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트 런어웨이
트레이시 슈발리에 지음, 이나경 옮김 / arte(아르테) / 2014년 3월
평점 :
절판


라스트 런어웨이, The Last Runaway

미국 역사상 가장 어두웠던 시대, 희망을 좇았던 한 여자의 여정

트레이시 슈발리에 l Arte l 2014.03



 


■ 평범한 퀘이커 여교도에서 흑인 노예들의 조력자가 되기까지


<라스트 런어웨이>는 1850년대, 퀘이커교도이면서 바느질에 일가견이 있던 영국 태생의 여자 주인공 ‘아너’가 미국으로 건너가면서 생긴 이야기를 담았다. 영국과 달리 전통이나 안정된 생활 없이 자신의 삶은 자신 스스로가 개척해가야 하는 미국. 그 속에서 아너는 물 흐르듯 마음맞는 친구를 만나고, 괜찮은 남자를 만나 괜찮은 농장 집안으로 시집을 가 살게 된다. 


그러나 미국의 남북전쟁 및 노예해방이 이루어지기 바로 직전이었던 당시, 아너가 살던 지역은 남부의 흑인 노예들이 북부 및 캐나다로 도망치는 길 가운데에 위치하고 있었다. 흑인 노예에 대한 보호장치가 전혀 없던 시기였기에, 이 흑인 노예들을 도와주다 걸리면 물질적인 고통 및 정신적인 고통을 감수해야 했다. 아너의 남편과 식구들은 흑인 노예들을 도와주다가 재산의 일부는 물론이고 목숨까지 잃어야 했던 아버지 때문에 더더욱 그들을 도와주기를 꺼린다. 그러나 아너는 굴하지 않고 조용히 그들을 돕게 되고, 나중에는 남편까지 설득하여 농장에서 나와 적극적으로 그들을 돕는 삶을 살게 된다.


 급변하는 혼란의 시대, 모두가 사람답게 살기를 꿈꾸던 그녀 


이 책에서 독립 선언 직후, 하나의 국가로써 인정받고 점점 몸집을 키워가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혼란과 불확실함이 가득했던 미국의 생활을 엿볼 수 있었다. 남자에게 버림받고 급히 떠난 여정길에서 점점 자리를 잡고 삶의 목표를 찾아가는 주인공의 다부진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생판 모르는 나라의 경제 발달을 위해 일평생 노예로 살아야 했던, 먼 곳에서 짐승처럼 팔려와 그저 자유를 위해 가족까지 포기하고 도망가야 했던 흑인 노예들의 삶. 또한 커져가는 나라에 내 설 곳 하나 없는, 자존심 때문에 노예처럼 일할 순 없어 근근이 살아가며 흑인들을 배척하는 것이 유일한 낙인 가난한 백인들의 생활상까지. 


미개했던 과거에서 좀 더 현대적인 시대로 변화하는 과도기에는 항상 이러한 비극들이 자리 잡고 있는 것 같다. 조금 더 빨리 미래를 내다본 덕분에 다수의 머리 위에 올라앉아 목숨까지도 좌지우지하는 인면수심 그들이 변화를 주도하고, 그들의 무리에 다리라도 얹어가고자 하는 기회주의적인 사람들, 그리고 실질적으로 그 변화를 몸으로 겪어내야 하는 불쌍한 사람들. 


주인공은 그 중 어느 무리에도 속하지 않았다. 변화고 나발이고 사람부터 살고 봐야 하지 않냐는 주의를 가진, 사람다운 삶에 자신의 목숨까지도 바치는 조금은 괴짜같은 사람들. 아주 소수이긴 하지만 아너는 그런 사람 중 하나인 것 같았다. 흑인 노예들을 도와주면서도 우월함을 느끼기보다는 친구로 여기고, 그 순간에도 배울 점을 발견하는 대단한 사람이었다. 


이 책의 제목 <라스트런어웨이>는 영국을 등지고 미국으로 건너 온 그녀의 마지막 탈출을 상징함과 동시에, 흑인 노예들의 도망치는 삶이 마지막이기를 바라는 그녀의 염원을 같이 담은 것은 아니었을까 조심스레 생각해본다.


 <라스트 런어웨이>에서 아쉬운 점이 하나 있다면


암울했던 시대 한 줄기 희망을 노래하는 따뜻한 소설. 진부한 소재이기는 하나 작가 특유의 전개 방식과 풍부한 묘사 등으로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었다. 그러나 주인공이 스쳐간 인연들의 옷조각을 모아 퀼트로 이불을 만들 것이라는 결말은 다소 소극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나름의 방법대로 도망치는 노예들에게 음식과 은신처를 제공하긴 하겠지만 그녀의 특기를 살려 따뜻하게 덮을 수 있는 이불이라던지, 옷을 만들어주리라 결심했다면 그녀의 결의가 조금 더 적극적으로 느껴지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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