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에 포스팅한 로버트 팰컨 스콧(Robert Falcon Scott)이 언급되면 빠질 수 없는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스콧에 30일 앞서 남극점을 정복한 로알 아문센(로알 엥엘브렉트 그라브닝 아문센(Roald Engelbregt Gravning Amundsen))인데요, 어쩌면 후대의 관점에서 승리자인 아문센이 먼저 조명되고 스콧이라는 라이벌이 있었다고 회자되겠지만 '생각만큼 어렵지 않다 - 엘링카게'를 읽다가 남극점에 도착했으나 이미 아문센의 노르웨이 깃발과 텐트를 발견한 스콧 원정대의 사진을 보고 뭔가 애잔한 느낌을 받아 먼저 포스팅을 했었습니다. ^^

마침 올해가 아문센이 남극점을 정복한지 100년 되는 해입니다.(아문센이 1911년 12월 14일, 스콧은 1912년 1월 17일)

아문센과 스콧은 후대에서도 자주 회자되는 라이벌이기도 한데요, 동시대에 같은 목표를 가졌지만 성격과 탐험 방식은 정반대였습니다.

스콧은 탐험과 도전의 과정에서도 신사로서의 태도를 잃지 않아 지금까지도 영국의 신사도의 상장적인 인물로 추앙받고 있습니다.

탐험루트와 함께 지질학조사도 수행하였고 감상을 하며 일지에 낭만적인 기록을 남겨두지요.

그러나 아문센은 극도로 철저한 준비와 실질적인 모습으로 남극점에 도전합니다. 당시 유럽인들이 혐오하던 이누이트족의 모피를 입었으며, 조랑말을 쓴 스콧과 달리 개를 이용해 썰매를 끌고 필요가 없어지면 식량으로 썼습니다. 당시에 일부에서는 비난도 받았다지만 이러한 철저한 현지적응으로 스콧보다 30일 먼저 남극점을 정복하였으며 탐험대 전원 생환하게 되었죠.

재밌는 점은 아문센이 미국의 탐험가 로버트 피어리에게 북극점 최초 정복을 뺏기고 남극점 정복에 도전하게 되었는데, 96년에 피어리의 일지가 발견되고 그 일지에 피어리가 북극점으로부터 40km 못미치는 곳까지만 탐험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어 죽은 지 수십년 후에 인류최초로 남극점과 함께 북극점도 정복한 위대한 탐험가가 되었습니다. 만약에 북극점을 피어리에게 뺏기지 않았더라면 남극점에 도전하지 않고, 남극에 최초에 도달한 탐험가는 스콧이 되었을지도 모를텐데요....

 



 

로알 엥엘브렉트 그라브닝 아문센(Roald Engelbregt Gravning Amundsen 문화어: 아문젠, 1872년 7월 16일 – 1928년 6월 18일?)

 

인류 최초로 남극점과 북극점을 탐험한 노르웨이의 탐험가이다.

 

1910년–1912년 아문센이 이끈 원정대는 1911년 12월 19일 인류 최초로 남극점에 도달하였다. 이는 식량이 부족해도 살 수 있고 몸이 가벼운 개를 이용해서 썰매를 운행시키는 치밀한 준비덕분이었다.

 

 아문센은 오슬로 근교 보르게(Borge)에서 네 형제중 막내로 태어났다. 선장을 아버지로 두어 어려서부터 바다를 동경하였다. 1888년 프리티오프 난센의 그린란드 횡단에 감명을 받아 탐험가가 되기로 결심했지만, 어머니의 뜻에 따라 의학을 공부하였다.

 1893년 어머니가 죽자, 의과 대학을 그만두고 뱃사람이 되어 탐험가의 길을 나섰다.

 

 1897년 탐험대의 일원으로 선발되어 남극 탐험대의 일등 항해사가 되었다. 남극 대륙을 돌아 노르웨이로 돌아온 그는 북극 탐험대를 조직하여 탐험선 벨지카호를 타고 네덜란드 헤이그 항구를 떠났다. 하지만 북극해로 떠나던 벨지카호는 거대한 빙산에 갇혀 2년 동안 아문센과 프레드릭 쿠크는 굶주림으로부터 바다표범과 펭귄을 잡았다. 아문센은 선장을 대신해 벨지카호를 지휘하여 빙산을 깨뜨려 탈출했고 이 공로로 1899년 선장이 되었다. 그 해 봄에 이외아호의 선장이 되어 북서항로를 탐험하기로 했으나 암초 사이에 걸리는 등 여러 시련 끝에 베링 해협을 지나 킹 윌리암스 섬에 도착했다.

 1903년 북극 탐험 길에 올라 갖은 고생 끝에 자석상의 북극의 위치를 확인한 후, 1905년 알래스카 놈에 도착함으로써 서북 항로를 개척하고 돌아왔다.

프람호로 북극점을 정복하려했던 아문센은 미국의 피어리가 먼저 북극점을 정복하자(1996년 발견된 피어리의 일지에서 피어리는 북극점에서 40km 못미친 지점까지만 도달했다는 것이 밝혀졌기 때문에, 아문센은 두 극점을 모두 정복한 첫 탐험가가 된다.) 남극점 정복을 결심하고 1910년 남극 탐험길에 올라 로버트 스콧과의 경쟁 끝에 1911년 12월 19일 인류 최초로 남극점을 정복했다.

 

 남극 탐험 몇 년 후 아문센은 북극 탐험을 결심해 모드호를 타고 북극으로 갔으나 모드호는 긴 시간 동안 표류했고 북극점에 도착하진 못했으나 북동항로 발견에 큰 기여를 했다.

 아문센은 다시 비행선을 타고 북극으로 갔으나 다시 실패했다. 1926년 움베르토 노빌레 등과 함께 비행선 노르게호를 타고 북극해 탐험을 시도하여, 북극상을 통과하고 알래스카에 무사히 착륙했고[2] 이로 인해 국왕으로부터 최고 훈장을 받았다. 이 탐험으로 서유럽과 아시아·북아메리카 대륙을 북극해와 연결함으로써 세계의 거리를 좁아지게 하였다.

 그 후 1928년 아문센은 자신의 친구이자 이탈리아 탐험가였던 움베르토 노빌레가 이탈리아호라는 비행선을 타고 탐험을 갔다가 북극해에서 조난당하자, 수상 비행기로 수색에 나섰으나 자신도 행방불명되었다. 노빌레는 다른 구조대에게 구조되었으나 아문센은 비행기 부품이 발견됨으로써 사망한 것이 확인되었다.

 저서로 <남극> <극지 비행> <최초의 극해 횡단 비행> 등이 있다.
<출처 : 위키백과사전>



“…… 우리가 지금 떠나려는 여행에서 중요한 건 장비가 아닙니다. 이런 원정을 성공으로 이끄는 것은 돈도 아닙니다. 물론 있으면 좋겠지만요. 내가 생각하기에 상당 부분 가장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원정을 준비하는 태도입니다. 그 태도에 따라 어떤 어려움이 다가올지, 그리고 어떻게 그 어려움을 해결하거나 피할 건지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승리는 모든 것을 제대로 갖춘 자를 기다립니다. 우리는 그걸 성공이라고 부릅니다. 필요한 철차를 등한시한 자에게는 시간이 지난 후에 반드시 실패가 찾아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것을 불행이라고 부릅니다.”
아문센이 자신이 어떻게 세계 최초로 남극점에 도착할 수 있었는지를 설명하며 한 말이다. 대담하지만 정확한 말이다. 나는 아문센이 이런 말로 자신과 다른 사람을 비교하거나 누군가를 깎아내리려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단지 사실을 말하고 있었다. 탐험 원정에서 하루가 어떻게 끝날지는 아침에 텐트 밖으로 나오기 전에 이미 결정된다. 아니, 애초에 원정을 떠나기 전에 결정된다.

 

출처 [생각만큼 어렵지 않다 - 엘링 카게 지음, 강성희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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