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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이 일어났고. 전국적으로 감지됐다.
그런데,
순간, 이 <지진>이라는 것이 무엇을 상징할까?
<지진>의 메타포는 무엇일까?
<지진>의 역기능만 말고 순기능이 존재할까?
라는 의문이 살아났다.
일례로,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라는 고전이 있다.
아직 나는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속 내용이 아주 닮았고 비슷할 것이라는 섣부른 추측을 해본다.
뭐. 겨우 <지진>이 일어난 것은
<지진>일 뿐이지 뭘 그 따위(?)를 가지고 깊이 고민하고 앉아있느냐고 (팔자 좋네?라고) 항변할 것 같은데,
이상하게 이건 본능적인 직감 내지는 육감인데 하늘에서 내려주는(던지는) <화두> 같은 느낌이 짙다.
수수께끼 같고 풀리지 않는 숙제 일수록 더 호기심이 발동하고 포기하고 싶지 않은 모험심이 발동한다.
어린이가 질문이 많고 호기심이 왕성한 것 처럼 말이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그의 에세이에서 이런 충고를 남겼다. "질문이나 화두가 생성되면은 그걸 이리저리 풀려고도 노력해봐라. 풀리지 않는 질문이나 화두라고 성급하게 결론은 내리지 말고 천천히 주시하고 뇌에다가 가만히 한켠에 저장소를 마련해서 저장해라 그리고 그걸 가끔 뇌에다가 분류해두었다가 생각이 나면 또 가만히 관찰하고 답을 풀려고 노력해보고 안 되면 가만히 또 뇌의 저장소에 분류에 두어라.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지 않는 것이 핵심이다. 가끔 생각날 때 꺼내어 보고 풀려고 노력해보았다가 안 되면 다시 뇌의 분류 저장소에 저장 시켜놓고 생각날 때마다 꺼내어 들여다 보면 된다. 그리고 어느날 정답이나 해답이 해석이 별안간 날벼락 처럼 나타나는 순간(날)이 찾아 올 것이다. " (=대충 제 기억을 더듬어서 장황하게 풀어 적었군요. 근데 대충 얼개는 같습니다. 대충 내용은 비슷합니다.)
아무튼, 값진 <화두> 하나만 생성되었다. 나의 뇌 저장소에 고이 간직해서 틈 날때마다 꺼내어 풀어나가겠다.
당신이 현재 붙잡고 있는 <화두>는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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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수첩. 작업 중이다.
오늘에서야 꿈 목록이 서른 개가 넘었다.
오늘 분명히 늘었는데, 꿈 목록이 구체적으로 늘어가고 생기면 생길수록 이상하게도 설레이는 느낌이 부쩍 늘어났다는 점이다. 일단은 대략적인 뿌리 줄기 몸통만 잡아나가고 있다. 구체적인 뻗어나가는 가지들은 천천히 생각해나갈 예정이다. 처음에는 겨우 가짓수가 이것밖에 안 되나? 하는 자괴감에 빠졌었지만 산책하는 내내 이동하는 내내 가열차게 꿈.에 대해서 진지하게 묻고 질문하고 고뇌하니 몰입하니 저절로 하나 둘 샘물이 쏟아지듯 아이디어 샘솟고 있다. 역시나 조용하게 한 곳에 정신을 올인해서 몰입하면 할수록 해답이나 돌파구가 펼쳐진다. 길이 열린다. 장막이 걷어진다. 짙은 안개가 걷히는 순간, 그 찰나의 순간이 자신이 한 단계 두 단계 몇 단계 성장하고 발전하는 한마디로 진화하는 희열을 맛본다.
아무튼 꿈 수첩, 작업이 나를 하루하루 설레이게 만들고 힘과 에너지를 고양시키고 있는 요즘이다.
덧_커다란 깨달음을 지적하자면 스스로가 너무 <시간>을 낭비하고 소모해버렸다는 뼈아픈 교훈을 얻었다.
<시간>이 너무 소중하다는 진리를 몸소 몸으로 체득하고 있다. 버려지는 시간들이 보이고 뒤돌아서 내가 생산적으로 해야하고 마감해야 하는 과업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아주 반갑게 환영할 일이다. 아무튼 요즈음은 너무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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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간호사 누나들은 왜 이다지도 다 이쁜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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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은 이라는 단어를 자제하자.
나의 표현과 인식의 정도가 <우라들>을 기본적으로 우매하고 어리석다는 인식이 저변에 깔려있다.
허나,
<우리들>은 모두 개개인마다 이미 완벽하다.
<우리들>은 모두 개개인이 완벽한 꽃이요. 나무고. 바다다. 산이다.
나도 가끔 산책을 하다가 스쳐지나가는 사람(인간)들을 관찰하는 버릇이 있는데 그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가슴이 뛴다. 설레이는 감정이 샘솟는다. 저 이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저 이는 지금 무슨 고민에 빠져있을까. 저 이의 꿈은 무엇일까. 한 두번도 아니고 이런 편린들이 스쳐지나간다. 나는 산이나 바다 같은 만천하의 자연 사물과 정경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대신에 그곳을 무심히 스쳐지나가는 사람. 바로 인간에 더 관심이 많다. 버릇이다. 습관이다. 나는 맞은편에서 천천히 나를 향해 걸어오는 행인들을 유심히 때론 무심히 관찰하는 버릇이 있다. 맨 먼저 눈을 주시하고 그다음 행색을 재빨리 스캔하고 그다음 그들의 내면을 빛의 속도로 탐색하길 좋아한다.
이 버릇 아닌 버릇이 어떤 행동인지 숨은 의도는 아직 제대로 파악하지 못 했다. 아마도 대략 추측건대, 내가 글을 쓰는 놈으로 글쟁이로 먹고 살아야 할 운명이 아닌가.하는 나름대로의 운명론을 씁쓸하게 예상할 따름이다.
결론은, <우리들>를 더 관찰하고 싶다. 깊이 깊이 그들 속으로 나를 투영하고 싶다. 그래서 그들의 보물상자에서 진리와 진실을 하나 둘 캐내고 싶다. 분명 아직 (글로써) 쓰여지지 않고 밝혀지지 않은 혹은 발견되지 않은 진리와 진실의 말씀이 분명 존재할 터이다. 아직도 무수히 많은 값진 보물들이 발견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가 너고 너가 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