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말한다.
"전, 딸이 런던올림픽에서 메달을 따는 걸 목표로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냥 연습한 대로, 주어진 시간 안에 자신이 갖고 있는 모든 걸 보여주고 내려온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을 것 같아요"
조용히 엄마의 얘기를 듣고 있는 딸이 말한다.
"런던 올림픽이 내 인생의 끝이 아니거든요. 올림픽이 끝나면 그 다음 세계선수권대회가 기다리고 있어요. 올림픽에서 메달을 못 따도 그 다음 무대가 있기 때문에 전 실망하지 않을 겁니다. 단, 최선의 노력을 다해서 후회 없는 시간을 만들고 싶어요"
런던올림픽을 앞두고 엄마와 마주선 '체조 요정' 손연재. 그녀에게 엄마는 단순히 그녀를 뒷바라지 해주는 가족을 넘어 가장 의지할 수 있는 친구이기도 하다. |
‘리듬체조의 요정’, ‘한국 리듬체조의 간판’, ‘국민여동생’으로 불리며 대중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있는 손연재(18․세종고)와 어머니 윤현숙 씨는 인터뷰 내내 서로에게 향하는 따뜻한 시선을 거두지 못했다. 마치 달달한 연애를 하는 사람마냥 인터뷰에 대한 답변을 내놓으면서도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고선 빵 하고 웃음을 터트리는 일이 잦았다. 손연재가 러시아에서 훈련을 시작한 이후부터 함께 있는 시간보다 떨어져 지내는 시간이 많다 보니 한국에서 두 모녀가 만날 때면 잠시도 떨어져 있지 않으려고 한단다.
그동안 기자가 봐왔던 어머니 윤 씨는 손연재의 ‘그림자’나 마찬가지였다. 각종 대회나 기자회견, 인터뷰가 있는 장소, 그리고 CF 촬영지에서도 윤 씨는 절대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다. 기자들이 다가가 이런저런 궁금증을 드러낼라치면 몇 마디 하다가도 “나는 잘 몰라요”하며 이내 자신을 숨기려 애쓴다. 분명 손연재의 엄마이긴 하지만, 자신은 일반인이기 때문에 매스컴에 노출되는 게 부자연스럽다는 설명으로 미안함을 대신하곤 했었다.
묵묵히 딸을 응원하는 엄마와 그 응원의 힘을 받아 온전히 꿈을 향해 달려가는 손연재 선수. 엄마는 딸이 자랑스럽고, 딸은 그런 엄마가 고맙기만 하다. |
2012 런던올림픽을 두 달 여 앞두고 손연재와 어머니가 카메라 앞에 섰다. 한국에서 대부분의 일상이 대중들에게 노출되다시피한 딸과는 달리 여전히 카메라 울렁증이 있는 엄마는 인터뷰와 사진 촬영에 대해 한가득 부담을 드러냈지만, 딸의 노련한(?) 리드로 재미있는 촬영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사진 촬영 전 두 모녀의 아름다운 동행을 들여다봤다.
엄마가, 그리고 딸이
엄마 : 저한테 연재는 딸이면서 친구 같은 존재예요. 같이 지냈을 때는 그런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했는데, 연재가 러시아로 훈련을 떠나면서 제 품을 벗어나니까 제가 연재한테 많은 걸 의지하고 살았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연재한테 미안함과 고마움이 반반씩 있는 것 같아요.
취미로 시작한 리듬체조가 지금은 떼려야 뗄 수 없는 분신과도 같은 존재가 되는 과정에서 수많은 어려움이 발생했지만, 단 한 번도 체조를 그만두겠다는 얘기를 하지 않았거든요. 언니도 동생도 없이 자랐는데 속이 깊고 인내심이 대단한 딸입니다.
연재 : 엄마요? 하하, 저한테 훌륭한 유전자를 물려주신 두 분 중 한 분이시죠. 체조를 시작하면서부터 엄마와 전 바늘과 실처럼 움직였어요. 제가 있는 곳에 항상 엄마가 계셨으니까요. 제가 엄마한테 좋은 선물을 해드린 게 없는데 2010광저우아시안게임 때 엄마 생일이었거든요. 그때 생일 선물 대신 아시안게임 메달을 목에 걸어드리겠고 약속했는데, 실제로 이뤄진 거예요. 그 메달은 엄마의 생일 선물이라 영원히 잊지 못할 메달이 될 것 같아요.
체조를 시작하다
엄마 : 연재가 여섯 살 때 집 건너편, 세종대 쪽에 걸려있는 플래카드가 눈에 띄었어요. 리듬체조 꿈나무들을 모집한다는 내용이었는데, 이상하게 그 플래카드가 머릿속에서 지워지질 않더라고요. 결국 뛰어 놀 공간이 부족한 연재에게 운동을 시킬 마음으로 그곳에 등록을 시켰던 게 지금의 손연재가 있는 배경이 됐습니다. 연재 또래 애들이 많아서 연재도 신나했고, 저도 또래 엄마들 만나서 수다 떠는 재미에 꾸준히 체조반에 다니게 했던 것 같아요.
연재 : 솔직히 전 여섯 살 때의 일이 잘 기억나지 않아요. 엄마 손을 잡고 갔던 곳에서 많은 친구들을 만나 재미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고, 그러다 자연스레 체조를 접할 수 있었죠. 엄마 말씀으로는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 체조를 계속 하고 싶다고 떼를 썼다고 하더라고요. 선생님들께서 절 많이 예뻐해 주시고 칭찬을 자주 해주셔서 체조 배우러 가는 걸 재미있어 했대요. 제 기억 속에는 무엇보다 유치원 다녀와서 엄마 손을 잡고 체육관으로 향하는 게 즐거웠어요. 엄마가 항상 제 옆에 계셨으니까요.
취미가 아닌 특기
연재 : 취미로 시작했던 리듬체조가 초등학교 입학 후부터는 본격적인 특기 종목으로 바뀌었어요. 체조 때문에 세종초등학교로 전학을 하면서 단계를 밟아가기 시작했던 거죠. 학교 수업을 마치고 오후 2시부터 밤 10시까지 저녁도 먹지 않고 연습을 했습니다. 그때는 그런 스케줄이 당연시됐어요.
하지만 유연성을 키우기 위해 하루에 3시간 이상씩 스트레칭을 했는데 너무 아프고 힘들어서 많이 울었어요. 다리 찢기 아시죠? 정말 몸이 고생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봐도 그때 독하게 훈련했던 것 같아요. 엄청난 훈련량을 그 어린 나이에 극복해냈다는 게 신기할 정도예요.
재미로 시작했던 리듬체조가 어느새 특기가 되어버렸다는 손연재. 그 특기가 어느덧 '국민 체조요정'이라는 애칭까지 그녀에게 가져다 주었다. |
엄마 : 가끔은 제 딸이 대단한 인내심의 소유자라는 걸 느낄 때가 있습니다. 아홉 살, 열 살, 얼마나 놀고 싶고 어리광부리고 싶은 나이예요. 그런데도 연재는 체조장 안에서는 나이 어린 학생이 아니었어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연습을 반복하면서 조용히 그 자리를 지켜갔습니다. 그때의 모습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 같아요. 엄마 입장에서는 딸이 하소연도 하고, 어리광도 부리고, 그랬으면 좋겠는데 연재는 절대로 내색하지 않아요. 그래서 더 안타깝고 가슴 아플 때가 있습니다.
경제적인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연재 : 지금의 제 모습만 보고 제가 굉장히 부유한 집안에서 자랐을 거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그런데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가 사업을 하시긴 했지만 운동하는 딸을 넉넉하게 뒷받침 해주실 만큼 여유롭지는 않았거든요. 엄마는 저 때문에 생계형 주부가 되셨어요. 제가 평범한 학생이었더라면 엄마가 그런 고생하지 않으셔도 되는데…. 그런 부모님의 모습을 보면서 느낀 점이 많았기 때문에 입 밖으로는 힘들다는 얘기를 꺼내지 않았어요.
엄마 : 연재 아빠나 전 딸 앞에서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있다는 걸 내색하지 않으려 했는데, 연재가 눈치가 빠르다보니 집의 속사정을 잘 알고 있더라고요. 국제대회 나갈 때마다 비용이 많이 들어가니까 연재 입장에선 더 긴장하면서 대회에 나갔어요. 돈이 많이 들어가는 대회라 더 잘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었고요.
어느날 연재가 그런 얘길 했어요. 체조가 재미있어서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성적에 대한 부담이 생긴다고요. 부모의 어려움을 알고 있는 탓에 체조를 즐기지 못하게 된 거죠. 고맙게도 그런 과정을 잘 견뎌냈고, 속 깊은 딸로 잘 자라줬습니다.
서로에 대한 고마움
연재 : 가끔은 이런 생각을 해봐요. 만약 엄마가 날 어렸을 때 체조하는 곳으로 이끌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손연재가 존재할까? 하고요. 지금까지의 전 엄마의 ‘작품’이나 마찬가지예요(웃음). 엄마 때문에 체조를 시작했고, 엄마의 가이드로 러시아까지 가서 훈련을 하게 됐으니까요.
사실 러시아에서의 훈련은 우리 집 형편으론 무리였어요. 다행히 얼굴이 알려지면서 매지니먼트사도 생기고, 스폰서로부터 후원을 받고, CF 촬영을 하며 목돈을 손에 쥔 게 큰 도움이 됐습니다. 광고 모델이 안 되었더라면 엄청난 훈련비를 충당하기 어려웠을 거예요.
엄마 : 어느 부모라도 딸의 남다른 소질을 발견하게 되면 빚을 내서라도 뒷바라지를 하려 했을 거예요. 저도 그런 부모의 한 사람이었던 셈이죠. 경제적으로 큰 부담을 느낄 때 연재가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어요. 그게 고맙기도 했지만 솔직히 안타깝고 마음 아팠던 부분이 훨씬 더 큽니다. 중간 중간에 제가 포기할 뻔 했던 적이 많아요. 연재는 점점 성장을 하고 뒷바라지해야 할 몫은 더욱 커지는 상황에서 감당이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연재한테 그만 두자는 얘기도 했었지만 그때마다 연재가 더 하고 싶다며 버텼습니다.
남들과는 다른 길을 가면서도 한 번도 속 썪인 적 없는 딸이 엄마는 마냥 대견하기만 하다. |
연재 : 이제는 제가 그만둔다고 하면 엄마가 나서서 말리세요(웃음).
엄마 : 어휴, 지금 그만둘 수는 없죠. 해온 게 아까워서라도 이젠 할 수 있는 데까지 가봐야죠(웃음).
러시아에서의 생활
엄마 : 연재랑은 잠시도 떨 어져 지내지 않았던 제가 연재를 러시아로 보낸 뒤 얼마나 힘들었을지 짐작하실 수 있겠어요? 연재의 미래를 위해 과감한 결단을 내리고 딸아이를 혼자 비행기 태워 보내는데 정말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흐르더라고요. 워낙 내색하지 않는 아이라 전화 통화할 때마다 ‘잘 지낸다’라는 말을 들어도 믿을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혼자 걱정만 하지 말고 직접 가서 보자라고 마음 먹고 러시아의 노보고르스크를 찾았습니다. 그런데 정말 잘 지내고 있었어요. 제가 걱정했던 부분들이 무안할 정도로(웃음).
연재 : 저도 처음에는 걱정이 많았어요.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싶었고, 무엇보다 다리아 콘다코바, 다리아 드미트리예바, 예브게니야 카바예바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리듬체조 스타들과 한데 어울려 훈련을 받는 게 두렵고 긴장이 되더라고요. 그런데 막상 가보니까 의외로 생활하기가 편했어요. 어느 순간부터는 그곳의 생활을 즐기고 있는 저를 발견할 수 있을 정도로 재미있게 지냈습니다. 물론 엄마가 보고 싶어 혼자 울었던 적도 있지만, 그건 아주 잠깐 뿐이었어요.
엄마 : (연재를 쳐다보며) 네가 잘 지내고 있어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지만 한편으로 아주 조금 서운했다(웃음).
연재 : 엄마, 나도 내가 이럴 줄 몰랐어요. 엄마가 많이 보고 싶었지만, 그곳에서 생활하다보면 은근히 긴장감도 조성되고, 세계적인 선수들을 넘어서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잡념이 안 생겼던 것 같아요. 맨 날 우는 것보다는 낫잖아요(웃음).
동전의 양면, '유명세'
엄마 : 체조를 시키면서 연재를 유명인으로 키워야겠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요. 연재가 국제대회에서 조금씩 성적을 올리고 이름을 알리면서 덩달아 대중들의 관심이 급증해지더라고요. 사실 부모 입장에선 그런 관심과 인기가 마냥 좋지도, 행복하지도 않았습니다. 연재가 연예인이라면 몰라도 아직 학생이고 운동선수인데 아이가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지나친 관심은 오히려 독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거죠.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대중의 관심을 먹고 자라고 있는 체조요정. 이제 그 관심이 푸른 싹을 틔우려 하고 있다. |
2년 전부터 연재는 체조 외에 또 다른 상대와 싸워야 했어요. 바로 자신을 향하는 관심, 그것도 긍정적인 관심이 아닌 관심을 가장한 비난들이 어린 연재한테는 굉장한 스트레스를 주었을 거라고 봐요. 지금은 나름 노하우가 생겨서 자신이 상처받을 것 같은 부분에는 아예 눈길조차 주지 않고 있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아이가 얼마나 많이 아팠겠어요.
연재 : 물론 처음에는 저를 향한 비난들이 가슴을 콕콕 찌를 정도로 아팠어요. 체조와 관련해서 건전한 비판을 하는 내용이라면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었지만, 이상하게 체조 외적인 문제를 저의 모든 부분인 것 마냥 확대해서 비난의 강도를 높이는 사람들의 모습이 당황스러울 정도였습니다. 때마침 그런 힘든 시간에 러시아로 훈련을 떠났고, 저와 관련된 기사나 댓글은 전혀 보지 않고 지내다 보니 이젠 견딜 만 해요.
엄마 : 연재가 그런 일로 자괴감에 빠져 있을 때 엄마인 제가 해줄 수 있는 말은 한계가 있어요. 조언과 충고도 하루 이틀이지, 계속 그렇게 달랠 수만은 없잖아요. 다행이 소속사로부터 심리학 박사님인 조수경 선생님을 소개받은 덕분에 연재가 기대고 의지할 분이 생겼어요. 연재가 그 분 앞에서는 모든 걸 털어놓으면서 심리 상담을 받고 있거든요.
28점대를 기록하다
엄마 : 연재가 이번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에서 열린 월드컵시리즈에서 한국 체조 사상 처음으로 전 종목(후프, 볼, 곤봉, 리본)에서 28점대의 점수를 기록했어요. 28점대는 세계 정상급 선수가 받는 점수거든요. 이전까지만 해도 연재와 28점대는 쉽게 매치가 안 될 정도로 어마어마한 점수라고 생각했는데, 그걸 이뤄내더라고요.
연재 : 저도 그 점수는 동유럽 선수들만이 해내는 ‘그들만의 점수’라고 생각했어요. 솔직히 믿기지 않을 정도였죠. 하지만 그 점수를 받았다고 해서 굉장히 기쁘거나 즐겁지는 않았습니다. 그냥 멍 했다고 해야 하나? 아무 느낌 없이 멘붕 상태였던 것 같아요. 사실 연기를 끝내고 나면 대충 제 성적을 알 수 있어요. 제가 준비했던 연기를 제대로 다 펼쳐 보인 후라면 점수에 자신감을 갖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참담한 심경이 되죠. 지난해 세계선수권대회 마지막 종목을 끝낸 뒤 ‘아, 올림픽 가겠구나’라고 생각했듯이 광저우아시안게임이나 월드컵시리즈에서도 좋은 연기를 펼친 뒤에는 항상 만족할 만한 성적이 나왔기 때문에 성적에 대해선 누구보다 제 자신이 잘 알고 있어요.
'리본 사건'이 준 교훈
연재 : 타슈켄트 월드컵 대회 리본 결선에서 리본 줄이 끊어지는 황당한 일을 겪었을 때 순간적으로 많이 당황했어요. 전혀 예상치 못한 돌발 상황이었으니까요. 음악은 계속 흐르고 리본은 끊어졌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허둥대고 있다가 아제르바이잔의 알리아 가라예바 선수가 리본을 빌려줘 끝까지 연기를 마쳤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너무 놀란 나머지 순간 아무 생각이 없었어요. 관중들은 계속 지켜보고 있었고, 음악도 나오는 상황에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 움직이긴 했지만 그때 제정신이 아니었습니다. 본능적으로 연기한 거예요. 음악에 따라.
엄마 : 나중에 얘기를 듣고 동영상으로 그 장면을 봤는데,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연기를 했더라고요. 그러나 전 연재가 어떤 마음으로 연기했을지 잘 알고 있어요. 한 마디로 울고 싶었을 겁니다. 좋은 성적을 내고 있는 상황에서 리본으로 깔끔한 마무리를 하려 했다가 시작도 못 해보고 주저앉는 상황이 납득하기 어려웠을 거예요.
주위에선 우리가 상심할까봐 이런저런 위로를 건네주셨는데, 오히려 전 아무렇지 않았어요. 그 대회 끝나고 연재한테 전화가 왔을 때도 한국 들어오기 전에 안 좋은 감정, 생각들, 그곳에 모두 내려놓고 나오라고 했어요.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좋은 경험이잖아요. 올림픽 무대도 아니고. 연재가 이번 일로 느낀 게 많았을 거예요.
엄마 : 그런데 연재야, 너와 비슷한 경험을 한 선수가 이전에도 있었니?
연재 : 거의 일어나지 않는 일이지만 몇 번은 있었던 것 같아요. 안나 베소노바 선수도 리본이 끊어졌는데, 그때는 던져주는 사람도 없어 음악 나오는 내내 손만 흔들며 인사하고 나온 적이 있었어요. 지난 해에도 이스라엘 선수가 리본이 끊어지는 바람에 콘다코바 선수가 뛰어가서 던져준 일도 있었고요. 만약 이번 일이 종합대회에서 벌어졌다면 심각했을 거예요. 다행이 종목별 결승이라 리본 하나만 0점 처리된 탓에 애써 위로를 삼았죠(웃음).
런던올림픽을 향한 마음
엄마 : 초등학교 시절 선생님이 연재한테 꿈을 얘기해보라고 하자, 올림픽 무대에 오르는 게 꿈이라고 말한 기억이 나요. 그때는 연재 얘기를 들으면서도 우리와는 상관없는 ‘남의 일’로만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연재가 자신의 소원대로 올림픽에 나가게 돼 있더라고요. 지난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연재가 올림픽 출전 티켓을 거머쥐었을 때, 그동안 연재와 함께 보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습니다. 아, 꿈을 갖고 있으면,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다보면, 정말 이뤄질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연재 : 막상 올림픽이 카운트다운에 돌입하고 나니까 조금씩 긴장이 되는 것도 사실이에요. 어렸을 때 막연하게 생각했던 무대가 눈 앞에 펼쳐진다는 마음에 설렘과 흥분도 공존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메달 색깔보다 치열한 예선전을 거쳐 결선에 오르는 게 가장 큰 목표예요. 10위 안에 들어 결선에 진출하게 된다면 아낌없이 모든 걸 쏟아 붓고 무대를 내려오고 싶어요. 그런데 제 체조인생은 런던이 끝이 아닌 시작입니다. 올림픽을 기점으로 본격적인 스타트를 하는 것이죠.
런던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 말하는 손연재. 그녀의 상상보다 훨씬 많은 이들이 '손연재의 꿈'을 응원하고 있다. |
엄마 : 맞아요. 연재랑 자주 얘기하던 내용이에요. 올림픽이 끝이 아닌 시작이라고. 올림픽 이후에는 세계선수권대회도 있고 그 후에는 인천아시안게임 등 주요 국제대회가 줄줄이 이어집니다. 설령 올림픽에서 만족할 만한 성적이 나오지 않는다고 해도 실망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이제 시작이기 때문에. 다행스러운 부분은 연재가 대회에 나갈 때마다 성장한다는 사실입니다.
연재 : 엄마, 나 못할 때도 많았어요. 엄마라서 날 그렇게 보는 거야.
엄마 : 지난 세계선수권대회 때도 잘했지만 이번 유럽 월드컵시리즈에서 더 좋은 모습 보였잖아. 그렇게 단계를 밟아 가는 모습이 좋아(웃음).
P&G 땡큐맘 동영상
id=sportsVideoiframe height=342 marginHeight=0 src="http://sports.news.naver.com/videoCenter/video.nhn?&id=23260&autoPlay=&width=544&height=342&ptype=http" frameBorder=0 width=544 allowTransparency marginWidth=0 scrolling=no _cssquery_UID="41">
엄마 : 어휴, 처음에 전 그 동영상이 올라왔을 때 보지도 못했어요. 연재가 나오는 건 자연스러운데 제 얼굴이 화면으로 비추니까 너무 낯설고 창피하고 손이 오글거리더라고요. 그래서 연재한테 보고 나서 얘기해달라고 말했었죠.
연재 : 저도 제 기사는 잘 안보는 편인데, 이번 촬영은 일부러 찾아봤어요. 운동하면서 처음으로 엄마랑 함께 촬영한 동영상이고 내용도 그동안 엄마한테 표현하지 못했던 고마움을 담은 탓에 개인적으로 오래 소장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요. 엄마는 자신을 챙기는 대신 저에게 예쁜 옷을 입히고 꾸며주는 걸 좋아하시거든요. 그랬던 엄마가 전문가의 도움으로 메이크업을 받고 머리를 손질한 후 촬영을 하니까 제가 더 기분이 좋더라고요. 우리 엄마도 예쁘구나 하는 생각에^^.
그때 엄마의 모습을 휴대폰으로 찍어둔 후 제 카톡의 대문 사진으로 올려놨더니 친구들 반응이 뜨거웠어요. ‘연재 엄마 짱’ ‘최고 미인 엄마’라고요(웃음).
그리고 서로에게 전하는 한 마디
서로의 손을 꼭 마주잡은 두 사람. 올림픽을 향한 후회없는 도전, 지금부터 시작이다! |
연재 : 제가 운동을 시작하면서 엄마의 인생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엄마도 친구들을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싶고, 집안 경조사에 참석해서 인사를 드려야 하는 일도 존재했을 겁니다. 심신이 지치고 힘드실 땐 찜질방 가서 푹 쉬시거나 아무 생각없이 훌쩍 여행을 떠나고 싶으셨을 거예요. 그러나 그 모든 일상을 뒤로 하고 ‘연재 엄마’로 살아가시기에 바빴어요. 제 그림자가 돼 주셨으니까요.
올림픽이 끝나면 더 이상 ‘연재 엄마’로 살지 마시고 윤현숙, 엄마의 인생을 사셨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제가 덜 미안하고 더욱 고마운 마음을 갖게 될 것 같아요. 엄마의 헌신과 희생을 너무 잘 알기 때문에 지쳐 쓰러질 것만 같은 상황에서도 다시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엄마에게 한없는 감사함을 가집니다.
엄마 땡큐^^
엄마 : 연재는 제 가이드 덕분에 지금의 자리에까지 오게 됐다고 하지만, 진심으로 전 딸의 위로를 받으며 옆을 지키고 있었어요. 더없이 착한 딸이거든요. 엄마의 바람은 연재가 스트레스 덜 받고 즐기면서 운동 생활을 영위했으면 좋겠어요. 특히 두 달 뒤에 벌어지는 올림픽에서는 온갖 수식어 다 떼고 손연재로서만 보여지길 바랍니다. 이제 시작이니까, 마음껏 즐길 때도 된 거 아닌가요? 연재야, 인생의 가치는 메달이 아닌 제대로 된 행복을 느끼는 것이라는 사실, 잘 알고 있지? 엄마는 네가 행복할 때 가장 행복해. 우리 연재 파이팅!^^
▶영상 : 리듬체조 꿈나무들 '연재 언니 궁금해요'
→손연재가 후배들과 은사 박영주 선생님께 전하는 메시지
id=sportsVideoiframe height=342 marginHeight=0 src="http://sports.news.naver.com/videoCenter/video.nhn?&id=24950&autoPlay=&width=544&height=342&ptype=http" frameBorder=0 width=544 allowTransparency marginWidth=0 scrolling=no _cssquery_UID="42">
♥ 포토 : '러블리' 요정 손연재 보너스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