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에 이어서)

그는 인도 국민회의를 민족주의의 효율적인 정치 기구로 바꿔 놓아 대도시의 중산층부터 시골의 작은 마을에 이르기까지 대중 조직을 갖추게 하였다. 그리고 영국 정부에 대한 비폭력 불복종 운동을 전개했다. 이 운동으로 인도인이 갖고 있던 외국 지배자에 대한 공포심을 없애는 데 성공하였다. 인도 각지에서 유혈 사태가 일어나자 1922년 간디의 호소로 운동은 잠시 중지되었다. 그 동안 간디는 투옥되었다가 풀려 나왔으며, 1924년부터 1년간 국민 회의파의 의장으로 있으면서 인도인이 자력으로 농촌 구제에 나설 것을 역설하며 전국을 돌아다녔다.

 

1929년의 연차 대회에서 국민 회의파는 창립 이래 처음으로 완전 독립을 선언하였고, 61세가 된 간디는 1930년 3월 소금세 신설에 반대하여 그 유명한 소금 행진을 시작하였다. 영국 통치에 대한 간디의 비폭력 운동 중 가장 성공적이었던 이 운동에서 6만 명 이상이 투옥되었다. 1년 뒤 간디는 어윈 총독과 협상하여 반영 불복종 운동을 중지하였다. 그러나 간디-어윈 협정에도 불구하고 다시 탄압 정책을 쓰는 영국 당국에 항의하기 위한 불복종 운동을 재개하여 투옥되었다.

 



 

1932년 석방된 이후부터 인도 카스트의 최하층민인 하리잔의 지위 향상에 진력하였다. 1934년 국민 회의파의 지도자 자리를 사임하고, 세바그람에 가서 살면서 농민을 교육하고, 하층민을 위해 투쟁하며 교육 체계를 개선하기 위해 애썼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영국은 인도의 찬성을 얻지도 않고 인도를 전쟁에 투입하였다. 이에 인도 국민회의는 자치 정부 수립을 조건으로 영국에 협력하고 간디는 1942년 영국에 즉각적인 철수를 요구했다. 일본과 전쟁이 심각해지자 영국은 간디와 국민 회의파를 탄압했고 이에 대항하여 폭동이 발생, 영국과 인도의 관계는 최악의 상태에 빠졌다. 이로 인해 간디는 73세의 노령으로 다시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전쟁이 끝난 후 국민 회의파, 이슬람 동맹, 영국 정부 간의 3자 협상이 벌어졌으나 협상 중에 힌두교도와 이슬람교도 사이에 유혈 충돌이 계속 일어났다. 1947년 간디의 뜻과는 달리 인도와 파키스탄의 분리 독립이 결정되었고, 양쪽으로부터의 비난을 무릅쓰고 두 종교의 갈등을 해결하고자 간디는 단식에 들어갔다. 간디의 단식에 의해 1947년 9월 캘커타의 폭동이 가라앉았고, 1948년 1월에는 델리에서 휴전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불과 며칠 뒤인 1월 30일 간디는 나투람 고드세라는 반이슬람 힌두교 광신자에게 암살당했다.

  

- 역사 속 9인의 리더에게 배우는 평생 경쟁력, 서른살 리더십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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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인류가 인도 최하층민인 불가촉천민들의 권익과 평등을 부르짖고 영국의 지배에 맞서 독립 운동을 전개한 간디를 존경한다. 그는 평생 자신이 뱉은 말은 실천에 옮겼고, 철저하게 금욕했으며 검소하게 살았다. 불가촉천민의 입장을 대변하기 위해 스스로 가난을 맹세하고 그들의 공동체에서 평생을 함께 했다. 그런데 간디는 인도 명문가의 자제로 영국에서 유학하고 변호사였던 인물이다.

 

엘리트였던 그가 어떻게 해서 최하층민을 위하고 독립 운동에 평생을 바치게 되었을까? 비록 조국은 영국의 식민지였지만 그는 부와 명예를 지닌 평안한 삶을 누릴 수 있었다. 영국에서 유학했고 집안이 부자였기 때문에 영국인들도 그를 함부로 무시하지 않았다. 인도에서도 최상의 대우를 받았다. 그런데 그가 변호사로 갓 부임한 남아프리카에서 평소와 마찬가지로 기차 1등칸에 탔다가 유색인종이라고 쫓겨나는 신세가 된다. 그때 간디는 충격에 휩싸였다. 그리고 뭔가에 얻어맞은 것처럼 조국의 현실을, 최하층민의 입장을 깨달았다.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고, 그것을 개선하기 위해 평생을 바치기로 마음먹는다.

 

    

- 역사 속 9인의 리더에게 배우는 평생 경쟁력, 서른살 리더십 중에서 -

인도 독립 운동의 아버지 간디는 위대한 혼, 큰 성인이라는 뜻의 '마하트마'로 불린다. 그의 삶은 자신의 성공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 봉사하는 데 쓰였다. 천 한 장을 허리에 두르고 가난을 맹세함으로써 가난한 자들과 같아지려고 했고, 옳은 길이 아니면 결코 타협하지 않았다. 그는 전 인류로부터 신뢰와 존경을 받은 몇 안 되는 인물 가운데 한 명이다. 먼저 그의 삶의 궤적을 쫓아가 보자.

 

 


간디는 영국의 지배를 받고 있던 인도 식민지 시절 포르반다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유능한 행정가였고 어머니는 비폭력을 중시하고 도덕적으로 매우 엄격한 종교를 믿는 신앙심이 깊은 사람이었다. 간디는 그런 어머니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녀는 아들 간디에게 고기를 먹는 것은 다른 사람의 삶을 파괴하는 것이라고 가르쳤고, 그는 어머니의 말씀을 받들어 일평생 채식주의자로 살았다.

 

 

 

어려서는 인도에서 교육받았으나 1887년 런던에 있는 이너템플 대학에 입학하였다. 영국에 머물던 3년 동안의 생활은 그의 인격과 정치관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1891년 변호사가 되어 귀국하였으며, 1893년 소송 사건을 의뢰받아 부인과 함께 남아프리카 연방의 더반으로 건너갔다.

 

남아프리카 여행은 간디의 생애에 커다란 전기를 가져왔다. 당시 남아프리카에는 약 7만 명의 인도 사람이 이주해 있었는데, 그들은 백인에게 박해를 받고 있었다. 간디는 불의를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그는 거기에 사는 인도인의 지위와 인간적인 권리를 보호하고자 결심하고 남아프리카 연방 당국에 대한 인종 차별 반대 투쟁 단체를 조직해 1914년까지 그 지도자로 활동하였다.

 



 

간디는 아프리카의 인도인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지는 못했지만, 이때부터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1915년에 인도에 돌아온 그는 제1차 세계대전에서 인도의 독립을 촉진하기 위하여 영국의 입장을 지지하였다. 1919년 민중 탄압법인 롤라트 법이 제정되자 영국의 지배에 반기를 들기 시작하였다. 1919년 봄 그는 사티아그라하 투쟁을 선언했고, 곧 봉기가 일어나 펀자브에서 400명에 달하는 인도인이 영국군에게 학살되자 잠시 움츠러들었지만, 다시 투지를 갖고 일어나 1920년 인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정치적 지도자가 되었다.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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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이란 행동과 태도 등 다양한 요소가 결합되어 만들어지는 하나의 패턴이다. 성격장애란 이러한 패턴이 융통성을 잃고 경직되어 자신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불편함을 주는 상태를 말한다.

언젠가 이문열의 소설 『레테의 연가』에서 읽었던 문구 하나가 떠오른다. “현대인들은 어떤 면에서 다들 미쳐있다”라는 말이었다. 나는 이 문장을 읽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야말로 옳은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도화된 현대사회에서 개개인은 미미한 존재다. 항상 타인으로부터, 성공으로부터, 사회로부터, 직장으로부터 소외되기 쉽다. 그러니 현대를 정신적으로 피폐한 사회라고 일컫는 것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다만 자신에게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것을 다들 믿고 싶어 하지 않을 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일정 부분은 어딘가에 미쳐있다. 이건 열정적으로 몰입한다는 뜻도 된다. 한편으로는 ‘미치지 않고서는 살아가기 힘든 세상’이라서 더 그럴 수도 있다. 오죽하면 인텔의 앤디 그로브 회장의 “편집광만이 살아남는다”라는 주장에 고개 끄덕인 사람이 그렇게 많았겠는가.

 

필자는 한때 프로이트가 싫었다. ‘정신병자의 정신을 분석하겠다’는 호언장담이 어리석게까지 느껴졌다. ‘보통 사람들이 어떻게 더 잘 살 수 있을까’에 대해서 연구만 해도 모자랄 판에 불필요한 곳에 에너지를 낭비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한 해 한 해 나이가 들고 많은 경험을 하게 되면서 ‘정신병자나 우리나 뭐가 다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형으로부터 일부러 미친 척해서 정신병원에 들어간 군대 친구들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더 그랬다. 멀쩡한 사람이 흉내 낼 수 있을 정도라면 정신병자도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았다. 사람들은 일정 부분 성격적 문제를 안고 살아가지만 대개 극명하게 드러나지 않을 뿐이다.

 





영화 「굿 윌 헌팅」의 주인공 윌 헌팅은 수학에 천재적인 재능을 가졌지만 동시에 심리적 장애도 가진 청년이다. 윌은 심리학 교수인 숀 맥과이어의 상담을 받으며 자신에게 문제가 있음을 느낀다. 하지만 그 문제는 미묘하게 감춰져서 사회생활에서는 크게 드러나지 않았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직장생활에서도 사회생활에서도 여자친구와의 관계에서도 문제가 발생한다. 결국 윌은 숀 교수의 따뜻한 사랑과 지도를 통해 자신의 결함을 인정하게 된다. 그렇게 내면의 상처를 치유함으로써 평범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된다.

 



이게 영화 속에만 등장하는 이야기일까? 우리도 마찬가지다. 복잡한 세상에서 무리 없이 살아가려면 정신병자가 겪을 수 있는 병적 증상과 고통, 그리고 그들의 성격적 특성을 어느 정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나 자신을 치유할 수 있는 힌트도 얻을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뚜렷하게 증상이 드러나는 정신병자를 연구한 프로이트의 심리 치유는 인간 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현명한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대다수의 우리는 자신의 문제를 잘 모른다. ‘미치는 것도 가지가지’라는 말처럼 다들 가지가지 이유로 미쳐 있다 보니 문제를 규명하는 데 혼란을 겪는다. 이런 이유로 다양한 사람들의 성격적 경향을 깊이 이해하는 작업은 자신의 문제점을 보완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된다.

 

그런데 그것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하나 있다. 자신의 성격(여기서는 ‘기질, 성질, 인격’까지 포함)을 어쩔 수 없다고 규정해버리는 것이다. 스스로에게는 “나는 성격이 못됐어”라고 말하고, 타인에게는 “내 성격이 좀 그렇거든”, “성격 좋은 네가 참아라.”라고 말하며 화를 퍼붓는다. 이는 자기 성격이 바뀔 수 없다고 생각하는 체념의 결과다. 그 때문에 끊임없이 똑같은 문제가 되풀이되는데도 늘 같은 방식으로 접근한다. 그러면서도 결과는 달라지기를 원하니 어리석음도 그런 어리석음이 없다.

 

물론 자기 성격을 원하는 대로 완전히 바꾸는 것은 어렵다. 하지만 성격을 ‘좋고 나쁨’의 선상에 다양한 면면을 나열해놓는다면 그러한 의미에서의 나쁜 부분은 고칠 수 있다. 사실 성격이라는 것은 완전하게 바꿀 필요도 없다. 모든 성격적 특성에는 장점과 단점이 있기 때문이다.

 

타고난 내 성격을 장점으로 살릴 것인가, 단점으로 살린 것인가는 오로지 자기 선택에 달려 있다. 자기 결정에 따라 어떤 사람은 존경받게 될 것이고, 어떤 이는 이상한 사람이라 불릴 것이다. 일단 내 경우를 고백해보겠다.



“나는 강박증이 심하다. 일하지 않으면 노는 것 같고, 잠시도 가만있지 못할 정도로 산만하다.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내지 못하면 죄책감이 들고 나 자신이 무가치하게 느껴진다. 부지런한 척하지만 한편으로는 놀고 게으름 피우고 싶어 한다. 때로는 군자처럼 굴다가 악당처럼 변하니 참으로 이중적이다.

또한 사람들의 시선을 붙들고 싶어 하는 히스테리도 있다. 끊임없이 사랑을 갈구하고, 한편으로는 버림받을지도 모른다는 망상에 시달리기도 한다. 실수하지 않으려는 완벽주의 기질 뒤에 열등한 면이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하는 나르시시즘도 있다. 집 밖에서는 허허 웃으며 인자한 척하다가 집에 들어오면 권위주의적으로 굴 때도 많다.”



이 정도만 하겠다. 안 그러면 다들 나를 정신병자 취급할 테니까. 반면 스스로에게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부분도 있다.

 



“나는 내가 지극히 평범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위대한 일을 수행한다고 생각한다. 이상적인 가치를 일정 부분 삶에서 구현해나가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또한 덜렁대는 듯 외향적이면서도 내적 에너지를 비축해 외로움을 견디며 홀로 사색하는 내향적 굳건함도 갖추고 있다. 폭넓고 다양한 시각과 논리적 분석력과 더불어 관점의 포용성도 갖추고 있다. 무엇보다 사람을 향한 따뜻한 인간미가 넘친다. 다양한 분야에 다양한 재능을 가지고 있으며, 다른 사람의 재능을 흡수하는 능력이 있다.”

 



내가 너무 잘난 척했나? 사실 이런 나에 대해 뽐내고 싶기도 하다. 누구나 못난 부분보다는 잘난 부분을 드러내고 싶은 것은 아닐까.

 

이처럼 인간은 어디를 봐도 각기 다른 다면체다. 따라서 한 사람의 성격을 한 마디로 규정짓는 것은 복잡한 유기체로서의 인간을 인정하지 않는 일이 될뿐더러 애초에 불가능한 도전이다.

 

아침에는 어떤 음식이 싫었다가 저녁 되면 그걸 먹고 싶어 하는 뚱딴지같은 존재, 그것이 바로 인간이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의 성격적 결함에 지치지 않고 살아가는 방법은 하나다. 아이러니하게도 주어진 문제와 환경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나아가 상대의 내면의 세계로 들어가 타인의 경험을 체험하고 그들을 이해하는 것 또한 내면의 또 다른 자기를 탐색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그런 면에서 실용 심리학서는 사람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나 역시 부분적으로는 이상이 있을 수 있다는 것, 이를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만으로도 우리는 건강한 자아를 형성할 수 있다.

변하기 위한 노력까지 더해진다면 그 가치는 더 높아지리라. 
 


- [심리학이 청춘에게 묻다] 중에서 -

 


『심리학이 청춘에게 묻다』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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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덕을 갖춘 사람, 본성을 발굴하는 데 능숙한 사람은 자신의 운명도 좌우할 수 있다.

 

첫째, 맡은 책임을 다한다. 사람을 다정하게 대하고 타인과 화목하게 지내며, 성실히 일하여 가치를 창출함으로써 타인을 위해 봉사한다. 둘째, 환경에 적응하고 만족한다. 삶의 처지를 담담하게 이해하고 운명의 변수를 겸허하게 받아들인다. 요컨대 방종하지 않고 인위적인 통제를 가하지 않을 때 도리어 자신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다. 생명은 한 방울의 물과 같고 운명은 도도히 흐르는 강물과 같으니, 그 자연스러운 흐름을 따라 내려가면 당신은 운명과 융화될 것이므로 무슨 통제가 따로 필요할까?


그런데 현실의 우리는 늘 통제에 열중한다. 시간을 통제하고 운명을 통제하려 든다. 옛 사람은 ‘장생불로’의 비법을 찾고자 열망했고, 현대인은 시간의 터널을 넘나들 수 있기를 꿈꾼다. 옛 사람은 하늘을 숭상했고, 현대인은 과학을 맹신한다. 요컨대 자신의 역량을 증명하기 위해 부, 권세, 명성 등 가능한 한 더 많은 것을 통제하고자 한다. 그러나 자연의 본질에 따르면 모든 것은 흐르고, 또 모든 것이 시간의 흐름에 의해 깨끗이 씻겨 나간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의 삶에서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가는 하나의 점이며, 실체가 흐름 속에 있을 때는 느리게 느낄 뿐이다. 신체는 쉽게 분해되고, 영혼은 소용돌이의 흐름과도 같으며, 운명의 수수께끼는 풀 수 없고, 명성은 결코 현명한 판단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한 마디로, 신체에 속한 모든 것은 오직 급류와도 같고 영혼은 환상일 뿐이니 생명은 한바탕 전쟁이다. 스쳐가는 나그네는 지나가고 나면 그 명성도 빠르게 망각의 강 속으로 사라져 잊히고 만다.”


모든 것이 흘러가기 마련이라면 당신은 무엇을 잡으려 하는가? 결국 잡는 것은 공허한 환상일 뿐이며 얻는 것은 한없는 번뇌와 실망뿐이다.
많은 사람이 다음의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두 가난뱅이처럼 허무한 존재를 오로지 갖기 위해 격렬한 경쟁을 벌인다.

 

두 가난뱅이가 함께 밤길을 걷다가 길가에서 잠시 쉬고 있을 때 한 사람이 말했다. “아, 가다가 큰돈을 줍는다면 어떻게 나눌까?”
나머지 한 사람이 말했다. “만일 자네가 돈을 줍는다면 그걸 본 사람에게도 권리가 있으니 자네는 나에게 절반을 나눠줘야지.”
처음 사람이 다시 말했다. “그건 안 되지! 줍는 사람이 임자지, 뭣 때문에 자네에게 절반을 나눠준단 말인가?”
나머지 한 사람이 화를 내며 고함쳤다. “뭐? 우리가 함께 가다가 돈을 줍는다면 당연히 각각 반씩 나누어야지 설마 자네 혼자 꿀꺽하겠다는 건가? 자네가 이렇게 재물을 탐하는 자인 줄은 몰랐군. 이래도 친구라 말할 수 있는가?” 그는 점점 흥분했다.
처음에 말한 사람도 소리치기 시작했다. “무슨 근거로 나를 욕하는 거야? 자네가 뭔데?”
두 사람은 갈수록 격렬하게 다투며 화를 내다가 결국에는 뒤엉켜 싸우기 시작했다.


이때 마침 그 곁을 지나던 사람이 이들을 말리며 말했다. “여보시오! 도대체 뭣 때문에 이렇게 싸우고들 있소?”
그중 한 명이 말했다. “마침내 다툼을 해결해줄 분이 나타나셨군. 당신이 시비를 좀 가려주시오. 우리 둘이 길을 떠나 함께 걷다가 이 놈이 돈을 주웠는데 나에게 나누어주지 않고 독식하겠다고 한다오.”
나머지 하나도 질세라 말했다. “내가 주운 돈이라면 당연히 내 것이지. 이 녀석은 뭘 근거로 절반을 요구하는 거요?”
중재에 나선 사람이 말했다. “두 사람 모두 흥분하지 말고, 먼저 주운 돈이 도대체 얼마나 되는지 말해보세요.”


다투던 두 사람은 잠시 멍하니 바라보다가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 “아직 줍지는 않았어요!”
중재하던 사람은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며 말했다. “있지도 않은 걸 가지고 그렇게 다투다니, 그럴 필요가 어디 있소?”


미래는 아마도 결코 허황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당신이 필사적으로 쟁취하려는 것이 어쩌면 이 두 가난뱅이의 줍지도 않은 돈일지도 모른다. 누가 알겠는가? 기왕 알 수 없는 것이라면 희망이 클수록 실망도 커질 것이다.


그렇다면 삶에서 추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없단 말인가? 그렇지 않다! 현재는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가치가 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은 수천 년, 아니 수만 년을 살고자 하나,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누구나 잃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다른 삶이 아니라 지금 지나가는 자신의 삶이며, 누구나 지나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다른 삶이 아니라 지금 소멸되어가는 자신의 삶이다. 그런 점에서 가장 긴 삶이거나 가장 짧은 삶이거나 결국에는 같다. 한 사람에게서 빼앗을 수 있는 것은 오직 현재뿐이다. 이것이 참이라면, 즉 사람이 오직 현재만을 소유한다면, 소유하지 않은 것은 잃을 수도 없다.”


현재는 당신이 진정으로 소유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며, 따라서 현재를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현재를 소중히 여겨 생명을 한 떨기 꽃처럼 찬란하게 피어나도록 하고, 이슬방울처럼 다른 생명을 영롱하게 적실 줄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현재를 소중히 여길 수 있을까?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이렇게 말했다. “목적 없는 일을 행하지 말고, 허위와 위선을 멀리하며, 남이 어떤 일을 행함에 간섭하려 들지 말라. 또한 그에게 일어난 모든 일과 그에게 분배된 모든 것에 관해 그것이 무엇이든 그 자신으로부터 비롯된 것임을 받아들여라. 마지막으로 기쁜 마음으로 죽음을 기다리며 죽음이 별다른 것이 아님을 인식하라. 이는 모든 생물을 이루는 원소의 분해일 뿐이다.”
또 이렇게 말했다. “미래의 일로 괴로워하지 말라. 만일 그것이 필연적으로 일어날 일이라면, 지금 눈앞의 일을 처리하는 바로 그 이성으로 미래의 일을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


그렇다. 과거는 마음대로 바꿀 수 없으며, 미래는 예측할 수 없다. 그러나 현재를 잘 활용하여 눈에 보이는 일을 행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행하며 진심을 다해 세상의 즐거움을 누리면, 삶이 주는 재료가 미미하다 할지라도 당신은 최고의 요리를 만들어낼 수 있다. 물론 덕성(德性)의 아름다움으로 당신의 인생을 아름답게 장식할 수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와 불교를 창시한 석가모니는 약속이나 한 듯 관점이 일치한다.


어느 날 누가 석가모니에게 물었다. “성자시여, 당신은 숲속의 초라한 초가집에 살며 하루에 한 끼만 먹고 지내면서도 어째서 이렇게 기뻐합니까?”
석가모니가 대답했다. “과거를 슬퍼하지 않고 미래를 욕심내지 않으며 마음을 지금에 매어두니 이처럼 편안합니다.”


그렇다. 석가모니가 세상에 있을 당시 승려가 누릴 수 있는 물질은 극히 빈약하여 걸인과 다름없었다. 그들은 걸인처럼 지내며 하루에 한 끼만 먹고 ‘정오가 지나면 먹지 않는’ 생활을 이어갔다. 그럼에도 그들의 마음에는 늘 온화한 기쁨이 넘쳤으니, 제왕과 장상이라 한들 이러한 기쁨을 누릴 수 있을까? 그 기쁨의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그들은 마음을 지금에 매어두고 눈앞의 모든 것을 즐겼고 심지어는 그들의 번뇌와 아픔까지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이렇게 오직 ‘마음을 지금에 매어두는 자세’야말로 삶의 진정한 맛을 알고 삶의 참뜻을 살리는 길이다. 

 
- [왼손에는 명상록, 오른손에는 도덕경을 들어라] 중에서 -








 

 

 

 

 

독자리뷰 : 지하철에서 보는 자기계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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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어록
미래의 일로 괴로워하지 말라.


만일 그것이 필연적으로 일어날 일이라면, 지금 눈앞의 일을 처리하는 바로 그 이성으로 미래의 일을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

 

한 농부가 이른 새벽 읍내를 향해 집을 나섰다. 라일락꽃이 활짝 핀 수풀 옆을 걷던 농부가 멈춰 서서 오른손에 들었던 쌀자루를 왼손으로 옮겨 들고 먼지를 털어내려는 순간, 크고 영롱한 이슬방울이 그의 손바닥에 똑 떨어졌다.


농부는 잠시 바라보다가 손바닥을 입가에 가져다대고 이슬방울에게 말했다. “내가 뭘 하려는지 알겠니?”
“당신은 나를 삼키려고 하는군요.” 이슬방울이 말했다.
“보아하니 너는 나보다 더 가엾은 신세로구나. 목숨이 남의 손에 달렸으니 말이야.”
“틀렸어요! 나는 가엾다는 게 뭔지 몰라요. 나는 이전에는 커다란 라일락 꽃봉오리 한 송이를 적셨고, 그 덕에 꽃이 아름답게 피어났죠. 이제 또 다른 생명의 갈증을 달래줄 수 있을 테니 나에겐 가장 큰 기쁨이고 행복이에요. 아무런 후회도 없답니다.”

 

농부는 한동안 가만히 이슬방울을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생명의 의미는 어디에 있는가? 인생이 본질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는 인류가 수천 년에 걸쳐 묻고 고민해온 문제다.
이슬방울의 말 속에서 이 문제의 해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농부는 자신의 세계관에 비추어 문제를 보고 자신의 운명을 어쩌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를 가엾게 여긴 한편, 작고 약한 생명을 장악할 수 있다는 사실에 득의양양했다. 그러나 우리 중 누구의 운명이 과연 이 농부보다 나을까? 고귀한 황족이든 비천한 개미든 누구라도 자신의 운명을 절대적으로 좌우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누구든 자연 법칙의 지배를 받아 나이가 들면 늙고, 죽을 때가 되면 눈을 감는다.

 

그러나 모든 생명은 또 다른 것들을 통제할 수도 있다. 생명의 사이에는 양적인 차이만 존재할 뿐 질적인 차이는 없다. 만일 생명의 의미를 성공과 행복을 추구하는 데 두고, 성공과 행복의 지표를 더 많은 것을 통제하는 것으로 삼는다면, 당신은 틀림없이 실망하게 될 것이다. 언젠가 자신은 아무것도 통제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토록 작고 약한 이슬방울이 자신의 운명을 통제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반듯한 삶의 자세에 있다. 이슬방울이 운명을 통제하는 방법은 통제하지 않고 천성과 처지에 운명을 맡긴 채 삶을 자유롭게 누리는 것이었다. 그가 아름다운 꽃을 적신 것은 희생을 위해서도, 요구를 받아서도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이 잘할 수 있고 또 좋아하는 일이었다. 그가 농부의 입에 곧 들어가게 될 것은 행운도, 불행도 아니었다. 그것은 원래 이슬방울이 해야 할 일이고 늘 일어나는 일상의 한 부분이었다.

 

이슬방울이 보여준 삶의 태도는 바로 스토아학파가 내세우는 ‘자연을 따르는 삶’이며 마르크스 아우렐리우스가 《명상록》에서 거듭 강조한 ‘본성에 따른 삶’이기도 하다. 
  


- [왼손에는 명상록, 오른손에는 도덕경을 들어라]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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