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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아이
정승구 지음 / 21세기북스 / 2014년 8월
평점 :
최근 핫한 영화감독이 쓴 판타지스릴러라고 해서 더욱 흥미가 갔던 책. 처음에는 ‘이런 영화감독이 있었나?‘하며 책장을 넘겼다. 미야베미유키, 히가시노 게이고 등 일본식 미스터리 스릴러 작가들이 쓴 작품에 길들여진 탓에 다소 재미가 떨어질까 걱정도 됐다.
그러나 걱정과는 다르게 출퇴근까지 겸하며 360페이지가 넘는 책을 다 읽는 데 걸린 시간은 채 이틀이 되지 않았다. (출퇴근 지하철에서 4시간+점심시간 1시간) 완성도나 작품성을 떠나, 확실히 긴장감이 있고 결말을 끝까지 보고야 말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흥미진진한 스토리였다.
땅끝 산골마을에서 부모님 없이 할머니와 자라던 소년과
세계 100위권의 잘 나가는 기업 회장의 총애를 받는 법무부 임원.
(그러나 회장 아들이 저지른 살인 누명을 뒤집어쓰고 쫓겨다니게 된)
이 둘은 같은 사람이며,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 노력한다.
미지의 마을, 비범한 초능력처럼 판타지적인 요소도 나오지만 아무래도 우리나라가 주된 배경인데다가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굵직한 정치적 사건들을 폭넓게 다루다 보니 쉽게 감정이입이 되고 불편함이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아마 정재계 비리, 언론검열, 인권과 생명과학 간의 충돌 등 우리사회에 어딘가 존재하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은.. 그런 이슈들이 적나라하게 나오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권력을 쥔 자들의 전횡과 사회적인 문제점들 사이에서 희생양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뾰족한 수를 쓸 수 없는 주인공의 약한 모습이 나와 겹쳤다가, 이념과 정치적 담론 싸움에 회의감을 느끼는 작가의 모습이 나와 겹쳤다가. 비극 속에서도 나의 생존부터가 중요한 이기적인 사람들의 모습이 나와 겹쳤다가를 반복하다 보면 이야기가 끝이 난다. 물론 속 시원한 결말도 없다.
그러나 끊이지 않는 긴장감과 결말이 궁금해지는 스토리, 또한 난쟁이, 벙어리 소년, 외다리, 정신질환자(도벽증)들이 사회적 약자보다는 나름의 삶을 살아가는 캐릭터로 표현이 되었다는 점 등이 책 읽는 시간이 아깝지 않게 만들어준다.
PS, 이 책의 주인공은 따로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그저 ‘바우’라고 불리는 아명만이 나올 뿐.
바우는 바위의 방언이다. 전통사회에서 한국인은 나면서부터 가정에서 불리는 이름인 아명을 가지곤 했었는데, 대개는 고유어로 지었다 한다. 천한 이름일수록 역신의 시기를 받지 않아 오래 산다는 믿음에서 개똥이, 똘똘이처럼 천박하게 짓는 것이 보통이었다고. 더불어 튼튼하게 자라라는 소망을 담아 바우라 이름 짓는 사람들도 많았다고 한다. 갖가지 시련과 권력에 휘둘려도 꿋꿋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데에는 그의 바우라는 이름도 한 몫 한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