. 사상이 분명한 누구라도 험난하고 굴곡진 인생을 경험하면 결국 이 점을 발견할 것이다.


 젊은 시절 겁 없는 혁명가였던 버처(Butcher)는 세상을 바꾸는 것이 삶의 목표였다.
중년이 지나 그는 세상이 자신으로 인해 바뀌지 않으며 자신은 생애의 절반을 헛되이 보냈음을 깨달았다. 그는 하느님께 기도했다.

“주님, 세상을 바꾸고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지는 못할지라도 저의 가족, 저의 친구를 비롯한 제 주변 모든 사람들을 변화시킬 수 있도록

제게 힘을 주십시오.”
노년이 되었을 때 버처는 가족들조차 자신의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슬프게 깨달았다. 그리하여 그는 속으로 되뇌었다.

“나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주소서.”
훗날 버처는 자신의 일생을 돌아보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모든 사람이 바로 나처럼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고 세상을 바꾸려 힘을 기울이면서도 정작 자신을 변화시키는 일을 소홀히 한다. 이 얼마나 슬프고 얼마나 현명하지 못한 일인가!”


 현실 속에서 많은 사람이 이처럼 현명하지 못한 일을 저지르고 있다! 그들은 ‘자신의 몸을 다스리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에게는 높은 도덕적 수준을 강요한다. 예컨대 가정에서 남편은 아내가 예쁘고 상냥하고 가사일도 잘 하면서 검소하고, 특히 자신에게만 사랑을 바치길 원한다. 그렇다면 자신은 어떨까? 마음대로 행하고 습관대로 지내며 기회가 있으면 밖에서 여자를 좀 만난다 해도 안 될 것이 없다고 여긴다. 아내에게도 남편을 위해 준비한 나름의 설계도가 있다. 남편의 그것과 너무도 닮은 설계도 말이다. 두 사람은 상대의 교양과 도덕적 수준을 높이고 싶어 하면서도 자신은 변화하려 들지 않으니 자연히 갈등이 생긴다. 물론 상대에게서 어떠한 변화도 발견하지 못한다.

 회사에서 사장은 직원들에게 근면함, 성실한 업무태도, 정책에 대한 충실함을 요구하고, 유능하면서도 돈에 연연하지 않기를 바란다. 직원은 어떨까? 그들의 사장이 자상하고 인재를 중시하며 봉급을 많이 주면서도 요구는 까다롭지 않기를 바란다. 양측은 상대가 변화하기만을 바라므로 자연히 충돌이 빚어질 뿐 상대는 자신의 바람대로 바뀌지 않는다.


 타인에게 영향을 미치고 세상을 바꾸는 것은 결코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가장 실현하기 쉬운 자신의 변화부터 먼저 시작해야 한다. 자신을 위한 설계도를 준비하여 도덕적 자질을 높이고, 그리하여 당신이 타인의 눈에 도덕적인 군자로 비춰질 때 당신은 타인에게 영향을 미칠 자격을 갖춘 셈이다. 그러나 외부 사람으로 하여금 당신의 생각을 받아들이게 하려면 먼저 자신의 가족부터 다스려야 한다. 가족이 덕성을 잃었다면 외부 사람들 앞에서 당신의 말은 설득력을 잃는다. ‘가정을 다스리는 일’ 역시 비교적 실천하기 쉽다. 쉬운 일은 제대로 해내야만 타인에게 영향을 주는 어려운 일도 실현가능해진다.


 전류(錢?)는 출신이 빈한한 인물로, 훗날 전쟁에서 공을 세워 절도사(節度使)의 자리에 올랐다. 그로부터 그의 생활은 사치스러워졌고 고향에 거대한 호화주택까지 지었다. 고향을 찾을 때마다 그는 대규모 호위대를 이끌고 기세등등한 위용을 과시했다. 그러나 그가 그렇게 집에 올 때마다 그의 아버지 전관(錢寬)은 집을 비워 일부러 그를 피했다. 한번은 전류가 홀로 걸어서 고향을 찾아 마침내 아버지를 만났다. 그가 아버지에게 만나기를 꺼린 이유를 물었다. 전관이 대답했다. “우리 집안은 대대로 고기를 잡고 농사를 짓던 집안인데, 오늘날 네가 작은 벼슬자리 하나 꿰찼다고 겸손을 알지 못하니 나는 너로 인해 우리 집안 전체가 손가락질 받을까 두려웠다. 그래서 널 만나지 않으려 한 게야.” 이 말을 듣고 전류는 무릎을 꿇고 울며 아버지의 교훈을 반드시 마음에 새기겠노라 다짐했다.
 이로부터 전류는 매사 조용하고 부드럽게 움직였다. 훗날 오월(吳越)왕이 되고 나서는 아버지처럼 자녀에게 엄격했다. 어느 섣달 그믐날 밤 전류는 자녀들과 모인 자리에 악대를 불러 흥을 돋우고 있었다. 그런데 두 곡의 연주가 막 끝나자 그는 악대의 연주를 중단시켰다. 그의 자녀들이 볼멘소리로 말했다. “오늘은 정월초하루를 기다리는 밤이라 백성도 모두 흥겹게 즐기는데 하물며 왕가가 아닙니까?” 전류가 말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왕가가 어째서 백성보다 우월해야 하느냐? 알지 못하는 사람은 내가 밤새 술잔이라도 기울이는 줄 알겠구나. 그런다면 대신들은 나를 흉내 내고 백성은 대신들의 모습을 따라 할 테니, 이처럼 윗물이 맑지 못해 아랫물 또한 더러워지면 나라 전체가 흥청망청할 것이니 어찌 나라가 망하지 않겠느냐?”
 전류는 ‘제가(齊家)’를 안다 하기에 부끄러움이 없는 인물이었지만, 그의 아버지 전관은 대단한 지혜를 지닌 인물이었다. 냉정하고 일관된 모습으로 아들에게 깨우침을 주었으니 말이다. 보통 사람이라면 아이가 어릴 때 ‘반항’해도 뾰족한 대책이 없다. 요행히 아이가 출세하면 기뻐 어쩔 줄 모르며 우월감에 빠져 과시하며 아이에게 잘못이 있어도 느끼지 못한다. 간혹 충고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입에 담지 못한다. 전관이 높은 신분인 아들의 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높은 도덕과 품행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자신이 앞장서서 덕행을 실천하면 가정에 그 향기가 퍼지고 주위 사람들이 이에 감복하여 알게 모르게 당신의 행동을 따라할 것이다. 이리하여 당신은 고을 전체를 감화시킬 수 있게 될 것이다.


 삼국(三國)시대의 관녕(管寧)은 학문이 출중했지만 벼슬을 원치 않아 날마다 직접 농사를 지어 먹으며 소박한 전원생활을 했다. 그가 사는 마을에는 우물이 하나밖에 없었는데, 마을사람들의 일하고 쉬는 시간이 거의 비슷하여 물 길러 오는 시간 역시 거의 같았다. 그러니 늘 줄을 서서 기다렸다. 우물에는 다툼이 끊이지 않았다. 이런 사소한 일로 마을사람들은 서로에게 불만을 품고 반목하며 지냈다. 관녕이 이를 보고 매우 안타깝게 여겼다. 그래서 관녕은 물 긷는 도구를 많이 사서 미리 물을 길어 놓았다. 시간이 지나자 모두들 관녕의 뜻을 알고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며 서로 양보했다. 다툼은 사라졌다.
 어느 날 뜨거운 햇볕아래 매어둔 이웃의 소 한 마리가 배고프고 갈증이 났던지 줄을 풀고 관녕의 밭에 뛰어들어 작물을 먹어치웠다. 관녕이 이를 보고 소를 때리지도, 그 주인을 욕하지도 않고 소를 서늘한 곳으로 끌고 가서 소에게 풀과 물을 먹이며 돌봐주었다. 이 일을 알고 감격하고 미안했던 주인은 만나는 사람에게 늘 관녕의 인품을 칭찬했다. 그 마을에는 더 이상 분쟁이 일어나지 않았고 ‘예양(禮讓)의 마을’이라 널리 이름이 알려졌다.
 

 유가, 도가에서 모두 교화(敎化)를 중시하는데, 공자의 교화는 말과 실천 두 가지를 모두 중시했다. 그에 비해 노자의 교화는 솔선수범에 초점을 맞추어 이치를 이야기하기보다 행동하는 것을 중시하며 “행불언지교(行不言之敎, 말 아니하는 가르침을 행하다-역주)”를 강조한다. 관녕은 말로 떠드는 충고가 아니라 스스로 선행과 덕행으로 실천하여 보여줌으로써 ‘한 마을’을 교화시켰으니, 이것이 바로 노자의 자연의 도가 아닌가.
 ‘도로 나라를 다스림’과 ‘도로 천하를 다스림’은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라 말하기도 한다. 이는 반드시 나라의 왕이나 천자가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도덕에 부합하는 행동을 견지하면 당신의 아름다운 마음이 다른 사람에게 드러나고 천하는 자연히 당신으로 인해 감화된다. 노자, 공자 모두 국왕이 아니었지만 대대손손 모든 이의 마음을 감화시키니 그 영향력이 어찌 천하에만 그치겠는가? 레이펑(雷鋒)은 그저 평범한 병사로서 남을 기꺼이 도왔을 뿐이지만, 그 평범하고도 위대한 정신은 수대에 걸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어떤 이는 ‘치국평천하’ 하려면 반드시 권력을 쥐어야 한다고 여기지만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도덕 수양이 되어 있지 않다면 권력을 가지더라도 세상에 나쁜 영향을 끼칠 뿐이니 천하를 어찌 교화할 수 있겠는가? 히틀러(Adolf Hitler)는 한 나라의 원수가 되었지만 도리에 역행한 그의 모습은 반면교사가 되어 후대에 경계로 삼을 수 있을 뿐이다.
 본 장에서는 “잘 세운 것은 뽑히지 않고 잘 안은 것은 벗어나지 않는다”는 부분에 특히 주목해야 한다. 이른바 ‘뽑히지 않음’과 ‘벗어나지 않음’은 도덕적 기준을 견지하며 외부 환경에 의해 자신의 품성에 영향을 받지 않음을 말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잘’ 세우고 ‘잘’ 안는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러려면 반드시 자연의 도를 따라야 하는데, 여기에는 흔히 소홀히 하기 쉬운 두 가지가 있다.
 
첫째, 근본을 지켜라.
 이른바 덕을 닦는다고 하는 것은 ‘사람됨이 좋고 좋은 일을 많이 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관건은 본분을 지키고 사람으로서의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며 가정에서나 직장에서 해야 할 책임을 다하는 데 있다. 이것이 바로 사람됨의 근본이다. 남을 돕는 데는 열심인데 정작 자신의 일이나 생활은 제대로 해내지 못한다면 자연스럽지 못하다.
 춘추전국(春秋戰國) 정(鄭)나라 재상 경차(景差)는 마음씨가 고운 인물이었다. 어느 해 겨울 한 남자가 맨발로 강을 건너다 발이 얼어 걸을 수 없게 되었다. 경차가 마침 지나가다 이 광경을 보고 그 남자를 부축해 자신의 가마에 태우고는 자신의 옷을 벗어 그의 몸을 덮어주었다.
경차처럼 신분이 높은 사람이 이처럼 따뜻하게 보통사람을 배려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뜻밖에도 진(晋)나라 숙향(叔向)이 이 일을 전해 듣고 비웃으며 말했다. “한 나라의 재상이란 사람이 참으로 답답하지 않은가? 좋은 관리가 부임하면 3개월 만에 수로가 완성되고 10개월 만에 다리를 세워 가축들조차 강을 건널 필요가 없다는데, 하물며 사람은 말할 필요가 있겠는가?”
 숙향의 말은 정곡을 그대로 찔렀다. 경차는 본래의 직무에 주도면밀하지 못했으니 어쩌다 좋은 일을 몇 번 했다고 그의 직무상 허점이 없어질 수 있을까? 유향(劉向)은 이렇게 말했다. “본부정자말필의(本不正者末必倚, 근본이 바르지 못한 자는 그 마지막이 반드시 기울어진다).” 경차는 ‘본(本)’은 놓치고 ‘말(末)’만 잡았으니 덕을 수양했다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둘째, 보통 사람이 넘보게 하라.
 사람마다 교양이 다르고 받아들이는 능력 또한 같지 않다. 당신이 고상하다면 그것은 당신이 어떤 이치에 관해 깊이 이해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다른 사람도 당신과 똑같길 바란다면 이는 억지일 뿐이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을 교화하고 그에게 영향을 미치고자 한다면 먼저 그가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을 생각해야 한다. 그래야 역효과만 불러오는 일이 없다.
 공자 시대에 노(魯)나라는 백성에게 인정(仁政)을 베풀기 위해 한 가지 규정을 두었다. 다른 나라에서 노비가 된 노나라 사람을 선의로 해방시켜주면 국고에서 그 비용을 돌려준다는 규정이었다. 어느 날 자공(子貢)이 노나라 사람을 노비의 신분에서 해방시켜주고도 국고에게 지급하는 돈을 받으러 가지 않았다. 공자가 이를 듣고 비난하며 말했다. “자공이 틀렸다! 성인의 일은 풍속도 바꾸어 놓으니 그 교화의 힘이 자신뿐만 아니라 백성에게까지 널리 전해진다. 앞으로 노나라 사람은 더 이상 기꺼이 노비를 해방시키려 들지 않을 것이다.”
 자공이 국고의 비용을 받지 않는다고 노나라 사람이 더 이상 노비를 해방시켜주지 않을까? 사람의 심리란 보통 적은 대가를 치르고도 좋은 일을 할 수 있다면 기꺼이 참여하지만, 그 대가가 너무 크다면 선의를 선뜻 실천하기 어렵다. 자공은 명망 높은 인사이니 사람들은 자연히 자신의 행동을 그와 비교하게 될 텐데, 만일 그가 노비를 해방시키고도 국고의 지원금을 받지 않았는데 자신은 받는다면 자공에 비해 상대적으로 고상하지 못하게 보일 것이다. 그러니 자연히 자비를 들여 동포를 노비에서 해방시키는 선의를 베푸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좋은 일을 잘 하느냐 못하느냐의 관건은 전체적인 효과에서 생각해야 한다. 만일 보통 사람들이 따라 하기 어려운 일을 한다면 이는 자신을 돋보이게 할 뿐이다. 모두가 기꺼이 동참하게 할 수 있다면 비로소 능히 덕을 닦는다 할 것이다.

 

- [왼손에는 명상록, 오른손에는 도덕경을 들어라] 중에서 -

  



 

 

 

 

 

 

 

독자리뷰 : 지하철에서 보는 자기계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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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껍질을 깨고 세상 밖으로 행군하라”
[포커스신문사 | 박영순 기자 2011-04-17 22:56:45]
 




■ 세계적 탐험가 엘링 카게 철학 담은 ‘생각만큼 어렵지 않다’

에베레스트 등정·남북극 탐험
젊은이들에 도전심 불어넣어


“자신의 세계를 바꾸는 건 불편하고 위험한 일이지만 아무런 시도도 하지 않는 것은 그보다 더 위험하다.”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탐험가로 손꼽히는 노르웨이의 엘링 카게(사진)는 자신의 삶과 철학을 담은 저서 ‘생각만큼 어렵지 않다’(라이온북스 펴냄)에서 세상 밖으로 나아가라고 권한다.

자신을 성벽처럼 둘러싸인 일정한 공간에 가둬둔 채 쳇바퀴 도는 현실을 살아가는 현대인들…. 저자는 마음만으로 급하다고 외치며 스스로 스트레스를 쌓아가고 있는 현대인의 어깨를 다독거리며 “어떤 도전도 생각만큼 어렵지 않다”고 용기를 불어넣어준다.

그의 말에 힘이 실리는 것은 그가 몸으로 부딪치며 살아온 인생역정 때문이다. 카게는 1990년 설상스쿠터도, 개썰매도, 식량저장소도 없이 최초로 북극에 발을 디뎠다. 그리고 1993년 인간으로서는 처음으로 혼자 걸어서 남극에 갔다. 그리고 이듬해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르면서 최초로 지구의 3극점을 다녀온 인물이 됐다. ‘타임’지는 그를 ‘모험의 한계를 밀어내고 있는 현대의 탐험가’라고 극찬했다.

하지만 그는 일상의 타이틀을 더 소중하게 여긴다. 변호사, CEO, 미술품 수집가, 그리고 세 아이의 아버지가 바로 그것.

극지를 찾아다니면서도 이들 직함을 유지하고 세 아이까지 돌보기란 그야말로 ‘인생 탐험’이다. 여기에 1350㎞를 홀로 걸어 남극에 가고, 100㎏이 넘는 썰매를 끌고 북극에 가고, 에베레스트에 오르는 ‘고통’을 자처해온 그가 정작 삶에 대해 내린 결론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였다.

그는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면서도 큰 힘과 용기를 낸다고 말한다. 카게가 강연회에서 마약 중독에 빠진 매춘부를 만났을 때의 일화이다.

자신에게 찬사를 보내는 매춘부에게 카게는 그녀야말로 자신 안에 위대함을 가졌다고 소개했다. 그녀는 자진해서 크리스마스이브에 영하 20도의 날씨에 미니스커트를 입은 채 거리를 배회하고, 낯선 이의 차에 올라타 모르는 남자에게 자신을 맡긴다. 카게는 배짱없이 할 수 없는 일을 그녀는 하고 있다면서 자신의 위대함에 확신을 가지라고 조언했다.

가끔 우리는 스스로를 조금도 용감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조차 위대함이 숨어 있는 것을 발견한다. 그만큼 우리 안에도 위대함이 숨어 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스스로의 위대함을 알아챌 때 그것을 우리는 ‘가능성’과 ‘자긍심’이라고 부른다. 이들 덕목이 인생 탐험을 위한 필수품이다.

인생이라는 여정에는 극지가 수없이 존재한다. 문제는 한 발을 떼고 시작할 수 있느냐에 달렸다. 일단 아침에 일어나기에 성공하면 하루는 마무리된다고 카게는 말한다. 매번 가능성과 시도, 도전과 성패, 선택과 후회 그리고 인생의 목표를 찾는 것과 인생의 의미를 찾는 것에 대해 고민하지만 결국 이 모든 과정을 통해 인간은 위대함을 발견한다고 카게는 설파한다.

박영순 기자 yspark@focus.co.kr


 



 

현실의 벽에 멈춰 서 있는 젊은 당신에게

 

[생각만큼 어렵지 않다 - 엘링 카게 지음, 강성희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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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라이온북스에서 출간한 노르웨이 탐험가 엘링 카게의 저서 - '생각만큼 어렵지 않다'를 

읽어가다 보면 전설적인 탐험가 아문센에 30일 늦게 남극점에 도착한 로버트 F 스콧 이라는  

탐험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극지방을 탐험하는 것도 대단한 일인데 아문센의 라이벌에다가  

30일 차이로 '최초'라는 타이틀을 놓친 점, 
 

돌아오는 길에 비극적으로 죽음을 맞이하여 마지막 원정이 된 점..등등에 
 

어떤 인물일까 궁금해서 로버트 팰컨 스콧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찾아보았습니다.

 

로버트 팰컨 스콧(Robert Falcon Scott, 1868년 6월 6일~1912년 3월 29일)

영국의 해군 장교이자 탐험가이다.
 

영국 데번포트에서 태어났다. 1882년 해군에 입대하였으며, 
 

1901∼1904년 디스커버리 호를 타고 남극 탐험을 지휘하였다. 
 

이때 킹 에드워드 7세 랜드를 발견하여 남쪽 도달기록인 남위 82도 17분을 기록하였다.
 

1910년 테라노바 호에 의한 제2차 남극탐험에 나서서 1912년 1월 18일 남극점에 도달하였다. 

그러나 남극점은 1911년 12월 14일 노르웨이의 로알 아문센이 먼저 도달하였기 때문에 

첫 정복의 목표는 깨어졌다. 

그와 4명의 동행자는 귀로에 악전후로 조난, 식량부족과 동상으로 전원 비명의 최후를 마쳤다.
 

그의 유해와 일기(마지막 일자는 3월 29일) 등은 1912년 11월 12일 발견되었다.

마지막까지 용기를 잃지 않고 영국 신사다운 최후를 마친 것이 알려져 국민적 영웅이 되었다. 
 

저서로는 '탐험항해기'(2권, 19 05), '스콧 C.M.Scott 최후의 원정'(1913)이 있다.  

(출처 : 위키백과사전)
 

 

 

 

스콧은 영국 남극의 탐험가로 탐험과 도전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인물의 하나로 기리고자 

이 곳 사람들이 동상을 세웠다네요.

그냥 역사책 속에나 존재하고 잊혀졌던 인물이려니 했는데  

국민적 영웅으로 기려지는 듯 합니다.

 

1912년, 남극에서 로알드 아문센(Roald Amunsen)의 텐트 옆에 선
 

로버트 F 스코트(Robert F Scott) 대장과 그 대원들. 

몸짓에 묻어나는 지친 기색으로 알 수 있듯이 이들은 여기서 1,100미터를 더 나아간 뒤,
 

다음 기지까지 불과 500미터를 남겨둔 채 죽음을 맞이했다. 
 

로버트 스코트가 1911~1912년의 남극 원정 당시에 기록한 여행 일기  

<마지막 여행(The Last Journey)> (나는 이 책이 원정일기의 최고봉이라고 생각한다)를 보면

그는 마지막 기지까지 도착할 가능성이 점점 희박해지고 있음을 깨닫는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가느다란 희망을 놓지 않는다. 

생존 가능성이 점점 사라지면서  

스코트는 야심만만한 북극 탐험가에서 위대한 예술가로 변모한다. 

마지막이 가까이 다가올수록 그의 글은 더 좋아진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을 기대할 수 없을 것 같다.  

끝까지 버티겠지만 우리는 점점 더 약해지고 있다.

끝이 멀지 않았다. 슬프지만 더 이상 글을 쓸 수 없을 것 같다. - 스코트"  

그리고 3월 29일. 그는 마지막에 한 문장을 더 써넣었다. 

"부디 내 가족을 돌봐주기를." 

그런 다음 마지막 생존자였던 그는 잠에 빠졌다. 그렇게 그들의 원정은 끝이 났다.

출처 [생각만큼 어렵지 않다 - 엘링 카게 지음, 강성희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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