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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피크닉
온다 리쿠 지음, 권남희 옮김 / 북폴리오 / 2005년 9월
평점 :
리뷰를 쓸 때 어느 정도의 객관성을 유지하고 싶지만, 쓰고나면 역시 나의 주관이 강하구나 하는 느낌을 가지게 된다. 아마도 책을 읽는 동안의 내가 느낀 것에 바탕을 두고 리뷰가 쓰여지기 때문인 것 같다.
성장이라는 것이 고통을 넘어서면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보니 성장소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고통이라는 것이 필요악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난 고통받는 장면을 읽어나가는 것이, 특히 나의 경험을 건드리는 부분들을 읽어나가는 것이 많이 힘들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밤의 피크닉'은 개인적으로 합격점을 주고 싶다. 고통스런 부분이 없어서? 그건 아니다. 오히려 나에게 후회되는 시절인 고등학교 시절과 여러가지 나의 문제점을 정면으로 마주보게 하지만, 비참한 기분이 들지 않게 아주 따스하고 관대하게 다루기 때문이다. 그래서 편안하게 소리내어 웃기도 하면서 책을 읽어나갈 수 있었다.
아침에 학교를 출발하여 밤을 포함하여 꼬박 하루 80 킬로미터를 걸어나가는 동안 일어나는 일들을 다루고 있지만, 섬세한 심리 묘사, 여러갈래로 얽히면서 서로 조화를 이루는 스토리들로 이루어져 참 재미있었다. 이책을 읽으면서 보낸 주말은 이 책 덕분에 많이 크고 나에게 좀 더 관대해지는 시간이 되었다.
다음은 책에서 한 구절...
"지금까지의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귀찮지만 고등학교 마지막 기념행사로서 좀더 여러 가지 것들을 제대로 생각할 계획이었는데.
여러 가지 것들을 제대로.
그러나 지금은 피로가 몸의 전부를 차지해 버려서, 어떻게 종점까지 도착할까 하는 것에 온통 마음을 쏟고 있다.
뭐, 생각해 보면 매년 이랬던 것 같군. 행사 당일까지는 끝까지 걸을 수 있을까 하는 불안에 우물쭈물하지만, 막상 시작되면 눈 깜짝할 사이에 끝나고 마음에 남는 것은 기억의 웃물뿐. 끝난 후에야 겨우 여러 장면의 단편이 조금씩 기억의 정위치에 자리 잡아가며, 보행제 전체이 인상이 정해지는 것을 휠씬 나중의 일이다.
그때는 어떤 인상으로 남게 될까.
기억 속에서 나는, 니시와키 도오루는, 어떤 위치에 자리잡고 있을까. 나는 후회하고 있을까. 그리워하고 있을까. 내가 어렸구난 하고 쓴웃음 짓고 있을까. 빨리 돌아볼 수 있으면 좋겠다. 빨리 정위치에 자리 잡아주면 좋겠다. 하지만 지금 나는 아직 자신의 위치도, 자신이 어떤 조각인지도 모른다......(p.1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