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차 블랙펜 클럽 24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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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화차 / 미야베 미유키 저 / 문학동네 / 2012.02 (원작 1998.01)

 

 

[영화] 화차 / 변영주 감독 / 2012.03.08 개봉 / 이선균, 김민희, 조성하 주연

 


 

미스테리 소설과 사회파 미스테리 소설, 그리고 화차

 

나는 어렸을 때부터 미스테리 소설을 재미있게 읽었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작품들, 셜록홈즈 시리즈 등을 보면서 범인이 만든 알리바이와 트릭들, 그것들을 하나하나 벗겨가는 주인공의 모습들이 굉장히 멋있었고 신기했다.

 

나라면 생각할 수 없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보는 재미가 미스터리 소설을 읽는 가장 직접적인 원인이었다. 빠르고 흥미로운 전개로 책을 읽는 내내 완전히 몰입될 수 있다는 사실도, 그리고 호러물이나 잔인한 영상 등을 보고 나면 몸서리가 쳐지고 오랫동안 잔상에 남는 탓에 글로써 그런 종류의 콘텐츠에 대한 욕구를 해결하려는 내 개인적인 성향도 한 몫 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사회파 미스테리로 분류되는 소설들을 읽기 시작하면서부터는 미스테리 소설을 마냥 재미있게만 읽을 수 없었다. 오히려 가슴이 먹먹했다. 미스테리 소설에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를 배경으로 입힌 사회파 미스테리 또한 범인이 알려지고 트릭이 낱낱이 밝혀지지만 그 사람이 왜 범인이 될 수밖에 없었는지를 사회 구조 안에서 살펴본다. 자본주의의 부조리함부터 가정 혹은 학교, 국가의 폭력에 대한 것까지.

 

■ 같은 사회를 살고 있는 나 자신도 잠재적인 범죄자일 수 있다는 불안감

 나 또한 부조리한 사회의 일부가 되어 어느 선량한 사람 하나를 순식간에 범죄자로 몰아넣었을지도 모른다는 죄책감

사회 안에서 분명히 바뀌어야하는 것들이 바뀌지 않는 것에 대한 걱정과 근심

 

사회파 미스테리 소설을 읽고 나면 만감이 교차한다. 시급한 문제가 되는 부분들이 사람들에게 크게 와 닿아 공론화되고, 더 나은 사회로 발전할 수 있는 발판을 제시해준다는 점에서 앞으로 계속 성장해야 할 분야라고 생각한다.

 

얼마 전 사회파 미스테리 소설 중 최고의 소설이라 손꼽히는 미야베 미유키의 ‘화차’를 읽었다. 그리고 그 작품을 영화화 한 ‘화차’도 봤다. 느껴지는 점이 많아서 더 잊혀져버리기 전에 이곳에 기록해두고자 한다.

 


 

 

줄거리

 

휴직중인 형사 슌스케는 어느 날 먼 친척 가즈야로부터 약혼녀 쇼코를 찾아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결혼을 앞두고 신용카드를 발급받으려다 심사과정에서 과거에 개인파산을 신청한 적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갑자기 자취를 감추었다는 것. 의아한 것은 그녀 본인 역시 자신의 파산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던 눈치였다는 것이다. 단순한 실종사건으로 생각하고 개인적으로 조사를 시작한 슌스케는 시간이 갈수록 그녀 뒤에 또 다른 여자의 그림자가 유령처럼 붙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다중채무자라는 딱지를 내버리고 타인의 이름으로 새로운 삶을 살려 했던 한 여자. 그녀의 본명은 쿄코였으며, 부동산투기 열풍에 동참하고자 했던 아버지의 주택담보대출로 인해 가정이 파탄나고 평생을 빚쟁이들에게 쫓기며 살아야했던 비운의 주인공이었다. 어머니가 빚쟁이들 때문에 성매매와 마약 중독으로 시달리다가 쓸쓸히 죽는 것을 보았고, 새로운 도시에서 시작한 결혼 생활마저 빚쟁이들로 인해 깨진 것도 경험한 그녀는 더 이상 이렇게 살 수 없다고 판단해 속옷 통신판매 회사로 들어가 고객들의 데이터를 몰래 수집하고, 그 중 주변에 가족이나 친척 없이 살아가며 당장 사라져도 찾을 사람이 없을 듯한 몇몇을 리스트에 올려놓고 그 중 하나로 살아가고자 했던 것.

 

그 첫 번째 희생자는 쇼코라는 여성이었고, 그녀는 신용카드와 대출의 과다한 사용으로 인해 술집에서 근무하다가 그마저도 쉽지 않자 이미 개인 파산을 선언했던 사람이었다. 그런 자세한 사정까지 알 턱 없었던 쿄코는 이번에는 다른 여성을 죽이고 또 다른 사람이 되어 살아가려 하다가 형사에게 그 속내를 들키게 된다는 이야기.

 


 

소설과 영화의 차이점

 

소설을 보는 내내 숨이 턱 막혔다. 책장을 넘기는 3-4시간 동안 나마저도 빚쟁이에게 쫓기는 기분이 들었다. 1990년대 말에도 신용카드, 소비자 금융, 대부업체, 데이터 보안 문제, 주택 담보 대출 문제, 채무 독촉 문제 등 오늘날 쉽게 볼 수 있는 현상들이 이미 일어나고 있었다니 놀랍다. 지금은 채무독촉이나 협박이 법적으로 금지되어 다행이지만 20년 전, 모든 것이 체계화되어 있지 않던 시대에 얼마나 혼란스러웠을지 이 책을 보며 실감이 났다.

 

그 외에도 옆집에 살며 슌스케 형사의 아들을 보살펴주는 살림하는 남편과 사업하는 아내의 모습은 여성의 사회적 지위 성장을 나타내준다는 생각이 들었고, 신용카드 발급 과정보다 더 쉽고 간편한 주민등록등본 및 건강보험 관련 서류 발급 과정. 심지어 타인의 중요 서류도 맘만 먹으면 쉽게 발급 받을 수 있었던 모습은 ‘사람의 존재감’보다 ‘돈의 존재감’이 더 커진 사회를 비판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는 이러한 사회 현상들보다는 개인의 감정에 더 초점을 두고 만든 것 같다. 형사의 임무보다 약혼녀를 잃은 가즈야(극중 이선균)의 비중이 훨씬 크다. 소설과 달리 그는 직접 약혼녀를 찾아 나서며, 그를 말리는 사람들에게 그녀에게 꼭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다고 말한다.

 

영화가 소설보다 낫다고 생각했던 장면은 딱 두 개 있었다.

 

(1) 이선균이 지방까지 내려가 약혼녀 쿄코(김민희)를 찾는 도중 답답함을 표출하며 욕하고 소리 지르던 장면

(2) 김민희가 다른 사람으로 살기 위해 살인을 저지르고 시체를 처리하는 도중 극도의 두려움, 공포를 느끼는 장면

 

이 외에는 전적으로 소설 승.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1) 소설에서는 특히 약혼남이 아닌 형사가 좀 더 객관적인 시각으로 그녀를 찾아 나서기 때문에 개인적인 감정이 연루되어있지 않던 상태에서, 점점 그녀의 사정과 불쌍한 과거를 알게 되면서 느껴지는 연민의 감정에 너무나도 공감이 갔다. 그리고 그녀가 더 큰 범죄를 저지르는 것을 막고, 이미 저지른 죗값을 치르는 것 또한 중요하기에 쉴 새 없이 그녀를 찾아다녀야 하는 마음에도 공감이 갔고, 형사에게 나를 이입시키며 바쁘게 그녀를 찾아다녔다.

 

드디어 그녀를 마주치게 된 바로 직전, 그녀를 만나면 무슨 말부터 꺼낼 거냐고 묻는 동료의 질문에 슌스케 형사는 “일단.. 그녀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고 싶다.”라고 얘기하며 소설이 끝난다. 그 마음이 바로 독자들의 마음과 같았다. 살인을 저지르고 시체를 유기하고 남의 명의까지 도용하며 살아간 범죄자가 되기까지 그녀의 인생은 굉장히 슬프고 비극적이었다. 오히려 살아남으려 애쓴 그녀가 대견하기까지 할 정도로.

 

그러나 영화에서 이선균은 계속 “그녀를 만나서 얘기를 들어봐야겠다”라고 초반부터 직접 언급한다. 그래서 직접 만나서 얘기할 기회를 주니 또 그냥 보내버린다. 소설에서 작가가 3-4시간에 걸쳐 겨우 힘겹게 꺼낸 한마디를 영화에서는 주구장창 해대니 깊게 와 닿을 리가 없다.

 

(2) 또한 쿄코가 속옷 통신판매회사에서 일하며 고객들의 데이터를 몰래몰래 빼낸 이야기도, 소설 속에서 1990년대 인터넷 통신 판매 분야 성장이 두드러졌던 사회적 분위기와 맞닿아 있는 이야긴데 영화에서는 밑도 끝도 없이 아토피 화장품 회사로 소재를 바꿨다. 이건 중요한 사항이다.

 

소설에서 “속옷은 작은 돈으로도 누릴 수 있는 여자들의 사치”라는 부분이 나온다. 무분별한 대출과 신용카드 사용으로 재정난에 허덕였던 피해자는 ‘속옷’으로라도 작은 위안을 삼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에서 나오는 아토피 화장품은.. 그러한 작은 사치라도 누리고 싶은 절박함이나 욕망보다는 그냥 ‘아.. 피해자가 아토피가 있었구나’ 이 정도로 밖에 생각이 안 든다. 작은 부분이지만 이런 작은 부분 하나하나가 이야기의 완성도를 높여주는 데 일조한다고 생각한다.

 

 

 

 


 

 

 

 

제목 ‘화차’에 대한 고찰

 

화차는 악행을 저지른 망자를 태운 전설 속 불수레라는 뜻을 가졌다고 한다. 좀 더 내 마음대로 뜻을 보태자면, 내 인생을 바꿔 줄 꽃수레인 줄 알고 탔던 ‘화차’는 알고 보니 다신 내릴 수 없는 지옥으로 향하는 불수레였던 것이다.

 

 부동산 투기 열풍으로 “나도 대박 한번!”하며 쉽게 주택 담보 대출이라는 화차에 올라탄 쿄코의 아빠도.

 한 번도 누려본 적 없던 풍요로움을 선사해준 신용카드와 대출이라는 화차에 올라탄 피해자 쇼코도

 자신의 책임 아닌 채무 독촉에 평생을 시달리며 사는 것을 견딜 수 없어 다른 사람의 명의라는 화차에 타려했던 주인공 쿄코도.

 이것이 꽃수레인지 불수레인지 제대로 알려 줄 생각이 없었던 각박한 세상도.

 어쩌면 우리가 평화롭게, 혹은 치열하게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는 이 사회도.

 

모두가 ‘화차’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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