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셀 서양철학사 (양장)
버트런드 러셀 지음, 서상복 옮김 / 을유문화사 / 200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나도 서평을 쓰고 싶다. 석 달에 한 번이라도 꼭 좋은 책, 나쁜 책, 이상한 책, 그러니까 놈놈놈을 써 보려고 생각했던 적도 있다. 그러지 못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지지 않으면 쓰질 못한다. 게다가 요즘은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태를 아예 거부하고 있으니......


그런 못된 습관이 대학시절에 시작되었다. 당시에는 지지리도 가난해서 쌀 한 톨, 연탄 한 장이 없어서 굶거나 냉방에서 살았다. 우연한 기회에 현상금이 걸린 논문을 쓰고 상금을 받았다. 


그때부터 글로 먹고 살았다. 글로 먹고 살다 보니 직업이 되고 직업이 되고 보니 놀 때는 하지 않는 일이 되었다. 다들 그러지 않는가? 주방장이 직업인 사람은 집에서 음식 만드는 일을 잘 안 하는 것으로 안다. 


그래도 가끔 외압이 있으면 쓴다. 2014년이었을 것이다. 지금도 내가 매우 좋아하는 책 가운데 하나인 ≪책의 탄생≫(돌베개)이 출간되었을 때다. 경향신문사에서 급하게 서평자를 찾았던 모양이다. 780쪽이나 되는 책이지만 신문의 속성상 시간을 많이 줄 수가 없다. 나는 사흘 만에 읽고 서평을 썼다. 


서평에 대한 평가는 좋았다. ^_^ 그 서평 뒤에 연재를 시작했으니. 환경책큰잔치에서 책소개를 위해 썼다. 사실 이런 종류의 글은 서평이라기보다는 리뷰라고 해야 맞다.



두 번째 이유는 내가 책을 읽는 방식 때문일 것이다. 나는 매우 실용적인 독서를 한다. 에이, 말도 안 돼. 이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특히 내 제자와 친구들은. 그런데 사실 그렇다. 공부에 도움이 안 되는 책은 재미가 없어서 읽어내질 못한다. 


예를 들어 보라면 ≪러셀 서양철학사≫나, 피케티의 ≪21세기 자본≫ 또는 히친스의 ≪논쟁≫이나 ≪신은 위대하지 않다≫ 같은 책이다. 이런 종류의 책은 깊은 사색의 결과를 바탕으로 의미있는 질문을 던진다. 


나는 기본적으로 책에 담긴 지식에는 별 관심이 없다. 지식은 생각보다 자주 변하는 것이어서 깊이 새길 만한 것이 못된다. 또는 백과사전을 뒤지면 쉽게 구할 수 있는 것들이다. 지식은 어떤 상황에 대한 질문과 판단을 위한 ‘일시적인’ 참고 자료이다. 


좋은 책은 좋은 질문을 담고 있다. 지금 이 시점에서 왜 그런 질문을 할 필요가 있으며, 그 질문에 대한 하나의 답을 찾아내는 과정을 보여준다. 공감이 가기도 하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러니 본문을 죽죽 읽어가질 못한다. 


읽다가 생각하면서 하루를 보내기도 하고, 다른 책에서 다른 의견을 찾아 참고하기도 한다. 한 권을 다 읽는 데 적어도 한 달은 걸린다. 수십 권의 다른 책과 인터넷 검색, 논문을 참조한다. 


세 번째 이유는 내 상황 때문이다. 책에 따라 다르겠지만 서평을 제대로 쓴다면 적어도 200자 원고지 매수로 삼십 매에서 오십 매 정도는 써야 한다. 현실적으로 그렇게 긴 서평이라면 내 저작물이 아니면 쓰일 데가 없다. 내가 써야 할 책이 많으니 당장은 서평집을 쓰게 되질 않는다. 


아, 물론 삼십 매에서 오십 매라는 것은 최근에 나온 대니엘 대닛의 ≪직관펌프≫ 같은 책에 해당된다. 이 책을 조금 참고해본 적이 있는데 할 말이 많았다. 바빠서 그 말을 다 못하고 있을 뿐이다. 


사실 원고지 십 매도 안 되는 서평은 정크 푸드 같은 것이다. 제대로 된 음식이라고 말할 수 없다. 언론에서 책에 대한 공간을 그 정도밖에 내줄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물론 모든 책이 다 삼십 매나 오십 매의 서평에 적당한 것은 아니다. 아주 짧아도 되는 책이라면 그 책도 정크푸드여서 그럴 것이다. 


사족 같지만 심각한 오해가 있을 듯해서 달지 않을 수 없다. 짧은 서평도 아주 멋들어지게 잘 쓴 것도 많다. 뛰어난 서평가들은 그런 솜씨를 보여준다. 나는 그들의 그런 재능이 늘 부럽다. 하느님도 무심하시지. 나에게도 그런 재능을 주시지 않고. 자주 그런 한탄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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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를 탄탄히 해줄수있는 독서법
행복은 자전거를 타고 온다 - 이반 일리히 전집 3
이반 일리히 지음, 박홍규 옮김 / 미토 / 2004년 3월
평점 :
절판


 

이반 일리히가 쓴 책 가운데 ≪행복은 자전거를 타고 온다≫가 있다. 소박한 실천지침처럼 느껴지는 예쁜 책이름이다. 그러나 책이름과 달리, 본문은 꽤 어렵다. 겨우 100쪽 남짓한 책을 몇 번이나 덮었다 폈다를 되풀이하면서 읽었다. 

이 책은 혁명적인 메시지를 다루고 있지만 무척 얇다. 겨우 100쪽 남짓한 본문에서 ‘수송에 응용된 열역학의 역사’와 ‘교통’에 관해 다루고 있다. 이 책은 현실에 물든 생각 방식을 깨뜨리는 내용을 담고 있지만 그에 걸맞는 ‘논증’ 과정을 찬찬히 보여주지는 않는다. 어쩌면 이 책은 앞에서 말한 두 가지 주제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게 해주는 실마리쯤으로 보는 것이 좋을지 모른다. 본문이 100쪽쯤 되는데 참고문헌이 16쪽이고, 옮긴이 해설이 28쪽이나 된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크지는 않지만 배꼽이 지나치게 크긴 하다.

이 책 영어판 이름은 ≪에너지와 공평함Energy and Equity≫이다. 웹스터 사전에 따르면 equity는 자연법에 따른 ‘정의正義’라는 뜻이기도 하다(justice according to natural law or right). 내용은 1970년대 후반(1975~1976) 멕시코 체르나비카의 ‘국제문화 자료센터(CIDOC)’에서 열린 세미나의 두 모임에서 있었던 토론을 이반 일리히가 요약한 것이다.

이반 일리히는 ‘에너지 위기’라는 말 자체를 비판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에너지 위기’라는 말은 ‘어떤 모순을 은폐하고 나아가 어떤 환상을 신성화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에너지란 사람이 만들어낸 ‘도구(예를 들면 모터)’를 노예처럼 써먹을 수 있는 연료를 말한다. 그 연료에는 전기나 화석연료가 다 포함된다. 이반 일리히가 하는 말은 이런 것이다. 에너지 위기라는 말은 에너지가 꼭 필요한 것일 때 위기라는 말도 설득력이 있다. 자동차가 꼭 필요하다는 전제가 있어야, 휘발유가 모자랄지 모른다는 것이 걱정거리가 된다. 자동차가 꼭 필요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휘발유가 있든 없든 상관이 없다. 에너지 위기라는 말은 이처럼, 자동차가 필요하지 않은데 꼭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하게 만들고는, 휘발유가 없어 걱정이라고 하는 말과 같다. 자동차를 덜 쓰거나 쓰지 않을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든다면 위기도 없다. 여기까지는 오늘날 사람들에게 생뚱맞기까지 할지 모른다. 자동차 없는 세상을 생각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어지는 논리가 그런 진부한 생각을 확 깨게 해준다.

더글라스 러미스가 쓴 책,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을 보면, 선진제국들이 전세계에 새로운 종교처럼 전파한 경제성장 이데올로기는 거짓놀음이다. 그 논리는 간단하다. 이 세상에 있는 재물은 무한하지가 않다. 서양 사람들이 잘 쓰는 비유로, 그것이 파이라고 하면 크기는 정해져 있다. 누군가가 부자가 되어 좀더 많은 파이를 차지하면, 누군가는 적은 파이를 차지하거나 파이를 조금도 가지지 못하게 된다. 모든 사람이 부자가 될 수는 없다는 말이다. 그것은 지금 가난한 나라가 ‘열심히만 하면’ 다 부자 나라가 된다는 말도 거짓임을 말해준다.

수송수단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모든 사람들이 시속 200킬로미터로 달릴 수 없다. 우리는 벌써 그것을 몸으로 느끼며 살고 있다. 지구에서 살고 있는 보통사람들은 이미 ‘기어 다니는 자동차’를 타고 다니며 지겨워 죽을 지경이다. 값비싼 자동차들은 어마어마한 화석연료를 써대면서 ‘결국’엔 자전거보다 못한 속도를 내고 있다. 도로를 닦은 데 든 돈과 도로를 유지하고 관리하는 데 드는 돈, 자동차를 몰고 다니기 위해 드는 온갖 비용을 다 계산한다면 자동차는 자전거보다 빠르지 않을 뿐 아니라 효율적이지도 않다.

자전거가 훨씬 더 효율적이라는 것은 미국과 베트남 전쟁에서 드러났다. 자전거 문화가 자동차 문화와 싸워 이겼다는 것이다. 이반 일리히는 이렇게 말한다.

‘베트남에서는 과잉산업화로 무장된 군대가, 자전거의 속도를 중심으로 조직된 민족을 정복하고자 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그 교훈은 아래에서 보는 바와 같이 명백하다. 에너지 고소비의 군대는 모든 민중을 파멸시킬 수 있다. 즉 그 방위의 대상이 되는 민중도, 또 그 공격의 대상이 되는 민중도 함께 파멸시키지만, 스스로의 손으로 자기를 지키는 민중에게 군대의 위력이란 매우 제한적인 것이다. 베트남인이 전쟁에서 배운 것을 평화의 경제에도 적용할 것인가 아닌가, 그들에게 승리를 초래한 가치를 적극적으로 지키고자 할 것인가 아닌가는 아직 알 수가 없다.’

이반 일리히에 따르면, ‘에너지 위기’를 해결하는 방법은 또다른 새로운 에너지를 개발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다함께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시스템으로 바뀌어야 한다. 운송 시스템에서는 자연스럽고 인간적인, 그래서 효율적이며 참으로 지속 가능한, 자전거와 같은 ‘자율적인 이동도구’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 아무리 새로운 것(에너지)이라고 해도, 발견하거나 발명하는 것은 지구의 내장을 꺼내 쓰는 일이다. 지구는 무한정 주는, ‘아낌없는 주는 나무’가 될 수 없다. 그러고 보면 생각보다 단순하고 쉬운 논리다. 에너지도 많이 쓰면 결국 없어지는 것이고, 모두가 부자가 될 수도 없는 것처럼, 모두가 무한 속도를 누릴 수는 없다. 우리에게 적당한 속도는 지구가 순환하면서 감당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속도다. 행복이 자전거를 타고 오는 것이 아니라 생존 가능성이 자전거를 타고 온다.

이반 일리히 책을 덮으면서 안타까운 것은 현실적인 실천방법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책 이름에 드러나듯이 자동차를 버리고 자전거를 타는 것도 작은 실천방법이 될지 모른다. 그러나 잘 읽어 보면 그렇게 간단하고 소박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그가 쓴 또 다른 책들, ≪학교 없는 사회≫나 ≪성장을 멈춰라≫에서 다루는 혁명적인 이야기와 같은 맥락 속에 있다.

문제가 무엇인지 아는(또는 생각해보는) 것이 해결책을 마련하는 시작이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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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외우는 시 한 편
상징 이야기 - 진귀한 그림, 사진과 함께 보는 상징의 재발견
잭 트레시더 지음, 김병화 옮김 / 도솔 / 2007년 7월
평점 :
품절


 

유명 미술사가이며 상징 관련 전문 저자인 잭 트레시더가 쓴 책이다(아마존에서 찾아보면, 이 저자는 상징, 큰사전을 비롯해 상징 관련 책을 여럿 썼다). 본격적으로 상징을 다룬 책으로는 거의 10년 만이다. 이 책은 모두 7개 장과 보너스처럼 상징체계를 붙여놓음으로써 거의 모든 상징물을 다 다루고 있다. 이 책이 상징을 다룬 다른 책들과 구별되는 것은 저자가 세계 구석구석에서 찾아낸 진귀한 그림이 많다는 것뿐만 아니라, 일반인이라고 해도 누구나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도록 쓰여졌다는 점이다.

이것 말고 상징을 본격적으로 다룬 책은, 90년대에 나온, ≪상징의 비밀≫과 ≪세계문화상징사전≫이 있다. ≪상징의 비밀≫은 칼 융 등이 쓴 책, ≪인간과 상징≫과 더불어 융의 심리학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상징 이야기≫ 맨 앞쪽에 따온 말에서 보듯이 융은, 상징이나 원형元型이 인류의 심리에 깊이 뿌리박고 있어서 그것에 본능적으로 반응한다고 말한다. 그만큼 융은 상징을 보편언어로 생각하고 자신의 신화적인 심리학에 적용했다. 그러나 융의 심리학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면 어려워진다. 보통사람들이 상징물을 보고 느끼는 직관적인 해석이 아니라 그 밑바닥에 흐르는 ‘심리’를 캐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징의 비밀≫은 어느 정도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상징 이야기≫는 다르다. 차례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우리 둘레에서 우리 삶 속에 녹아 있는 상징물들을 하나하나 들추며 시대에 따라, 장소에 따라 달랐던 상징의 의미를 풀어내 준다. 그러려니 당연히 신화를 들먹이고 역사를 따오지 않을 수 없다. 이야기를 통해서 상징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 이야기는 우리 둘레에서 드러난 것이니 그대로 느낄 수 있어서 쉽고 재미있다.

≪세계문화상징사전≫은 말 그대로 잘 만들어진 사전이다. 한동안 절판되어 있다가 최근에 다시 찍었다고 들었다. 그러고는 본격적으로, 거의 모든 상징물을 다룬 책으로는 처음이다. ≪상징 이야기≫에 실린 수많은 그림들이 기가 차다. 거의 모든 상징을 다루고 있다.

멋들어진 비유와 상징으로 시 한편, 글을 써내고 싶은 사람에게 ≪상징 이야기≫는 꼭 필요한 책이다. 어느 쪽에서부터 읽어도 상관없다. 관심 있는 분야, 상징물을 찾아서 읽어두면 된다. 머리맡에 두고 심심할 때 펼쳐보고 싶은 책이다. 예술작품 같은 그림들이 머리를 식혀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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